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체스코 보나미가 총감독을 맡은 이번 베니스비엔날레는 거대한 스케일과 볼거리를 제공한 하랄트 제만의 지난 비엔날레를 ‘큐레이터의 독재’로 상정하고, ‘관람객의 독재’라는 부제 아래 대중을 위한 분산형 전시를 시도했다. 그러나 아르세날레와 자르디니의 기존 전시공간을 벗어나 베니스 곳곳에 포진한 다양한 프로젝트, 인접 예술 장르와의 학제간 접목, 엘리트주의를 극복하려는 선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올해 베니스비엔날레는 전체를 조율하는 시각연출능력의 부족으로 산만하고 난삽하다는 혹평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파올라 피비의 노새가 배를 타고 강을 건너가는 사진작품은 실제 운하와 겹쳐져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사이(Interudes)〉에 참가한 작품 중 하나다.
하랄트 제만의 뒤를 이어 제50회 베니스비엔날레의 총감독직을 맡은 프란체스코 보나미는 그 선임과정에서부터 격렬한 논쟁에 휘말렸다. 무대미술과 회화를 전공한 후 《플래시 아트》의 기자생활을 거쳐 시카고 현대미술관의 수석 큐레이터로 일하게 되기까지, 스스로 독학자로 칭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은 후에 오늘에 이른 보나미는 하랄트 제만과 같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갖춘 인물을 요구한 이탈리아 평론가들의 눈에는 ‘못미더운’ 존재였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비토리오 스가르비(Vitto-rio Sgarbi)는 보나미가 제시한 주제와 전시구도를 두고 기획상의 혼선과 논쟁이 초래될 도발적 자극에 불과하다고 맹렬히 비난하며 그의 구상안을 ‘열린 전쟁(an act of open war)’으로 규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엔날레 집행위원장인 프랑코 베르나베(Franco Bernabe)는 보나미가 “비엔날레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벗어나서 전혀 새
롭고 색다른 세계를 선사해 줄 유일한 적임자” 라고 지명 이유를 밝히며 결국 그의 손을 들어 주었다. 그러니까 보나미 자신에게는 이번 비엔날레의 감독선임과정 자체가 그가 제안한 전시주제처럼 총감독이 되기 위한 〈꿈과 갈등(Dreams and Conflicts)〉의 예고편이 된 셈이다.
스펙터클의 제거와 전시의 광역화
그러한 진통 끝에 출범한 보나미호는 4개월간의 긴 항해의 목표를 ‘스펙터클(spectacle)의 제거’로 설정했다. 다시 말해서 규모의 정치학을 앞세워 스케일리즘(scalism)과 스펙터클을 합병한 강력한 시각장치들을 가동시켰던 전임감독 하랄트 제만의 슈퍼 큐레이팅(super curating)을 ‘큐레이터의 독재(The dictatorship of the curator)’로 규정하고 자신은 “보나미 자신이 걸어왔던 전시 방향을 정확하게 계속적으로 추구하게 될 것”이라고 제만이 예측했던 대로 잘게 부수어진(Spread out) 구조 속에서 관람객이 작품을 발견하는 방식으로 ‘관람객의 독재(The Dictatorship of the viewer)’를 실현하고자 한 것이다.
‘꿈과 갈등’이라는 상위주제의 개념을 분석해 보면 그것은 미셸 푸코(M. Foucoult)가 지적했던 쟁의적 문화행동, 즉 글로벌리즘의 문화적, 구조적 지배담론의 꿈(이상)과 그에 대한 대항담론으로서의 로컬리즘(지역적 정체성)의 갈등과 쟁의를 유도해 내는 일차적 추론을 목표로 한다. 그리고 이차적으로는 대중의 삶에서 이상(꿈)과 현실(갈등, 상충, 투쟁 등)의 충돌을 이슈화하게 하며, 미술 내부의 문제로 시선을 돌리면 비엔날레 자체의 탈물신화(페티시의 제거)와 탈권력화의 문제를 둘러싼 쟁의와 국가관 제도의 화이트 큐브(White Cube) 형식 속에서 희미해진 미술의 장소성 복원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복합적인 쟁의의 노정이 가능해진다.
