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1일 오늘의 역사
2020년 249년 역사의 샌 가브리엘 성당 화재
249년 역사를 가진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샌 가브리엘 성당이 11일 화재로 거의 전소했다. 이 성당은 스페인 출신 선교사가 설립했다
이날 새벽 4시쯤 발생한 화재로 인해 성당의 목재 지붕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고 내부 대부분도 불에 탔다. 다만 수공예로 제작된 내부 제단과 주요 유물들은 기적적으로 화를 피했다
2015년 멕시코 마약왕 호아킨 구스만 1.5km의 땅굴 통해 탈옥
구스만은 복역 중이던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 인근 알티플라노 연방 교도소에서 지난해 7월 11일 탈옥했다. 독방에 샤워하러 들어간 뒤 감시카메라에서 모습을 감췄다. 멕시코 국가안전위원회가 방을 수색한 결과 샤워실 바닥에서 지하 10m 깊이의 굴이 발견됐다. 총 길이 1.5km, 높이 1.7m, 너비 70cm인 이 땅굴엔 환풍구와 조명까지 설치돼 있었다. 구스만과 그의 조직원들이 얼마나 치밀하게 탈옥을 준비했는지를 모여주는 장면이었다. 이 땅굴의 반대쪽 끝은 당시 건축공사중이던 인근 건물과 연결돼 있었다. 이런 호화 땅굴이 발견되자 당시 현지 언론 등은 “외부 조력자나 교도소 내부 공모자가 있지 않겠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는 탈옥 184일 만에 고향의 한 건물에서 총격전 끝에 검거 되었다
2015년 세계적인 게임업체 닌텐도 이와타 사장 별세
도쿄공대 출신의 엘리트 프로그래머였던 이와타는 2000년 닌텐도에 입사해 2년 만에 사장에 올랐다. 이후 최고경영자로서 휴대용 게임기 ‘닌텐도DS’와 가정용 게임기 ‘위(Wii)’ 등의 개발을 주도해 닌텐도 전성기를 이끌며 세계적 스타로 발돋움했다.
그러나 2010년 이후 스마트폰 무료 게임 시장이 급팽창하면서 게임기용(用) 게임에만 집중하던 닌텐도는 큰 타격을 받았다. 그나마 경쟁사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에 밀려 2011년부터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그는 회사의 경영 악화에 대해 속죄하는 뜻에서 자신의 월급을 반 토막 내는 등 시련을 겪었다.
2009년 여성산악인 고미영 사망
한국의 대표적 여성 산악인 고미영(41)씨가 2009년 7월 11일 오후 6시(현지시각·한국시각 11일 오후 9시)쯤 히말라야에서 추락해 숨졌다. 세계 8000m 이상 14개봉 정복에 나선 고씨는 11번째 봉우리인 히말라야 낭가파르바트(해발 8126m) 등정에 성공하고 하산하던 길이었다.
고씨는 하산 도중 해발 6300m 지점의 ‘칼날 능선’에서 1000m 아래로 추락했다. 고씨가 추락한 지 약 18시간 뒤인 12일 낮 12시쯤, 파키스탄 수색 헬기 2대가 캠프1을 약 100m 앞둔 해발 5300m 지점 눈밭에 낭가파르바트 정상을 바라보는 자세로 누워 있는 고씨를 찾아냈다.
15시간에 걸친 사투 끝에 낭가파르바트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 오르는 길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던 낭가파르바트는 제트기류와 눈보라로 하산하는 고씨의 발목을 잡았다. 기상악화로 악전고투를 벌이던 고씨는 해가 저문 뒤 해발 7700m 지점에서 베이스캠프로 지원을 요청했다.
한발 앞서 하산 중이던 오씨가 오스트레일리아·독일·캐나다 산악인으로 구성된 다국적 등반대 ‘내셔널 팀’을 통해 산소통과 보조 자일, 따뜻한 물 등을 고씨에게 올려 보냈다. 고씨는 이들의 도움을 받아 11일 새벽 6시쯤 캠프4까지 내려오는 데 성공했다. 다시 하산하기 시작한 고씨는 11일 오후 6~7시쯤 캠프2(해발 6200m)를 100m쯤 앞둔 칼날 능선에 도달했다. 낙석과 눈사태가 잦고, 몸을 의지할 수 있는 고정 로프가 전혀 없는 구간이 약 10m쯤 계속되는 곳이다. 이 지점에서 고씨는 설산(雪山)의 깊은 골짜기로 추락했다.
