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노훈(12) 맹인 초등학교 5학년
한기웅(12) 맹인 초등학교 5학년
홍순희(28) 헬런켈러 점자 학원 교사
그 외 담임, 사감, 양호선생, 자원봉사자, 반 친구들.
때: 현대
장르: 단편영화
씬1.프롤로그
크게 우는 벌 울음 소리 검은 화면을 가득 채운다. 소리가 점점 줄어들자 흐렸던 화면이 선명해진다. 벌 한 마리가 활짝 핀 빨간 장미 위에 앉아있다. 카메라, 다시 꽃 위로 날아오르는 벌의 움직임을 따라간다. 위잉 소리를 내며 허공을 날다가 어느 학교 교실이 바라보이는 창문 틈에 앉는다.
씬2.한빛맹인학교 교실- 조회시간
여선생: (노훈에게 귓속말로) 네 소개를 해봐.
노훈: 바싹 마르고 노란 피부를 가진 노훈의 얼굴.
맹인이나 일부러 명상을 하기 위해 감은 듯한 철학가와 같은 얼굴이다.
노훈, 고개를 돌려가며 감은 눈으로 교실을 한 바퀴 둘러본다.
주위 조용하다.
씬3. 교실- 수업을 마친 후
수업을 마치는 종소리. 반장인 기웅이 일어나서 차렷 경례를 하면 모두 인사한다. 선생님이 교실 문으로 나가자 다양한 연령의 아이들 일제히 전학 온 노훈에게로 몰려든다. 노훈의 머리를, 눈을, 귀를, 팔을 다리를 아이들 마다 노훈의 신체를 더듬으며 노훈에게 호기심 어린 질문을 한다.
현범: 여자는 있어?
노훈: (현범의 얼굴을 손으로 더듬으며) 너는 이름이 뭐야?
(사이) 나이가 많구나?
성빈: 얘는 열 일곱이나 먹었는데, 정신연령은 완전 다섯 살인 뚱보야.
뚱보.
현범: 우이씨...(성빈의 머리를 장난스럽게 한 대 친다) 눈 찔러 버린다.
성빈: (현범에게 얻어 맞고도 게이치않는 웃음을 지으며) 그럼 네 계획 상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마자 결혼할 거란 말이지?
노훈: (노훈 쑥쓰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씽긋 웃는다.)
성빈: (노훈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맞아, 넌 맹인영어경시에서도 일등을 했었다니까 여자들한테 인기가 많겠다.
현범: 여자애들은 왜 똑똑한 애들만 좋아하지?
성빈: 그럼 형같이 뚱뚱한 사오정을 누가 좋아하겠어?
현범: 진짜로 화난 듯 성빈의 목소리를 향해 좀 쎄게 치나 주먹이 빗나간다.
기웅: (아이들이 존경과 호기심을 담고 노훈에게 몰려들어 대화를 나누고 있는모습을 가소롭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우두커니 앉아 지켜보고있다.)
씬4. 기숙사 욕실-오후
노훈, 욕실 한 켠의 정리함에 가지고 온 무스와 향수, 화장품을 채워 넣는다.
씬5. 동장소
노훈, 방금 세수를 한 듯 수건으로 얼굴을 닦는다. 정리함 속에 스킨을 꺼내 얼굴에 바른다. 빗으로 짧은 머리를 빗은 후 무스로 머리를 앞 머리를 정리한다. 마지막으로 향수를 꺼내어 살짝 뿌린 후 향수병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곤 만족스러운 듯한 표정을 짓는다.
씬6. 거리- 오후
한껏 멋을 낸 노훈, 맹인용 지팡이를 들고 더듬더듬 길을 찾아 가고 있다. 주변 차 경적 소리와 사람들의 웅성이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씬7. 헬런켈러점자학원 복도-오후
학원으로 들어 온 노훈은 간신히 찾았다는 듯 한숨을 한번 크게 쉰다. 그리곤 맹인용 지팡이를 접어 가방 속으로 넣고 한 쪽 벽을 손으로 더듬으며 교실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노훈이니? 하는 상냥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자 노훈, 밝은 미소를 짓는다.
씬8. 헬런켈러 학원 교실-오후
마치 맹인에게 보이는 세상처럼 검은 화면에 가끔씩 빛이 보이게 카메라 처리. 상냥한 순희와 수줍은 듯한 노훈의 음성, 그들의 움직임에 따른 일상적인 소리들.
순희: 여기 앉아.어떻게 길을 잘 찾아왔네?
노훈: ( 수줍은 듯 작게 웃는다.)
순희: 새로 전학 간 학교는 어떠니?
