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성씨의 대성 김씨왕조
한국국학진흥원원 자문위원 김윤호
김 씨는 우리나라 성씨 중에서도 가장 인구를 많이 가진 대성으로 문헌상의 기록을 보면 「조선 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 623본,「중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499본,「동국만성보(東國萬姓譜)」에는 120본으로 나타나 있으나,「신라김씨 왕손록(新羅金氏 王孫錄)」에는 586본으로 자세히 기록되어 있고 가락김씨(김해)에도 7본이 있다.
이들 여러 김씨는 가락국(駕洛國) 수로왕(首露王) 계통과 신라(新羅)의 알지(閼智) 계통으로 대별되며, 현존하는 김씨는 거의 모든 김 씨가 이 계통 중 어느 한쪽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1. 가락김씨(김해김씨)
가락국(駕洛國) 원조로 전해오는 수로왕(首露王)은 삼국유사(三國遺事)와 가락국기(駕洛國記)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가락국(駕洛國)에는 아도간을 비롯한 아홉 명의 촌장이 있어 서기 42년(후한 건무18)에 이들 9간 들이 구지 봉에 올라 가락을 통솔할 군왕을 얻고자 하늘을 향해 의식을 거행하였더니 마침내 하늘에서 여섯 개의 황금 알을 담은 금함이 내려와 이튿날 여섯 알이 동자로 화하여 그 중 제일 먼저 나온 수로(首露)를 가락(駕洛:본가야)의 왕으로 삼고 나머지 다섯 동자도 각기 5가야의 수장으로 삼았다고 전한다.
수로왕의 후손에는 김해김씨(金海金氏)와 허씨(許氏) 및 인천이씨(仁川李氏), 함창이씨(咸昌李氏) 등이 있고 진주김씨(進州金氏), 수원김씨(水原金氏), 영동김씨(永東金氏)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동성동본으로 근원이 다른 김해김씨가 있는데 신라 경순왕의 8세손 시흥(時興:김녕군)의 후손인 김녕 김씨(金寧金氏)와 임진왜란 때 좌선봉장으로 왜병 3천 명을 이끌고 왔다가 우리나라에 귀화하여 김해김씨로 사성된 김 충선(金忠善:본명 사야가)의 후손으로 현재 사성 김해김씨가 있다.
김녕김씨는 처음에 김해김씨와 혼동되어 선김 후김으로 사용해 오다가 조선 고종 때 와서 김녕김씨(金寧金氏)로 확정되었다.
2. 신라김씨(新羅金氏)
신라(新羅)의 알지(閼智) 계통은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기록을 보면 서기 65년(신라 脫解王 9) 경주(慶州) 시림(始林) 나뭇가지에 걸려있던 금궤(金櫃)에서 태어났으며 탈해왕(脫解王)이 「하늘에서 내려준 아들」이라 하고 금궤(金櫃)에서 나왔다하여 성을 김(金)으로 사성(賜姓)했다고 전한다.
신라의 왕계를 보면 역대 56왕 중 김씨가 38명이고, 석씨가 7명 박씨가 11명으로 최초의 김씨왕은 신라 제13대 미추왕(味鄒王)으로 알지(閼智)의 7세손이 이며 마지막왕인 56대 경순왕이 고려 태조 왕건에게 손양(遜讓)했다
알지계는 신라, 고려, 조선시대를 거쳐 오면서 무려 600여 관향으로 분적 되었으나 그중 뚜렷이 현존하는 본관은 586본으로『신라김씨 왕손록』에 기록되어있고, 이중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敬順王)의 후손들이 가장 많다.
격순왕에게는 아들 아홉 명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넷째 아들인 은열(殷說)의 후손이 가장 번창하여 구안동(舊安東, 청풍(淸風), 깅녕(金寧), 도강(道康), 전주(全州), 양근(楊根), 영광(靈光), 안산(安山), 김씨 등이 모두 은열(殷說)의 후손으로 전해지며, 이밖에 선산(善山), 의성(義城), 언양(彦陽), 울산(蔚山), 나주(羅州), 상산(商山), 안로(安老), 연안(延安), 순천(順天), 고령(高靈), 등 이이며 다음이 신라 45대 신무왕(神武王)의 4형제 중 첫째는 경응(慶膺)으로 46대왕이고, 둘째는 영공(英光)으로 당진,도광(唐津,道光), 셋째는 흥광(興光)으로 광산(光山), 넷째는 익광(益光)의 후손 김영이를 관조로한 영산(永山)씨로 알지의 후손으로 전해진다.
그 외에 신안동김씨(新安東金氏)로 신라 말에 고창군(안동의 고호)의 성주였던 김선평(金宣平)을 시조로 서기 930년 (고려 태조 13년)에, 權幸(안동권씨 시조)와, 張吉(안동장씨 시조) 등이 함께 후백제의 견훤군을 격파하여 고려 태조로부터 개국공신에 녹훈되고 벼슬이 태광태사에 이르러 후손들은 조선 말기에 세도가문으로 금관자가 서말이라 할 만큼 세도가문이었다.
또한 알지계에서 타성으로 갈려 나간 후손으로는 김행이 안동권씨로, 김순식은 강릉왕씨로, 궁예의 후손 순백은 광산이씨로, 헌안왕자의 후손 세광은 감천문씨로, 른열의 13세손 영규는 수성최씨로 각각 개성하였다.
이렇게 역사의 흐름 속에서 명문거족으로 가문의 번성을 이룩하여 온 범 김씨는 많은 명신 대유 석학을 배출시켜 나라에 공헌하고 명문의 긍지를 심어 신라와 근대를 잇는 역사적인 사건 속에 김 씨들의 입김이 닿지 않는 일들이 없을 정도로 훌륭한 업적을 많이 남겼다.
특히 국운이 기울어져가는 구한말에 죽음으로써 나라와 가문의 기백을 지킨인물 들과 일본의 압제정치 속에서 독립운동으로 민족의 자립정신과 굳건한 투혼을 불살라온 독립투사들의 거룩한 발자취는 가문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현대에 와서도 많은 김 씨들이 조국의 발전과 가문의 번영을 위하여 명문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