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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후기 스크랩 서남해 먼 바다의 우이도와 비금도 여행 ③ : 비금도 그림산과 선왕산
갈하늘 추천 0 조회 136 14.06.16 05:51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비금도(飛禽島) 선왕산(仙王山, 255m)-그림산(226m)

 

산행일 : ‘14. 5. 6()

소재지 : 전남 신안군 비금면

산행코스 : 상암마을 주차장99.9그림산죽치우실전망대선왕산갈림길왼편능선하누넘해수욕장(산행시간 : 3시간20)

함께한 산악회 : 정산악회

 

특징 : 비금도의 서쪽에 커다란 산줄기를 형성하고 있는 선왕산과 그림산은 암봉이 수려(秀麗)한 산이다. 거기다 다도해(多島海)의 조망(眺望)까지 뛰어나서 섬 산행의 참 맛을 느낄 수 있다. 두 산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 가시덤불만 무성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을 신안군에서 위험한 곳에 밧줄과 철봉, 그리고 계단 등을 설치한 후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지금은 주말마다 수많은 내륙(內陸)사람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고 한다. 아무튼 울퉁불퉁한 근육질로 이루어진 산은 유명세(有名稅)를 타고 있는 내륙의 바위산들에 비해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산행들머리는 그림산 입구(상암마을) 주차장

선왕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먼저 비금도에 와야만 한다. 그 방법은 목포에서 여객선을 타고 들어오는 방법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도초선착장에서 내려 택시를 이용해서 상암마을까지 왔다. 어제 저녁을 묵었던 우이도에서 탄 여객선이 도초선착장에다 우리들을 내려놓은 것이 그 이유이고, 또한 도초도와 비금도가 이미 서남문대교(大橋)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해진 일이다. 참고로 도초항에서 산행이 시작되는 상암마을까지는 택시로 5분이 채 되지 않은 거리이다. 상암마을로 가는 길가에 막 비상하려는 매의 조형물(造形物)이 세워져 있는 것이 보인다. 택시기사분의 말이 이곳 비금도를 표현하는 조형물이란다. ‘비금도(飛禽島)’라는 지명이 섬 형상이 마치 날아가는 새를 닮았다 해서 붙여졌다는 것이다. 참고로 섬에는 금이 세 개가 있다고 한다. 바로 소금의 금, 그리고 시금치의 금과 비금도의 금이란다. 그러나 비금도를 대표하는 그 금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염전(鹽田)일과 시금치농사 등 사철 내내 쉴 틈이 없이 일을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들머리인 그림산 입구(상암마을) 주차장에는 널따란 주차장 외에도 쉼터와 간이화장실까지 갖추고 있다. 그만큼 이 지역 행정관청이 이 산에다 정성을 들이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주차장 뒤편의 산자락으로 올라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들머리에 등산로 입구(入口)’라고 쓰인 이정표가 세워져 있으니 별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산으로 오르는 길가에는 벤치(bench)가 놓여있다. 위에서 주차장을 설명할 때 얘기했던 대로 이 산에 쏟아 붓고 있는 정성들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만드는 정경이다. 벤치에서 몇 걸음만 더 걸으면 첫 번째 봉우리인 99봉에 올라서게 된다. 99봉에서 처음으로 시야가 열리면서 그림산의 전경(全景)이 눈에 들어온다. 마치 영암의 월출산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풍경이다.

 

 

 

 

99봉에서 완만(緩慢)한 능선을 따라 잠시 걸으면 아찔한 바위 절벽(絶壁)이 앞을 가로막는다. 도무지 올라갈 수 없을 것 같은 바위절벽에도 길은 나있다. 비록 그게 자연적으로 난 길이 아니라 인위적(人爲的)으로 만든 길이지만 말이다. 바위벼랑에 철계단을 설치해 위로 오를 수 있도록 해 놓은 것이다. 길게 놓인 철계단을 밟고 올라가면 그에 따라 고도감(高度感)이 쭉쭉 올라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계단의 경사(傾斜)가 그만큼 가파르다는 의미일 것이다.

