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나의 혼인 잔치 (1497)
가톨릭 양 왕의 거장
가톨릭 양 왕의 거장(Master of the Catholic Kings, c.1485-1500)이 그린
<카나의 혼인 잔치>는 1497년에 있었던 스페인 가톨릭 양 왕
페르난도와 이사벨의 아들 후안(Juan of Castile)과
신성로마제국 황제 막시밀리안 1세의 딸인 마가렛(Margaret of Austria)의 혼인과 연관된다.
15세기 플랑드르 지방은 부르고뉴 공국을 거쳐 합스부르크 가문의 영향력에 들어가고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의 즉위 이후부터는 스페인의 지배를 받는다.
아마도 이 그림은 신랑 신부의 복식으로 보아 후안과 마가렛의 혼인 기념 부부 초상화로 추정된다.
이는 천장 바로 아래 벽에 걸려 있는 이들 가문의 문장으로 추측할 수 있다.
또 이들 문장 가운데에는 주두 위에 있는 모세가 십계명을 들고 있는 흰 석상이 있는데,
이것은 이들의 혼인 계약을 순결하고 견고한 것으로 확인하는 것이며,
그 옆에서 나팔을 불고 있는 세 명의 천사들은 이들의 혼인을 축하하는 것이다.
성모마리아는 예수님에게 신혼부부를 강복해달라고 두 손 모아 전구하고 있고,
예수님은 오른손을 들어 그들을 축복하고 있으며,
신랑 신부는 겸손하게 눈을 아래로 내리고 예수님의 축복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데 신부는 오른손으로 자기의 배를 만지고 있어 자식에 대한 축복을 열망하는 것이고,
신랑 신부 식탁 앞에 앉아 있는 개는 혼인의 충실함과 신의를 상징한다.
그러나 이 그림 역시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요한복음 2장 1-12절에 나오는 성경 말씀을 간과하지 않았다.
식탁 아래에는 정결례에 쓰는 돌로 된 물독 여섯 개가 놓여 있고,
성모마리아의 간청으로 예수님은 물이 포도주가 되게 축복했으며,
왼쪽 아래에 있는 일꾼은 포도주를 잔에 담아 잔치를 주관하는 과방장에게 전해주고 있고,
과방장은 성모마리아와 예수님, 신랑과 신부를 사이에 두고 식탁 한가운데 앉아서
포도주의 맛을 보는데, 이것은 매우 풍자적인 묘사이다.
과방장은 포도주가 된 물을 맛보고 놀라면서 일꾼에게 말하였다.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손님들이 취하면 그보다 못한 것을 내놓는데,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남겨 두었군.”(요한 2,10)
왼쪽 아래에 있는 일꾼은 신랑 신부에게 기적을 설명하려는 듯이
오른손으로 포도주가 담긴 잔을 들고 왼쪽 손가락으로 술독을 가리키고 있다.
또 배경에 있는 식탁에서는 수도복을 입은 흰 머리의 수사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술독 채로 술을 마시고 있는데,
이것은 혼인 잔치에서 술이 떨어진 이유를 익살스럽게 풍자한 것이다.
이 작품은 그 당시 플랑드르 귀족의 화려한 실내 모습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고,
문과 창문을 통해 플랑드르의 건물을 어렴풋이 보여주고 있지만 손님들의 의상은 스페인의 복식이다.
이것은 그 당시 정치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데,
작가가 스페인 가톨릭 양 왕의 거장이라는 점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출처] 카나의 혼인 잔치 (1497) - 가톨릭 양 왕의 거장|작성자 말씀과 성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