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때 한 작전에 나서 독일 전투기를 석 대나 격추시켜 '트리플 에이스' 전과를 올린 미육군 항공대(USAAF) 대령 출신 클래런스 버드 앤더슨이 10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영국 일간 텔래그래프가 지난 5일(현지시간) 전했다. USAAF의 마지막 '트리플 에이스' 생존자였던 고인이 눈을 감은 것은 지난 5월 27일이었는데 왜 이제야 부고 기사를 내보내는지 신문은 설명하지 않았다.
고인의 '트리플 에이스'는 1944년 6월 29일 작성됐다. 그는 독일 라이프치히를 공습하려는 폭격기 전력을 에스코트하는 8대의 전투기 편대장이었다. 앤더슨은 독일 공군의 포크불프 190 전투기 8대를 만나 이 가운데 석 대를 격추시켰다.
그는 1922년 1월 13일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서 태어나 새크라멘토에서 고교를 마친 뒤 워싱턴 DC에 있는 조지 워싱턴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 재학 중 개인 조종사 면허를 따 새크라멘토 항공 부대의 의용 정비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1942년 1월 자원 입대, 8개월 뒤 전투기 조종사 훈련을 마쳤다. 그는 잠시 P-39 에어아코브라를 몰다가 막 편성된 제357 전투기 그룹의 제363 편대에 들어갔다. 이듬해 11월 제357그룹은 잉글랜드로 건너가 롤스로이스 멀린 엔진을 동력으로 하는 장거리 P-51 무스탕 을 주 전력으로 삼게 됐다. 그 부대는 서포크 해안 근처 레이스턴에 주둔했다.
앤더슨은 1944년 2월 5일 첫 임무에 나선 뒤 다음달 5일 하노버 근처에서 B-17 전폭기들을 공격하는 메서슈미트 Bf 109 한 대를 격추시켰다. 그 해 5월 12일에는 다섯 번째 적 전투기를 격추해 에이스란 별칭을 얻었다. 그리고 같은 달 말에는 석 대를 더 떨어뜨렸다. 그 중 두 대는 스트라스부르 상공에서 한꺼번에 격추시켰다.
트리플 에이스를 달성한 뒤 미국에서 휴가를 보냈다. 그는 12대의 적 전투기를 격추시켜 제357 그룹 가운데 1등 조종사였으며 300 교전 시간을 기록했다.
그는 1944년 11월 두 번째 작전 투어에 나섰다. 같은 달 27일 마그데부르크 상공에서 두 대의 FW 190기를, 다음달 5일 베를린 상공에서 생애 마지막 두 대를 더 떨어뜨렸다. 이렇게 해서 모두 16대의 적 전투기를 떨궈 제363 편대 대원 가운데 가장 좋은 성적을 작성했다.
앤더슨은 1945년 1월 미국으로 귀국, 1948년 5월 테스트 파일럿이 돼 최신 제트 전투기를 평가하는 일을 5년 동안 했다.
그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전투기-전폭기 편대를 지휘했는데 그가 특별히 총애했던 F-86 사브레를 몰았다. “사브레는 빠를뿐만 아니라 비행하기 즐겁고 보기에도 예쁘다. 도그파이트(전투기의 꼬리를 물고 싸우는 공중전)에도 환상적이며 공중에서 어떻게든 채찍을 휘두를 수 있다.”
그는 1957년 11월 에드워즈 공군기지에서 테스트 비행 일을 다시 시작, 항공 테스트 작전 대장을 맡았다. 이렇게 해서 F-100 슈퍼 사브레와 F-105 썬더칩 같은 초음속 전투기들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나중에는 일본 오키나와에 있는 카데나 공군기지에 배속돼 작전 부책임자가 됐다가 나중에 제18 전술전투기대대장이 됐다.
1970년 1월 태국 타클리 공군기지에 주둔한 제355 전술전투기대대장이 돼 F-105 썬더칩을 몰고 베트남에서 적의 보급망을 공중에서 두들겼다. 그리고 1972년 2월 전역할 때까지 캘리포니아주 매클란 공군기지에서 근무했다. 이렇게 30년 군에 복무하면서 130기의 항공기를 몰아 7000여 비행시간을 기록했는데 대부분은 전투기에서 시간을 보냈다.
맥도넬 항공회사에 취직, 12년 동안 에드워즈 공군기지에 있는 비행 테스트센터 매니저로 일한 뒤 1984년 은퇴했다.
고인은 은퇴한 뒤 90세까지 비행기를 몰았고, 학교를 돌며 강연했다. 1990년 전기작가 조 해믈린과 의기투합, '비행하고 싸우고(To Fly and Fight): 트리플 에이스의 회고록'을 출간했다. 1946년 결혼한 엘리노어와는 2015년 사별했고, 아들과 딸만 유족으로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