 

 

 

계단이 끝나면 바위벼랑 위이다. 이곳이 첫 번째로 만나게 되는 전망대로 뛰어난 조망(眺望)을 자랑하는 곳이다.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보면 발아래에 맑은 코발트빛의 저수지가 예쁘장하게 빛나고 그 뒤에는 널따란 들녘이 끝없이 펼쳐지고 있다. 저 논밭들이 현재 비금도가 고소득을 올리는데 효자노릇을 단단히 하고 있다고 한다. 비금도(飛禽島)는 큰 새가 날아가는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한때는 비금도(飛金島)라고 불리기도 했다. 염전(鹽田)이 호황을 누리던 시절에 돈이 날아다닐 정도로 돈이 흔했던 탓이다. 그러나 지금은 소금 대신에 시금치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고 한다. 해풍(海風)을 맞고 자란 이곳의 시금치는 섬초라는 별도의 이름을 갖고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그 덕분에 주민소득을 올리는데 일익을 담당할 수 있었고, 그 효자노릇을 가상하게 여긴 이 지방 사람들이 시금치를 금초(金草)라 부르기도 한단다.

 

 

 

일단 바위 위로 오르면 널찍한 바위지대가 나타나면서 어려운 길은 끝난다. 그렇다고 해서 바윗길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바윗길이지만 굳이 안전시설(安全施設)의 도움 없이도 오를 수 있을 만큼 경사(傾斜)가 가파르지 않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저 좌우(左右)로 펼쳐지는 비경(秘境)들을 감상하며 아기자기한 바윗길을 느긋이 걷기만 하면 된다. 능선을 오르다 고개라도 잠깐 돌리면 비금도의 간척지(干拓地)들이 끝없이 펼쳐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오늘날의 비금도는 총 25차례의 간척사업으로 만들어진 섬이다. 때문에 비금도에는 또는 ()’로 끝나는 지명이 수없이 많다고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간척지는 대부분 염전(鹽田)이나 밭으로 탈바꿈했다. 그리고 그 염전과 밭에서 나는 작물이 이곳 비금도의 특산품(特産品)이 되었다. 천일염(天日鹽)과 시금치가 바로 그것이다. 비금도는 호남지역에서 가장 먼저 천일염을 시작한 곳으로, ‘우리나라 천일염의 메카(Mecca)’라 부를 만큼 천일염 생산 역사가 길다. 광복 직후인 1948년 비금도에 사는 450여 가구가 대동염전조합을 결성하여 100ha가 넘는 광활한 염전을 조성했다고 한다. 당시 보리개떡과 나물죽으로 연명하면서 염전 조성작업을 했다는 얘기는 후일담(後日譚)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또 하나의 특산물인 시금치는 섬초라는 별도의 이름을 만들어 낼 정도로 유명하다. 비금도 시금치인 섬초는 재래종이라서 다른 곳에서 재배되는 시금치보다 한참 작다. 그리고 한겨울 추위 속에서 바닷바람과 눈서리를 견디느라 땅바닥에 붙어서 자라느라 잎이 옆으로 퍼져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성장 환경 때문에 잎이 두꺼워져 삶아도 씹는 맛이 좋고, 또한 게르마늄(Germanium) 성분이 함유(含有)된 개펄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자란 탓에 신선도(神仙圖)가 오래 유지되고 당도(糖度)가 높다. 그래서 누군가 비금도에 들어갈 때에는 승용차를 가지고 가는 것이 좋다고 했다. 특산품들을 가득 싣고 오려면 자동차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림산의 표고(標高 : 226m)만 보면 누구나 만만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오산이었음을 알아차리는 데는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가파른 철계단이 계속 나타나는가 하면 아득한 우회(迂廻) 암릉도 나온다. 그리고 닭 벼슬처럼 갈기를 세운 침봉들도 주눅을 들게 만드는데 한몫을 하고 있다. 비록 표고는 낮지만 험난한 것이 결코 쉬운 산이 아닌 것이다.

