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서평 응축된 자성의 인생론과 서정적 진실 --정수현 시집 『여로』를 읽고 김 송 배 (시인. 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1. 개관 -정수현의 작품 읽기 정수현 시인이 첫 시집 『여로』를 상재하였다. 그는 오랫동안 제주도의 고위 공무원으로 재직하면서도 틈틈이 자연 사물과 인간의 교감에 대한 감응(感應)을 담아두었다가 월간 『문예사조』에서 시와 수필 그리고 소설까지도 당선하여 문학적인 소망을 성취한 우리 문단의 재원이다. 그는 「작가의 말」 중에서 ‘이제 제 나이 83세로 망구의 중반에 접어들었습니다. 서산에 발하는 황홀한 노을을 바라보면서 처음으로 시집을 펴내고 있습니다 / 여기에 모아놓은 시는 제가 살아오는 동안 접하였던 사물들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입니다. 그래서 제가 국내외를 돌아다니면서 그때그때 적어두었던 견문을 시로 표현한 것입니다’라는 겸손의 언사로 이 시집을 발간하게 된 동기를 피력하고 있어서 그의 시적인 지향점과 인격적인 가치관이 어디에 머물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또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서 정립할 것인가를 예견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정수현 시인은 ‘어느덧 팔순’에 당도해서 스스로 돌아보면서 응축(凝縮)해 놓은 그의 정서나 사유(思惟)의 일단이 진정한 진실로 형상화하는 그의 인생관은 지금 감읍(感泣)하는 심경은 무엇으로 형언할 수 없는 소회(所懷)를 적시하고 있어서 이를 상찬(賞讚)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그는 팔순을 맞이하여 ‘한 해의 마무리 / 이제 떠나 보내고 / 나는 또 늙어가는 / 나잇살 헤아린다’(「어느덧 팔순」 중에서)는 회상의 감회에서 남은 여생에 이제는 마음을 털고 가볍게 비우자는 관용과 성찰의 진정성이 그의 심저(心底)에 무르녹아 있어서 한평생 살아온 생애가 회한으로 남지만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의 인생론을 적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 시집 전체에서 우선 그가 유지해온 생애를 통해서 ‘인생은 유한한 것’이라는 철학적인 인생관을 비롯해서 제주 특유의 자연 풍광의 서정과 역사적인 사실(史實)에 입각한 시사적인 현장의 탐색 그리고 세계의 낯선 여행을 통해서 그들의 풍물과 경관을 통해서 새로운 가치관을 발견하게 되는 아주 중요한 메시지를 전해주는 인생 교과서로 그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 2. 인생은 유한한 것 정수현 시인은 먼저 이 시집에서 눈길을 흡인하는 것은 자신의 인생에 대한 회억(回憶)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다시 살펴보는 성찰의 시간을 갖고 있다. 일찍이 영국의 비평가 칼라일은 인생이란 단지 기쁨도, 슬픔도 아니고 그 값어치를 성취하는 광장에 홀로 서 있는 고독한 존재라고 했다. 이러한 존재의 진정한 진실은 오로지 자신의 신념과 열정에서 새롭게 구현하려는 탐색과정일 것이다. 서산에 지는 노을은 황홀하다 취한 듯 흔들거리는 한 해의 마무리 이제 떠나 보내고 나는 또 늙어가는 나잇살 헤아린다 늙음도 욕심인가 한껏 살아온 생애 회한의 뼈마디 가슴 찌르는데 마음을 털자 남은 여생 빈 마음 다스리듯. --「어느덧 팔순」 전문 그렇다. 정수현 시인은 작품 ‘어느덧 팔순’에서 감응하고 지각하는 인생의 원리는 바로 ‘남은 여생’에 대한 의식이 공허(空虛)라는 또 다른 가치관을 탐구하고 있다. 이는 우리 인생이 숙성단계에서 인식하게 되는 허무의식이 잠재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어서 공감을 흡인하고 있다. 그는 이제 늙어가는 나잇살을 헤아리는데 생애의 회한에서 인생의 가치를 ‘빈 마음’이라는 자성으로 결론짓고 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옛말이 생각난다. 