이번 전시의 외형상 가장 두드러진 특징인 ‘전시의 광역화’ 전략은 베니스 시내 전역에 산재된 위성전시들에서 적극 구현되었고 기차역, 보트 정류장, 상점과 주거공간에까지 침투한 미술작품들은 예술의 순수성과 현실 문화적 삶의 방식 사이의 꿈과 갈등에 관여하는 담론의 영역을 확산시키는 효과적 도구가 되고 있었다. 그것은 권력화의 경쟁구도 속에서 국가관 제도의 관행을 형성해 온 ‘기전(mechanism)’과 큐레이터 일인 독재체제였던 아르세날레의 위용의 ‘틀(Frame)’을 해체하려는 시도로서 마치 앤디 워홀의 공장(factory) 개념처럼 기존의 화이트 큐브형 비엔날레 사이트들의 지리적, 위계적, 유형적 위치와 신분을 무효화하려는 노력의 흔적으로 읽혔다.
분산된 전시와 응집력의 상실
물론 아르세날레 전시장도 국가관제도의 대안공간으로 태동된 것이긴 하지만 보나미는 아르세날레 전시 자체를 8개 권역으로 분할하여 민주적, 개체적 큐레이팅 방식을 가동시킨 것에 그치지 않고 국가관을 포함한 전체 전시를 11개 프로젝트로 분산함으로써 특정 장소에 준거를 두지 않는 이른바 가동성(movability)을 작동시킨 것이다. 그러한 장치들은 결국 국가관들의 흰 벽면의 독재와 시위를 중화시켜 물리적 장소를 둘러싼 이주와 정착의 이슈를 장소의 유목주의(nomadism)의 시각으로 전이시킴으로써, 장소특수성(Site-specificity)의 해묵은 개념을 작가특정성(Author-specificity)으로 전환시키는 수단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보나미는 ‘전시회 중의 전시’ 속에서 숨은그림 찾기처럼 관람객 스스로 미술작품과 작가를 발견하기를 원했고, 여행자들이 대부분인 베니스 시에서 새로운 ‘관람객의 독재’를 개발해 내고 전시의 ‘새로운 영토’를 개척하길 소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보나미가 장소의 고찰에 작용하는 변수의 범위를 확장시키려 시도한 결정적인 단서들을 찾아내기 위해선 매우 세심한 관찰이 필요했다. 더욱이 40년 만에 몰아닥친 살인적인 더위와 사투를 벌여야 했던 악조건 속에서 보나미의 산재된 적략적 배치의 시각정보들이 소통되는 공간들은 차라리 큐레이터와 관람객 어느 쪽의 독재도 아닌 ‘기후의 독재’로 소진되어 버리기 일쑤였다. 일부 관람객들은 에어컨장치가 가동되는 전시장이 국가관상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예술도 이제는 30°C 이하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식의 어처구니없는 농담이 오가는 상황에서 사실 보나미의 큐레이팅은 대다수 관람객들에게 산만하고 난삽하며 짜증나는 구조로 전락하기 일쑤였다.
그러므로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꿈’을 주제로 한 전시나 ‘갈등, 투쟁’의 다큐멘테이션을 모은 전시가 과연 가능할까라는 자문을 거듭했노라는 동업자(?)간의 고백을 하기도 했던 보나미가 오히려 전시공학적 구조에 더 관심을 두었다는 점을 상기할 때, 비록 그가 이탈리아관 입구의 벽면에서 이번 기획의 핵심이 ‘미술의 불일치 혹은 부조화(incoherence)’에 있다고 선언하긴 했지만, 의도적으로 스케일리즘과 스펙터클을 쪼개고 부수어서 ‘부품화’된 군소전시들간의 연결(linking the parts)을 시도한 의도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전달되었는지는 미지수라는 생각을 해본다. 굳이 더위를 탓하지 않더라도 스펙터클을 거세한 공간은 생태적으로 ‘미지근’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번 전시가 노출한 ‘통일성의 결여’나 ‘응집력의 상실’, ‘산만함’ 등의 문제점은 결국 보나미가 불가피하게 놓칠 수밖에 없었던 두 마리 토끼 중 한 마리였다는 생각이다.
더욱이 아르세날레관에 이르렀을 때는, 비록 전술한 대로 민주적이고 개체적인 것을 존중한 방식이 대주제인 ‘관람객의 독재’ 개념에 일정부분 부합된다고 인식하더라도, 전체를 조율하는 시각연출능력이 상실된 결과를 초래한 것은 치명적인 오점으로 각인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제만처럼 대규모 공간을 능수능란하게 풀어낼 능력이나 경험이 없었던 그에게 아르세날레 공간이 부담스러웠을 것으로 추측할 수는 있겠으나, 8개 권역의 큐레이터 각자의 시각과 전망에 의한 극적 대비(contradiction)를 추구했다는 그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시각적 시나리오의 구성능력과 연출능력이 중시되고 있는 최근의 대규모 전시 추세에 비추어 그의 개념은 빛 바랜 옹색한 변명이 되어 버릴 확률이 높다.
