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명의 나이에 부끄럽지 않는
좋은 영화 한편 남기고 싶었어요'
대장장이가 만든 질박한 놋그릇 같은---
배창호 감독의 새영화 「길」
80년대 우리영화 최대의 흥행감독으로 명성을 떨친 배창호(51)가 오랜 침묵을 깨고 새영화를 완성했다. 그의 열일곱번째 작품인 이번 영화 <길>은 <러브스토리> <정>에 이어 세번째로 내어놓는 흥행감독의 '독립영화'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 영화는 '인생이란 길 위에 선 나그네'라는 철학을 가진 배 감독의 보헤미안 기질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으로 제42회 로카르노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한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1989. 배용균)에서 조감독을 맡은 바 있는 강충구(46)가 제작자로 나서 배 감독과 손잡고 만든 순수 예술영화라는 점에서 영화 마니아의 눈길을 끌만하다.
새마을운동과 스마일운동으로 상징되는 70년대를 살아가는 대장장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는 이 영화는 가장 가까운 아내와 친구로부터 배신감을 느끼고 집을 뛰쳐나온 주인공이 마치 대장장이가 무거운 모루를 천형처럼 짊어지고 다니듯 가슴 속 깊은 상처를 안고 시골장터와 황톳길, 눈길, 염전길을 떠돌아다니며 인간 본연의 모습을 되짚어보는 과정을 로드무비 형식으로 풀어가고 있다.
또한 그 시절 도시화 산업화의 물결로 잃어가는 시골 사람들의 순박한 정서와 사라져가는 한국의 생활문화에 대한 그리움에 대한 간절한 표현을 담고 있다. 특히 전국의 명소를 찾아다니며 찍은 아름다운 자연풍경을 배경으로 길을 가는 대장장이의 발걸음에 맞춘 클래식 기타음이 잘 어우러져 감동을 더해준다. 테마음악은 배 감독과 오랜동안 손발을 맞춰온 작곡가 이성재가 곡을 쓰고 독일 베를린 음대에서 음악을 전공한 기타리스트 이성우가 연주를 맡았다.
얼굴이 예쁜 '얼짱', 몸매가 예쁜 '몸짱'등 짱 열풍으로 마음과 정신의 진정한 가치관을 잃어가고 있는 우리사회에 가족·사랑·우정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자연이라는 공간이 세상의 온갖 상처난 것들과 친화하는 것처럼 용서와 화해의 철학을 배울 수 있도록 해주는 영화 <길>에 대한 몇가지 궁금증을 배창호 감독을 직접 만나 풀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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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산 프로덕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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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지난 19일 영화 <길>의 제작사인 이산프로덕션 주변에서 만난 배창호 감독과의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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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창호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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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봉 |
- 최근 시나리오를 쓰고 직접 주연도 맡은 새영화 <길>을 완성했다는데 어떤 내용의 영화인가.
'이번에 만든 <길>은 70년대 중후반에 전국의 장터를 떠돌아다니던 한 대장장이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젊은 시절 아내가 가장 친한 친구와 불륜을 저지르는 현장을 목격하고 집을 뛰쳐나와 떠돌이 대장장이가 된 한 남자와 구로공단 직물공장에서 일하던 여공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러 서울에서 내려온 여공과 우연히 만나 동행하게 된 대장장이는 그녀가 아내와 정을 통한 친구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딸을 통해 아내와 친구 사이를 오해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비로소 지난 삶을 되돌아보면서 가족에 대한 사랑과 진정한 우정을 다시 생각해본다는 것이 줄거리다.
이웃집 이야기를 듣거나 오래 잊고 지내던 고향을 다시 찾아온 것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는 영화다. 대장장이가 만든 질박한 놋그릇 같은 토속성 짙은 장면들은 도시생활에 찌든 사람들의 정서를 회복시켜주는 몰약같은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한다.'
- 우리나라 영화계의 제작체계가 할리우드화 돼가고 있는 상황에서 <정> <러브스토리> 등의 영화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수해 왔는데, 이번에 또다시 독립영화 <길>을 만들었다. 독립영화를 고집하는 이유는?
'데뷔 후 20년 동안 열일곱 편의 작품을 만들었다. 언제까지나 성공만 이어질 것 같이 승승장구했던 시절도 있었고, 변화의 시기도 있었으며, 침체기도 겪었고, 스스로 뛰어들었던 실패의 기간도 있었다. 이런 굴곡의 과정을 통해 영화는 쾌락 추구의 라이브 쇼가 되어서도, 영양을 섭취할 수 없는 심심풀이 땅콩으로 머물러도 안되며, 인생을 담는 현실의 꿈이어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영화철학을 갖게 됐다.
지금도 넉넉한 제작비 없이 열정 하나로 영화를 찍던 데뷔 시절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항상 초심으로 다시 돌아가 혼을 불어넣는 생명수 같은 예술영화를 만들고 싶다. 독립영화는 나의 자존심과 신념에 대한 약속을 지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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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산 프로덕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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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영화 <길>에 관한 내용이 알려지면 배창호가 흥행감독에서 독립영화로 회귀했다고 생각할 것 같은데, 앞으로도 독립영화를 계속 만들 생각인가.