인생도 꽃과 같아서 영원한 존재는 불가하다는 교훈이 바로 그에게서는 허심(虛心)에서 탐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인생의 걸어가는 길에는 / 명암이 교차되는 법 / 고난은 희망의 어머니라 했으니 / 앞날에는 부디 행복이 오리라(「명암의 교차」 중에서)’거나 ‘어제보다는 오늘 / 현재보다는 / 찬란한 내일이 있다(「망각」 중에서)’는 희망과 기원이 넘쳤다. 그러나 지금의 팔순의 언어는 침착하고 유연한 자적(自適)의 안정감을 적시하고 있다. 나는 짝 잃은 기러기가 되어 추억을 더듬으며 살아간다오 혜란이 아빠 불쌍해! 하고 눈물짓던 모습이 내 심금을 울리고 있소 --중략-- 인생은 유한한 것 나도 언젠가는 당신의 뒤를 따라 별에 가서 살 것이요 그때는 물어물어 당신이 사는 별을 찾아가리다. --「별에 사는 당신」 중에서 정수현 시인은 먼저 떠나보낸 아내의 사랑을 잊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별에 사는 당신’을 무척 그리워하고 있다. ‘혜란이 아빠 불쌍해! 하고 / 눈물짓던 모습이 / 내 심금을 울리고 있소’하고 애련(哀憐)에 젖어 있다. 이처럼 ‘인생은 유한한 것’이라는 결론에서도 ‘나도 언젠가는 / 당신의 뒤를 따라 / 별에 가서 살 것이요’라는 어조로 ‘당신’에 대한 사랑을 적시하고 있어서 우리들의 공감을 확대하고 있다. 그는 다시 작품 「먼저 떠난 그대」 중에서도 ‘그대의 인자한 마음 / 가화만사성 이루었고 / 아들 딸 손자손녀 / 다 잘 지내고 있소 / 모두 다 그대의 음덕이요’라는 정감적인 시법으로 불망의 애정을 절구하고 있어서 그의 인생에서 생명의 유한에 대한 긍정적 인식에서 사랑을 발현하고 있는 것이다. 3. 제주의 향토적 자연 서정 정수현 시인은 제주도 서귀포가 낳은 시인이다. 그는 제주도에 살면서 지역적인 향토 풍광과 풍물 그리고 자연 환경에서 착목(着目)한 모든 소재들이 시로 형상화하고 있어서 그는 제주도를 가장 사랑하는 애향 시인이다. 그는 ‘자연과 기후는 포근하며 / 감귤꽃 향기 진하게 풍기고 / 황금 열매는 주렁주렁 / 우거진 야자수는 / 남국정서 물씬 풍기네 (「복 받은 땅 서귀포」 중에서)와 같은 시편들이 다수 창작되어 우리 독자들의 시선을 흠뻑 흡인하고 있어서 그는 정녕 제주도 서귀포 시인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북으로 흰 사슴이 살던 백록담 남으로 이어도가 있다는 푸른 바다 동홍천이 흘러 정방폭포 서홍천이 흘러 천지연폭포 노인성이 보이는 남성대 식물의 보고인 섶섬 목호를 토벌했던 범섬 산천과 바다가 한 폭의 그림 같은 어느 하나 절경 아닌 곳이 없네 아득한 옛날에는 서복이 다녀가고 근래에는 유명한 대중가요인 서귀포 칠십리의 고장 남국정서 물씬 풍기는 서귀포여 영원하라. --「서귀포 사랑」 전문 그의 서귀포에 대한 사랑은 필설(筆舌)로 전부를 형언할 수 없을 것이다. ‘서귀포여 영원하라’라는 결론과 같이 그는 서귀포 사랑의 홍보대사로 인정할 만한 서귀포의 명승지와 절경 등 향토적 특성으로 그의 특유의 서정성을 가미하여 적나라하게 분사(噴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 「서귀포 사랑」에서 적시하였듯이 서귀포에 산재한 절경들(여기가 관광객들이 빼놓지 않고 입람(入覽)하는 곳이다)을 모두 적시(‘산천과 바다가 한 폭의 그림 같은 / 어느 하나 절경 아닌 곳이 없네‘)함으로써 그가 잊을 수 없는 서귀포의 보물들이 그의 시야에서 시적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다시 ‘한라산 정기가 남방으로 뻗어내려 / 위엄 깃든 고근산을 만들었네 / 정상은 396m의 타원형 분지로 / 남동사면에는 국상을 당했을 때 곡배단 / 남서사면에는 깊고 깊은 강생이굴 // 신증 동국여지승람에 고근산은 / 대정현 동쪽 57리에 있으며 / 정의현과 경계를 이루었네(「고근산」 중에서)’라는 유서깊은 제주의 명소를 작품으로 소개하는 등 그의 열정을 이해하게 한다. 그 밖에도 마라도, 성산일출, 서귀포 칠십리, 5.16도로, 한라산 혈망봉, 산방산, 백록담, 삼재의 섬 등이 그의 심안(心眼)에서는 작품으로 승화하여 관광안내에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다. 