2008년 북한경비병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씨 사살
2008년 7월 11일 오전 5시 무렵 북한으로 금강산 관광을 간 대한민국의 민간인 박왕자씨가 조선인민군 육군 초병의 총격으로 사망한 사건. 당시 몸이 그다지 좋지 않은 박왕자(53)씨는 해안가를 산책하다가 인민군 육군 해안초소 초병이 등 뒤에서 발사한 총탄에 맞아 숨졌다. 박왕자씨는 평범한 주부로서, 남편은 전직 경찰관이었다
이 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이 중단 되었다
2005년 전주교도소에서 수감 중이던 최병국 탈옥, 검거
2005년7월11일 오전 11시40분쯤 전주시 완산구 평화동 전주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최병국(28)씨가 탈옥했다. 최씨는 승용차 운전자를 흉기로 위협, 차량과 금품을 뺏은 죄 등으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작년 8월 말부터 복역 중이었다.
전주교도소는 “오전 11시30분에 시작된 운동을 마치고 낮 12시30분 인원을 점검해보니 최씨가 보이지 않아 교도소 안팎을 수색하다가 최씨의 친구가 오후 2시쯤 대전에서 최씨를 만났다는 전화를 받고 탈출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최씨는 탈주 51시간 만에 대전에서 붙잡혔다.
대전 북부경찰서는 13일 오후 2시30분쯤 대전시 대덕구 신대동 모 중고자동차 매매상가 인근에서 은신 중이던 탈옥수 최씨를 검거했다.
경찰은 이날 오후 1시50분쯤 자동차 앞뒤 번호판이 다르게 부착된 차량을 발견, 수상하게 여기고 수사대 10여명을 잠복시켰다가 용의차량으로 다가오던 최씨를 덮쳤다. 최씨는 100여m를 도주했으나 뒤쫓아온 경찰에 별다른 저항 없이 붙잡혔다.
경찰 수사 결과 최씨는 11일 오전 11시40분쯤 전주교도소를 탈옥한 뒤 같은 날 오후 2시쯤 대전으로 잠입, 친구 및 동생 등과 만난 뒤 잠적했다. 이어 12일 오후 5시10분쯤 충남대학교에서 검정색 코란도 차량을 훔쳤다. 최씨는 이 차를 타고 오후 10시30분쯤 대덕구 중리동 모 여관 앞에서 차 배달을 주문, 배달 온 여종업원 A(19)씨를 차량으로 납치해 3시간여 동안 감금했다 풀어주기도 했다.
최씨는 경찰에서 “면회를 오지 않는 춘천의 아내와 딸이 보고 싶어 탈옥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2002년 법원, 음악파일 공유사이트 ‘소리바다’ 음반복제 금지 결정
2002년 7월 11일 법원이 “소리바다를 통해 음악파일을 업로드하거나 다운로드해서는 안된다”며 “사용 중인 서버를 소리바다 서비스 또는 같은 방식 서비스를 위해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이에따라 음악 파일인 MP3 파일을 인터넷을 통해 자유롭게 주고받으면서 급속히 성장해 온 디지털 음악문화도 뿌리째 흔들리게 됐다.
음반협회는 2000년 4,100억원이던 음반 매출액이 2001년 3,700억원으로 떨어졌고, 2002년에도 2001년의 같은 기간에 비해 40% 이상 매출액이 감소했다고 주장했다. 2000년 5월 문을 열어 2002년 7월 현재 1,000만명 전후의 회원을 갖고 있는 소리바다 서비스는 법원의 판결로 2002년 7월 31일부터 서비스가 중단됐다.
2002년 영국 네이처誌, 인류·침팬지 공통 선조로 추정되는 700만년전 두개골 화석 발견 보도
인류의 선조(先祖) 중 가장 오래된 약 700만년 전의 두개골 화석이 아프리카 중부의 차드 공화국에서 발견됐다 연구를 이끈 프랑스 포와티에 대학의 미셸 브뤼네(Brunet) 교수는 네이처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발견된 두개골은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원인(原人)보다 100만년 이상 앞선 것"이라고 밝혔다.
현지어로 `삶의 희망`이란 뜻의 `투마이(Toumai)`라는 이름이 붙은 이 원인의 두개골은 침팬지와 그 크기가 비슷하지만 성인 남자와 유사한 얼굴을 지녔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연구팀은 목의 근육과 연결되는 두개골의 뒷부분을 볼 때, 원인은 직립 보행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발견된 원인은 당시 사람과 침팬지의 특성을 동시에 갖춘 셈이다.