 

 

 

바윗길을 걷다보면 본체(本體)에서 떨어져 나온 것 같은 바위 하나가 누워 있는 것이 보인다. 그런데 그 모양이 한반도(韓半島)를 닮았다. 아니나 다를까 바위 옆에 우리나라 지도라는 이름표를 세워놓았다. 그 작명(作名)이 약간은 인위적(人爲的)으로 보이지만 어떠랴, 이렇게 아름다운 산하(山河)에서 그 정도의 너스레 정도야 얼마든지 받아줄 수 있지 않겠는가.

 

 

 

한반도를 닮은 바위에서 조금 더 진행하면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이정표에 흙길과 계단길로 구분을 해 놓았다. 절벽(絶壁)의 왼쪽 사면(斜面)으로 놓인 계단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은 이곳에서 오른편(흙길)로 우회(迂廻)해서 정상으로 오르면 된다. 그러나 구태여 흙길을 이용해서 올라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계단이 견고(堅固)하게 설치되어 있는 탓에 위험하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기 때문이다. 나 역시 왼편 계단길 방향의 능선으로 향했음은 물론이다.

 

 

갈림길에서 몇 걸음 더 올라가면 또 다시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왼편은 계단길, 오른편으로 가면 해산굴을 통과하여 정상으로 오르게 된다. 앞서가던 집사람이 뒤를 한번 돌아보더니만 내 의사를 물어보지도 않고 냉큼 해산굴 방향으로 들어서버린다. 새로운 도전이 그녀의 마음을 설레게 했나보다. 그러나 그 도전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냥 돌아갈까 봐앞에서 오르고 있던 아주머니 한분이 거의 울상이다. 막상 해산굴(解産窟) 앞에 서니 통과하기가 난감했던 모양이다. 해산굴의 입구는 꽤나 넓다. 그러나 빠져나갈 구명은 좁다. 거기다 굴()은 거의 수직(垂直)으로 뚫려있기까지 해서 보통의 여자들도 통과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이다. 후덕한 몸매의 아줌마들이 통과하기에는 결코 쉽지 않은 코스인 것이다. 굴을 통과하는데 그런 고통이 따르기에 해산굴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나 보다.

 

 

 

해산굴에서 산고(産苦)의 고통을 겪고 나면 곧이어 그림산 정상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 만에 정상에 도착했다. 그림산 정상은 바위봉우리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준다. 조망(眺望)이 일품인 반면에 그 조망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은 그다지 풍족하지 못한 것이다. 하긴 다른 바위산들의 정상에 비해서는 넓은 편이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다. 정상의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바위가 차지하고 있고, 그 바위 앞에 놓인 통나무 위에 정상표지판이 다소곳이 앉아 있다. 그리고 그 곁에는 망원경(望遠鏡)이 하나. 만일 비금도의 전경(全景)을 보고 싶다면 차례를 기다렸다가 눈을 가져다 대면 될 일이다.

 

 

정상에 서면 기막힌 조망(眺望)이 펼쳐진다. 우선 북동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간척지의 넓은 들판과 바둑판같은 염전(鹽田)이 펼쳐진다. 그리고 조금 더 멀리 시선(視線)을 가져가면 무수한 섬들이 산이 되어 끝없이 늘어섰다. 거기다 구불구불 물 흐르는 데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갯고랑, 그 풍경은 화가인 어머님 친구분께서 그렸다는 어머님 댁 거실에 걸려있는 유화(油畵)를 쏙 빼다 박았다. 물론 그림에는 없는 풍경(風景)도 담겨있다. 풍력발전기가 거대한 바람개비 모양으로 돌고 있는 풍경 말이다. 눈을 돌려 지나온 능선을 돌아본다. 내 뒤를 따라온 길이 이미 추억 속의 옛길로 변해있다. 그리고 앞으로 가야할 선왕산 방향에는 넘어야 할 암봉들이 12폭 병풍처럼 화려하게 펼쳐진다. 한마디로 보는 것마다 그림이다. 왜 그림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는지 실감이 나는 순간이다. ‘한 폭의 그림을 펼쳐 놓은 듯.’하다고 해서 붙여졌다는 그림산의 이름말이다.

