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론 다시읽기 자료입니다.
제27장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신용의 역할
신용제도에 관해 우리가 이제까지 행해온 일반적 관찰은 다음과 같다.
I. 자본주의적 생산 전체의 기초를 이루는 이윤율의 균등화[또는 이 균등화의 운동]를 매개하기 위해 신용제도가 필연적으로 형성된다는 것.(자본3,562)
II. 유통비용을 절감시킨다는 것.
1) 주요한 유통비용의 하나는, 화폐가 그 자체 가치인 한, 화폐 그것이다. 화폐는 신용에 의해 다음과 같은 3가지 방식으로 절약된다.
A. 거래의 큰 부분에서 화폐가 전혀 사용되지 않는 것에 의해.
B. 유통수단의 유통이 가속화되는 것에 의해.(주85) 이것은 부분적으로^ 아래 II의 2)에서 말할 것과 같다. 한편에서 이 가속화는 기술적인 것이다. 즉 소비를 매개하는 현실의 상품거래의 양과 수가 불변인 조건에서 더 작은 양의 화폐 또는 화폐상징이 동일한 기능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은행업의 기술에 관련된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 신용은 상품탈바꿈의 속도를 가속화시키며, 이에 따라 화폐유통의 속도를 가속화시킨다.
C. 금화를 지폐로 대체하는 것에 의해.(자본3,562-563)
주85) “프랑스은행의 은행권 평균유통액은 1812년에는 1억653만8천프랑, 1818년에는 1억120만5천프랑이었는데, 화폐유통액−즉 모든 수취와 지불의 연간 총액−은 1812년에는 28억3,771만2천프랑, 1818년에는 96억6,503만프랑이었다. 따라서 프랑스에서는 1818년의 통화활동성은 1812년의 그것에 비해 3:1이었다. 유통속도의 큰 조절자는 신용이다…화폐시장의 격심한 핍박이 일반적으로 높은 유통속도와 일치하는 이유는 이것에 의해 설명된다.”(통화이론의 검토: 65) “1833년 9월−1843년 9월에 영국에서는 거의 300개의 은행이 발권은행에 추가되었다. 그 결과 은행권 유통액이 £2백5십만만큼 감소하였다. 은행권 유통액은 1833년 9월 말에는 £3,603만5,244이었는데 1843년 9월 말에는 £3,351만^8,544이었다.”(같은 책: 53) “스코틀랜드에서는 유통이 매우 활발하기 때문에, 잉글랜드에서는 £420을 필요로하는 화폐적 거래의 양이 £100에 의해 처리되고 있다.”(같은 책: 55. 이것은 활동의 기술적 측면만을 언급한 것이다.(자본3,562-563)
2) 신용은 유통[또는 상품탈바꿈]의 개개의 국면을 가속화시키며, 자본탈바꿈 따라서 재생산과정 일반을 가속화시킨다. (다른 한편으로 신용은 또한 구매행위와 판매행위를 오랫동안 서로 분리시킬 수 있으며, 이리하여 투기의 토대로 기능한다.) 준비금을 축소시키는 것은 한편에서는 유통수단의 감축으로서,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자본 중 항상 화폐형태로 존재해야만 하는 부분의 감축으로서 고찰될 수 있다.(주86)(자본3,563)
주86) “은행이 설립되기 이전에는…유통수단의 기능을 위해 필요한 자본액은 현실의 상품유통에 필요한 것보다 언제나 컸다.”(이코노미스트, 1845: 238)(자본3,563)
III. 주식회사의 형성. 이것에 의하여,
1) 생산규모와 기업이 거대하게 팽창하였는데, 이것은 개인자본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동시에 종전의 정부기업들이 회사기업으로 된다.