건축과 디자인, 그리고 미술의 만남
이탈리아 다국적 커피 브랜드 일리(Illy)의 협찬으로 디자인 그룹이 제작한 〈일리마인드(Illymind)〉는 아르세날레 전시장 내부 통로에 설치되어 안락한 휴게공간을 제공했다.
그러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베니스 시 전역에 걸쳐 11개 프로젝트로 각론화된 전시들은 연극인, 퍼포먼스 공연자, 음악가, 건축가, 디자이너 등과 함께 전시를 기획했던 그의 경력이 십분 활용되어 학제간 접목과 감각적 센스 그리고 발견의 재미를 선사하고 있었다. 가령 자르디니 공원과 아르세날레, 그리고 산마르코 광장 일대에 작가 13명의 작품이 포진된 보나미의 기획전시 〈사이(Interludes)〉를 찾아다니노라면 산타루치아 기차역 맞은편에 마치 공사장 가림판처럼 위장설치되어 있는 〈알렉산드로 페리고트(Alexandre Perigot)〉의 회화작품이 여행객들을 맞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고, 아르세날레에 이르는 좁은 운하의 건물벽에 설치된 파올라 피비(Paola Pivi)의 노새가 보트를 타고 있는 사진작품이 실제 운하와 오버랩되어 관람객들의 유쾌한 상상과 일루전을 촉발하고 있었다. 그러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베니스 시 전역에 걸쳐 11개 프로젝트로 각론화된 전시들은 연극인, 퍼포먼스 공연자, 음악가, 건축가, 디자이너 등과 함께 전시를 기획했던 그의 경력이 십분 활용되어 학제간 접목과 감각적 센스 그리고 발견의 재미를 선사하고 있었다. 가령 자르디니 공원과 아르세날레, 그리고 산마르코 광장 일대에 작가 13명의 작품이 포진된 보나미의 기획전시 〈사이(Interludes)〉를 찾아다니노라면 산타루치아 기차역 맞은편에 마치 공사장 가림판처럼 위장설치되어 있는 〈알렉산드로 페리고트(Alexandre Perigot)〉의 회화작품이 여행객들을 맞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고, 아르세날레에 이르는 좁은 운하의 건물벽에 설치된 파올라 피비(Paola Pivi)의 노새가 보트를 타고 있는 사진작품이 실제 운하와 오버랩되어 관람객들의 유쾌한 상상과 일루전을 촉발하고 있었다. 또 자르디니 내의 서점 뒤 숲 속에 또 다른 ‘숲의 사진’으로 숨어 있는 토마스 디맨드(Thomas Demand)의 작품과 국가관 사이사이에 설치된 산디 히랄과 알렉산드로 페티(Sandi Hilal and Alecsandro Petti)의 확대된 여권사진들은 각기 여행자의 신분으로 바라보는 낯선 환경의 실재와 환영의 국면을 새롭게 체험하게 한다.
