"산에 들면 산은 보이지 않고 산을 이루는 생물과 무생물만이 보인다. 산을 내려오자 산의 웅장한 자태가 한눈에 들어왔다. 들면 보이지 않고 나오면 보이는 이치 앞에서 멀고 가까움의 간격이 인생 살이에 필요함을 알겠다."
아침 7시 무렵. 금은광이(812m) 도착. 금은광이는 두수함으로 가는 오르막 앞에 제법 널찍한 터를 이루고 있었다. 이곳에서 진짜 아침 준비가 부산스럽게 진행되었다. 영희 이모님과 나는 어미새들이 떠먹여 주는 음식들을 먹는 것 외에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우리에게 먹이를 날라단 준 어미새들, 그들은 산경표님, 크레용님, 짱순 언니, 태백 오라버니, 산지기, 그리고 이 날 처음 뵌 도깨비님이었다. 도깨비님은 쌍꺼풀진 커다란 눈에 장난끼가 그득하고 전라도 사투리를 구수하게 구사하는 무척 사교적인 분이었다. 이분은 플라스틱 그릇에 밥과 고춧가루가 흠뻑 밴 김치를 가져와서는 이모님과 내게 떠 먹였고, 크레용님은 배낭에서 인절미, 컵라면, 보온 도시락에 든 밥, 새우젓, 인절미, 반찬통을 꺼내서는 같이 먹자 하시고, 산경표님은 저쪽에서 두부와 고추장을 넣고 끓인 찌게에다 밥을 말아서는 "가야산님 많이 드세요." 하며 건네 주었다. 도대체 이 많은 음식들이 어디서 나오는가 고개가 갸웃거릴 정도였는데,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까지 산노을의 먹을 거리는 좀처럼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들의 줄지 않는 음식 장독은 어디에 숨겨져 있을꼬. ㅋㅋㅋ
이처럼 풍성한 먹을 거리 앞에서 한꺼번에 많이 못 먹는 나로서는 무척 곤욕스러웠다. 내미는 손 마다하기도 참 멋해서 꾸역꾸역 음식들을 삼키다가 결국 배가 터질 것 같아 태백 오라버니와 산지기에게 구조 요청을 했다. 헌데 산지기는 나중에 후식이라며 삶은 밤 하나까지 건네는 거였다. 그가 건네는 그 밤을 차마 거절할 수 없어 손도 내밀지 않고 받아 먹었는데, 우리 앞에 서 계신 산경표님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시며, "참 보기 좋아요." 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넘 다정해 보였나?? 어쨌거나 거나한 아침을 먹고 한참을 쉬고 난 뒤 산노을의 듬직한 대장님이 출발 준비를 선언했다. 일행들이 배낭을 챙길 때 이 대장님이 전화 거는 시늉을 하며 "여기 주왕산 금은광인데요, 족발(맞나??) 두 접시 부탁합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어리버리인 나 가야산 또 그것이 진짜인 줄 알고, "저기 여기까지 족발도 주문되나요?" 라고 물어 버렸다. 그러자 이 대장님 허허 웃으면서 내 뚱딴지 같은 질문에 장단 맞춰 이렇게 대답해 주었다.
"아 그럼요. 모르셨습니까? 뭐 드시고 싶으세요. 짜장면 주문해 드릴까요? 이창명이 헬기 타고 배달해 줄 겁니다!!"
그제야 나는 나의 멍청함을 깨닫고 멋젓게 웃고 말았다. 어찌하여 나는 산에 들면 어리버리해지는가. 아니 산 아래서도 어리버리했던가???
8시 조금 전. 우리 일행은 포만감에 쌓인 채 두수람으로 출발했다. 여기서부터 두고개, 명동재, 느지미재를 거치는 산행길은 주왕산에 빼곡히 들어찬 나무들이 뿌려 놓은 낙엽들로 폭신폭신한 양탄자가 되어 있었다. 이쪽 코스는 사람들의 왕래가 거의 없는 지라(이 날도 우리 일행 뿐이었다), 소복이 쌓인 낙엽들이 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흙과 바위 위에 살포시 누워 있었다. 게다가 며칠 전 비가 조금 내렸던지 낙엽들은 물기에 촉촉히 젖어 있었고, 우리의 발에 밟히면서도 먼지 한 톨 피우지 않았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등산화에 밟히는 낙엽들이 자아 내는 소리는 앙증맞고 정겨웠다. "바스락바스락, 바삭바삭, 포삭포삭, 푸시시푸시시, 꾸시럭꾸시럭, 사각사각, 서걱서걱....." 짱순 언니는 수북히 쌓인 낙엽에 취해 비록 팔은 부실할 지언정 다리는 멀쩡하다는 것을 과시라도 하듯, 발로 낙엽들을 걷어차며 걸었다. 언니의 발에 걷어채인 낙엽들이 허공에 둥실 떴다가 내려 앉는 모습이 이쁘더라.