노훈: 선생님이랑 친구들도 대체로 친절하고,
점자컴퓨터랑 개인사물함이 교실에 있어서 좋아요.(약간 시무룩하게) 그런데...
순희: 그런데?
노훈: 학원이랑 너무 멀어요.
화요일하구 목요일, 이제 학원을 두 번밖에 올 수 없잖아요.
순희: 오고싶은 기다림이 깊어질 수록 노훈이가 학원에서 더 큰 걸 얻어 가겠지. 그런데, 노훈이는 학원오는 게 그렇게도 좋으니?
노훈: 힛...(옅은 웃음 소리)
순희: (노훈의 영어카세트를 본 듯) 노훈이, 요즘에도 영어 공부 열심히 하는구나?
노훈: ( 쑥스러운 듯) 네.
순희: 이를 어째, 여행가면 선생님이 노훈이를 안내해주며 구경시켜 줄려구 했는데, 영어 잘하는 우리 노훈이가 선생님을 안내해주게 생기겠는걸?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어? 혜주 왔구나?
씬9. 차가 많이 다니는 도로변- 오후
노훈, 맹인용 지팡이로 땅을 더듬으며 걷고 있다. 얼굴에 화색이 가득하다. 그리고 신나게 영어로 혼잣말을 한다. 여전히 차 경적소리와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소리.
(타이프 치듯 올라오는 자막으로 처리 된 노훈의 생각)
그럼 영광이죠.
선생님과 유럽배냥여행을 가는 날은 그곳에서의 모든 일은 제게 맡기시라구요. 선생님은 그냥 제 옆에 가만히 있어 주시기만하면 되요.
(노훈 기분 좋은 듯 고개를 쳐들며 미소를 짓는다.)
아, 그런데 홍순희 선생님에게선 어찌 그리 달콤한 향기가 나는 건가요?
씬10. 맹아원 기숙사 입구- 저녁
노훈 문을 더듬으며 입구를 통과하고 있을 때, 기웅과 현범이 짓굿은 표정을하며 웃고 있다. 노훈이 걸려 넘어지도록 긴 줄을 들고 양쪽에서 쪼그리고 앉아있는 모습. 노훈, 그 줄까지 가려는 찰라 기숙사 사감이 둘의 머리에 꿀밤을 주며,
사감: 요놈들 또 장난질이니?
노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인서트)
벽 안내판에 붙은 검은 점자 글씨
8월 29~31일까지 한빛 고적답사 가는 이 이기웅, 김노훈, 박성빈, 구현범, 이희승
씬11. 교실- 영어수업시간
선생님: What are you gonna be in the future?
희승: I don't know
기웅: (생각하는 듯 하다가) I don't know too.
성빈: I wanna be a 안마사 (성빈의 말에 반 아이들 웃는다.)
현범: I wanna be a 안마사 too ( 아이들 또 까르르 웃는다.)
노훈: I wanna be a doctor someday
노훈의 말에 반 아이들 어리둥절해 하기도하고 웅성거리기도 한다.
성빈:( 노훈에게 귓속말로) 맹인은 의사가 될 수 없어.
기웅: 비웃듯 코웃음을 한번 친다.
선생님: (진지하게)I hope you will have your wish
노훈: ( 자신감있는 미소.)
씬 12. 헬런켈러 학원으로 가는 거리- 오후
노훈: (역시 타이프치듯 올라오는 자막)
마음도 천사같이 이쁘시고, 목소리도 꾀꼬리 같이 이쁘신데,
왜 선생님은 결혼을 안하시는 걸까?
선생님, 기다림이 깊어질 수록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다구요?
그럼, 십 삼년만 기다려주세요.
멋진 의사가 되어서 선생님께 꼭 프로포즈를 할게요.
씬13. 헬런켈러 학원-오후
역시 맹인의 눈으로 바라보 듯 검은 화면과 빛으로 카메라 처리.
노훈: 어떻게 그런 사람이 세상에 있을 수가 있나요?
선생님이 얼마나 천사같이 고우신데...
순희: (웃으며) 남자들이 다 노훈이처럼 봐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 (사이) 그러고보니 사고 전엔...그 사람도 그런 말을 했었구나.
(사이) 천사같이 곱다고...
노훈: 사고요? 선생님 어디 아프세요? 헤헤 하나도 안아픈 거 같은데...
하여튼 그러면 뭐해요?
아픈 홍순희 선생님을 혼자 두고 다른 여자랑 결혼해 버렸는데...
그 사람, 지금 제 앞에 있었으면 벌써 이빨 열 개는 하나 부러졌다구요.
