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8년 프랑스의 에로 제지공장에서 일하고 있던 L.로베르는 종이를 초조하는 기계를 발명하였다. 그 무렵의 프랑스는 혁명이 진행중이어서 국내에서는 발명한 기계의 제작이 불가능하여 로베르는 공장주와 함께 영국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그들은 영국인 푸어드리니어 형제와 B.동킨의 협력을 받아 획기적인 대발명을 완수할 수 있었으며, 또 실용화하였다. 로베르의 초지기는 현대의 초지기와 비교할 때 규모나 운전속도만이 떨어질 뿐이었다. 그는 근대 제지술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을 만한 큰 업적을 남겼으나 풍족한 생활은 할 수 없었으며, 말년에는 프랑스의 한 시골학교에서 쓸쓸하게 일생을 마쳤다. 로베르의 발명에 따른 초지기는 장망식(長網式)이라고 하며, 주로 인쇄용지의 제조에 사용되었다. 그 뒤 기계의 개량을 위한 많은 노력이 경주되었으며, 영국의 디킨슨이 환망식(丸網式) 초지기를 발명하여 두꺼운 종이를 기계로 초조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것을 완성하고 실용화하기 위하여 1809년부터 20년이나 소모하였지만, 이로써 기계제지법은 한층 발전한 것이다.
그 무렵의 유럽사회는 산업혁명을 거쳐 근대 자본주의의 확립기였으며, 중산계급이 대두되고 있을 때였기 때문에 신문·서적·잡지 등을 발간하는 데뿐만 아니라 많은 분야에서 종이의 수요가 날로 증가하고 있었다. 이와 나란히 제지술과 인쇄술도 기계화되어 날로 발전하고 있었으나 종이를 만드는 데 필요한 원료의 조달에는 문제가 있었다. 그때까지 원료로 사용되던 마·목면·넝마 등의 공급에는 한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원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한 결과 1840년에 목재섬유를 종이의 원료로 사용하는 방법이 발명되었다. 독일인 F.G.켈러는 동력으로 나무를 부수어 대량으로 섬유를 제조하는 기계를 발명하였다. 이 발명으로 제지공업이 근대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는 새로운 장이 열렸다. 이 쇄목펄프 제조법은 1852년에 영국의 H.바제스에 의해 완성되었는데, 실용단계에 들어간 것은 1860년 독일인 H.펠터가 켈러의 방법을 발전시킨 후부터이다.
쇄목펄프법에 의한 본격적인 생산은 다시 그것보다 늦어져 1865년에 독일과 스칸디나비아에 공장이 건설되고부터였다. 미국에서 쇄목펄프 공장이 건설된 것은 1870년이었다. 쇄목펄프법의 발명보다 늦은 1851년에 영국의 Ch.와트와 바제스는 공동노력으로 소다펄프법을 발명하고 이것을 공업화하였다. 이 소다법은 화학펄프 가운데 가장 먼저 발명되어 공업화되었으며, 목재섬유로 고급 지류를 생산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아황산(이산화황)법에 의한 목재펄프 제조법은 미국의 B.C.딜만이 1867년에 발명하였다. 이 방법에 따른 최초의 공장이 1874년 스웨덴의 C.D.에크만에 의하여 건설되었다. 그 뒤 1884년에 황산법에 따른 크라프트 펄프가 노르웨이의 C.F.달에 의하여 발명되었으며, 1907년에는 최초의 크라프트펄프 공장이 캐나다에 건설되었다. 이 크라프트펄프법은 1909년 미국에서 기업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