 

 

그림산 정상에서 선왕산 방향으로 바윗길을 잠깐 내려서면 안부에서 아까 헤어졌던 흙길과 다시 만나게 되고, 이어서 산길은 진행방향에 보이는 바위봉우리로 향한다. 그런데 이 봉우리가 보는 것만으로도 주눅이 들 정도로 아찔하게 서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대체로 길이 잘 나있고 맨 위의 바위봉우리는 아예 오른쪽으로 우회(迂廻)를 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조금이라도 위험한 곳에는 철계단과 철난간 등 안전시설을 만들어 놓았음은 물론이다.

 

 

 

 

바위봉우리로 올라서서 한숨을 돌릴라치면 진행방향에 또 다른 바위봉우리가 시야(視野)에 들어온다. 오르내리는 바윗길이 만만치 않게 보인다. 그러나 친절하게도 바윗길 중간 중간에 고정로프나 철계단을 만들어 놓아 거대한 바위들이 널린 바윗길을 오르내리는데도 험하다는 인상을 받을 겨를이 없다. 대신 주변 풍광(風光)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이런 길에서는 걸음을 재촉하기보다는 눈의 호사(豪奢)를 누려보는 게 좋을 것이다. 마음이 이보다 더 경쾌할 수 없다. 섬 산행의 진수를 맛보는 듯하다.

 

 

두 번째 바위봉우리를 지나면 산길은 길고 깊게 고도(高度)를 낮춘다. 그리고 가파른데다 험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막상 들어서고 보면 생각보다는 수월하다. 조금만 험하다싶으면 어김없이 계단이나 난간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봉우리에서 내려서면 다음에 나타나는 바위봉은 차라리 귀여울 정도이다. 아마 그동안 지나온 암봉들에 비해 왜소(矮小)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마지막 바위봉을 내려서면 푸른 대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 작은 안부에 내려서게 된다. 이어서 나무가 없는 민둥산에 올라서게 된다. 아마 지도(地圖)에 전망대(展望臺)로 표기된 곳이 아닐까 싶다. 능선을 걷다보면 어느 곳 하나 전망대가 아닌 곳이 없겠지만 시야(視野)가 사방으로 터지는 이곳에서의 조망(眺望)은 가히 일품이기 때문이다. 마침 벤치(bench)까지 갖추고 있으니 잠시 쉬면서 조망을 즐겨보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지나온 그림산과 가야할 선왕산의 우람한 암릉들을 바라보는 기쁨을 한껏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조망을 즐기면서 만둥산을 내려서면 비금도 주민들이 옆 동네를 오갈 때 넘나들었다는 죽치우실에 닿는다. 왼편 대나무 숲 사이로 죽치마을로 내려가는 하산길이 보인다. 선왕산 정상에서 40분 조금 못되는 지점이다. 우실이란 다도해(多島海)의 생활문화가 담긴 석성(石城) 같은 돌담을 일컫는다. 즉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해풍(海風)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산등성이에 쌓은 돌담이다. 돌아오는 길에 안내를 맡았던 택시기사분의 말로는 바람이 셀 때 서쪽바다로부터 날려 오는 바닷물을 막기 위해 쌓았다고 했다. 아무튼 바람이나 바닷물로부터 농작물(農作物)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수행한 것은 분명하다. 또한 풍수적(風水的)으로는 마을의 약한 부분을 보호해 주기도 하고, 마을의 안과 밖을 구분해주는 경계선 노릇도 하고 있단다.