무릉도원땅에서 남쪽 바다 멀리멀리 이어도가 있다네 한 번 가면 돌아올 수 없는 극락세계 같은 곳 남편이 바다에 고기잡이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으면 그 섬에 살아있다고 믿었네 해녀들도 하얀 돛배 타고 남편을 만나러 가는 게 소원이었네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하지만 저 수평선 너머 이어도는 과연 존계하는 것인가? 아- 그것은 현실이 아닌 상상의 세게였네. --「이어도」 전문 제주도에는 ‘이어도’라는 특이한 섬이 있다. 환상의 섬 이어도이다. 그는 무릉도원이거나 극락세계라고 명명하고 있다. 여기에서 전국에서 회자(膾炙)되는 ‘이어도 사나’라는 가락으로 우리들의 감응시키고 있는데 이는 제주도의 해녀들이 물질을 하기 위해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갈 때 부르던 민요이다. 특별한 기록없이 구전되는 민요 특성상 부르는 사람과 지역마다 사설 내용이 조금씩 다르지만 구성지게 목청을 가다듬는 해녀들의 애잔한 선율이 들리는 듯하다. 그는 이 밖에도 작품 「백록담과 신선」 중에서도 ‘한 신선이 백록을 타고 / 연못에 내려와 물을 먹이고 / 백록은 영주초를 뜯으며 / 노닐다가 어느새 사라져버려 / 그래서 백록담이라 하였네’라는 등 그 지역에서 전해오는 전설이나 설화(說話)들 까지도 명징(明澄)하게 시적으로 전해주고 있어서 우리들의 눈길을 끌고 있는 것이다. 정수현 시인은 특히 제주도의 역사 인식에도 사유를 확대하고 있는데 ‘1948년 비극의 4.3사건 발발 / 도내 중산간 지역 주민들 / 해안마을로 소개시켜 / 마을을 집단화시키고 // 무장대 습격에 대비 / 밭담을 옮겨다 석성을 쌓아 / 주민들이 창을 들고 경비하였으니 // 이로써 좌익무장대와 / 주민들을 분리시켜 / 입산한 무장대를 고립화시켰다 (「견벽청야」 중에서)’는 지나날 ‘4.3의 아픈 기억’을 형상화해서 기억 속 과거를 울적하게 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의식은 일제시대의 일보구의 만행에서부터 6.25의 비극과 4.3사건의 아픔들이 적나라하게 진술한 시법에서 우리들은 암울해지는 것은 어인 일이일까. 작품 「이경규 경위」 「남매 해병」 「유년기의 추억」 「첨전용사」 「제주 해병혼」 등등에서 그 당시의 상황과 애국충정을 애달픔 시혼(詩魂)으로 되새기고 있는 것이다. 4. 국내외 여로에서 감응한 기행시편들 정수현 시인은 여행을 인생의 동반자로 상당한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그는 국내 여행뿐만 아니라, 외국의 오대양 육대주의 풍물을 섭렵(涉獵)하고 있다. 일찍이 영국의 철학자 러셀은 여행의 추억은 끊임없는 휴양이라고 했다. 또한 우리의 철학자 안병욱 교수는 ‘여정(旅情)은 연정(戀情)과 비슷하다. 그날그날의 생활을 인생의 사업이라고 한다면 여행은 인생의 즐거운 예술이다.’라는 말로 여행을 적극 찬미하고 있다. 그는 우선 국내 여행에서 무엇을 보고 왔으며 무엇에 감응했을까. 어느 따뜻한 가을날 오후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산정리 고요한 산정호수 명성산, 감투봉, 서향산, 관음산, 불무산에 들러싸인 0.26km의 담수호 주변의 야산은 만산홍엽으로 타들어가고 호수는 물로 넘실거린다 호반에는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낚싯대를 드리운 강태공들 유유자적하지만 어느새 황혼을 채비하는 저녁노을이 나그네의 발길을 재촉한다. --「산정호수」 전문 그는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산정리에 소재한 산정호수를 어느 가을 오후에 찾아간다. 주변 야산의 만산홍엽과 넘실거리는 호반에서 낚싯꾼들이 시간 개념도 없이 유유자적하는 모습이 저녁노을과 함께 나그네의 여행의식은 항상 겸허함을 깨닫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외에도 경인아라뱃길, 남한산성, 다부동, 봉정암, 다산초당, 안산 상록수역, 수원화성, 월정리역, 충주호, 통일전망대, 화개장터, 효석문화마을 등등 전국을 탐방지로 설정하고 역마직성(驛馬直星)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어서 그의 여행벽을 이해하게 한다. 