2) 자본−이것은 내재적으로 생산의 사회적 방식에 근거하고 있으며, 생산수단과 노동력의 사회적 집중을 전제하고 있다−은 이제 사적 자본에 대립하는 사회적 자본(직접적으로 연합한 개인들의 자본)의 형태를 취하며, 이런 자본의 기업은 사적 기업에 대립하는 사회적 기업으로 등^장한다. 이것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그것의 한계 안에서 사적 소유로서의 자본을 철폐하는 것이다.(자본3,563-564)
3) 현실의 기능자본가가 타인의 자본을 관리하는 단순한 경영자로 전환하며, 자본소유자는 단순한 소유자인 화폐자본가로 전환한다. 배당이 이자와 기업가이득 즉 총이윤을 포함하고 있다 할지라도(왜냐하면 경영자의 봉급은 일종의 숙련노동에 대한 임금에 불과하거나 불과할 수밖에 없으며, 이 노동력의 가격은 기타의 모든 노동력의 가격과 마찬가지로 노동시장에서 규제되기 때문이다), 이 총이윤은 오직 이자의 형태로서만, 즉 자본소유에 대한 단순한 보상으로서만 취득된다. 이 자본소유는 이제는 현실의 재생산과정상의 기능과는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데, 이것은 경영자라는 인물에 속하는 이 기능이 자본소유와 분리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자본3,564)
이리하여 이윤의 일부, 즉 차입자의 이윤에 의해 정당화되고 있는 이자뿐 아니라 모든 이윤은 오로지 타인의 잉여노동을 취득한 것으로 나타나는데, 잉여노동은 생산수단이 자본으로 전환되는 것−즉 생산수단이 실제의 생산자로부터 분리되어 타인의 소유로서 [경영자로부터 최하의 일용노동자에 이르기까지] 현실적으로 생산에서 활동하는 모든 개인에 대립하게 되는 것에서 생긴다.(자본3,564)
주식회사에서 자본기능은 자본소유와 분리되고, 이리하여 노동도 생산수단⋅잉여노동의 소유와 완전히 분리된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최고의 발전이 낳는 이런 결과는 자본을 생산자들의 소유, 그러나 이제는 개별생산자들의 사적 소유로서가 아니라, 연합한 생산자들의 소유 또는 직접적으로 사회적 소유로 재전환시키기 위한 필연적인 통과점이다. 더욱이 이런 결과는 재생산과정에서 자본소유와 결부되어 있던 모든 기능들을 연합한 생산자들의 단순한 기능으로, 사회적 기능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통과점이다.(자본3,564)
앞으로 나아가기 전에 다음과 같은 경제학적으로 중요한 사실을 지적해 두고 싶다. 이윤이 여기에서는 오직 이자의 형태를 취하므로, 이자만^을 낳는 기업들도 존속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이것은 일반적 이윤율의 저하를 저지하는 원인의 하나다. 왜냐하면 불변자본이 가변자본에 비해 거대한 비율을 이루고 있는 이런 주식회사들은 일반적 이윤율의 동등화에 반드시 참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자본3,564-565)
{엥겔스: 맑스가 이상의 것을 쓴 이래,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주식회사를 제곱 세제곱한 것 같은 새로운 형태의 산업조직이 발달하였다. 오늘날 모든 대공업분야에서 생산은 매일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할 수 있지만, 이것과는 반대로 이 증가한 생산물을 위한 시장은 점점 더 느리게 확대하고 있다. 생산이 몇 개월 동안 제조하는 것을 시장은 몇 년에 걸쳐 흡수할 수 있을 뿐이다. 그 위에 보호주의정책이 추가되어, 각각의 공업국은 타국에 대해−특히 영국에 대해−장벽을 세우고 국내생산능력을 인위적으로 더욱 증대시키고 있다. 그 결과는 일반적인 만성적 과잉생산, 가격하락, 이윤감소−심지어 이윤의 완전소멸−이다. 간단히 말해 오랫동안 찬미되어 온 경쟁의 자유는 종말을 고하고 있으며 자기 자신의 명백하고 수치스러운 파산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어느 나라에서나 일정한 산업분야의 대기업가들은 생산을 조절하기 위해 카르텔을 결성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카르텔위원회는 각 기업의 생산량을 결정하고 주문을 분배한다. 약간의 경우 예컨대 영국과 독일의 철생산자들 사이에서처럼 일시적인 국제 카르텔까지도 결성되었다.(자본3,565)
그러나 이런 형태의 생산의 결합도 여전히 충분하지 못하였다. 개별기업들 사이의 이해 대립은 이런 형태를 너무나 자주 파괴하였고 경쟁을 부활시켰다. 그리하여 그 다음 단계는 [생산규모가 이것을 허용하는 몇몇 분야에서는] 그 산업분야의 총생산을 통일적인 경영기구를 가진 하나의 큰 주식회사로 집중시키는 것이었다. 미국에서는 이것이 이미 여러 분야에서 달성되었고, 유럽에서는 이제까지 최대의 실례는 유나이티드 알칼리 트러스트인데, 이것은 영국의 알칼리생산^ 전체를 단일회사의 수중에 집중시켰다. 30개 이상 개별공장들의 이전 소유자들은 그들의 공장 전체의 평가액을 주식으로 받았는데, 이것은 총액 약 £5백만에 달하였고 트러스트의 고정자본을 대표한다. 기술적 경영은 종전과 같은 사람들의 수중에 남아 있지만, 금융 통제는 이사회에 집중되어 있다. 약 £1백만에 달하는 유동자본은 공모되었다. 이리하여 총자본은 £6백만이다. 이리하여 영국에서는 화학산업 전체의 기초를 이루는 이 분야에서 경쟁이 독점으로 대체되었고, 이리하여 사회전체, 국민이 빼앗기에 가장 만족스러운 형태가 준비되고 있다.}(자본3,565-566)