 

 

 

죽치마을 갈림길에서 오른편으로 돌아 조금만 더 걸으면 또 하나의 우실(돌담)을 만나게 되고, 이어서 나타나는 완만한 오름길을 10분 남짓 오르면 조망 좋은 바위지대로 올라서게 된다. 이제 주능선의 절경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당찬 산세(山勢)와 넉넉한 조망(眺望)이 육지의 명산들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 뒤를 돌아보면 지나온 그림산의 전경이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지고, 시선을 앞으로 돌리면 비금도 서쪽 해안의 비경(秘境)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섬 산행의 풍경이 다 비슷하지 않을까 싶지만 결코 그렇지가 않다. 바라보는 각도(角度)를 달리할 때마다 새로운 구도로 잡히는 풍경들이 지루해 할 틈을 주지 않는 것이다.

 

 

 

능선을 걷다보면 바위로 이루어진 오른편 능선에 유난히도 뽈록하게 솟아오른 선돌(立石) 두 개가 보인다. ‘어머니가 아기를 안고 있는 모양같지요?’ 둘 중에 위에 있는 바위를 두고 함께 산행을 하던 일행이 하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부부는 세종대왕이 책을 읽고 있는 형상으로 결론을 내린지 이미 오래다. 역시 사물(事物)은 바라보는 이의 마음자세에 따라 그에 맞는 형상(形象)으로 나타나는가 보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에 안내를 맡았던 택시기사분의 말에 의하면 이 고장에서는 두 개의 바위 모두 남근바위라고 부른다고 했다. 능선아래 서산사가 위치한 계곡이 음기(淫氣)가 가득한 여근곡(女根谷)이란다. 때문에 부족한 양기(陽氣)를 채우려고 솟아오른 남근(男根)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 바위까지는 반들반들하게 길이 나있을 것이다. 아들을 낳고 싶어 하는 부녀자들이 뻔질나게 찾았을 테니까 말이다.

 

 

선왕산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바위절벽은 더 아찔해진다. 그리고 길가에는 기암괴석(奇巖怪石)들이 선을 뵈기 시작한다. 그리고 등대섬 칠발도를 비롯해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비금도 서쪽 해안이 점점 더 또렷해진다. 산행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벌어진 입을 다물 줄을 모른다. 그저 들리는 소리라곤 그들이 내뱉는 감탄사뿐이다. 하긴 계속해서 나타나는 비경(秘境)을 보고도 그런 행태를 보이지 않는다면 차라리 그것이 더 이상할 것이다. 갑자기 막혔던 가슴이 한순간에 확 터진다.

 

 

 

죽치우실에서 50, 그림산 정상을 출발한지 1시간30분 정도가 지나면 무인산불감시탑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선왕산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선왕산 정상은 한마디로 말의 안장처럼 길쭉하게 생겼다. 때문에 정상은 그다지 넓지 못한 편이다. 이를 보완하려는 듯 정상표지석 뒤에다 나무데크로 전망대(展望臺)를 만들어 놓았는데 이게 좀 문제다. 정상표지석을 넣은 인증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전망대가 자꾸 훼방을 놓는 것이다. ‘신안군청 사람들은 말귀를 못 알아들어요.’ 신안군청에다 이에 대한 시정요구를 몇 번이나 했지만 마이동풍(馬耳東風)이었다는 일행의 말마따나. 가능하면 전망데크를 다른 곳으로 조금 이동시켜 주었으면 좋겠다. 참고로 선왕산은 아래 마을에서 보면 산의 선이 왕관처럼 삐쭉삐쭉하게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선왕산 정상은 사방이 탁 터져 있어서 어느 것 하나 거칠 것 없는 일망무제(一望無題)의 조망(眺望)을 보여준다. 그림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물론이고, 좌우로 바닷가 풍경이 시원스럽게 펼쳐지는데 도초도와 우이도, 자은도, 흑산도 등 둥글둥글한 섬들은 차라리 보너스이다. 혹시라도 이러한 풍경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정상석 옆에 있는 망원경(望遠鏡)에 눈을 들이대면 된다. 간척지(干拓地)에서 못자리를 돌보다가 논두렁에 오줌을 갈기고 있는 농부의 뒷모습까지 보일 것이다.