연구팀은 `투마이`가 인간과 침팬지의 진화 과정에서 이제까지 발굴되지 않아 공백으로 남아 있던 `잃어버린 고리`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브뤼네 교수는 이 두개골의 발견으로 500만∼700만년 전에 인류가 원숭이에서 분화했다는 기존 학설과는 달리, 인류와 원숭이의 분화 시기가 최소한 700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1996년 조선일보, 국내 최초로 ‘콩기름잉크’로 인쇄
1996년 7월 11일 무공해 콩기름잉크 인쇄에 들어간 조선일보는 이날부터 한국신문 잉크사로부터의 기존 석유잉크 도입을 전면 중단했다. 신문제작 단계에서부터 친환경성을 실천하기 위해 종래의 석유잉크는 사라졌다. 콩기름잉크는 생분해성이어서 석유잉크와는 달리 자연 속에서 손쉽게 분해됐다. 스모그의 원인인 휘발성유기 화합물의 발생량도 최대한 억제되었다.
1987년 미국신문협회(NAA)와 미국 농무부 농업응용연구소에 의해 개발된 콩기름잉크는 1990년대 들어 폭발적으로 보급이 확대되어 왔다. 국내에서 최초로 콩기름잉크 개발작업에 참여했던 대한페인트잉크사 기술연구소 임종학 책임연구원은 “콩기름잉크가 환경보전적 측면에서 지금까지 개발된 최상의 잉크 제품”이라고 말했다. 신문제작에 사용될 경우 잉크 사용량도 10% 이상 줄일 수 있으며 파지도 훨씬 적게 나오고 폐잉크 찌꺼기의 독성도 상당부분 감소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한페인트 잉크사가 콩기름잉크 제작에 뛰어든 것은 지난 1991년 미국 내 콩기름잉크 사용이 급속하게 확산되는 것을 보고 미국기술자들의 도움을 받아 대한페인트 잉크사가 콩기름잉크 제작에 뛰어들었다.
시제품이 만들어진 것은 1992년이었다.
1991년 캐나다 네이션에어 전세기 dc8기 사우디아라비아 제다 근처 추락. 262명 사망
회교성지 순례자와 승무원 등 2백61명을 태운 캐나다 전세항공사 네이션에어 소속 dc8기가 1991년7월11일 오후 화염에 휩싸인채 사우디아라비아 제다공항에 비상착륙을 시도하다 추락, 탑승자 순례자 2백47명과 승무원 14명 전원이 사망했다
spa는 성지 순례를 마친 나이지리아 회교도 등을 태우고 이날 오후2시30분쯤 제다공항을 이륙한 여객기가 7분여만에 화재가 발생해 회항하겠다는 보고를 해왔으며 곧이어 활주로에서 5백여m 못미친 지점에서 화염에 휩싸인채 추락했다
공항 관계자들은 사고기가 이륙 직후 4개 엔진 중 한군데서 화재가 발생, 화를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말했다.
1989년 영화배우 로렌스 올리비에 사망
올리비에는 60년간의 배우생활 중 연극 1백21편 영화 58편에 출연했고 아카데미영화상을 두번 수상하는 등 20세기 최고의 배우로 칭송을 받았다. 특히 셰익스피어 작품 해석에 남다른 재능을 보여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 ‘맥베스’ ‘오셀로’ 등 주로 셰익스피어 작품들을 연출하거나 주연을 맡았다. 비평가들이 그를 ‘오셀로의 초상’이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1907년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5세때부터 연기를 시작한 올리비에가 처음으로 무대에 선 것은 15세 때였다. 23세 때 미국으로 건너가 할리우드서 본격적인 배우활동을 시작, ‘헨리 5세’나 ‘리처드 3세’ 같은 셰익스피어 작품 만이 아니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폭풍의 언덕’ ‘재즈 싱어’ 등에도 출연했다. 스스로 감독-제작-주연을 맡은 영화 ‘햄릿’은 1948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다.
여배우 질 에스먼드, 비비언 리와 결혼한 적이 있으며 사망 당시 부인인 조안 플러라이트와 런던에서 살아왔다. 1947년 기사, 1970년 귀족 작위를 각각 받은 그는 신장수술과 암 등 지병으로 몇년간 투병생활을 해오다 1987년 80회 생일을 끝으로 은막에서 은퇴했다.
1988년 시아누크 캄보디아 대통령 사임하고 프랑스로 망명
1987년 세계인구 50억 돌파
1985년 박철언-김용환, 북한의 한시해-최봉준과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막후 실무회담(판문점 평화의집)
1985년 7월 11일 오전10시 판문점 우리측 지역인 `평화의 집`에서 남북한 밀사들이 비밀리에 두시간동안 만났다. 네차례의 서신왕래와 두차례의 실무접촉 협의를 거쳐 분단 40년 만에 처음으로 정상회담을 추진하기 위한 실무대표회담의 문이 열린 것이다.