순희: (사이) 그 사람이 아니더라도...눈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랬을거야. 나 자신도 장담할 수 없으니까.
씬14.기숙사 앞-오후
노훈 기숙사 입구 앞에 들어서자, 현범, 노훈이냐?고 묻고 노훈 현범이구나하며 반긴다. 현범의 뒤에 기웅이 물 한바가지를 들고 짓굿은 표정을 하고 서 있다. 한 손으로 복도와 복도 사이에 노훈이 도착했음을 감지할 수 있는 실을 만지며 노훈이 어서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노훈, 실 앞에 다다르고 실이 가볍게 떨리자 기웅, 노훈을 향해 힘차게 물을 퍼붓는다. 그 때 누군가 기숙사 방문을 열고 나와 물더미는 노훈이 아닌 기숙사를 나오던 여자 아이와 국화방 안에 가득 쏟아져 버린다.
기웅 노훈에게 던진 줄 알고 신나게 키득키득 웃고 있는데, 주변 아이들이 소리를 지른다.
여자아이: (물이 범벅이 되어 운다)
아이들의 비명으로 어순선한 분위기. 조금의 시간경과.
사감:( 여자 아이의 울음 소리를 듣고 달려 와 다황스러워하며) 무슨 일이니?
아이1.제가 그랬어요? 기웅이 말예요.
아이2: 맞아요. 아까 기웅이가 화장실에서 물을 한가득 퍼갔어요.
사감:(무서운 표정, 무서운 목소리) 정말이야?
기웅: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아니야 내가 안그랬어.
아이1: 너 지난 번에도 민들레 반 앞에서 주희한테 물벼락 주었었잖아?
노훈: 저기 선생님, 기웅이 한테 제가 물을 좀 달라고 해놓고 자리를 옮겨서 그만...
씬15. 기숙사 식당- 저녁
기웅, 밥은 먹지 않고 온갖 짜증스런 표정을 하고 있다.
노훈 밥 숟가락에 밥과 시금치를 한가득 올려 우물우물 씹는다.
입 주변에 밥풀 몇 개를 붙여진 노훈. 다 씹고 나선 기웅에게
노훈: 들어 줄거야? 말거야?
씬16. 거리
노훈과 기웅 둘 다 맹인용 지팡이를 땅에 짚으며 길을 가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흘깃흘깃 그들을 쳐다보기도 하고, 피해가기도 하고,
손가락으로 가르키기도 하고, 불쌍하다고 중얼거리는 중년여성의 음성도 들린다. 기웅 내내 불만스러운 표정이다.
씬.17 동장소-회상
순희: 하하 사랑?
음...소박한 야생화가 좋더라.
이름모를 야생화 한송이를 들고와 너를 영영히 사랑하겠노라고
고백해주는 남자가 있다면 다시 사랑을 시작할 수 있을까?
씬18. 꽃집
꽃집여자: 야생화를 무슨 이런 꽃집에서 찾니? 야생화는 깊은 산 속에서 스스로 피는 꽃을 말하는 거야. 차라리 여기 색을 입힌 국화가 예쁠텐데...파란색, 보라색, 주왕색 뭐 색깔별로 종류는 다양하게 있으니까 이 중에서 하나 해.
그 때 꽃에 앉아있던 벌 한마리가 날아 올라 소리를 내며 노훈의 귀와 목주변을 맴돈다. 노훈 기겁하는 표정을 지으며, 뒤로 물러서다가 화분에 발이 걸려 여러 종류의 색을 입힌 국화꽃 더미 위로 넘어진다.
씬19. 전철역 안-오후
노훈: 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벌이야.
어렸을 때 할아버지 따라 산에 갔다가 벌이 내 코 위에 앉는 거야.
너무 놀라서 손으로 휘젖다가 그 때 발을 잘못 내디뎌서 벼랑에서
떨어졌었거든.
기웅: 야 이 새끼야. 무서워해도 작작 무서워해야지. 하필이면 꽃 더미에 넘어질 게 뭐냐? 아유, 이 새끼 때문에 쪽팔려 죽는 줄 알았네. 너 말 믿고 따라온 내가 등신이지 등신.
노훈: (게이치 않은 듯 씽긋 웃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 맞다! 캠프 때 소백산 간다고 했지? 그럼 야생화가 있게다. 그치?
기웅: 아유, 이 자식 못 말리리는 자식이네.( 라고 웃으며 노훈의 옷깃을 흔드는데,기웅의 발이 전철 벼랑으로 가까스럽게 떼였다 놓였다 한다.