 

 

 

정상에서 100m 더 가면 삼각점(三角點, triangulation point)이 있는 바위 봉우리다. 눈대중으로만 볼 때에는 이곳이 정상석이 있는 봉우리보다 더 높은 것 같다. 그렇다면 왜 엉뚱한 곳에다 정상석을 세워 놓았을까? 그 이유는 삼각점봉에 이르면 금방 수긍이 간다. 터가 좁아 정상의 역할을 수행하기가 어려울 것 같기 때문이다.

 

 

삼각점봉에서 근처에서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오른쪽은 서산저수지로 가는 코스이고, 왼편은 하누넘해수욕장으로 곧장 내려가는 코스이다. 물론 오른쪽으로 가더라도 중간에 하누넘해수욕장으로 내려가는 탈출로가 있으니 만일 바윗길을 조금 더 타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오른편으로 진행하면 된다. 그러나 그 암릉을 눈으로 즐기고 싶을 경우에는 왼편 길이 더 좋다. 내려가다 보면 오른편에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암릉이 마치 성벽(城壁)처럼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발걸음을 재촉할 필요는 없다. 갈림길 근처가 뛰어난 조망처이기 때문이다. 하누넘해수욕장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닐까 싶다. 하누넘해수욕장은 하트해수욕장이라는 또 하나의 이름을 갖고 있다. 가만히 보니 하트()모양을 닮기는 닮았다. 그런데 그 닮은 모양을 발견한 것은 이곳 주민들도 아니고, 그렇다고 먼 곳에서 찾아온 등산객들은 더더욱 아니었다. TV 드라마 봄의 왈츠에서 하트 모양의 해변으로 등장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는 것이다. 드라마가 전파를 타면서 인기를 끌자 현지에서 상업적으로 이용한 것이 거의 고유명사로 고착(固着)이 되어버린 것이다. 여기서 상업적이라 함은 관광객들의 호기심을 끌기 위해 봄의 왈츠촬영지라는 것을 부각시켰다는 의미이다. 하긴 그런 활용은 이곳뿐만이 아닐 것이다. 전국 어디를 가나 드라마나 영화의 촬영지라는 홍보판을 흔하게 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왼편으로 난 길은 능선을 따라 하누넘해수욕장으로 연결된다. 너덜길로 시작되는 내리막 코스는 가파르지만 위험하다거나 내려서기 힘들 정도까지는 아니다. 당연히 주변 풍광을 즐기면서 내려가도 된다는 얘기이다. 마침 이 능선은 어느 지점에서 보더라도 모두 다 하누넘해수욕장이 한눈에 잘 들어오는 뛰어난 전망대이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고개라도 돌릴라치면 서산저수지 쪽으로 이어지는 성벽 같은 암릉이 길게 펼쳐지고 있다.

 

 

 

능선을 따라 얼마간 내려오면 길가에 또 다시 돌담이 나타난다. 그런데 이번 것은 길게 쌓은 것이 아니라 마치 뭔가를 숨기기라도 하려는 듯 둥그렇게 쌓아 놓았다. 아마 아까 갈림길에 세워진 안내판에 적혀있던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의 군사시설(軍事施設)’인 모양이다. 일제(日帝)는 러일전쟁 후에 서해안을 따라 북상하려는 배들을 감시하기 위해 서남해안의 여러 섬들에 포진지(砲陣地)와 참호(塹壕) 등을 설치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아까 선왕산의 정상 근처에서 보았던 돌담도 이와 같은 목적으로 쌓았던 모양이다.