주식회사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그것 안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철폐하는 것이며 따라서 자기를 철폐하는 모순인데, 주식회사는 명백히 새로운 생산형태로 가는 단순한 이행단계를 대표한다. 주식회사는 현상에서도 그런 모순으로 나타나고 있다. 주식회사는 한편에서는 일정한 분야에서 독점을 낳고 이리하여 국가의 개입을 불러일으킨다. 다른 한편에서는, 주식회사는 새로운 금융귀족을 재생산하고, 회사발기인⋅투기꾼⋅명목만의 임원의 형태로 새로운 종류의 기생층을 재생산하며 회사창립⋅주식발행⋅주식거래와 관련된 투기⋅사기의 제도 전체를 재생산한다. 결국 주식회사는 사적 소유가 통제할 수 없는 사적 생산이다.(자본3,566)
IV. 주식회사제도[이것은 자본주의체제 그것의 기초 위에서 자본주의적 사적 산업을 철폐하는 것이며, 이것이 확산되어 새로운 생산분야를 장악함에 따라 그만큼 더 사적 산업을 파괴하게 된다]와는 별도로, 신용은 개별자본가[또는 자본가로 될 수 있는 사람]에게 일정한 한계 안에서 타인의 자본과 소유, 그리하여 타인의 노동에 대한 절대적인 지배력을 제공한다.(주87)(자본3,566)
주87) 예컨대 더 타임즈 1857년 12월 3일, 5일, 7일자에서 1857년과 같은 공황연도의 파산자명단을 보고 파산자들의 자기자산과 부채액을 비교해 보라. “참으로 자본과 신용을 가진 사람들의 구매력은, 투기시장을 실제로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것을 훨씬 능가하고 있다.”(투크, 1844: 79). “자기의 본업을 위해 충분한 자본을 가지고 있다는 평판을 얻고 있으며 자기의 사업에서 큰 신용을 얻고 있는 사람은, 자기가 거래하는 상품의 가격상승에 대한 확실한 전망을 가지고 있으며 자기의 투기의 시초와 도중에서 운수가 좋다면, 자기자본에 비해 실로 거대한 금액에 달하는 구매를 할 수 있다.”(같은 책: 136) “상인이나 제조업자 따위는 자기 자신의 자본을 훨씬 능가하는 사업들을 하고 있다…자본은 상사의 거래에 대한 한계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두터운 신용이 그 위에 세워지는 토대가 되고 있다.”(이코노미스트, 1847: 1333)
자기자본이 아니라 사회자본에 대한 처분권은 자본가에게^ 사회적 노동에 대한 지배력을 준다. 어떤 사람이 실제로 소유하고 있는 자본[또는 세상사람들이 그가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자본]은 신용이라는 상부구조를 위한 토대가 될 뿐이다. 이것은 특히 도매업[사회적 생산물의 대부분이 이것을 통과하고 있다]에서 그러하다. 모든 척도들[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안에서 대체로 정당화되었던 모든 변명의 근거들]이 지금은 사라져버린다. 투기하는 도매상이 도박에 걸고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의 소유가 아니라 사회적 소유다.(자본3,566-567)
자본의 기원이 저축이라는 이야기도 역시 불합리하기 짝이 없다. 왜냐하면 투기꾼은 바로 타인들이 자기를 위해 저축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엥겔스: 최근 프랑스 전체는 파나마운하 사기꾼들을 위해 15억 프랑을 저축한 셈이 되었다. 파나마운하 사기가 일어나기 20년 전에 그것이 여기에서 정확히 지적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자본3,567)
또 하나 절욕이라는 문구도 자본가의 사치−이것이 이제는 신용을 얻는 수단으로 되고 있다−에 의해 완전히 반박되고 있다. 자본주의적 생산이 덜 발달한 상태에서는 아직도 일정한 의미를 지녔던 관념들이 이제는 전혀 무의미한 것으로 된다. 성공이나 실패 모두가 자본의 집중을 일으키며, 이리하여 최대의 규모에서 수탈을 일으킨다. 수탈이 이제는 직접적 생산자들로부터 중소자본가들 자신^에까지도 미치고 있다. 수탈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출발점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목표는 수탈을 완성단계에까지 진행시켜 결국에는 모든 개인들로부터 생산수단을 수탈하는 것이다. 즉 생산수단은 사회적 생산의 발달에 따라 사적 생산의 수단이나 생산물이기를 멈추며, 연합한 생산자들의 사회적 소유로서 [생산수단이 그들의 사회적 생산물인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수중에 있을 수밖에 없다.(자본3,567-568)
