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당 시집 제2권 8-6 8 즉경即景 보이는 경치 그대로 6 희청喜晴 갠 것을 기뻐해서
쌍연니남보오청雙燕呢喃報午晴 제비가 쌍쌍이 재재거려 낮이 갠 것 알리는데
정화란만철홍영庭花爛熳綴紅英 뜰의 꽃 난만하여 붉은 꽃잎 엮었구나.
괴음농록가인의槐陰濃綠可人意 괴목槐木 그늘 짙은 녹음 마음에 드는데
천색청화암조성天色清和諳鳥聲 하늘 빛 맑고 그윽하여 새소리에 합하네.
주주야운여권서簇簇野雲如卷絮 뭉게뭉게 들 구름은 솜을 만 것 같은데
랑랑암류사명쟁浪浪巖溜似鳴箏 일렁일렁 바위에 고인 물 쟁箏을 울리는 것 같네.
일장정원혼무뢰日長庭院渾無賴 해가 긴 정원庭院에는 아무런 일 없어
자작신천자소쟁自酌新泉煑小鐺 샘물 새로 길어다가 남비에 차를 끓이노라.
비온 뒤 맑게 갠 기쁨
제비 한 쌍이 지지배배 쾌청하게 갠 낮을 노래하고
뜨락에는 꽃들이 활짝 피어 붉은 꽃부리가 잇대었네.
느티나무 초록 잎의 짙은 그늘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하늘이 깨끗하고 온화하여 새소리와 어울린다네.
들판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피어 솜을 말아놓은 듯
암벽에서 계속 떨어지는 물방울은 거문고소리를 내네.
해가 긴 여름날의 뜨락은 온통 따분하기만 하여
신선한 샘물을 작은 노구솥에 부어 찻물을 달이네.
►니남呢喃 (제비가) 지지배배. 작은 소리로 속삭임
►괴槐 회화나무. 느티나무
►주주簇簇 여러 개가 들어선 모양模樣이 빽빽함. 주렁주렁함.
‘가는 대 족, 모일 주, 화살촉 착簇’
►랑랑浪浪 거침없이 흐름. (비가) 계속 내림.
►암류巖溜 바위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쟁 쟁箏’ 거문고와 같은 악기로 줄이 열 셋이다.
►혼渾 온통, 전부(全部).
►무뢰無賴 무뢰한無賴漢. 심심하고 따분함(無聊賴)
►‘삶을 자煑(=煮)
►‘쇠사슬 당, 솥 쟁鐺’ 쇠사슬. 노구솥. 쇠(구리) 솥
날이 갠 것이 기뻐서
짝지은 제비 재잘거리며 갠 낮을 알리는데
뜰의 꽃은 난만하여 붉은 꽃봉오리 엮었도다.
회나무 그늘 짙은 그늘 사람의 마음에 들고
하늘빛은 맑고 따뜻하여 새소리와 어울린다.
모여든 들판의 구름 솜을 말아놓은 듯 하고
출렁이는 바위에 고인 물은 거문고 소리 같아라.
해가 긴 정원에는 온통 아무런 소리 없고
신선한 샘물 길러다가 작은 냄비에 차를 다린다
●희청喜晴/이언적李彦迪(1491-1553)
무진산의구霧盡山依舊 안개 개니 산이 그대로이고
운수천자여雲收天自如 구름 걷히니 하늘은 예전 같아라.
기관삼막수奇觀森莫數 빼어난 경관 이루 다 셀 수 없고
진상활무여眞象豁無餘 참다운 모습 남김없이 드러났구나.
일묘간소장一妙看消長 사라지고 자라는 오묘한 이치를 보고
현기감권서玄機感卷舒 모였다가 흩어지는 하늘의 뜻을 느끼네.
혼명요불원昏明要不遠 어리석고 현명함은 멀리서 찾을 필요 없으니
인숙반구제人孰反求諸 사람이면 누가 반성하여 자기에게서 찾지 않으랴
●‘학자수學者樹’로 불리는 회화나무와 면과 떡
/천지일보/김영복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
우리나라와 중국이 원산지인 회화나무는 괴槐의 중국 발음이 ‘회’이므로
회화나무, 혹은 회나무가 됐다고 전해진다.
회화나무는 괴수槐樹, 백괴白槐, 출세수, 행복수, 옥수玉樹, 양목良木, 양화목으로도 불린다.
또 나무의 가지 뻗은 모양이 멋대로 자라 ‘학자의 기개를 상징한다’라는 의미로
‘학자수學者樹’라 하며 영어 이름도 같은 의미인 ‘스칼러 트리(scholar tree)’다.
반대로 일각에서는 아무 곳이나 이익이 있는 곳에는 가지를 뻗어대는
곡학아세曲學阿世를 대표하는 나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어쨌든 옛 선비들이 이사를 가면 마을 입구에 먼저 회화나무를 심어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는 선비가 사는 곳’임을 만천하에 천명했다.