얼마쯤 걸었을까, 앞서 가시던 산경표님이 나를 돌아보고 물으셨다. "가야산님, 낙엽들의 대화 소리가 들리세요?" 햐!!! 평소 엄사모 카페에 올리시는 글들을 보며 산경표님이 예사롭지 않은 분임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낙엽들의 대화 소리라. . . 그 표현에 감동했다. 산경표님은 나를 부르실 때 꼭 "가야산님"이라는 존칭을 쓰신다. 어려도 한참을 어린 처자에게 극존칭을 쓰시는 것에 민망해 죽겠는데도, 꼭 그렇게 부르신다. 안경 너머 눈 밑에 깊게 패인 주름과 이마에 굵직하게 새겨진 두 줄 짜리 긴 주름을 보노라면 나는 산경표님이 걸어오신 길이 사뭇 궁금해진다. 20년 가까이 산과 동고동락을 하셨다고 하는데, 그다지 말씀이 없으신 편이다. 이 날 산경표님은 긴 말씀 없이 나와 보조를 맞춰 주기도 하셨고, 낙엽 쌓인 능선에 홀로 앉아 있는 나를 그 멋진 사진기에 담아 주셨고, 때로는 일행과 떨어져 뭘 담고 싶으신 것인지 허리를 굽히고서 카메라의 렌즈를 겨누었다.
낙엽과 더불어 주왕산이 우리에게 선사한 또 하나의 볼거리는 나무들이었다. 물론 한국의 산 치고 어딘들 나무가 없으리오. 허나 주왕산에는 두 주 전 찾은 오대산보다 더 많은 나무들이 들어차 있었다. 백과 사전에서 알아본 주왕산 국립공원의 식물 분포대는 온대 남부 삼림대에 속한다고 한다. 주요 식물 군락으로는 소나무 군락, 굴참나무 군락, 졸참나무 군락, 신갈나무 군락, 달뿌리 군락, 물억새 군락이 있다. 이 날 내 눈길을 사로잡은 주왕산의 나무들은 굴참나무, 신갈나무, 소나무, 철쭉 나무였다. 네이버 지식 검색을 통해 알아낸 굴참나무와 신갈나무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온나라 어느 산이든지 중턱 이상부터 널리 자라는 참나무는 신갈나무요, 산에서 줍는 도토리의 대부분이 신갈나무의 것이다. . . 군인들이 간첩 수색 작전을 하면서 위장을 하기 위해 머리에 꽂는 나뭇가지는 거의가 다 신갈나무의 것이다. 5월 신록의 앞장과 으뜸, 가을 노랑과 갈색 단풍의 주인공 또한 신갈나무다. . . 도토리가 열리는 또 다른 참나무로는 잎이 길쭉하고 끝이 뾰족하여 바소꼴인 굴참나무가 있다. 이 나무의 나무껍질에는 코르크가 두껍게 잘 발달되어 되어 있다. 나무껍질은 노란빛을 띤 흰색으로 세로로 깊게 갈라진다." (저 이러다 나무 박사 될 것 같으라^^)
주왕산의 이 두 낙엽수들은 겨울의 길목에서 잎들을 다 떨군 채 벌거숭이로 서 있었다. 잎들이 없으니 나로서는 이 두 나무를 분간하기 어려웠는데, 내가 본 바대로 구분을 하면 신갈나무가 갈참나무에 비해 나무껍질이 좀더 흰빛을 띠고 있는 듯했다. 오대산의 자작나무 껍질이 반짝이는 은빛을 띤다면 갈참나무와 신갈나무는 회백색의 얌전한 은빛을 띠었다. 어쩌면 아침 나절까지 해가 구름에 가려져 있어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봄부터 가을까지 걸치고 있던 푸르른 치장을 벗어 던지고 발가벗겨진 제 몸뚱이를 오롯이 보여 주는 이 두 종의 나무들을 보면서, 나는 벗겨냄의 미학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한여름에 산을 찾았을 때는 나무들에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한여름의 나무들은 몸뚱이 자체보다 자신들이 두른 푸른 옷들을 더 과시했고, 나 또한 그 초록의 향연에 취했더랬다. 그리고 푸르지 않은 나무가 무슨 볼맛이 나랴 싶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잘못 됐음을 이곳에서 깨달았다. 자신을 발가벗겨 보이기.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그런 것이 필요하지 않나 싶더라.
