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량은 다들 아시는 바 三國志에서 촉(蜀)을 세운 유비를 도와 사통팔달 맹활약을 펼친 난세의 전략가이지요.
그의 자가 들어간 ‘사공명 주생중달(死孔明 走生仲達)’은, 죽은 뒤 인형만으로도 적장 사마중달을 혼비백산 내쫓았다는
전설적인 지략임을 극찬합니다.
뿐만 아니라 군사전략을 뛰어넘어 행정책임자로써 명재상의 헌신적 충절로도 신망을 크게 떨쳤습니다.
제갈량의 출사표(出師表)는 우국충정이 비장하게 출출 넘치는 명문장으로 잘 알려져 있고 또 아들을 위해 남긴 훈시의 글도
유명합니다.
공명이 죽음을 앞두고 남긴 86자의 편지 계자서(誡子書)에는, 8세가 된 늦둥이 아들 제갈첨(諸葛瞻)을 걱정하며 남긴
배움과 수신에 관한 부친의 깊은 당부이지요.
그 문장 중의 한 소절 담박명지(淡泊明志)는, 마음이 맑고 깨끗해야 뜻을 밝게 펼칠 수 있다는 질타로 이 성어는 서예를 하시는 분들도 즐겨 쓰는 일필구절이지요.
첫 부분부터 군자의 마음가짐은 어떠해야 한다며 다독이는 글에는,
군자의 행동은 마음을 고요히 하여야 하며, 몸을 닦고 검소하게 생활하면서 덕을 쌓아야 한다.’
마음이 넉넉하고 깨끗하지 않으면 뜻이 밝을 수가 없고, 마음을 한 곳에 모아 평온하지 않으면 큰일을 도모할 수 없다.’
이렇게 이어지는 글에는 학문의 자세도 일러주는데,
‘배움이란 반드시 평온한 마음으로 임해야 하며, 재능은 모름지기 배움에서만 길러진다.’
배우지 않는다면 재능을 넓힐 수가 없고, 뜻이 없다면 학문을 이룰 수가 없다.’
이렇게 공명의 교육지침을 내려 받은 아들 제갈첨은 선비의 기틀을 갖추어 곧게 자라 뒤
유비의 아들 유선(劉禪)의 부마가 되고 환관의 정치개입을 바로잡으려 애씁니다.
하지만 나약한 유선이 위나라 대장수 등애가 성도(成都)로 진격하자 성문을 열고 나가 항복해버리니 이로 제갈첨도
촉한의 멸망과 함께 운을 다 합니다.
사마소가 제갈첨을 아까워하여 위나라에 진정 항복하면 琅耶王(낭야왕)에 봉하겠다는 제의를 하지만 뿌리치고 부친의
가르침을 따라 전장에서 목숨을 던지고 말지요.
한 시대를 떠들썩하게 했던 제갈량은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렵게 자랐습니다.
그럼에도 초야에 묻혀 지혜의 와룡(臥龍)으로 소문이 자자했고, 이를 유비가 三顧草廬(삼고초려)하여 발굴해낸 인재지요.
세속에 물들지 않은 꼿꼿한 자세를 보여주는, 공명이 청년기에 읽었다는 시 구절을 소개해 올리며 추석인사도 겸하고자 합니다.
봉황은 하늘 천 길을 날아도 오동나무 아니면 깃들이지 않고
선비는 외로운 땅 쓸쓸히 있어도 참되고 어진 주인이 아니면 따르지 않네
추석 맛나 많이 자시고 멋지게 보내십시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참되고 어진 연인이 아니면 안 만나겠습니다 ㅎㅎ 겉만 번드레하고 속은 음흉함을 감춘 이 도 많기에ㅎ
참내...꼭 여기 있는 요상한 늑대를 용케 꼬집어 들먹이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