전철이 큰 경적 소리를 내며 달려온다. 주위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들린다.)
씬 20 양호실- 저녁
기웅 얼굴 클로즈업. 기웅, 이마에 긁힌 상처, 멍청한 얼굴로 가만히 앉아 있다가 이따금씩 딱꾹질을 한다.
사감: (기웅에게 꿀밤을 한 대 먹이며) 그러게 전철역에서 왜 장난을 치니?
기웅: (꿀밤을 맞고 아픈 듯 인상을 찡그리며 머리를 부비다가 이내 노훈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양호 선생님이 침대에 누워 자고 있는 노훈의 얼굴을 젖은 수건으로 닦고 있다.
양호선생: 많이 놀랐나봐요.
사감: (노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러게 말예요. 밑에 빠진 놈은 멀쩡한데, 기절은 옆에 성한 놈이 하고.. 저 놈도 옆에있던 청년이 빨리 안 끄집어냈으면... 아유,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요.(기웅보며) 야, 니놈 때문에 나 짤릴 뻔 했어.
기웅:( 울상이 된 얼굴. 다시 딱꾹질을 한다.)
씬21. 화회마을- 답사 첫날 오전
다섯 명의 맹인 아이들이 각자 한 사람 씩 일대일 자원봉사자와 손을 잡고 S자로 굽은 큰 나무 앞에 서 있다. 계량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40대 중반 즈음의 여자 인솔자가 부채를 부치며 특유의 안동 사투리가 있는 말투로 빠르게 설명을 한다.
인솔자: 자, 화회마을은 낙동강이 태극모양으로 돌아 흐른다 하여 하회라 하구요, 중요민속자료 제 122호로 지정되어 있는 하회마을은 마을 전체가 문화재라 할 수 있습니다. 산과 강으로 둘러싸여 외침을 한 번도 겪지 않아 상류층 기와집으로 부터 민가의 초가 토담집에 이르기까지 전통고가와 민속이 잘 보존되어 있는 것입니다~여러분이 그냥 말로만 들으면 잘 모르니까 자 지금부터 저를 따라오면서 제 설명을 듣는 족족 다 손으로 한번 만져들 보세요.
성격이 급한 듯하나 인심이 좋아보이는 인솔 아줌마를 따라 다섯 명의 맹인 아이들은 기와집을 만져보기도 하고 거칠거칠한 토담을 만져보기도 하며 신기해하고 좋아한다.
씬22. 하회 별신 굿 탈놀이 광장- 답사 첫날 오후
맹인 아이들 소리를 들으며 흥에 겨워 흥분을 하며 어깨를 들썩거린다.
씬23. 안동시립민속박물관-답사 첫날 저녁
일대일 자원봉사자들이 표지판을 보며 열심히 읽어주고 있지만, 자원봉사자도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고 맹인 아이들도 무슨 소리 하나하는 표정이다.옛날 한의원의 모습이 나오고 있다는 자원봉사자의 말을 듣고선 귀가 솔깃한 노훈이 만져보기 위해 손을 내밀지만 매끈한 유리만 만져질 뿐이다. 맹인 아이들 내내 유리 표면만 만지며 알 수 없는 설명을 듣고 있다. 주위 사람들 신기하게 또는 불쌍한 시선을 보내온다.
저 멀리 기웅 다리 아프다고 짜증을 내며 자원봉사자를 괴롭히고 있다.
씬24. 박물관 앞 기념품 가게- 첫날 저녁
노훈: (파란색 모래가 담긴 모래시계 열쇠고리를 들며)이거 다른 색도 있나요?
씬24. 물놀이- 어스름한 저녁
팬티만 입은 맹인 아이들 무릎까지 오는 계곡 안에 들어 가 물놀이를 한다.눈이 보이지 않아 서로 다른 방향으로 물을 튕기고 있다는 걸 모르고 마냥 즐거워 한다
씬25. 여관- 첫날 저녁 밤
무리가 모여서 고백 점프를 하는데, 노훈, 이불을 엉덩이까지 덮고 점자 노트북에 무언가를 열심히 치고 있다. 자원봉사자 중 한 명이 노훈아, 빨리 와라고 재촉하는데도 노훈, 아랑곳하지 않고 노트북에 자판을 두드린다.
씬25. 여관- 밤
자원봉사자들과 맹인 아이들의 자는 평온한 모습
씬26. 소백산 천문대 근처- 둘쨋날 오전
담임선생님: 자, 여기서 부터는 우리가 직접 걸어서 올라가야해요.
모두들 갈 수 있죠?
맹인아이들: (즐겁고 힘찬 목소리로) 네!
