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앞에 두고/정동윤
얼었다 풀렸다 하는 날씨처럼
명절을 맞이하는 마음도
예전처럼 가슴이 뛰지 않는다
내 뜻대로 내 의지대로
하고자 하는 일도 많이 줄었기에
마음은 움직이나 몸이 어쩔 수 없어
포기하는 일들이 자주 생긴다
며칠 전부터 봉은사 뒷길이 아른거려
오늘 마음먹고 집을 나섰다
서울역에서 동작역 다시 봉은사역으로
지하철 한 번 갈아타면 금방이다
43분 정도 걸렸다
봉은사,
천년 고찰로 수많은 고비와 물결 헤치고
서울의 강남에 버티고 있는
선종의 머리 사찰로 위엄을 보여준다
봉은사에 대한 나의 첫 관심은
추사 김정희가 죽기 사흘 전에 썼다는
편액 '판전'이었다.
물론 대웅전 편액도 추사가
이곳에 머물며 썼다고 하지만
추사의 인물됨과 노년에
과천의 '과지초당'에 머물며
봉은사에 자주 왔던 완당이었기에
세한도와 추사체 명성과 연결되어
내 걸음은 봉은사로 이어지게 하였다
그리고 매화당 뜰에 놓인 홍매에
관심이 끌려 봄을 기다릴 때마다
독립문 공원 홍매와 더불어
이곳 홍매을 궁금해하곤 하였다.
예전 우리나라 선비들이 매화를 좋아해서
어디에 멋진 매화가 있다고 하면
반드시 찾아가 매화를 즐긴 모습들이
퇴계 이황의 글에서나
다산 정약용의 글에서 자주 보았기에
봄을 기다릴 때마다 매화에 눈길이 가는
옛 선비의 눈으로 바라보고 싶었다
봉은사,
예전엔 경기도 광주였을 때
서울에서 가려면 한강을 배로 건너서
굽이굽이 걸어가는 심심 산골이었는데
조선의 9 대왕 성종과 정현왕비의 선릉과
11 대왕 중종의 정릉의 능침사찰이 되어
불교를 억제하는 시대에도 살아남아
한 때는 불교의 중흥을 이루기도 하였다
서산대사와 사명대사가 이곳에서 치른
승과을 통해 성장하였고 임진왜란 중에는
큰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이제는 도심의 허파 같은 숲을 간직하고
중후한 가람으로 수많은 신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수도산 명찰이 되었다
대도시의 하늘을 찌르는 빌딩 속에서
조금도 기죽지 않고 솔향 내 뿜으며
어디에도 꿀리지 않는 자존감으로
천년 사찰의 역사를 내보이면서
고고한 자세를 흩트리지 않는다
일주문에서 시작하여
법왕루, 대웅전, 선불당, 지장전, 영상전
북극보전, 미륵대불, 판전을
두루두루 천천히 돌아보고
후원 같은 언덕의 명상 길인
찰진 흙길을 걷노라면
맨발 걷기의 충동이 일곤 하였다.
때와 장소와 상황이 아님을 잘 안다
이렇게 봉은사 전체를 걷고 나니
명절의 우울감이 한결 잠잠해졌다
이곳에서 선릉과 정릉까지는
걸어서 30분 이내 닿을 수 있다
하루 평균 만 오천 걸음을 채우려면
전철 두 정거장 정도는 멀지 않는 거리다
9호선 봉은사역에서 선정릉역으로 걸었다
세조와 정희왕비, 자을산군과 성종,
연산군과 신씨 가문,중종반정과 여인들
문정왕후의 세도와 정난정 등
무수한 역사의 흔적을 들춰보며
역시 도심으로 변한 주변에도 불구하고
3기의 왕릉도 세월 따라 함께 흘러온
봉은사처럼 도시인에게 휴식의 공간을
만들어 주고 있다
돌연 남양주의 태종의 광릉과
운악산 봉선사가 생각난다
교종의 머리 사찰로 팔만대장경을
한글 번역한 한글 사랑과
대웅전 현판도
'큰 법당'의 한글로 적은 자부심
또 크낙새와 수목원으로 더 알려진 광릉,
그 능침사찰인 봉선사와 비교되었다
소나무와 오리나무가
군락을 이룬 선정릉을 외곽으로 돌면서
춘니의 자박자박한 흙길을 피하면서
명절 휴일엔 다시 왕들이 생전에 살았던
궁궐을 방문해 볼까 한다
우울한 마음을 왕의 걸음으로 지우며
추사 김정희가 이어준
봉은사 방문과 선정릉 탐방은
일만 오천 보의 발자국 남기며
나이 듬까지 깨우쳐주는
느긋한 산책으로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