'두 가지 다 하고 싶다. 내용에 따라서는 자본과 기술, 스타들을 필요로 하는 작품이 있다. 반면에 돈과 테크닉으로 만들 수 없는 영화가 있다. 예술가 정신이라는 자산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경우가 그러한데, 이 때는 독립영화라는 제작방식이 더 효율적이다. 자본주가 원치 않으면 정작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지 못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우리 영화계 풍토이다. 앞으로도 자본에 구애받지 않고 감독이 자기 목소리를 내는 독립영화의 장점을 적극 활용해 내가 만들고 싶은 작품을 남기고 싶다.'
- 1970년대 중반을 배경으로 떠돌이 대장장이의 인생 항로와 현대 사회에서 점차 사라져 가는 옛 풍경을 담은 <길>을 촬영하면서 방방곡곡을 쏘다니느라 자금과 장비의 조달, 인력동원 등 제작에 어려움이 컸을 텐데 어떻게 극복했나.
'어려움은 각오하고 시작했지만 제작기간이 1년 넘게 걸릴 줄은 몰랐다. 다행스럽게도 과거 몇차례 영화를 같이 만든 경험이 있는 뜻맞는 후배를 제작자로 만나 의욕과 열정으로 밀어붙였다. 영화제작을 하는데 있어서 현장관리와 예산집행에 효율성을 갖는 게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머릿속으로 미리 편집을 하고 철저한 사전 준비와 발품을 팔아서 아낄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누수를 줄이는 방법으로 제작비를 최소화했다. 이런 것이야말로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제작의 노하우이다. 촬영 장소 제공과 세트장 설치 등은 지방자치단체에서 행정적 지원을 받았고, 현지의 지인들이 주민들을 대상으로 엑스트라 섭외까지 도와줘 큰 도움이 됐다.'
- 열악한 제작여건 속에서도 흥행감독으로 명성을 떨치던 80년대와 요즘의 영화시장을 비교한다면?
'과거보다 영화관객이 확실히 많이 늘어났고 연령층도 다양해졌다. 세계적으로 유래없이 우리영화 시장이 매우 역동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시장규모에 비해 영화의 소재가 다양화돼 있지 못하고 요즘 젊은 세대의 영화는 지나치게 극사실주의에 치중해 영화의 전통적 미학을 놓치고 있다. 예술성을 담고자 하는 노력과 장인정신도 아쉽다.
예컨대 눈 쌓인 풍경을 담기 위해 산을 오르내리는 노력이나 옛 물건·풍습·자연에 대한 애정이 많이 부족한 것 같다. 지금 남기지 않으면 영원히 놓쳐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황톳길·눈길·염전길 등을 찾아다니며 찍었고, 시골장터·대장장이·놋그릇·대폿집·연 등 사라져 가는 것들을 화면에 담고자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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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산 프로덕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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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영화가 발전하려면 영화를 만드는 사람, 즉 감독·제작자·연기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재양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영화계의 대선배로서 후진양성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올해부터 건국대 연극영화과 강의를 맡았다. 영화를 편집하고 마무리 하는 틈틈이 시간을 내어 강의 커리큘럼 준비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요즘 젊은 연기지망생들은 신체조건과 관찰력이 좋고 연기도 곧잘 하는 것 같지만 정서적 측면이 약하다.
오랜 현장경험과 과거 미국 새너제이 주립대 영화학과 석좌교수, 서울예술대 겸임교수로 일한 경험을 살려 테크닉보다는 정신과 내면이 충실한 교육과정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좋은 연기를 위해 깊은 성찰과 상상력, 이해력을 길러주고 기존 대학의 영화학과에는 다소 부족했던 현장감 있는 연기지도에도 힘쓸 작정이다.'
- 새영화는 언제 개봉되나. 순수 예술영화가 주류 영화계에서 통한다는 게 쉽지가 않을 텐데, 자극적인 영화에 길들여진 관객들의 눈길을 붙잡을 수 있는 특별한 홍보전략을 세우고 있는가.
'한국영화의 수준도 높아졌지만 관객들의 눈높이도 옥석을 가릴 수 있을 만큼 높아졌다고 믿는다. 다만 그동안 좋은 영화를 볼 기회를 많이 갖지 못했을 뿐이다. 전략적인 홍보활동 보다는 '작품성'으로 관객의 평가를 받고 싶다.
우선 국제영화제 출품을 준비하고 있다. 서두르지 않고 먼저 작품성을 인정받고 인지도를 높인 뒤에 개봉할 계획이다. 몇차례 공개시사회도 가질 예정이다. 영화계 뿐만 아니라 문학, 음악, 미술 등 문화계 인사들과 다양한 계층의 시민단체, 그리고 미래 한국영화의 새로운 투자자가 되어줄 경영자 및 CFO(재무담당대표이사) 등을 초청해 시사회를 갖고 한국영화의 예술적 가치와 가능성에 대한 진지한 토론의 기회도 가져볼 계획이다.'
첫댓글 흐미~ 요즘 이상스레 무지 바쁜 나날들을 보내는데... 다른 사람 글은 금방 읽었는데... 요건 낼 읽어야 겠네요. 지금 거래처 컴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