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 협상이 타결됐다며 올해 한국정부가 부담해야 할 분담금이 9200억원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이는 7차 협상 때인 2009년 보다 1600억원, 작년보다 505억원이나 증가한 수치다.
논란을 의식해서인지 보수언론들은 포장작업에 들어갔다. 미국정부가 예산 자동삭감조치(시퀘스터)로 인해 국방예산이 대규모로 감축되는 상황에서 인상 요구가 불가피했던 것이라며 미국 편을 들었다.
또 장성택 처형으로 북한 정세가 불안정해져 주한미군의 주둔환경을 안정적으로 제공하는 게 중요하다는 주장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주한미군 주둔이 한국정부에게만 득이 될 뿐, 미국이 우방을 위해 ‘희생’하고 있는 것이라는 황당한 보도까지 눈에 띤다.
잘 된 협상이란다. 애당초 미국이 1조원을 요구했지만 그 보다 낮은 수준에서 타결됐으며, 한국정부가 분담금 집행에 일부분 참여하게 돼 투명성을 높인 성과도 있었다고 자화자찬을 늘어놓는다.
정말 잘 된 협상일까. 그렇지 않다. 굴욕에 가까운 협상이다.
“잘 된 협상”? 국민을 바보 취급하나
방위비분담금이 무엇인지, 어떤 식으로 책정되고 집행돼 왔는지, 미국 측이 한국정부의 분담률을 어떤 식으로 저평가해왔는지, 분담금 미집행 누적분을 어떤 식으로 이용해 왔는가를 살펴보면 ‘잘 된 협상’이라는 주장은 ‘여론 호도’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난다.
방위비분담금의 근거는 1991년 체결된 ‘한미 방위비 분담 특별협정(special mesures agreement/SMA). 한미 양국은 SMA가 SOFA(주둔군지위협정) 제5조(시설과 구역-경비와 유지)에 근거한 것이고 주장한다.
모순이다. SOFA 제5조에는 ‘건설비, 인건비, 군수비 등에 대한 주둔비용을 미국정부가 부담하는 것’으로 돼 있다. SOFA 조항과 SMA는 서로 상충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특별(special)’이라는 단어를 넣었나 보다.
미국 “한국정부 분담률은 42%”…엉터리 셈법 억지 주장
미국정부는 툭하면 한국의 방위비 분담률이 턱없이 낮다고 주장한다. 이번 SMA 협상에 임하면서 미국측이 주장한 한국정부의 분담률은 42%. 미국 측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계산한 결과다.
한국 정부의 주한미군 지원은 대체로 세 가지 방식으로 이뤄진다. 방위비분담금 뿐만 아니라 KATUSA 지원비, 주둔기지 토지 임대·보상비용, 기지주변 정비, 각종 세금 감면, 전기·통신·상수도 요금 할인, 공항·항만 이용료 면제, 여객·화물 수송 지원등 직간접 지원도 포함된다. 전체 지원규모는 2조5000억원 이상이다.
미국정부는 전체 지원규모 가운데 ‘방위비분담금’ 항목만 인정하고, 직간접 지원비용 태반을 배제해 계산한다. 미국정부가 방위비분담금을 올려달라고 압박하기 위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셈법’을 동원한 것이다.
직간접 지원비까지 계산하면 실제 부담률은 70% 이상
미국 국방부의 ‘2012년회계연도 예산 운영총람’에 의하면 미국정부가 부담한 주둔비 총액은 8939억원(2010년 기준). 한국 국방부 자료에 나타나는 주한미군 전체 지원규모(직간접비 포함)와 비교할 경우 한국 정부 부담비율은 65%에 이른다.
여기에 과소평가된 주둔지 토지임대료, 미군기지 이전 비용, 반환 기지 환경오염 치유비용, 공용훈련장 관리비용 등까지 감안한다면 한국 정부 분담률은 최소 70%에 이른다는 게 관련 시민단체들의 주장이다.
분담률 저평가 뿐만 아니다. 주한미군은 이 분담금을 전용·오용해 왔다. 분담금이 ‘예산 소요기반’이 아니라 ‘총액’으로 책정되고, 이 돈에 대한 한국정부의 통제권한이 전혀 없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분담금 남겨 이자놀이 하고 이사비용으로도 쓰고
분담금에 미집행분을 발생시켜 이를 누적해 왔다. 누적액으로 이자 수입도 챙겼으며, 자신들이 부담해야 할 미2사단 이전비용으로 전용하고 있다.
2007년까지 누적액은 1조3000억원에 달했다. 주한미군은 누적분 중 상당액을 ‘커뮤니티 뱅크’와 ‘뱅크 오브 아메리카’ 서울지점에 양도성 예금증서 계좌에 맡겨 2000~3000억원에 달하는 이자 수입을 챙긴 것으로 밝혀졌다.
국민 혈세로 제공하는 돈으로 ‘이자 놀이’를 했다는 비난이 일자 주한미군은 2009년부터 2011년까지 분담금 집행내역을 공개하지 않았다. 2012년부터 다시 공개했지만 누적잔액은 크게 줄어있었다. 미2사단 이전 비용으로 전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군기지 이전 관련 양국 합의내용에 의하면 용산기지 이전비용은 한국정부가, 동두천 미2사단 이전비용은 미국정부가 부담하도록 돼 있다. 주한미군은 자신들의 몫인 미2사단 이전비용까지 한국정부의 돈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를 한다.
오용-전용 묵인, MB가 오바마에게 준 취임 선물
찾아낸 방법은 여유 있는 방위비분담금에서 미집행액을 발생시켜 전용하는 것. 하지만는 전용이 SOFA 규정에도 어긋난다는 게 문제였다. 주한미군에게 초법적인 특혜인 ‘분담금 전용’을 허락해 준 건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이었던 2009년 1월 15일.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미국에게 통큰 선물을 안긴다. 미국 측이 그토록 원했던 ‘분담금 미집행액 전용’에 기지 이전 공사선택권과 설계감리비까지 패키지로 엮은 선물꾸러미를 각서에 담아 서명했다. 오마바 취임 5일 전에 일어난 일이다.
한국정부 분담률이 42%라는 엉터리 계산서를 디밀어도, 국민 혈세로 만들어진 ‘분담금’에 미집행분을 누적시켜 이를 오용·전용해도 말 한마디 못하고 고개만 끄덕이는 대한민국 정부. 그래도 부족하다고 보채는 미군에 역대 최대 규모로 방위비분담금을 올려줬다. ‘종미정부’라는 딱지가 명불허전이다.
미국 내 자성의 목소리 “한국이 지급하는 분담금 공돈 취급해”
SMA가 시작된 1991년부터 지금까지 방위비분담금은 1073억원에서 8695억원(2013년)으로 8.1배나 증가했다. 반면 정부의 국방비는 4.6배 증가하는 데 그쳤다.
주한미군 규모가 줄어들었는데도 방위비분담금은 꾸준히 늘어난 것이다. 주둔 미군 1인당 지원액도 1300만원(2001년)에서 2600만원으로 10여년 사이 2배나 많아졌다.
이러니 미국 내부에서도 주한미군의 분담금 오용·전용 사실을 꼬집는 목소리가 나오는 거다. 미군 상원 군사위원회는 “주한미군이 한국이 제공하는 분담금을 공돈(free money) 취급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방위비분담금 인상과 오용·전용을 전격 허용한 이명박근혜 정권. ‘종미정권’의 완결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