그는 다시 ‘가끔 서있는 북한군 이외 / 시민들은 눈에 띄지를 않고 / 상가나 저잣거리도 없으니 / 도시는 잠들었고 정적에 깃들어 있다. (「개성관광」 중에서)는 상황과 같이 아무 때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는 북한땅 개성을 방문하여 감회를 토로(吐露)하고 있다, 그는 개성시 선죽동에 남아있는 선죽교에서 고려 충신 포은 정몽주의 단심가를 듣고 이방원의 철퇴를 회상하고 있다. 그리고 박연폭포에서는 황진이를 만나서 화담 서경덕과 함께 송도삼절의 정취를 회억하는 여행의 진미를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 땅인 백두산을 ‘백번을 등반해야 / 겨우 두 번을 본다는 백두산천지 / 나도 오르지 못하고 / 장백폭포에 멈추었네(「장백폭포」 중에서)’라는 아쉬움과 ‘나라 잃은 우리 동포 / 조국을 찾겠노라 / <선구자> 노래를 불렀던 / 항일투쟁의 상징 / 일송정 푸른 솔’과 윤동주 시인의 생가를 둘러보면서 일제 강점기의 비애를 숙연하게 흡인하고 있다. 아시아와 유럽 동서양의 경계인 보스포루스 해협 그 길이 32km, 최단 폭 550m 흑해에서 바다로 나가는 유일한 통로 전략적. 경제적 가치가 엄청난 수로 그곳은 터키의 영토 나는 유람선을 타고 도도히 흐르는 조류를 거슬러 올라 흑해 쪽으로 되돌아온 애틀리 선착장 조각달이 떠있었다 터키하면 친근감 고구려때 이웃했던 돌궐족이 세운 나라 지금도 형제의 정을 나눈다. --「보그포루스 해협」 전문 박용현 시인은 이제 해외로 그의 여행지를 확대하고 있다. 아시아뿐만 아니라, 우럽과 북남미 국가와 아프리카까지를 두루 살펴보는 그의 열정은 평범성을 벗어나 과히 모험에 가까운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우선 터어키에서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를 이루는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유람선을 타고 돌아보면서 ‘지금도 형제의 정을 나’누고 있는 우방을 칭송하고 있어서 그의 여행의 본원(本源)은 그 나라의 풍물과 동시에 조화를 이루는 우리와의 상관성에 그의 시선은 머물고 있는 것이다. 그의 여행 역정(驛程)은 아시아에서 중국의 자금성, 만리장성, 장가계, 항주, 서안, 계림을 비롯해서 대만, 일본, 베트남, 블라디보스토크 등, 유럽에서는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스위스 등과 북아메리카에서 뉴욕, 워싱턴, LA, 하와이, 알래스카, 카나다, 멕시코 등, 남아미리카에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그리고 아프리카의 에짚트에서 그 나라들의 역사와 풍습들과 함께 그들의 생활상들을 자세하게 관찰하고 돌아와서 작품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중국의 절강성 항주 /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 하늘에 천당 / 지상에는 소항 (蘇抗)이라 하듯이 / 가히 지상의 낙원(「항주의 서호」 중에서)’이라거나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 / 99m나 높은 이리호에서 발원하는 / 어마어마하게 쏟아지는 지표수 / 거대한 폭포를 만들었네(「나이아가라」 중에서)’라는 등의 어조와 같이 당도하는 곳마다 그의 예리한 감수성으로 감동하는 시법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5. 결-서정적 자연과 자아 구현 정수현 시인은 감성적 인식이 넘쳐나는 서정시인이다. 이러한 그의 시정신과 시창작의 행보가 만유(萬有)의 자연과의 교감으로 서정적인 시법과 친자연적인 그의 사유를 음미하게 한다. 