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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아름역사동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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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아름]대고구려 스크랩 사상 고구려의 태왕과 제후, 시호 제도(사견 포함.)
아름다운 청년 추천 0 조회 219 09.07.15 19:07 댓글 4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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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07.15 22:20

    첫댓글 태왕이란 뜻은 "정계에서 은퇴한 왕"이란 뜻입니다. 사서가 입증합니다.

  • 작성자 09.07.16 13:22

    중원 고구려비나 울진 봉평비, 진흥태왕순수비 등 당대 고구려, 신라 금석문에서는 현역으로 나와 있습니다.^^;

  • 09.07.16 02:18

    근거 사서를 알고 싶군요~

  • 09.07.16 12:49

    저도 궁금합니다. 정계에서 은퇴한 왕이 태왕이라. 이른바 조선시대 上王과 같은 개념이겠군요. 이건 또 처음 듣는 거라서 흥미롭습니다. 어쨌든, 당대 1차 사료인 금석문의 내용과 반대되는 내용인데 관련 사서의 내용을 좀 알려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 09.07.18 06:11

    太王= 왕위에서 물러나, 정치에서 은퇴한 왕, 살아 있을 때 부르는 호칭. 뒤에 '살아 있는' 이란 표현을 붙이는건 좀 어패가 있습니다. 이에 집착할 필요는 없고, 의미전달을 위해 붙인 것 뿐입니다.

  • 09.07.18 06:18

    太王= 왕위에서 물러나, 정치에서 은퇴한 왕을 부르는 호칭. 정도가 적당할 것 같군요. 先王= 앞서 죽은 왕. 이란 개념인데, 서로 의미가 다르죠. 麗輝님 얘기하신 上王이 비슷한 의미같으나, 上王의 정확한 의미는 모르겠습니다.

  • 09.07.18 06:17

    太王 [태왕] 태상왕(太上王) ,한자사전에서는 太上王이라 해 놨으니, 제대로 해 놨군요. 太王와 太上王의 구분은 더 연구해 봐야 할겁니다.

  • 09.07.18 06:30

    太王= 大王. 글쎄요. 太가 大의 의미는 포함이 된 것은 부정할 수 없으나..뉘앙스에서 약간 다르죠.

  • 09.07.18 06:33

    太王에 대해 너무 집착하는건 ..뭐하러 저런데 많은 신경을 쓰는지.. 그거 아니라도 연구할 대상은 쌓였으니까요.

  • 작성자 09.07.18 10:35

    그것은 조선시대 개념이지, 삼국의 개념은 아닙니다. 앞서 거론한 당대 금석문들은 모두 정계에서 은퇴하지 않은 한창 활동할 때 만든 것들입니다. 중원 고구려비에는 태왕과 태자의 존재가 구분되었고, 삼국사기에도 장수태왕, 법흥태왕이 양위했다는 내용이 없을 뿐더러 진흥태왕이 불법에 귀의하여 승려가 된 것도 말년입니다. 제 생각에는 칭호문제도 중요한 연구대상이라고 보기에 나름 공부한 것인데, 마지막 말씀은 좀 씁쓸하군요.^^;;

  • 09.07.22 00:18

    글쎄요.새로운 사서가 나타남에 따라, 기존의 설은 흔들릴 수 있죠. 사서의 위력을 제가 보여 주겠습니다.

  • 작성자 09.07.22 14:14

    개인적으로는 그 점이 고대사의 매력이 아닐까 합니다. 통설에 반하는 획기적인 사료가 나오면 기존의 통설은 뿌리 채 흔들릴 여지가 있다는...^^; 박규호님의 입장은 중원 고구려비, 진흥태왕순수비, 울진 봉평비의 나온 태왕 관련 내용을 부정하시는 입장이신 듯 한데, 저 당대 금석문들의 내용을 뒤엎을 만한 획기적인 사료가 나온다면 저는 학자 분들처럼 잃을 게 없는지라 주저없이 입장을 바꿀 준비가 되있습니다.^^ 최근에도 고조선 수도 관련해서 입장 크게 바꿨죠.^^;;

  • 09.07.20 20:04

    흠. 태왕의 의미가 정치에서 은퇴한 왕이라는 것은 박규호님 개인적인 견해이신지 궁금합니다. 실제 태왕이 그런 의미로 쓰인 용례가 있는지...아신다면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

  • 09.07.20 20:45

    太上王= 태상왕[太上王] [명사] [역사] 1 ‘상왕’을 높여 이르는 말.2 상왕의 앞선 왕.