 

 

 

 

 

산행날머리는 하누넘해수욕장

참호(塹壕)터를 지나면 산길은 소나무 숲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 소나무들이 좀 이상하다. 어른의 허리에도 못 미칠 정도로 키가 작은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심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 소나무도 아니다. 꽤나 나이를 먹은 것 같은데도 그렇게 왜소(矮小)한 것이다. 아마 바닷바람의 영향이지 않을까 싶다. 아까 지나왔던 죽치우실에서 보았듯이 해풍(海風)과 바람에 실려 온 바닷물에 시달리다보면 아무리 생명력이 강한 소나무일지라도 제대로 자라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소나무 숲을 빠져나오면 해안도로에 내려서게 되고, 도로를 따라 오른편으로 조금만 더 가면 산행이 종료되는 하누넘해수욕장의 입구가 나온다. 갈림길에서 35분 정도가 걸렸다. 해수욕장에 도착하면 이제는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선착장까지는 택시를 이용해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마침 해수욕장의 방갈로(bungalow) 앞에 쉼터가 조성되어 있으니 쉬면서 차량이 오기를 기다리면 된다. 그리고 방갈로 옆에 수도가 있으니 산행 중 흘린 땀을 씻어도 좋고, 고운 모래가 널따랗게 깔려있는 해변(海邊)을 걸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몸을 맡기고 벤치에 누어서 한 숨 자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참고로 하누넘해수욕장의 하누넘이란 북서쪽에서 하늬바람이 넘어오는 곳이란 뜻이라고 한다. 길이 1km에 폭이 50m(간조 시)인 자그마한 해수욕장이나 천연기념물인 칠발도와 어우러지는 낙조(落照)는 장관(壯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행을 마친 뒤에는 섬을 한 바퀴 돌아보는 기회를 가졌다. 물론 가이드는 택시기사분이다. ‘우리나라 천일염의 메카로 불릴 정도로 역사가 오래된 비금도의 염전(鹽田)섬초라는 고유명사를 새로 만들어낸 비금도의 시금치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으며 돌아보는 비금도는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 특산품들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지난(至難)했던 역사를 듣고 어찌 숙연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의 설명은 그 두 가지에 그치지 않았다. 하긴 어떻게 이 고장이 낳은 세계적인 기사(棋士) 이세돌을 빼놓을 수 있겠는가. 그는 요즘 한창 진행 중은 이세돌 VS 구리10번기를 쭉 꿰고 있을 정도로 이세돌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했다. 어찌 그만의 자부심(自負心)이겠는가 마는.. 아무튼 기사분의 안내에 취하다보면 택시는 어느새 끝이 안보일 정도로 널따란 해수욕장에 도착해 있다. 이웃 원평해수욕장의 모래밭 1.2와 합쳐서 꼭 10리 길이라는 명사십리해수욕장이다. 풍력발전기(風力發電機)라는 또 하나의 볼거리를 갖고 있는 해수욕장의 백사장(白沙場)은 택시가 질주해도 바퀴자국이 잘 나지 않을 정도로 모래가 곱고 단단했다. 때문에 경비행기 활주로로도 활용된다고 한다. 마구 밟아도 잔물결 무늬를 고스란히 간직한 명사십리 모래밭은 마치 넓은 사막을 연상시킬 정도였다. 해변에서 그물에 걸린 고기를 건져 올리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썰물 때 그물을 쳐 두었다가 밀물이 지나간 뒤에 그물에 걸린 고기를 건지는 중이라는 택시기사분의 설명이다. 그리고 지금 고기를 잡고 있는 사람들은 이곳 주민들은 아니란다. 이곳에 놀러온 사람들이 가끔 저렇게 고기를 잡곤 한단다. 물론 그물은 이곳 주민들에게서 빌렸을 것이다. 비록 생선회를 좋아하지 않는 나이지만 저들 속에 섞이고 싶어진다. 옛날 방식으로 고기를 잡고 있는 풍경이 동심(童心)을 자극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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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4.06.16 19:47

    첫댓글 비금도는 홍도에 버금간다는 아름다운 산과 명사십리 해수욕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산행기를 보면서 또 다녀온것 같은 느낌이 듬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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