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 장애와 폭탄 / 양선례
오랜만에 ‘미운 오리’가 만났다. 한학교에 근무한 인연으로 만들어져 무려 29년을 이어온 모임이다. 일곱 명 완전체로 모이는 줄 알았는데 미경이가 빠졌다는 것을 가서야 알았다. 3주 후로 잡힌 자녀의 첫 혼사 때문이다. 행여 혼주석에 앉지 못할까 봐 미리부터 사람 많은 데는 피해야 하는 것도 코로나 시대의 결혼 예법이다. 방학에나 숙박 여행을 했는데 학기 중에 약속을 정한 건 처음이다. 금요일 저녁에 만나 저녁을 먹고 가까운 휴양림에서 1박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차를 마시고서는 또 한 명이 일어선다. 웬만해서는 빠지지 않는 사람이라서 의아했다. 언니는 사는 곳은 광주, 근무지는 전남 동부 지역이라서 하루에 네 시간을 버스에서 보낸다. 새벽 6시 20분에 집 앞에서 버스를 타면 주암 휴게소에 7시 15분에 도착한다. 순천과 광양 방면으로 근무지에 따라 다시 차를 바꿔 타면 8시 30분에 학교에 도착한다. 광주에서 순천이나 광양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을 위해 마련된 전세 버스인 셈이다. 퇴근 시간에는 도로 정체로 그보다 더 걸린다. 그러기를 6년째 하고 있다. 한때 교환 교사로 광주의 초등학교에서도 4년을 근무했다. 통근 시간은 줄었으나 아는 이 없고 젊은 교사가 태반이라서 외로웠단다. 다시 전남으로 복귀하여 3년째 근무 중이다. 광주에 근무할 때도 날짜가 정해지면 조퇴를 내고 일찌감치 내려와서 친정엄마도 찾아보고, 시간보다 일찍 약속 장소로 오곤 했다. 그런 열정이 있는 사람이 밤 아홉 시 버스로 다시 광주로 간다고 했다.
언니는 공황 장애를 겪고 있었다. 공황 장애.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뚜렷한 근거나 이유 없이 갑자기 심한 불안과 공포를 느끼는 공황 발작이 되풀이해서 일어나는 병’으로 풀이되어 있다. 잘나가는 엠비씨(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정형돈 씨도 그 병으로 중도 하차했고, 김구라, 이병헌, 이경규, 김장훈 등의 연예인이 주로 걸리는 병이라고 알고 있었다. 주변에서 그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을 본 적은 없었는데 언니가 지난 1학기부터 치료 중이라고 했다.
코로나에 걸려서 일주일을 쉬었다가 통근 버스를 탔는데 가슴이 답답하더란다. 처음에는 코로나 후유증인가 싶었단다. 고속도로에 접어들기 전에 내려달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었으나 어찌어찌 참고 학교까지 왔다. 일시적인 증상이거니 싶었는데 탈 때마다 되풀이되었고, 불안과 공포는 점차 심해졌다. 교대를 졸업하고 엄마 근무지 인근에서 기간제 교사를 하던 딸아이가 옆에서 손을 잡아 주었으나 증상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 무렵 치과 검진이 있었다. 간호사가 얼굴을 가리는 헝겊을 덮자마자 숨이 쉬어지지 않더란다. 의사에게 잠시만 시간을 주십사 양해를 구하고 ‘내가 왜 이러지? 제발 진정하자.’ 서성이는데 눈물이 쉬지 않고 흐르더란다. 의사와 간호사 보기가 부끄러웠으나 결국 치과 치료를 못 하고 집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공황 장애의 원인으로는 극심한 스트레스나 트라우마를 꼽는다. 일정한 시간 동안 급격하게 불안감이 다가오면 당사자는 마치 죽을 것 같은 공포와 불안을 느낀다. 심장이 급격하게 빨리 뛰고 호흡이 가빠져 숨을 잘 쉬지 못하게 된다. 방치할 경우 심각한 우울증에 빠지기도 한다. 인기를 먹고 사는 연예인이 많이 걸려서 ‘연예인 병’이라고 비아냥대기도 하는데, 연평균 16% 이상씩 환자가 증가하는 추세이다.
언니는 작년에 1학년을 담임했다. 하필 그 반에 ‘폭탄’이 있었다. 바닥에 난방이 되어 있는 1학년 교실은 방처럼 따뜻하다. 수업 시간에 아이는 일 년 내내 의자에 앉지 않았다. 누워서 여기저기 뒹굴었다. 친구 가방을 치고, 발을 꼬집고 때렸다. 화가 나면 교실 뒷면에 붙은 작품을 다 뜯었다. 본인 것만 빼고. 복도를 지날 때면 양팔을 벌리고 걸었다. 친구를 툭툭 치다가 맞은 친구가 화를 내면 때렸다. 급식을 다섯 번이나 갖다 먹을 정도로 먹성이 좋아서 힘도 셌다. 걸핏하면 친구를 때리고, 자신의 물건이 아닌 것을 맘대로 가져갔다. 그러다 보니 하루도 조용히 넘어가는 날이 없었다. 젓가락질도 못 했다. 가만히 들고 있다가 어느새 양손으로 집어서 게걸스럽게 먹었다. 식판에 입을 대고 먹을 때도 많았다. 수없이 말해도 교육의 효과는 없었다. 원인은 단순했다. 그래야 친구나 선생님이 자신을 봐 주니까.
