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민족과 함께한 군자의 꽃, 무궁화 동산
무궁무궁 무궁화/ 무궁화는 우리꽃/ 피고지고 또 피어 무궁화라네
너도 나도 모두 무궁화가 되어/ 지키자 내 땅 빛내자
조국 아름다운 이 강산 무궁화/ 겨레 서로 손 잡고서
앞으로 앞으로 우리들은 무궁화다
무~궁화~ 무~궁화~ 우~리 나라꽃~~
삼천리 강산에 우리나라꽃
무궁화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화(國花)임이 정식 법령을 통해 제정되지는 못한 상태이며,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우리 꽃은 무궁화라고 생각하고 있는 통념의 국화이다
우리나라의 국화인 무궁화는 내내 이어 피기를 계속하는 꽃의 특성처럼
끊임없는 외침을 받아 온갖 수난을 겪으면서도 5천 년 역사를 이어온 배달민족을 상징하는 꽃이다.
그러나 ‘무궁화를 국화로 한다’라는 법률이나 조례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나라꽃으로 자리를 잡은 것은 1900년경 애국가 가사가 만들어질 때 후렴으로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이 들어가면서부터다.
질곡의 근세를 살아온 세대들은 무궁화가 바로 애국의 상징이었다.
삼천리강산이 무궁화 꽃으로 덮이는 이상향을 그리기도 했다.
4번씩이나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고 한다.
독립운동의 상징인 무궁화는 애국지사들이 자주독립국가를 부르짖으며 사랑했다
한서 남궁억이 아이들에게 자유와 독립을 심어주기 위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원숭이 엉뚱이는 빨개
우리집에 왜왔니,...
쎄쎄쎄~~
놀이를 가르쳤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숨바꼭질의 응용 놀이이다.
유년시절의 추억이 묻어나는
남궁억은 아이들에게 자유와 독립을 심어주기 위해
삼천리반도 금수강산 찬송가로 국민정신교육
어린이 놀이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정신회복
놀이를 가르쳤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숨바꼭질의 응용 놀이이다.
놀이를 통해
인간의 본성인 仁義禮智信을 가르치고
禮義廉恥를 알게 하였다
제복(교복)의 단추가 5개이다 왜?
5음절로 된 궁상각치우,
도개걸윷모처럼 말이다.
우리민족의 얼과 혼이 담겨있다
무궁화 심기 운동을 펼쳤다
임진왜란 때 초유사(招諭使)로 순절한 학봉 김성일(1998~2001)님이 제작한 것으로 알려지는
‘학봉 전집(鶴峯全集) 학봉일고(鶴峰逸稿) 제2권’에서 무궁화를 직접 시조로 읊는다.
“좋은 꽃 백 일 피고 또다시 무궁하여(名花百日又無窮) /
끊임없이 서쪽 담에서 붉게 꽃을 피우누나(脈脈西墻相倚紅) /
객이 와서 또한 역시 가없는 흥 있나니(客來亦有無邊趣) /
만물 중에 그 누가 무극 옹을 찾아보나(萬化誰探無極翁)“
대한민국의 나라꽃 무궁화(無窮花), 그 자강불식(自强不息)의 힘이다
“빨간 무궁화가 피어 가을 다시 재촉하여라(紅槿花開秋更催) /
아침에 피어 저녁에 지고 또 아침에 피네(朝開暮落復朝開) /
서로 이어 끝없이 피고 지는 게 가련해라(可憐續續開無盡) /
한번 가서 아니 오는 그리운 님보단 낫구려(猶勝情人去不來)
1925년 10월 21일 자 동아일보 2면에는
‘금수강산의 표징, 조선 국화(國花) 무궁화의 내력’이란 특집 기사가 실렸다.
민족의 꽃인 무궁화의 유래와 특색을 자세하게 설명한 기사다.
다른 나라의 국화에 비교해 무궁화의 끈질긴 생명력을 찬양하면서
은연중 우리 민족의 독립의식을 북돋웠다.
또한 도산 안창호는 무궁화를 국화(國花)로 주창(主唱)한 바 있으며
남궁억은 ´무궁화 보급운동´ 등으로 전 국민이 무궁화를 국화로 받아들이게 하는 데 온갖 힘을 쏟았다.
한편, 우리의 국화인 무궁화가 화폐의 도안으로 채택되어 우리의 돈임을 강하게 심어준 것은
1946년 7월 1일부터이다.
우리나라의 은행권(지폐)에 무궁화 꽃이 피게 되어
조폐(造幣)의 자주권이 우리 대한민국에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도안의 주소재가 수노인상(壽老人像, 구한말의 석학이자 문장가로서 87세까지 장수한 김윤식의 초상으로 알려졌음)이나 일본 정부의 휘장인 1946년 7월 1일 종래 일본 정부 휘장의 오동문장을 무궁화 도안으로 바꾼 ´丁´ 百圓券은 비록 작은 변화이지만
대한민국 화폐사에 일본 색을 없애고 조폐권의 국가적 자주성을 회복한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해방 이후의 몇몇 한국은행권, 현용 1원화,
1998년 8월 14일 발행된 정부 수립 50주년 기념주화에 무궁한 번영을 상징하는 무궁화다
대한독립선언서에 태극기와 나란히 있는 무궁화가 보인다.
‘3.1운동 관련 독립선언서류(대한독립선언서)를 국가 지정기록물로 신규 지정하였다.
하와이 대한인 국민회에서 4252년 3월(1919년 4월) 한민족의 독립선언과
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을 알리기 위해 발행한 독립선언서로,
태극기와 무궁화로 장식하고 영어로 “The Proclamation of Korean Independence”
제목 아래 서울에서 발표된 민족대표 33인의 3·1독립선언서 전문과 임시정부의 성립을 알리며
각료 명단, 임시헌장 선포문, 선서문(宣誓文), 정강(政綱)을 함께 실었다’
한용운의 <무궁화 심으과저>는 ‘獄中詩(옥중시)’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만해가 옥중(서대문 형무소)에서 쓴 것을
출옥 후인 1922년 9월 1일 「개벽」제27호에 발표한 민족의 독립을 염원하는 시
"달아 달아 밝은 달아 / 녯나라에 비춘달아 / 쇠창을 넘어와서 / 나의 마음 비춘 달아 /
桂樹(계수)나무 버혀내고 / 無窮花(무궁화)를 심으과저 / 달아달아 밝은 달아 / 님의 거울 비춘 달아 /
쇠창을 넘어와서 / 나의 품에 안긴 달아 / 이즐어짐 잇슬 때에 / 사랑으로 도우과저 /
달아달아 밝은 달아 / 가이업시 비춘달아 /
쇠창살을 넘어와서 / 나의 넉을 쏘는 달아 / 구름재(嶺)를 넘어가서 너의 빗을 따르과저"
한용운은 조선의 국화(國花)인 무궁화를 심는 것으로 민족 독립의 염원을 형상화했다.
독립 의지는 정신적인 지표로 우리 가슴속에 영원히 기억된다.
시의 용사의 대상은 경서(經書), 사서(史書), 제자백가(諸子百家), 문학작품(文學作品), 잡록(雜錄) 등
각종 문헌 전적에 기술된 특징적인 용어와 구절, 특정 인물의 이름, 관직, 특정한 지역의 제도,
문물, 풍속, 지명, 언행, 일화, 고대의 신화와 민간의 전설 등 각양의 사실들이 용사의 대상이다.」
대한의 국화(國花)인 무궁화를 심는 것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염원하는 국민의 형상화이다.
우리 가슴속에 영원히 무궁화를 기억하자. (무궁화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