고운 최치원 선생이 심었다고 하는 지리산 쌍계사 뜰에 100아름이나 되는
늙은 괴목槐木이 있는데 고운 선생은 이 나무 아래에서 글을 읽었다고 하며
이 괴목의 뿌리가 북쪽으로 시내를 건너서 얽혀 있으므로
쌍계사 승려가 괴근槐根을 다리로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고운집, 신증동국여지승람>
한편 송나라 때 왕우王祐가 뜰에다 세 그루의 괴목을 심고
자손들 가운데 三公의 地位에 오를 사람이 나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런데 그 아들 왕단王旦이 삼공에 올랐다.
그리하여 자손들이 堂을 건립하고 삼괴당三槐堂이라 이름했다고 한다
/<宋史 王旦傳>
‘주례周禮’에도 ‘면삼삼괴삼공위언面三三槐三公位焉’이라고 나온다.
이는 옛날 중국 궁궐 건축에 회화나무 세 그루 심는 것을 원칙으로 했는데
궁궐의 외조外朝는 왕이 삼공과 고경대부 및 여러 관료와 귀족을 만나는 장소로
이 중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의 삼공자리에는
회화나무를 심어 특석임을 나타내는 표지로 삼았다는 것이다.
창덕궁의 돈화문 안에 있는 세 그루의 회화나무는 바로 외조에 해당하는 곳이다.
회화나무는 이렇게 꼭 외조의 장소만이 아니라 궁궐 안에 흔히 심었고
고위 관직의 품위를 나타내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해 만년을 보내는 고향 땅에도 회화나무를 심고 더불어 뒷산에는
기름을 짤 수 있는 쉬나무를 심어 불을 밝히고 글을 읽는 것을 자랑으로 삼았다.
<진중세시기秦中歲時記>에서는
당나라 때 進士試에 낙방한 자들이 서울에 그대로 머물러 고시 준비를 하다가
괴목황槐木黃 거자망擧子忙 즉 회화나무의 꽃이 누렇게 될 때쯤에는
다시 부산해지기 시작한다고 했다.
아마 회화나무의 꽃이 피는 계절에 진사시를 봤던 것 같다.
“도당都堂의 남문으로 난 길 동쪽에 오래된 괴목이 있는데 그늘이 매우 넓게 드리워져 있다.
전하기를 밤에 악기 연주 소리가 들리면 상서성에서 재상으로 들어가는 자가 있었으므로
세속에서는 이를 ‘음성수音聲樹’라고 부른다.”/<인화록因話錄>
특히 회화나무는 흰두교 자이나교, 불교에서는 신성시하는 三大聖樹 중에 하나다.
‘주례周禮’ 하관夏官에 보면 옛날에 중국에서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다른 종류의
나무를 불태워 역질疫疾을 예방했는데 겨울철에는 괴목을 태워 역질을 예방했다고 한다.
회화나무를 한자로는 괴목槐木이라 하고 뿌리를 괴근槐根, 꽃봉오리를 괴화,
잎을 괴엽槐葉, 열매를 괴각자槐角子, 나무껍질을 괴백피槐白皮라 한다.
동의보감을 보면
“회화나무 열매, 가지, 속껍질, 꽃, 진, 나무에 생기는 버섯까지 모두 약으로 쓴다”라고 했다.
회화나무 목재는 재질이 느티나무와 비슷해 기둥과 가구재 등으로 쓸 수 있다.
두 나무를 다 같이 ‘괴槐’로 쓴 것은 이렇게 재질이나 쓰임이 비슷한 이유도 있다.
조복을 입거나 제례 등을 올릴 때 손에 드는 판을 홀笏이라고 하는데
조선시대에는 4품 이상은 상아, 그 이하는 괴목槐木을 사용했다.
<제민요술齊民要術>에서는 회화나무를 올바르게 키우는 방법을 이렇게 적고 있다.
“삼 씨와 회화나무 씨를 같이 섞어 심으면 곧게 자라는 삼을 따라 회화나무도 같이 곧바로 자란다.”
삼을 베어 버리면 회화나무만 남게 된다.
이렇게 묘목을 만들어 필요한 곳에 옮겨 심는다.
지금 본받아도 좋을 만큼 기발한 착상이다.
수지樹脂(회화나무 기름)는 제풍除風, 화연化涎하는 효능이 있다.
/<의림촬요醫林撮要>
수목 전체에서 황색색소로 무장한 루틴이 있는데 이를 추출해 의약품으로 사용한다.
이는 모세관투관성저하작용이 있어서 혈관 보강약·모세관성지혈액으로 이용되며
고혈압·뇌일혈·혈압이상항진증·출혈증 등에 치료 예방약으로 쓰인다.
