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홍 교장선생님
어느 장단에 춤추랴.
논 팔아 굿하니 맏며느리 춤추더라.
춤추고 싶은 둘째 동서 맏동서 보고 춤추라 한다.
춤에 관한 속담을 들어보면 우리는 예로부터 가무를 즐긴 것 같다.
많고 많은 춤들 중에서 이번에는 현대사회와 가장 가까운 사교춤을 중심으로 이야기하려고 한다.
사교(社交)춤은 일반인이 악곡에 맞추어 자유롭게 남녀 둘이서 함께 즐기는 춤이다.
우리나라에서 사교춤이 확산된 시기는 1920년대 초반인데, 당시 사교춤은 서양의 선진문화로
받아들여져 학교와 교회 등의 행사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원래 서양의 상류층이 추었던 사교춤은
균형 잡힌 동작으로 신체적 접촉이 거의 없으며 우아하게 추는 춤이었으나, 시대가 흐르면서
남녀가 껴안고 추는 춤으로 변화하였다.
해방과 6.25전쟁 이후의 사교춤은 음성적으로 추어졌다. 정비석의 소설 『자유부인』 과
‘박인수 사건’을 계기로 사교춤과 댄스홀이 불륜과 퇴폐라는 부정적 인상을 심어주어,
사교춤하면 춤바람을 연상시키게 하였다. 그럼에도 사교춤은 더 다양해져서 1960년대에는
왈츠, 차차차,삼바, 트로트, 탱고, 지터벅(일명 지르박), 폴카, 맘보, 블루스가 추어졌다.
한편으로 사교춤을 공식화하려는 노력이 이어지면서 사교춤 경기인
‘전국무도선수권대회’가 열리기까지 했다.
‘탱고리’
당시 ‘트위스트 김’은 전국적인 유명 인물이었고 지역마다 ‘블루스 박’, ‘맘보 김’ 등으로 불리는
춤꾼들이 있었다. 우리 동네에도 유명한 춤꾼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탱고 리’다.
우리 동네 ‘태고 리’는 탱고는 물론 맘보춤도 잘 추었으며 전국무도대회에 지역 대표로
출전하였다.
그 시절 나는 애송이를 갓 벗어난 추레한 모습으로 탱고 리의 무도장에 초대받아 간 적이 있다.
아마 교실 2개 정도의 넓이였다. 음악에 맞춰 한 쌍씩 무도장으로 입장하여 춤추는 모습은 마치
영화 한 장면과도 같아 수십 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생생하다. 그날의 환상적인 무도회를 접하고,
탱고 리에게 춤을 가르쳐 달라고 졸랐다.
사교춤은 보통 ‘슬로우 슬로우 퀵퀵’하면서 블루스와 트로트 춤을 먼저 가르치지만, 아직 나이가
어리고 학생이니 ‘지루박’만 배우라고 하였다. 지루박 춤은 블루스와 트로트 춤과는 달리 춤
상대와 몸 접촉이 많지 않았다.
지루박에 이어 대학 1학년 때 왈츠를 만났다. 무용은 필수 과목이었다. ‘은파’ 음악에 맞춰 왈츠
춤을 추었다. 지루박과 다른 어떤 우아함과 왈츠의 아름다움을 느끼기 시작할 때 그만 발을 다쳤다.
더 이상 춤을 못 추니 지도교수가 참관만 하라고 하였다. 결국 D학점을 받았고, 나는 끝내 왈츠를
배우지 못했다. 훗날, 춤을 출 기회가 있어 호기롭게 나가 지루박을 추었다.
‘옛날 스텝이네요!’ 그 이후론 추지 않았다.
춤추는 사람은 아름다워
직장 선배 중에 춤추는 사람이 있었다. 별명이 ‘제비’지만 아무튼 멋있다. 나이가 50 중반인데도
거의 상의 속옷을 입지 않았다. 촉감 좋은 실크 외이셔츠를 입어 속살이 비친다. 와이샤츠위 단추는
풀어 금목걸이가 눈길을 끈다. 평범한 얼굴에 작은 키인데도 매력이 있다. 팔자걸음인 우리들과는
달리 일자로 걷는 그의 뒤태도 근사하였다.
또 지인 중에 70세 가까운 멋진 여자가 있다. 이분은 지금도 춤을 춘다. 몇해 전엔 전국 라인댄스
대회에 최우수상도 받았다. 같이 있으면 향기가 난다. 춤을 통해 다져진 내공에서 우러나오는
아름다움인가보다.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아니 춤추는 여자가 아름답다.
영원한 한국 춤, 지루박
우리나라 사람들이 카바레 무도장 콜라텍 등에서 가장 즐기는 춤은 바로 지루박이다. 지루박은
재즈 스윙댄스 중 하나인 지터벅(Jitterbug)을 한국 실정에 맞게 새롭게 가다듬고 개조한 춤이다.
지루박은 일자로 걷는 방식으로 춤을 춘다하여 일자춤이라고 한다.
동적인 서양의 춤에 비해 동양의 춤 문화는 정적인 부분이 많이 강조된다. 지루박도 처음에는
화려한 몸동작과 스텝이 많지만 경력이 쌓여 춤이 경지에 오르게 되면 안으로 새기는 리듬감으로
그야말로 감각의 춤을 춘다고 한다.
춤 한번 추실래요.
Shall we Dance?
지루박을 비롯한 ‘사교춤’은 말 그대로 사회적으로 교제하여 사귀는 춤이다. 다시 말해 서로가
공감하고 소통하는 춤이다. 그래서 꼭 둘이 함께 춤을 춘다. 사교춤을 ‘춤으로 하는 대화’ 라고
하는 이유다. 우리는 이 대화를 통해 상대방과 더 잘 공감할 수 있으며, 또 우리 삶을 이해할
수 있다.
영화 쉐 위 댄스(Shall We Dance?, 1996)는 이 지점을 잘 보여준다. 무기력한 평범한 셀러리맨이
춤을 접하게 되면서 삶의 의욕과 활력을 되찾고, 인생의 참다운 의미를 깨닫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춤을 통해 삶을 이해하는, 결국 춤과 삶의 이야기이다.
춤이 삶에 비유되는 또 한 영화가 있다. 탱고 춤의 매력을 한껏 보여준‘여인의 향기’
(Scent of a Woman,1992)가 그 영화다. 이 영화에서 알파치노가 연기한 퇴역중령 슬레이드는
시각 장애인이다. 그는 괴팍하고 고지식하기 짝이 없으며, 때론 삶을 비관하여 자살도
시도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삶을 이어나간다.
“만일 실수를 하더라도, 만일 모든 게 엉키더라도, 그저 탱고를 계속해 나가세요.”
탱고를 추어야 할 이유이자, 아무리 실수투성이일지라도 우리가 인생을 살아나가야 할 이유가 아닐까.
근래 사교춤의 부정적인 인상을 탈피하고 ‘댄스 스포츠’가 태어났지만 사교춤은 계속 우리 주위에
자리하고 있다. 사교춤은 스텝을 몰라도 좋다. 막춤이면 어떠냐? 함께 모여 노래 부르고
같이 춤추며 사는 인생은 아름답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