내 눈길을 사로잡은 또 한 종의 나무는 이들 갈참나무와 신갈나무 사이사이 서 있는 키 작은 철쭉 나무였다. 철쭉 나무는 큰 줄기가 땅 위에서 조금 올라오다 작은 가지들이 거꾸로 세워 놓은 우산처럼 뻗어 있었는데, 가녀린 줄기와 가지가 회반죽을 발라 놓은 것처럼 반지르르했다. 신갈나무보다 더 은빛을 발산하는 철쭉 나무들에 취해 서 있노라니, 산지기가 신갈나무 숲에는 꼭 철쭉 나무들이 같이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햐, 서로 사랑하나 부다."
나의 이 말에 산지기는 멋젓게 웃으면서 "궁합이 맞는가 부지." 라고 말했다. 나무들 사이에도 궁합이 존재하는 것이 정말 신기했다.
히햐~~ 진짜 ! 다시 올라갔다 온것 같네요! 요거~~ 딱~ 먹히것네~~ 미진한점이 많은줄 알고 있지만 이쁘게 봐줘서 고마워요^^ 그라고~ 산지기님. 진짜 징허게 좋은사람인디 사귀라는 말은 절대 아니고, 우리 산에 같이 쭈~우~욱 댕김시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해불먼 진짜로 좋컷는디~ 그렇게 해볼깨라아~
ㅠㅠ. 이모님. 엄니가 이번 주에 출입금지령 내렸어라. 김장을 하신다고..집에 붙박혀 김장하는 거 거들라고...흑흑. 산을 가고 싶지만...엄니의 이 명을 지는 거역할 수 없어라. 왜냐, 지는 김치 없으면 못 살거든요. 이모님~ 정말 언제나 관악산을 갈 수 있을까요? 가깝고도 멉니다. ㅠㅠㅠ
첫댓글 나무박사님 글 쓰시느라고 고생이 많으시네요...이모가 이번 일요일엔 뽀너스로 관악산 가이드 해 드릴께여~~~가야산 아자 아자 아자.!!! 사랑해~~
히햐~~ 진짜 ! 다시 올라갔다 온것 같네요! 요거~~ 딱~ 먹히것네~~ 미진한점이 많은줄 알고 있지만 이쁘게 봐줘서 고마워요^^ 그라고~ 산지기님. 진짜 징허게 좋은사람인디 사귀라는 말은 절대 아니고, 우리 산에 같이 쭈~우~욱 댕김시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해불먼 진짜로 좋컷는디~ 그렇게 해볼깨라아~
가야산, 네 못생긴 발에 밟혀 산산히 부서졌을 낙엽들에 조의를...ㅋㅋ/ 산에 다니며 이래저래 고생이 많네..다리도 머리도. 주말에 산에 가서 머리좀 식혀라~
우와 2편까지 아주 재밌게 읽었어요 대단한 필력이십니다 ^^..아 근데, 산지기님의 답글이 무지 궁금한 건 왜일까??
ㅠㅠ. 이모님. 엄니가 이번 주에 출입금지령 내렸어라. 김장을 하신다고..집에 붙박혀 김장하는 거 거들라고...흑흑. 산을 가고 싶지만...엄니의 이 명을 지는 거역할 수 없어라. 왜냐, 지는 김치 없으면 못 살거든요. 이모님~ 정말 언제나 관악산을 갈 수 있을까요? 가깝고도 멉니다. ㅠㅠㅠ
넘 재미나네.......좋은글 고맙어..*^^*
1탄을 맞고 띵해 정신을 차릴려구 어리비리 (누구글에서)허구 있는디 또2탄이라 까물어 지기 일초전~ 뭐라고 미사구어를 동원 한다해도 가~~산님의 글을 어찌 ^^^존경스러워유///
산경표님 진짜 행복하시것어요.이토록 야산이가칭찬을하니...
산 사람들은 그 특유의 여유와 유머로 초보들을 감동시킨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