그러나 자본주의체제 그것 안에서는 이런 수탈은 소수인에 의한 사회적 소유의 사유화라는 반대의 형태를 취해 나타난다. 그리고 신용은 이 소수인에게 순전히 사기꾼의 성격을 점점 더 부여하고 있다. 소유는 이제 주식의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소유의 동향과 이전은 증권거래소의 투기의 결과일 따름인데, 증권거래소에서는 작은 고기들은 상어의 밥이 되고 양들은 거래소 이리들의 밥이 된다. 주식회사에서는 사회적 생산수단들이 개인적 소유로서 나타난다는 낡은 형태와의 대립이 존재한다. 그러나 주식이라는 형태로의 전환은 아직도 자본주의적 한계 안에 붙들려 있다. 이리하여 주식회사는 사회적 부로서 부의 성격과 사적 부로서 부의 성격 사이의 대립을 극복하기는커녕 이 대립을 새로운 형태로 전개시키고 있을 뿐이다.(자본3,568)
노동자들 자신이 운영하는 협동조합 공장들은, 비록 모든 경우 그들의 현재 조직에서는 기존제도의 모든 결함을 재생산하며 또 재생산하지 않을 수 없지만, 낡은 형태 내부에서 새로운 형태가 출현하는 최초의 실례다. 여기에서는 자본과 노동 사이의 대립이 철폐되고 있다. 비록 처음에는 오직 조합의 노동자들이 자기 자신의 자본가라는 형태−즉 그들이 자기 자신의 노동을 가치증식시키기 위해 생산수단을 사용한다는 형태−로서이긴 하지만. 이런 공장들은 물질적 생산력과 이것에 대응하는 사^회적 생산형태의 일정한 발전단계에서 어떻게 새로운 생산양식이 낡은 생산양식으로부터 자연적으로 발전하고 형성되는가를 보여준다. 협동조합공장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 생기는 공장제도 없이는 발달할 수 없었을 것이며, 또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으로부터 생기는 신용제도 없이는 발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신용제도는 자본주의적 개인기업을 자본주의적 주식회사로 점차로 전환시키기 위한 주요한 기초를 이루는 것과 마찬가지로, 협동조합기업을 다소간 국민적 규모로 점차 확장시키기 위한 수단을 제공한다. 자본주의적 주식회사도 협동조합 공장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 연합한 생산양식으로 가는 이행형태로 여겨져야 하는데, 다만 전자에서는 그 대립이 소극적으로 철폐되고 후자에서는 적극적으로 철폐되고 있다.(자본3,569)
우리는 이제까지 신용의 발달−그리고 이것에 포함되어 있는 자본소유의 잠재적 철폐−을 주로 산업자본과의 관련에서 고찰하였다. 다음의 장들에서는 신용을 이자낳는 자본 그것과의 관련에서 고찰할 것이다. 즉 신용이 이자낳는 자본에 미치는 영향과 그 때 신용이 취하는 형태를 고찰할 것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약간의 더욱 특별한 경제학적 비판을 제기할 것이다. 그러나 먼저 다음의 것을 말하고 싶다.(자본3,569)
신용제도가 과잉생산과 상업의 지나친 투기의 주요한 지렛대로 나타난다면, 그것은 다만 그 성질상 탄력적인 재생산과정이 여기에서 그 극한까지 강행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강행되는 것은, 사회적 자본의 큰 부분이 그것의 소유자가 아닌 사람들에 의해 사용되기 때문이다. 자본의 소유자는 자기의 사적 자본을 스스로 사용할 때 그것의 한계를 소심하게 타산하는 데 반하여, 이 비소유자들은 소유자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물을 처리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명백하게 할 뿐이다. 즉 자본주의적 생산의 대립적 성격에 바탕을 둔 자본의^ 가치증식은 현실적인 자유로운 발전을 오직 일정한 점까지만 허용하며, 이리하여 실제로 생산에 대한 내재적인 속박과 한계로 작용하는데, 이 속박과 한계가 신용제도에 의해 끊임없이 돌파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용제도는 생산력의 물질적 발전과 세계시장의 창조를 촉진하는데, 이런 것들을 새로운 생산형태의 물질적 기초로서 일정한 수준에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역사적 사명이다. 동시에 신용은 이 모순의 격렬한 폭발[즉 공황]과 낡은 생산양식을 해체하는 요소들을 촉진한다.(자본3,569-570)
신용제도에 내재하는 이중적 성격−한편에서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동기[타인노동의 착취에 의한 치부]를 가장 순수하고 가장 거대한 도박⋅사기의 제도로까지 발전시키고, 이미 소수인 사회적 부의 수탈자의 수를 점점 더 제한하며, 다른 한편에서는 새로운 생산양식으로 가는 이행형태를 구성한다는 성격−은 로로부터 페레르에 이르는 신용의 주요한 주창자들에게 사기꾼이자 예언자라는 복합적인 성격을 주고 있다.(자본3,5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