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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세미술관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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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La Famille 가족의 모습은 오랜 기간 동안 화가들이 즐겨 그리던 주제였습니다. 편안한 가족을 모델로 한 초상화를 통해 많은 19세기의 화가들은 과거 관습에서 벗어나 실험적인 도전을 감행하기도 하고, 꺼내 보이기 힘든 내면의 이야기들을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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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Le Paysage 신화와 종교라는 전통의 주제에서 벗어난 예술가들은 인간의 일상적인 삶을 진실하게 묘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노동의 신성함, 고단한 삶을 주제로 농민의 모습을 숭고하게 담아낸 밀레의 <만종>은 주변의 모습을 화폭으로 이끌어낸 선구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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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삶 La Vie d’Artiste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화가들 역시 당시 사회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같은 생각과 영감을 나누는 동료 화가들은 함께 작업하며 창조적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서로를 격려했습니다. 화폭 위에 그려진 화가의 아틀리에는 새로운 생각을 이끌어 내는 곳으로 많은 상징성을 담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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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의 삶 La Vie Parisienne 19세기 중반 파리는 근대적인 삶의 공간으로 변모합니다. 사회의 핵심 계층으로 등장한 부르주아들의 편안한 삶의 방식은 무도회, 오페라 등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드가의 <오페라좌의 관현악단>에서처럼 화려한 불빛과 공연장의 열기는 파리를 대표하는 얼굴이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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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적인 삶 La Vie Intérieure 과학의 발달이 가져온 산업화에 반대했던 화가들은 자신의 내면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며 주관적인 것에 보다 중심을 두었습니다. 모로가 <오르페우스>에서 표현한 것처럼 화가들은 꿈과 욕망, 생각을 마치 시처럼 화폭 위에 드러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
장 프랑수아 밀레, <만종>, 1857-1859
캔버스에 유채, 55.5 x 66 cm, 파리 오르세미술관
Jean-François Millet, L’Angélus, H/T, 55.5 x 66 cm
하루의 일과를 끝낸 농부 부부는 황혼이 지기 시작한 전원을 배경으로 신의 은총에 대해 기도를 드리고 있다. 저 멀리 교회당에서는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듯하다. 자연의 질서에 따라 일하며 가난하고 피곤한 삶을 감사하는 이들 부부는 경건함을 상징한다.
어린 시절을 농촌에서 살았던 밀레는 순박한 농민의 이미지를 빌어 전원의 순수함에 대한 향수를 표현했다. 산업화의 물결이 도도하게 유럽을 휩쓸고 있던 그때, 밀레는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따뜻한 애정으로 농촌 생활을 증언하였다.
에두아르 마네, <피리부는 소년>, 1866
캔버스에 유채, 161 x 97 cm, 파리 오르세
Edouard MANET, Le Fifre, H/T, 161x97cm
이 작품은 1866년 살롱에서 낙선한 마네의 대표작이다. 이 그림의 모델은 황제 친위대 곡예단의 페피니에르라는 피리 부는 소년병이다. 19세기 제국주의 전쟁으로 생겨난 고아들은 군대에 들어가 군악대, 전령 등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슬픈 현실을 나타내기 위해 마네는 불필요한 장식들을 과감히 삭제했다. 특히 이 작품의 묘미는 불그스름한 회색 배경 이라고 할 수 있는데. 피리를 불고 있는 소년의 손과 발을 제외하고는 그림자가 전혀 없는 평면적인 묘사는 오히려 인물의 실재감을 강조한다.
빈센트 반 고흐, <고흐의 방>, 1889
캔버스에 유채, 57.5 x 74cm, 파리 오르세
Vincent Van GOGH, La Chambre de Van Gogh, H/T, 57.5 x 74cm
파리 생활에 싫증을 느낀 고흐는 1888년 2월 남프랑스로 이주한 후 자신을 뒷바라지 해준 동생 테오에게 보여주기 위해 자신이 기거한 방을 그렸다. 가구가 거의 없는 소박한 침실은 고흐의 성격과 가난한 아를 Arles 시대의 생활을 그대로 반영한다. 벽에 걸린 두 점의 초상화 중 왼쪽은 자신의 초상화이며, 오른쪽은 동생 테오의 초상화다. 보랏빛 벽과 노란 침대와 의자, 진홍색 이불과 파란 세숫대야 등 현실과 거리가 있는 날카로운 색채들이 움직일 듯 생동감 있는 화가 자신만의 원근법 속에 자리잡고 있다.
폴 고갱, <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화가의 자화상>, 1890-1891
캔버스에 유채, 38 x 46 cm, 파리 오르세
Paul GAUGUIN, Portrait de l’artiste au Christ jaune, H/T, 38 x 46 cm
고갱은 자신의 작품 <황색 그리스도>를 배경으로 자화상을 그렸다. <황색 그리스도>의 좌우가 바뀐 것으로 미루어 보아 거울에 비친 모습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오른쪽 항아리는 고갱이 직접 만든 것으로, 자신의 모습을 형상화 한 것이라고 한다. 고갱은 이 담배 넣는 항아리를 동료화가인 베르나르의 누이, 마들렌에게 주려다가 거절 당했다. 고갱이 평소 사랑했던 그녀는 편지에서 ‘그 항아리는 야만인 고갱의 머리와 왠지 닮았다’라고 표현했다. 항아리의 괴기스런 형상과 그리스도의 얼굴이 모두 다른 모습이지만, 그 속에서 고갱의 자화상을 연상할 수 있을 만큼 세 이미지는 미묘하게 얽혀있다.
에드가 드가, <오페라좌의 관현악단>, 1868-1869
캔버스에 유채, 32 x 46 cm, 파리 오르세미술관
Edgar Degas, L’orchestre de l’Opéra, H/T, 32 x 46 cm
이 작품은 드가의 친구였던 바순 연주자 데지레 디오 Desire Dihau를 주인공으로 한다. 데지레 디오는 드가와 같이 몽마르트르에 살고 있었고, 이 둘은 오페라가 끝난 뒤 같이 귀가하는 절친한 친구였다. 드가는 디오의 모습을 강조하기 위해, 전통적으로 바이올린과 콘트라베이스 뒤에 위치하는 바순 연주자를 앞으로 끌어내기도 했다. 또한 드가는 주변에 다양한 표정의 인물들을 배치하여, 초상화의 단편적인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초상화란 가장 편안한 평소의 모습으로 그려져야 한다’고 말했던 드가의 생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출처: ⓨⓔⓙⓘⓝⓝひめ's Lovely Life 원문보기 글쓴이: ⓨⓔⓙⓘⓝⓝひめ
첫댓글 저도 다녀왔었습니다..역시 진품의 가치를 하더군요^^특히 밀레의 만종은 우리들의 가슴을 숙연케합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