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30년전 1984년 겨울이었나요?
대학 연합 동아리 써클 엠티를 춘천 공지천 근처의 양지산장으로 갔었습니다.
그 날 열기 가득한 엠티 프로그램을 마치고 자정을 넘은 시각 숙소 바깥으로 나왔을 때
세상은 온통 그동안 내린 함박눈으로 눈부시게 맑은 설원이 비현실적으로 드러나 있었고, 고개 들어 바라본 감청빛 하늘엔 샛노란 별밭이 사금파리처럼 빛나고 있었습니다.
나는 나도 모르게 탄성을 내 뱉으며 무작정 눈길을 걷고 있었는데, 내 곁에는 지금의 아내 필옥이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마음 편하게 눈길 같이 걷자고 제안해도 좋을 후배였나 봅니다.
스틸 사진처럼 간직되어 있는 그 추억을 반추하고 싶어 춘천 공지천을 다시 찾았습니다.
군산 여행에 이어 춘천 여행이라는 소도시 탐방 프로젝트에 해낙낙해진 아내와 춘천 닭갈비에 눈동자가 또랑해진 막내딸과 함께 했습니다.
봄 기운이 완연한 공지천 의암호는 햇살 속에 풍경전체가 정물화처럼 고즈넉합니다.
바람향기가 기억의 이랑 하나하나마다 부드러운 질량감으로 밀려옵니다.
파릇한 호숫물이 하늘보다 더 파랗게 물든 건 오랜 세월 하늘을 연모했기 때문 일겁니다.
아니면 파란 추억의 염료를 사람들이 풀어 놓았기 때문일까요?
나는 이럴 때 그 빛깔을 사진에 담는 법을 모릅니다.
그저 가슴에 인화할 뿐이지요.
30년전 겨울 나목에 새겨 놓은 글귀는 지워졌겠지만, 우리들 기억속에는 영원히 새겨져 있는 것처럼 나는 감동적인 장면 앞에 서면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대신 감성의 더듬이를 작동시킵니다.
안보공원 옆 운치스러웠던 회관을 기억합니다.
그 곳에서 이런 저런 전시회를 열었던 것 같기도 하고 누군가와 사진을 찍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허나 지금은 공사중이라 건축 자재들이 잔해처럼 을씨년스럽게 이리저리 뒹굴어져 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흐릿한 기억의 형상이 헝클어져있습니다.
어쩌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추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의식하고 있지 못하는 무의식이 그 기억을 저만큼 밀어놓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구든 그런 기억 몇 개쯤 갖고 있겠지요...
왠지 못나고 비루했던 지난 날의 내가 그렸던 삽화들, 어느 순간 불쑥 떠오르지만 그건 아련함이 아니어서 지워버리고 싶은 추억들 말입니다.
인생은 상처를 통해서 뿐만이 아니라 비루함을 통해서도 성장할 수 있는 건가요?
그러기 위해서는 그 비루함을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합리화하는 방어기제 대신 직면하는 성찰이 필요하겠지요.
바보같은 나도 엄연한 나의 일부일테니 말입니다.
그래서 해독되지 않는 도요새보다 광장위의 비루한 비둘기가 더 친근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비루함을 거쳐 그것을 극복한 자존감이 시종일관 당당한 자존감보다 더 인간적으로 느껴집니다.
그래 애면글면 자기 감정을 과잉할 필요도 없듯이 외면할 필요도 없는 거야...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저기서 딸아이가 아빠를 부릅니다.
어디 있던거냐고 아내와 딸아이는 나를 타박합니다.
그 소소한 꾸중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요.
나는 기꺼이 아내의 잔소리에 저항하지 않고 백기투항합니다.
공지천에서 상크름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첫댓글 이십 몇년 전에 여주강가에 낮술이 갑지기 기억나네 그 후로 "그리움이 턱수염처럼 무성해질 땐 만나자고" 하곤 했지. 부채의식과도 같이
그리고 몇년 전 성수결혼식에 갔다 공지천 카페에서 케피를 마셨지 갈길이 바쁨을 전재로 ㅎㅎ
청평 대성리 공지천 그런 지명으로 각인되는 시절을 보거스와 맞닥뜨고 싶다 그리움으로 자라는 수염은 늘 무성하나니
여주 강가에서의 낮술 기억난다.
귀농하기전에는 제법 여기저기 같이 다니곤 했는데...
더 나이먹기전에 변산 블루수 2 찍자
흠.. 변산블루수1 이야기는 들어봤는데....ㅋㅋ
이른 봄. 쌤의 춘천은 살짝 공허해보이지만서두 따스한 온기가 전해지네요. '공지천춘천'과는 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102보충대춘천'으로 아들녀석이 입대를 했는데요. 쌤의 공지천 같기를 급, 희망해 봅니다. 그리움이 턱수염처럼 무성~ 해 지는 어느 날.쯤. 스르륵~ 방문열어주면 좋겠네요.^^
아들 군대보내는 느낌은 없지만... 짠하네 그려... 마실오시게.. 술한잔하게.
하늘호수님과 보거스님은 전생에 부부였을거란 생각이 들어요.^^
두분의 사랑이 현생에 우정이 되었을 듯... ㅎ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