학제간 접목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구현한 보나미의 또 다른 기획전시인 〈링크(Links)〉는 6개 부문으로 나뉘어 건축과 디자인 그리고 미술의 감각적 조우를 실현하고 있다. 산타루치아 역 중앙계단 밑에서부터 자르디니 공원 정류장과 매표소 입구의 통로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설치된 〈코드(The Cord)〉라는 원형 조형물은 C+S라는 건축가 그룹이 제작한 상징적 사인물이자 전시장의 로고로서 그 기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며 관람객들에게 통과의례와도 같은 관문의 공간으로 유혹의 손짓을 보내고 있다. 또한 자르디니 공원 숲길에 스트리트 퍼니처 형식의 환경 조형물로 놓인 〈미래의 리사이클링(Recycling the Future)〉이라는 작품은 관람객에게 안락한 의자 형식으로 제시되는 기능성 디자인작품과 조각의 신분을 동시에 표출하고 있으며, 아르세날레 전시장 내부의 통로에 붉은 소파 형태로 안락한 휴게공간으로서 설치된 〈일리마인드(Illymind)〉라는 작품은 디자인 그룹에 의해 제작되어 〈관람객의 독재〉라는 주제 구현에 물리적 방식으로 적극 기여하는 동시에 더위와 비엔날레 순례에 지쳐 버린 관람객들에게 하나의 ‘보상’의 공간으로 공헌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보나미의 건축적 시각이 효과적으로 개입된 공간은 이번 비엔날레를 위해 신축된 〈지대(The Zone)〉라는 전시관이었다. 이탈리아 건축가 마시밀리아노 조니(Massimiliano Gioni)에게 큐레이팅을 의뢰하여 보나미의 주문과 6개 건축팀의 협업이 이루어진 〈지대〉는 형식적 측면에서 아르세날레의 〈일리마인드〉보다 더 압도적인 규모로 구성된 휴게공간으로서, 전시관 마당 전체를 휴식처로 제공했으며 전시장 내에서는 이탈리아에서 성장한 다국적 청년작가들의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통해 통일 유럽의 비전을 제시했다. 〈지대〉가 제시하는 특별한 관점은 이미 유로화를 사용하고 유럽 대륙 내의 왕래가 자유로운 정치적, 경제적 상황에서도 문화 영역은 유독 경쟁 일변도의 구도를 유지하며 소통과 교류를 스스로 제한하고 있다는 반성적 메시지를 젊은이들의 ‘do-it-yourself identity’의 에너지를 통해 발진시키면서 ‘유럽 통합관’의 새로운 모델을 선보였다. 특히 그 공간에서는 디자인과 건축, 그리고 미술의 학제간 접목과 협업시스템을 가동하면서 전시 내용을 통해 초점을 교묘하게 조정한 큐레이팅의 시각이 돋보였다.
회화의 복권
위·한나 그릴리 〈소음 장치〉 혼합재료 2002 아래·건축가 그룹 C+S가 제작한 원형 조형물 〈코드(The Cord)〉 오른쪽·사라 루카스 〈피자에게 기회를 주는 우리가 말하는 모든 것〉 혼합재료 2003
이번 비엔날레의 또 다른 특징으로 거론할 수 있는 것은 전체 전시공간에서 발견할 수 있는 평면회화작품의 비중이었다. 산마르코 광장의 〈뮤제오 코리어(MUSEO CORRER)〉 전시관에서 선보인 보나미의 〈회화(Pittura/Painting)〉 전시는 역대 비엔날레 수상자들 중에서 평면회화 작가의 작품을 한 점씩만 출품시켜 미술사적 의미에 역점을 두는 동시에, 관람객이 작가가 아닌 작품 한 점의 개체적 맥락과 일 대 일로 조우하면서 생성되는 관계성을 통해 주제 해석의 의미를 강화시키려는 의도를 담고 있었다.
1964년에 대상을 받았던 로버트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에서 무라카미 다카시(Takashi Murakami)에 이르기까지 대가들의 작품이 배열된 공간에서 보나미는 더 이상 회화를 스튜디오에서의 작가 내면의 문제에 국한하지 않고 변화하는 세계를 바라보는 강화된 현실문화적 통
찰의 사고로 확산시켜 보려 시도했다. 즉 루치오 폰타나나 카스텔라니가 형식 미학에 몰두한 상황에서 죽어 가는 회화의 급소를 찌른 라우센버그의 대상 수상작품을 시발점으로 강조하여 유럽 주도의 구도에 대한 미국의 헤게모니 쟁탈을 환기시키는 동시에 최초로 매재(medium)의 관계성과 소통 문제를 다룬 라우센버그의 컴바인 페인팅의 재조명을 통해 오늘날 회화의 전환 국면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려 한 것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볼 때 보나미의 전시는 애초부터 회화를 분석하거나 전시 연출에 주안점을 두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가 1999년 주디스 네스비트(Judith Nesbitt)와 화이트 채플 갤러리에서 공동기획했던 〈Examining Pictures〉와는 전혀 맥락을 달리하는, 작품과 독자의 관계성 창출이 유일한 목표였던 전시를 구성했던 것이다. 한편 이탈리아 국가관에서 다니엘 번바움(Daniel Birnbaum)과 공동기획한 〈지연과 혁명(Delays and Revolutions)〉에 출품된 글렌 브라운(Glenn Brown) 등의 회화작품을 통해서는 사진과 조각 등 타 장르에 접목된 회화(connection with painting)의 신분이나 회화성에 초점을 두어 차별화된 시각을 제시하기도 했다.