그는 국내의 문화유적지의 탐방이나 외국 여행을 제외하고는 제주도의 산천경개(景槪)를 두루 살펴보는 산책을 즐기고 있다. ‘나도 풍진세속을 잠시 떠나 / 산이 좋아 산에 오릅니다 / 그때는 자연에 순응하여 / 좋은 기운을 가슴에 가득 받아들이고 / 즐기고 노래하고 찬미랍니다.(「산의 찬미」 중에서)’라거나 ‘겨울이 오면 / 나뭇가지만 남아 / 모진 한파를 맞으며 / 고사될 것 같지만 / 그래도 강인하게 살아서 / 희망의 봄을 맞이하네. (「낙엽귀근」 중에서)’라는 어조와 같이 그는 자연 친화에서 정감적으로 화해하는 인간과의 상호 존중의 정신은 그의 정서에서 상당한 지적개념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황량한 들판 휩쓰는 바람 바람으로 피어난 풀꽃 쓰러지다 일어섰고 일어서다 다시 쓰러져 운다 무더기 무더기 채로 물결치듯 넘어져 운다 백발의 머리 흔들며 오체투지의 몸짓으로 엎드려 눕는다. --「억새풀꽃」 전문 온몸이 움쳐려드는 엄동설한에도 울타리에 우거진 동백나무는 의연하게 울울창창 동백꽃은 빨갛게 피어나서 그 속에 달콤한 꿀을 저장하고 어찌 알았는지 어여쁜 동박새가 날렵하게 날아든다 그 녹색빛 아름다운 모습 찌익-찌익- 울음소리를 내며 동백꽃 속의 꿀을 빨고 노란 꽃가루 몸에 묻혀 다른 꽃에 옮겨주니 자연의 조화 속에 동식물이 공생한다. --「동백새」 전문 이 두 편의 서정시는 일찍이 프랑스의 시인 볼테르가 ‘자연은 인간이 베푸는 교육 이상의 영향력을 품고 있다’고 말한 바와 같이 자연과의 순응은 바로 우리 인간들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얼마만큼의 행복한 영향을 제공받고 있는지 참으로 지대한 존재와의 친화에 대한 그 가치를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자연의 조화 속에 / 동식물이 공생’하는 환경이나 인간들의 지향점이 ‘물결치듯 넘어져’ 울고 있는 오체투지의 억새풀이나 빨간 동배꽃에서 꿀을 빠는 동박새의 생존이 바로 우리들의 가슴에서 울려나오는 진정한 공존 공생의 가치관이 아닌가 생각된다. 다시 ‘소쩍새는 밤에 잠을 자지 않고 / 사냥을 하는 야행성동물 / 낮에는 산속 나뭇가지에 잠을 자는데 / 소쩍소쩍 하고 울면 흉년이 들고 / 소쩍다, 소쩍다 하고 울면 풍년이 온다. (「소쩍새」 중에서)’는 어조에서도 소쩍새의 울음을 통해서 농사에 데한 길흉을 예견해보는 민속적인 전설 등이 서정적으로 분사(噴射)하면서 정수현 시인의 서정적 자아를 구현하려는 시적인 형상임을 이해하게 한다. 일찍이 영국의 시인 워즈워스는 ‘자연은 그 아름다운 창조물에 / 내 마음에 흐르는 인간의 영혼을 결부시켰나’하고 그의 시 「이른 봄의 노래」에서 읊고 있듯이 자연과 인간의 상대성이 생명 유지나 삶의 영위에 불가분의 관계에서 정수현 시인은 자아를 다시 투영하면서 존재의 이유를 적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이처럼 자연에 심취하는 경관은 작품 「단풍」 「봄」 「성산일출」 「한라산 희망봉」 「영남동」 「새벽의 산책길」 「정자목」 「동물과 천적」 「뻐꾸기」 등등 제주도의 자연인답게 지천으로 널려있는 자연을 모두 그의 시적인 소재나 주제로 수용하려는 그의 심중을 이해하게 된다. 이제 정수현 시집 『여로』 읽기를 마무리한다. 우리는 그의 작품에서 시의 소재는 일상생활과 정서생활에서 크게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생활의 언어가 시의 기교로 사용하게 되는데 정수현 시인은 보편적이고 평범성이 넘치는 일상의 소재에서 그가 탐색하고 구현하려는 의식이 제주도라는 특성을 함축시킨 제주의 시인임을 확인해주는 의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는 ‘제가 쓴 시는 사유와 문장력이 빈약하여 독자에게 울림을 주는데 부족함이 많’다는 겸허(謙虛)의 심경도 어쩌면 시와 인간과 자연이 일심 공존이라는 새로운 가치관을 긍정적으로 수긍(首肯)하는 그의 인격을 존경하게 한다. 망구(望九)의 중반에응축된 자성적 인생, 거기에서 펼쳐진 ‘여로’ 또한 위대한 경륜임을 칭송(稱頌)하면서 축하를 보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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