  • 09.07.22 01:59

    상왕을 높여 태상왕(太上王)이라고도 했다. 삼국시대에는 신라의 진성여왕(眞聖女王)과 고구려의 태조왕(太祖王)이 있었다. 고려시대에는 정종(定宗)·경종(景宗)·성종(成宗)·덕종(德宗)·정종(靖宗)·문종(文宗)·인종(仁宗)·충렬왕(忠烈王)·충선왕(忠宣王)·충숙왕(忠肅王) 등이 있었고, 조선시대는 태조(太祖)·정종(定宗)·태종(太宗)·단종(端宗) 등이 있었다.

  • 09.07.22 00:24

    위의 인용글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글입니다.

  • 09.07.20 20:45

    太上王= [태상왕] 선위(禪位)하여 생존(生存)한 왕을 높이 이르는 말

  • 09.07.20 20:49

    한자사전에 제대로 나와 있군요. 백제왕기 및 파사이사금기에 예가 나옵니다. 초고왕은 구수왕의 재위기간을 지나서, 고이왕때 죽었습니다. 구수왕에게 禪位를 한 뒤에, 사서에서 초고왕을 太王이라 부릅니다. 파사이사금기같은데서는 太君이라 했습니다.

  • 09.07.20 20:53

    백제왕기 仇首王(구수왕) 11년(A.D.264) 갑신 6월 왕이 죽었다. 태자 沙伴(사반)이 즉위하였으나, 나이가 어려 정사를 맡을 수 없었다. 태왕(초고왕)이 명하여, 왕의 동생 古爾(고이)가 대신하여 집정하고 보좌하도록 하였다. 태자는 이내 素嬭(소내) 왕후를 취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태자가 죽으니, 마침내 大位(대위)를 결정하였다.

  • 09.07.20 21:04

    제가 언제 거짓말치는 것 봤나요? 인터넷에서 때론 사학과 교수도 제가 가르칩니다.

  • 09.07.21 20:25

    박규호님이 거짓말을 했다고 한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깐 그렇게 흥분할 필요는 없습니다. 위의 한자사전이 어떤 책인지 모르겠지만, 태상왕이라는 표현은 조선시대에 쓰였던 것입니다. 그와 비슷한 개념의 군주가 그 이전 시대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곧 '태상왕'과 직결시켜 이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개념만 비슷했다는 것으로 이해를 해야겠죠. 알다시피 박규호님이 나열하신 고려시대 군주들도 태상왕이라고 불리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문헌 기록이『고려사』나『고려사절요』에 있나요? 있다면 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역사 공부를 할때 어떤 참고문헌을 인용할 시 한자사전에서 역사적 내용을 인용하지는 않

  • 09.07.22 00:13

    다음사전을 통해 퍼 온 글이라서, 고려사같은 사서에 나와 있는지 모릅니다.

  • 09.07.21 20:27

    지요. 단어의 의미만 차용한다면 모를까요. 그 한자사전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시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어떤 책을 인용할때는 다른 사람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정확하게 그 책의 정보(제목, 저자, 발행년도, 출판사 등)를 전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즉, 위의 글을 주욱 봤을때 태상왕이라는 표현은 조선시대의 개념이며, 그와 비슷한 개념의 군주가 그 이전시대에도 있었지만 그것이 태왕 혹은 태상왕이라고 불렸을지 여부는 더 따져봐야 합니다. 그러므로 태왕의 의미를 태상왕의 의미와 동일시한 박규호님의 견해는 아직 근거가 충분치 못 하다고 하겠죠. 또 하나! 박규호님이 인터넷에서 어떤 사학과

  • 09.07.22 00:02

    저건 다음한자사전에서 퍼 왓습니다. 쉽게 검색됩니다.

  • 09.07.22 00:22

    다음한자사전이었군요. 흐음. 그럼 시중에 나와있는 권위있는 사전에서 인용한 부분일 것 같습니다. 암튼 알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 09.07.21 20:29

    교수님을 가르치셨는지는 모릅니다. 그것이 박규호님에게는 자신의 실력을 입증할만한 자랑할만한 근거일지는 모르지만 제게는 그 사학과 교수님과 마찬가지로 박규호님도 공부하는 한 사람의 학자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학자들의 견해에 있어서 100% 진실만 있다고 생각치는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경우 역시도 제게는 박규호님이 내놓으신 하나의 의견에 불과합니다. 그것을 두고 저희는 박규호님이 거짓말했다고 하지도 않았고, 그것이 거짓이라고 단정짓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그렇게 말씀하신 근거가 궁금했을 뿐입니다. 이 점을 참고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럼 이만~

  • 09.07.21 20:31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궁금한게 있습니다. 박규호님이 매번 인용하시는 그런 문헌에서 혹시 고고학적 자료와 일치하는 기록들도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시다시피『삼국사기』도 예전에는 초기 기록(3세기 이전)을 불신하는 경향이 강했지만, 여러 고고자료들이 계속적으로 발굴되면서 그 기록의 신빙성이 인정받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박규호님이 매번 언급하시는 문헌 역시 이런 고고자료에 의한 검증과정을 거치면 학계에서 보다 빨리 인정받지 않을까 싶습니다.『화랑세기』는 이런 검증과정을 거쳐서 어느 정도 학계에서 공식적으로 인용이 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09.07.22 00:20

    고고학적 자료와 일치하는 부분도 모르겠습니다. 일반인이 쉽게 고고보고서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화랑세기는 연구한 게 없어서 의견을 개진할 바가 못 됩니다. 미안합니다.