민간에서는 가지를 달여 김을 내어 치질치료제로 쓴다.
특히 루틴은 종이를 노랗게 물들이는 천연염색제로 쓰인다.
회화나무의 꽃봉오리를 건조한 것으로 괴화를 생으로 쓰면
간을 맑게 하고 눈을 밝게 하며 불에 구우면 지혈작용이 강해진다.
꽃이 아직 피지 않은 것을 따로 괴미槐米라 하는데 모양이 쌀알만 하다는 뜻이다.
괴미와 괴화의 효능은 거의 동일하다.
과실은 괴각槐殼이라 한다.
괴각도 괴화와 효능이 비슷하나 지혈작용은 괴화가 강하고
청열강화淸熱降火 작용은 괴각이 낫다.
괴각은 꽃에 비해 질이 무거워 아래 쪽 장풍하혈腸風下血을 주치한다.
괴화 괴미 괴각의 약성은 쓰고 조금 차며
간과 대장 2경으로 들어가 간과 대장의 혈병을 치료한다.
따라서 근혈近血인 하부의 변혈·치혈痔血을 다스리고
원혈遠血인 상부의 잇몸출혈, 토혈, 안구출혈도 함께 치료한다.
또한 혈열이 망행해 발생하는 토혈, 육혈, 뇨혈, 혈림, 붕루 등 각종 출혈증에 사용하는데
뇌압이 높아져 발생하는 두통을 위시로 현훈, 고혈압, 어지럼증, 혈중콜레스테롤 강하,
항경련, 항방사능, 동맥경화의 예방과 치료에도 사용된다.
괴화槐花와 괴미槐米를 약한 불에 굽고 괴각을 더해 단미의 차로 달이면
쌉쌀한 맛과 함께 香이 좋으며 각종 출혈증에 중등도의 완만한 치료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한정록閑情錄>에서 송나라 때 시인 동파東坡 소식蘇軾은
“同州에서 나는 양羊을 푹 쪄서 행락杏酪을 발라 먹는데 숟가락으로 먹고 젓가락으로 먹지 않는다.
남도南都의 발심면撥心麪으로 괴엽냉도槐葉冷淘(냉면의 이름)를 만들고‧‧‧”라고 나온다.
여기에 나오는 괴엽냉도槐葉冷淘는 속칭 과수면過水麵이라고 하며
냉도면冷淘麵 혹은 괴도槐淘라고도 한다.
다음은 조선전기 문신인 성현成俔(1439~1504)의
<유두일식수단병流頭日食水團餠 유두일에 수단병을 먹다’라는 시 내용이다.
피발동천사이유被髮東川事已悠 동천에 머리 감던 일은 이미 아득해졌지만
년년가절시류두年年佳節是流頭 해마다 유두일은 아름다운 명절이라네
분분백설초비저紛紛白雪初飛杵 절굿공이에 눈 같은 가루가 날리기 시작하니
뢰뢰은환홀만구磊磊銀丸忽滿甌 은색 새알심 무더기가 문득 사발에 가득하네
괴엽랭도하족비槐葉冷淘何足比 괴엽냉도를 어찌 이에 비할 수 있으련만
호마향이미위우胡麻香餌未爲優 향기로운 참깨 음식도 이보다 낫지 못하네
군왕심전영량만君王深殿迎涼晩 시원한 저녁 깊은 궁궐 임금님을 맞이하는
역유선주차미불亦有仙廚此味不 대궐의 주방에도 과연 이런 맛이 있을까
동파東坡 소식蘇軾이나 성현成俔의 詩에 등장하는 괴엽냉도槐葉冷淘는
회화나무 잎의 즙을 밀가루에 섞어서 만든 일종의 냉면을 말한다.
과엽으로 만드는 면은 괴엽냉도 말고도 취루면이 있다.
취루면은 회화나무의 어린잎을 따 즙을 내 가라앉힌 녹말가루를
밀가루와 섞어 반죽해 가늘게 썰어 끓는 물에 삶아 찬물에 담갔다가 건져
깻국에 말아 표고를 고명으로 넣어 먹으면 빛깔도 좋고 맛이 아주 좋다.
조선 중기 무장인 김시민金時敏(1554-1592) 장군의
<동포집東圃集>에 괴엽병槐葉餠이 처음 등장한 이후
허균許筠(1569-1618)의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도문대작屠門大嚼에
서울에서 철따라 먹는 음식으로는 봄에 먹는 괴엽병이 나오며
조선후기 문신 오도일吳道一(1645-1703)의 <서파집西坡集>과
이덕수李德壽(1673-1744)의 <서당사재西堂私載>
신위申緯(1769-1845)의 <경수당전고警修堂全藁>
이명오李明五(1750-1836)의 <박옹시초泊翁詩鈔>에도 괴엽병槐葉餠이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