그런 아들을 둔 부모는 미안해하지 않았다. 아이 가방에 휴대폰을 두고 녹음하여 선생님을 감시했다. 다른 학부모의 민원이 생기면 1학기 마치고 전학 간다, 2학년이 되면 간다며 그 순간만 피했다. 곧 학교에서 유명해졌지만 그뿐이었다. 폭탄은 물론이고 남은 아이의 수업과 생활지도를 책임지는 일은 오롯이 담임이 혼자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처음에는 동학년 선생님과 아이의 만행을 공유하기도 했으나 곧 그조차 하지 않았다. 경력 교사로서 후배들에게 미주알고주알 말하기가 부끄럽더란다. 결국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어찌어찌 일 년을 살아 낸 게 작년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를 없는 이 취급하고 방치했더라면 좀 수월했을까? 양심상 도저히 그럴 수는 없더란다. 야단을 쳤다가, 달랬다가 하루에도 몇 번씩 끓어 오르는 화를 누르고 다스리느라고 정작 본인에게 나쁜 병이 찾아온 줄도 몰랐던 거다. 아이는 지금도 그 학교에서 2학년을 다니고 있다. 행여 만나기라도 하면 이산가족 상봉하는 것처럼 멀리서부터 “선생님!”을 부르며 환한 얼굴로 뛰어온단다. 전학 간다는 학교에도 이미 아이의 소문이 파다하여 부모의 뜻대로 되지 않았던 거다.
이제 언니는 35년 동안 근무한 교단을 접고 명예퇴직을 신청할 예정이다. 폭탄이 그 시기를 앞당겨 주었으니 고마워해야 하나? 내년 3월이 되면 ‘미운 오리’ 일곱 명 중 네 명만이 현직에 있을 것이다. 세 명도 이제나저제나 시간만 재고 있다. 이러다간 유일하게 승진한 나 혼자만 남게 될 모양이다.
첫댓글 에구 참 마음 아프네요. 공황장애는 먼나라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우리 주변에도 있었군요. 좋아져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저도 그래서 충격을 받았답니다.
성실하고 착하고 누구보다 아이를 사랑하는 분이어서 더 가슴아팠습니다.
치료 잘 받고 있으니 금방 좋아질 겁니다.
아이들 곁을 떠난 여름방학에는 많이 좋아져서 약 끊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퇴직 후에 찾아 올 고요를 손꼽아 기다리겠군.
요즘 과잉행동 장애나 철없는 아이까지 가세해 교실을 난장판 만들기 일쑨데 그 심정이 바로 나인 듯 하네.
두루 소식 들어 좋군.
그러게요. 언니!
이런 이유로 교단을 떠나는 사람이 늘고 있어요.
번아웃 증후군까지 겹치면 몸이 배겨나지 못하지요.
교직은 천직(天職)이라는 말은 옛말이 된 것 같아요. 이제는 세월이 변해 천한 직업이라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어요. 학교에 폭탄같은 얘들이 있으면 조치 방법이 없어서 자괴감이 들거든요. 글을 읽으며 교사는 감정 노동이 심한 감정 노동자라는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분노도 함께 치밀어 오릅니다. 학부모나 정치권에 있는 자들이 봐야 할 글인데.
교사의 손발을 꽁꽁 묶어 둔 현 상황에서는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출근하니 선생님 한 분이 찾아왔습니다.
일 년 내내 우리 학교 폭탄이라 여러 선생님들이 말도 못하게 애쓰고 있었는데 학부모가 그러더랍니다.
왜 아이의 문제를 걸핏하면 아버지가 아닌 고모랑 상의하냐?
교육청에 전화해서 물어봐야겠다고요.
아니 학교에 오지도, 전화도 받지 않는 아버지 대신 보살펴 주는 누나가 있어서 고맙다고 해야지
그게 학교한테 민원 전화할 일인가요?
가족 간의 싸움에 애꿎은 학교를 걸고 넘어지네요.
교단 환경이 갈수록 어려워집니다.
저야 거의 종점에 다다랐으니 그러려니 하고 살지만, 젊은 선생님들을 보면 걱정이 됩니다.
신랑이 육체 노동이다보니 교사들은 편하게 일해서 좋겠다고 해서 그렇지 않다고 말 해 주었습니다. 우리 아들같은 아이가 삼십명 앉아 있다고 생각하라고 했어요. 글 잘 읽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남의 머리에 지식을 넣어 주는 일이라고 하대요.
아마 지현씨도 글쓰기 공부 안 했으면 그 실상을 자세히는 몰랐을 테지요.
이래저래 글쓰기 반에 들어오기 참 잘했어요.
그죠? 하하!
@이팝나무 예. 저는 정말 잘 했어요.
교사라는 직업이 참 어렵고 힘든 직업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낌니다. 교권과 공권력이 바로서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게 안타까워요.
네.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이다 보니 그러네요.
개천에서 용이 나기도 힘든 시절입니다.
부모가 제 역할을 못하면 바르게 자라기가 힘든 시절이 되어 버렸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밉다더니, 폭탄아동보다 그 엄마가 밉습니다.
그 선생님 이야기에 제 맘이 다 시립니다.
그러게요.
들어 주고, 함께 화내는 것밖에는 도움을 줄 수 없어서 작년 내내 안타까웠는데 올해 그렇게 많이 아팠다네요.
제 병 자랑도 구구절절인데 어찌나 이 상황이 놀랍던지 글감으로 썼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