보나미가 제시한 ‘관람객의 독재’는 결국 오늘날 현대미술이 직면하고 있는 소통의 난맥상 문제와 날로 권력화되어 가는 비엔날레의 정치적, 구조적 문제를 전면에 부상시켜 현대미술의 첨단성, 실험성과 관련된 학문적, 미학적 토론과 관계없이 이해되어야 할 관람객의 일상적 경험과 현실적 삶 자체에 대한 일종의 ‘보상’이라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해 현저하게 차별화된 대중의 주관적 선택과 기호, 취향 등을 전시의 작동 역할에 적극적으로 연루시킴으로써 피에르 부르디외가 언급한 바와 같이 소위 엘리트주의에 대한 반성과 극복의 제스처를 통해 소수 전문가 집단 외의 대중에게 안겨준 문화적 박탈감을 벗겨 줄 수 있는 역사적 전기를 마련하고자 했다는 점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관람객의 독재’라는 제안은 대중의 소외의식에 대한 ‘손해배상’ 측면에서, 민주화된 방식의 전시 유통과 소비를 지향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지점에서 잠재적 관람객이 발굴 혹은 개발되며 관람객도 자연스러운 전시장 풍경의 일부로 녹아들 때 스펙터클로 포장된 비엔날레의 비의성(秘意性)이 벗겨질 수 있다는 기획자의 발언인 것이다. 그러한 시각은 보나미가 언급한 ‘티슈(tissue)로서의 전시’의 개념처럼 부드럽고 향기로우며 ‘상냥한’ 개념을 실천하게 했으며, 죽은 말의 시체 한 구를 성당천장에 매달아놓았던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의 파괴적이고 자극적인 어법을 어린이 인형이 유모차에 실린 채 원격조종장치에 의해 공원 안에서 굴러다니는 가볍고 장난스러운 출품작으로 전환하게 했고, 파티션이나 사인물, 홍보탑, 작품명제표 등 작품 외적인 요소까지 앞서 열거했던 매력적이고 팬시한 건축적 구조물과 그래픽 디자인의 연장선상에서 적극적으로 전시의 문맥으로 유입될 수 있는 연출기법을 낳게되었다.
베니스의 열기를 뒤로 하며
정보교환장의 열기와 폭염을 뒤로 하며 다시 이탈리아관의 벽면에 인쇄된 마니페스토의 글귀를 기억해 볼 때 보나미가 착안해 낸 ‘비엔날레형 노동(biennalious labours)’이라는 신조어가 뇌리를 스친다. 그것은 미술이 진부함(ob-solescence)을 털어내기 위해서는 일상을 일탈하는 ‘꿈’을 던지는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내용으로 결말짓는 편지형식 선언문의 키워드로서 전시관계자들과 큐레이터, 작가들이 쏟아붓는 노동의 가치와 효용성에 대한 독자들의 적극적 이해를 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구애의 향기로운 손짓에 여전히 엘리트 집단(혹은 이른바 프로페셔널리스트들)과 초대된 ‘독재자’들의 배타적 영역은 호환되지 못하고 미완의 숙제로 남겨진다.
처음부터 완벽한 축제란 불가능한 일이었는데 차라리 더 잘게 썰어 케이크 나누어주듯 ‘베풀어’ 주는 전시였다면 어땠을까하는 가정을 하면서, 그렇게 엔터테인먼트의 품목으로 격하시켰다면 오히려 대중의 진정한 열광과도 같은 ‘독재’가 가능하지 않았을까하는 개인적 우문을 던져 보게 된다.
결론적으로 이번 제50회 베니스비엔날레는 가상 이라크 국가관을 상징하는 티셔츠를 입은 작가들의 이라크 반전 시위 퍼포먼스 같은 1980∼1990년대식의 상투적 클리세의 문제점을 노출시켜 비엔날레가 여전히 현실사회의 정치적 문맥과 연결되고 있다는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기도 했지만 탈권력화의 상징으로 각인될 룩셈부르크관의 국가관 수상을 어느 정도 예견할 수 있게 한 보나미의 새로운 장소운영전략, 그리고 미학적 대중주의라는 비엔날레의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했다는 나름의 수확을 건져 올렸다고 긍정적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아드리아해의 푸른 파도처럼 도도하게 밀려드는 회화의 새로운 물결에 대한 재조명 또한 보나미호의 항해 역사에서 잊혀지지 않을 전망이다. 무균상태처럼 지나치게 안온하고 미지근했다는 일부의 평가들을 상쇄시킬 수 있는 집요한 바이러스로서 말이다. ■
이원일 |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