한국측 실무대표로는 박철언(외교안보연구원 연구위원)과 김용환( 통일원 남북대화국 과장)이 지명됐고 북한측 실무대표로는 한시해(노동당중앙위 비서국 부부장)과 최봉준(판문점 책임연락관)이 지명됐다.
실무대표를 증명하기 위해 우리측은 장세동 안기부장, 북측은 허담 노동당 중앙위 비서 명의의 신임장을 휴대키로 이미 합의한 바 있었다. 3번째 실무회담에서 양쪽 특사가 각각 상대방 남북한 정상을 만나기로 합의했다.
1985년 경북 영풍에서 삼국시대 채색 고분벽화 발견
1984년 충북 영동 상공에서 군용헬기 추락 김공한 육군대장 등 5명 사망
1983년 서울시, 보신탕· 뱀집 등 도심영업 금지
1982년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레바논사태 해결위한 11개안 평화안 제시
1981년 쿠바난민, 카스트로 암살작전 실패
1981년 인도-파키스탄, 양국 국경서 무력충돌
1980년 미국 MIT대, 세계최초로 인공피부생산 피부이식에 성공
1979년 美 첫 우주정거장 `스카이랩` 80년 임무 마치고 인도양 추락
1978년 중국, 알바니아에 경제원조 중단
1974년 비상보통군법회의 인혁당 피고인 7명 사형 8명 무기 선고
1974년 스웨덴의 소설가 라게르크비스트 사망 - 1951년 노벨문학상 수상
1974년 문교부, 중고교과서에 한자병용키로 결정 발표
1973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 시행령 공포. 서울 등 14개 도시 93개 지역 시위 금지
1973년 천마총 유물 출토 시작
원래는 황남동 98호 고분을 발굴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경주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고분을 발굴하기에는 발굴단의 경험이 아직 부족했다. 예비지식도 얻을 겸 그 옆 155호 고분을 시험용으로 삼았다. 막상 봉토제거작업을 시작하니 아직 도굴범의 손때가 타지 않은 처녀분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발굴단을 흥분시켰다.
1973년 7월11일, 고분에서 처음으로 유물이 출토됐다. 그 해 여름은 유난히도 가물고 더워 발굴팀에게는 다행이었지만 주민들 사이에는 "왕릉을 파헤쳐 큰 가뭄이 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떠돌았다. 하지만 이곳에서 대박이 터질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7월13일, 1500년간의 긴 잠에서 깬 신라금관이 출토됐다. 신라금관으로는 7번째, 광복후로는 최초였다. 8월23일, 발굴단의 눈을 의심케 하는 유물 한 점이 또 출토됐다. 천마도(天馬圖)였다. 무덤의 주인이 밝혀지지 않아 고분 이름을 천마총으로 짓자 이번에는 경주 김씨 측에서 들고 일어났다. 김씨 성을 가진 임금의 무덤이 분명할진데 하필이면 왜 말 무덤이냐는게 그들의 항변이었다.
1973년 남북한 7차 본회담(평양)
1973년 브라질 보잉707기 파리 오를리 공항 접근도중 추락 사망 122명
1966년 전쟁 희생자들을 보호할 목적으로 한 제네바협약 국회 동의
1966년 제8회 월드컵 잉글랜드서 개막
1964년 프랑스 공산당 지도자 모리스 토레즈 사망
1961년 북한, 중국과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 조인
1960년 촘베 총리 콩고로부터의 분리 독립 선언
1958년 산업은행 연계자금 부정대출(약40억원) 국회서 폭로
1958년 7월 11일 민주당 박해정 의원은 국회발언을 통해 산업은행의 대규모 부정대출을 폭로했다. 즉 1958년 5·2총선을 약 2주일 앞둔 4월 20일부터 산업은행에서 기간산업 육성자금 명목으로 특혜자금 40억환을 12개 기업체에 부정대출 했다는 것이다.
대출목표를 80억환으로 책정한 이 특혜자금의 재원은 산업은행에서 차후 금융채권을 발행해 마련키로 하고 우선 산업은행 지불보증으로 시중은행이 먼저 대출하는 형식을 취했기 때문에 `연계자금`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산업은행 자금은 이른바 정치자금의 루트로 알려져 많은 국민들로부터 의혹을 사고 있었는데 특히 이 연계자금의 대출대상기업체 중에는 부실 섬유기업체들이 들어있어 야당과 언론의 비난이 더욱 거셌다. 이들 기업체는 실제로 1∼2년내에 파산했다. 야당인 민주당은 7월 15일 새로 구성한 제4대 국회에서 산업은행 연계자금의 진상조사특위를 구성하려 했으나 여당인 자유당의 반대로 실패했다.
