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간곡한 요청에 맞선을 보았다.
첫 경험을 묵호항 부근의 그녀에게 바친 후, 여자가 없었다.
대학에 입학하자 데모로 세월을 보내고, 군대에 끌려가고, 제대하고 일본어 공부해서 일본 문부성 장학생이 되어야 했고,
그래서 운이 좋아 일본에 갔다.
어느 날, 어머니의 전화였다. 아홉수 넘기기 전에 장가가라는.
그래서 29 살 봄 방학때, 하루에 세여자를 만났다. 두 여자는 기억이 나는데 한여자는 전혀 기억에 없다.
그 중 한 여자가 아내였다.
아내와 만나서 일본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세 번인가 만났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순간이 기억에 없다. 돌아다니며 아내를 옆에 앉히고 술만 마셨던 기억 뿐.
아내와 강릉 시내를 돌아다니는 것이 창피했다. 아내는 저만치 떨어져 나를 따라왔고, 나는 간신히 그 순간을 피하기 위해 술집을 찾았다.
아내와의 술집은 아내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순간일 것이다.
일본에 와서, 그 동안 밀린 섹스의 화풀이를 했다. 아내와 나의 성기가 닳도록.
아내의 마음은 아랑곳 없이.
그리고 아내가 임신을 했다.
아내와 맞선을 보고 온 날, 어머니가 전화를 바꾸어 주었다. 강릉시청 국장의 전화였다.
자기 딸을 만나보라는 거다. 난 귀찮아서싫다고 했다.
귀찮기 보다 건방진 그의 말소리가 싫었을 거다. 당연하다는 투의 그의 거만한 목소리가.
느닷없는 이야기를 해야겠다. 사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거다. 그래서 죽은 아내를 끌여들인거다.
아마 어머니가 아니였음, 내 성향으로 봤을 때, 평생 혼자 살았을 것이다. 물론 여자는 그리웠겠지만, 그것은 그때 그때 해결하면 되었을 것이지만.
아내와의 어색한 만남이 내 삶이 되었다. 두 딸을 낳고, 난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하기 싫은 돈을 벌어야 했고, 아내가 죽고 난 미치도록 괴로워 했고,
이제 홀로 남아 살아야 하고.
난, 아내와의 만남부터가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저 홀로 살던 내가, 하루에 세 여자를 만난다는 것이 경이로왔다.
그 중 아내가 선택되었다. 그것이 내 삶이 되었다.
다행인 것은, 나는 아내에게 항상 미안하지만, 단 한번도 양심에 부끄럽지 않다는 거다. 그저 세월에 따라, 어머니가 시키는대로, 가정에 대해 아무 생각도 없는 내가, 비록 이렇게 홀로 쓸쓸히 살아가지만, 난, 세상이 시키는대로 자연선택을 한 것 뿐.
이제, 본론을 이야기 한다.
다윈의 진화론이다. 다윈의 진화론은 한마디로 이야기 하면. 자연선택 이다 좀더 쉽게 이야기 하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단 거다.
이제 길게 이야기 하고 싶지 않다. 어쩌다 보니 갈파파고스 섬에 갖혀서 그런 유전 형질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어쩌다 보니, 사피엔스의 한무리가, 유라시아 동쪽 끝에 도달해 K 문화가 된 것 뿐이다.
잘 난 척 말아라. 절대 K문화의 우수성 따위는 입 밖에도 내지 말아라.
어쩌다, 중앙아시아 우랄 알타이어를 사용하던 말 타던 부족 하나가, 동쪽 끝에 도달해, 어쩌다가 K 문화가 되었을 뿐이다.
맞선은, 여자에 대한 의무감도 모르고, 가정이 뭔지도 모르고 아무생각도 없었던 나에게는 금수저였다.
잘 나갔던 일본 유학생에 멀끔한 얼굴에, 그에 대한 죄가 지금이다.
나는 그 죄값을 홀로 열심히 사는 것으로 마감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