담임선생님: 바닥에 돌이랑 계단이 많아서 자원봉사 선생님 말씀을 귀 기울여서 듣고 따라와야 합니다 알았지요?
맹인아이들: (여전히 힘차게) 네!
담임선생님: 한기웅 알았니?
기 웅: (자원봉사자를 팔꿈치로 밀어재치며 짜증난 얼굴)
맹인 아이들 자원봉사자들과 둘 씩 짝을 지어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산을 올라 간다.
씬27. 제 일 연화봉 정상 즈음- 둘쨋날 오전
자원봉사자: 노훈이 힘들지 않니?
노훈: (숨을 헉헉거리며) 아뇨 괜찮아요. 근데, 혹시 여기 야생화가 있나요?
자원봉사자: 하하 자, 노훈이 고개를 약간만 오른 쪽으로 돌리면 금낭화, 제비붓꽃, 황새꽃 이야~ 소백산 정상에 꽃이 이렇게 많은 줄 네가 물어서 알았네. 네 왼쪽에는 키작은 나무들이 오른쪽에는 여러 종류의 야생화들이 누가 제일 이뿐가 내기하면서 만발하게 피어있는 걸?
노훈:어떤 정말요? 야생화가 만발해 있어요?
자원봉사자: 근데, 칠월 달인데, 아직까지 들나리가 피어있구나.
원래 오 육월에 피는 꽃인데 변하지 않는 사랑이란 꽃말이 좋아
내가 좋아하는 꽃이거든.
노훈:(솔깃해서) 정말요?
연화봉에 다 도착한 팀들이 노훈과 자원봉사자의 이름을 부른다.
자원봉사자 뭐라구요? 하면 위에서 뭐라뭐라 말을 하는데 잘들리지 않아 자원봉사자 조금 위로 올라가서 다시 뭐라구요? 한다.
씬28. 동장소- 둘쨋날 오전
노훈 들나리를 꺽기 위해 꽃을 손으로 더듬는다.
노훈 발게진 이마에 땀이 맺혀있다.
꽃 줄기를 잡고 힘을 들여 꺽으려 하는데 잘 안된다.
어디서 벌 한 마리가 소리 없이 날아 와 노훈의 귀 주변을 맴돈다.
노훈 빨리 꺽으려고 용을 쓰지만 그래도 잘 꺽이지 않는다.
벌이 소리를 크게 내며 노훈의 코와 입 눈 주변을 맴돌아 노훈이 손을 휘젓는다.
벌 가지않고 벌 소리 점점 더 커지고 노훈 발을 동동 구르면서 양손으로 벌을 쫓는다. 노훈의 발끝이 벼랑 사이에서 허둥거리고 있다.
씬29 제 일연화 봉- 둘쨋날 오전
위에서 노훈아~하는 비명 소리가 들리고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아래로 쏠린다. 맹인 아이들, 어리둥절하면서도 공포스러운 얼굴.
씬30. 헬런켈러 학원
노훈의 담임이 복도를 뚜벅뚜벅 걸어 간다. 또박또박 들리는 구두소리.
씬31. 헬런켈러 학원 사무실
담임은 탁자를 사이에 둔 소파에 조심스럽게 앉는다. 카메라 두 사람의 몸동작과 손의 움직임에 촛점.
담임: 그리고, 이것도...(상자의 뚜겅을 열자, 아래에 솜을 깐 꽃 상자에 들나리 한송이와 편지가 놓여 있다.)
순희: ......
씬 32. 헬런켈러 사무실
순희 책상 앞에 앉아 새하얀 편짓지를 조심스럽게 펼친다.
책상 위에는 들나리 상자가 놓여져 있다. 생기있는 노훈의 목소리.
선생님, 여기가 어딘 줄 아세요?
소백산 산장이예요.
선생님과 같이 왔으면 더욱 좋았을 텐데...
배낭여행 가면 제가 정말 재밌게 해드릴게요.
참, 저 모래시계 열쇠고리 샀어요.
아주 오랜 동안 기다려 작은 구멍을 통과하는 모래들처럼
선생님도 오랜 기다림 속에 배필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그 기다림의 시간은 정작 십 삼년이랍니다.
내일은 소백산 제 일 연화봉을 가요.
선생님, 음음, 기대하십시오.
왜냐구요?
하하하 지금은 비밀이랍니다.
편짓지 아래로 굵은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진다.
카메라 편짓지를 보고있는 순희의 옆얼굴 클로즈업. 흉직한 화상을 입은 순희의 옆얼굴
타이틀 음악 흐르며 들나리 클로즈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