1957년 한국통신협회 발족
1952년 유엔 공군기 평양-황주-사리원지구에 사변후 최대 규모의 폭격
1951년 제5편리호 침몰사고 74명 사망 36명 행방불명
1951년 7월 11일 오후 6시경 부산 충무동 부산제빙회사 앞 부두에서 출항하여 다대포로 향하던 다대포간순항선조합 소유의 17톤 규모의 제5편리호(第五便利號)가 6시 20분경 부산 암남동 혈정소 해상을 항해하던 중 침몰하였다.
수상 경찰서에서 구조대와 구호선이 현장에 출동하여 55명의 조난자를 구조하고 시신을 인양하였다. 7월 14일까지 총 15명의 시신을 인양하였으며, 14일 선체를 인양하였다. 선내에서 발견된 7명을 포함하여 도합 23명을 발견하였다고 보도되었다. 실종자 수색은 이후에도 계속되어 7월 18일까지 74구의 시신을 인양하였고, 36명이 행방불명되었다고 보도되었다
1951년 서울서 휴전반대 국민총궐기대회
1949년 관상대 첫 기상단파 방송개시
1947년 서울대 제1회 졸업식 졸업생 215명
1938년 장고봉에서 일본-소련군 충돌
1937년 일본, 화북에 출병 성명
1936년 독일-오스트리아 군사협정 성립
1934년 패션 제왕 조르지오 아르마니 출생
1934년 7월 11일 세계적 패션 디자이너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이탈리아 북부 소도시에서 태어났다. 그는 밀라노에 있는 의과대학에 들어갔지만 입학한 지 2년 만에 군에 입대한다. 군 복무를 마친 뒤 우연한 기회로 백화점에서 일하게 되면서 패션과 인연을 맺었다. 사람과 옷의 완벽한 조화를 패션 철학으로 여기는 아르마니가 디자이너로서 성공을 거둔 것은 1980년대 도시적 감각의 패션을 선보인 데서 비롯됐다. 할리우드 영화 ‘아메리칸 지골로’에서 주인공 리처드 기어의 의상을 맡으면서 돈과 명성을 단번에 거머쥐었다. 아르마니는 전 세계에 5000명의 직원을 두고, 연간 13억유로(약 1조80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패션 왕국을 건설했다.
그는 프랑스의 크리스찬 디올에 이어 1982년 시사주간지 ‘타임’의 표지인물에도 선정되었고,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2004년 세계 갑부’ 순위에서 247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제 깔끔하고 세련된 디자인의 아르마니 재킷은 군살 없이 날렵한 몸매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드러내는 패션 아이템이 됐다.
1928년 한국최초의 여류비행사 박경원, 일본의 비행경기대회서 3등으로 입상
1920년 영화배우 율 브리너 출생
1912년 국문학자 이재수 출생
1875(조선 고종 12) 백범 김구 태어남
1866(조선 고종 3)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 호를 대동강에서 불태움
1838년 미국 백화점왕 워너메이커 태어남
1767년 미국의 제6대 대통령(1825~29) 존 퀸시 애덤스 출생
1657년 프로이센의 초대 왕(1701~13 ) 프리드리히1세 출생
1628년 일본의 봉건영주 도쿠가와 미쓰쿠니 출생
1533년 교황, 헨리8세 파문
잉글랜드 왕 헨리8세의 주요 관심사는 대포·신학·여성이었다. 해군부를 창설, 영국을 해양대국으로 발전시켰고, ‘신앙의 소유자’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신학에도 해박했으며, 지칠 줄 모르는 욕정으로 왕비도 6명이나 갈아치웠다. 형이 죽어 형수 캐서린과 결혼한 헨리8세의 첫 결혼생활은 그런대로 순탄했다.
그러나 왕위를 물려받을 아들이 좀처럼 태어나지 않자 헨리8세는 이혼을 결심하고 명분을 찾는다. 다행히 형제 아내와의 결혼을 금한 성경구절 레위기 20장21절이 눈에 띄었다. 교황 클레멘스7세에게 이혼을 요청했지만 교황은 허락할 수 없었다. 당시 교황은 캐서린의 조카인 스페인 카를로스1세의 영향력하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헨리8세는 의회를 통한 해법을 찾았다. 1532년 의회는 잉글랜드 교회를 로마로부터 독립시킨 잉글랜드 국교를 설립하고 왕을 수장으로 인정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성공회는 이렇게 첫발을 내디뎠다. 1533년 7월 11일, 교황이 헨리8세 파문으로 보복했지만 약효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