  • 09.07.22 00:24

    음...딱히『화랑세기』는 아니더라도...지금 공부하시는 문헌들 중에서 고고자료와 일치하는 부분이 있으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군다나 그러한 자료들이『삼국사기』와는 일치하지 않는데, 거기서만 일치한다면! 더할나위 없겠죠. 나중에라도 그런 부분들이 확인되면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재밌을 것 같습니다. 물론 고고학 관련된 보고서를 일반인이 보기는 어렵지만 아예 볼 수 없는 것도 아니지요. 게다가 논문같은 연구성과들이 나오고 있으니깐 이런 부분들도 공부하다보면 좋은 성과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암튼 앞으로의 공부에 좋은 결과가 있길 바라겠습니다. ^^

  • 09.07.22 00:27

    명치호태왕님은 역사문 회원중에서 제가 제일 높이 평가하는 사람중에 한 사람입니다. 추모왕의 아명을 '상해'라고 추정할 수 있다는건만 봐도 대단한겁니다. 그런데, 아쉬운 건 박창화유고집에 알레르기가 있는지..부정론자이더군요.

  • 작성자 09.07.22 02:01

    몇몇 분들이 자꾸 저를 남당유고 부정론자는 아닙니다.^^;; 저는 남당유고들이 소설이라고 여기지 않으며 분명 후대에 손을 탔을 지언정 기본 골격은 삼국시대 고유 기록일 것이라는 심증은 있으나,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주장의 근거로 인용할 단계는 아니라는 것뿐입니다. 얼른 연구가 진척되서 검증되기를 바라는 중이긴 한데, 적어도 지금은 솔직히 화랑세기만큼의 연구는 기대하기 어려울 듯 합니다. 안타깝지만, 화랑세기를 제외한 대부분의 남당유고는 저자가 명확치 않아서 화랑세기 보다 검증이 어려울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 화랑세기도 아직 진위논쟁이 뜨거운데, 나머지 남당유고들 불 보듯 뻔합니다.

  • 09.07.22 02:02

    역사문의 글들은 오늘도 꼼꼼히 모니터링를 하고 있으며, 새벽 2시, 지금 이 시간에 다시 들어가 모니터링할 예정입니다. 제가 보는 견지에선 명치호태왕님은 부정론자로 보입니다만..

  • 09.07.22 02:04

    남당유고집은 한두개가 아니고, 추모경 한 편만하더라도, 내용이 많습니다. 님의 얘기대로라면.. 검증은 저희가 할아버지가 될 시점에 가서 해야 정상인가요? 벌써 저도 이미 40대인걸요.

  • 작성자 09.07.22 02:09

    만의 하나 남당유고가 환단고기와 동급 취급되는 경우를 나름 막기 위해 역사문 토론방에 올리는 것 반대하고 남당유고 토론방을 따로 개설했음 하는 바람을 내비친 것입니다. 환단고기처럼 다른 역사 토론방에 올렸다가 이리저리 채이고 무시 받느니, 정식으로 남당유고 토론방 만들면 적어도 환단고기와는 다른 인상을 줄 수도 있다는 판단 하에 하찮은 잔머리 좀 굴린 것입니다. 된통 실패했지만요.^^;; 그리고 저 역사문에서 그렇게까지 내공있는 편은 아닙니다.^^; 겸손이 아니고 한 예로 김기흥 교수님이나 한 소설가 분께서는 저 보다 빨리 수년 전에 추모왕의 아명을 추정을 하셨었습니다. 저도 글 쓰는 도중에 알아서 허탈했지요

  • 작성자 09.07.22 02:08

    상해 관련은 제가 최초인 줄 알았거든요.^^;; 에... 그리고 저는 금석문에 신빙성을 두고 있기 때문에 태왕에 대한 견해 차이는 쉽게 좁혀지지 않을 듯 합니다. 이쯤에서 논의는 접는 게 나을 듯 합니다.^^

  • 09.07.22 02:09

    그렇군요. 추모왕중에서 제일 관심잇는 시기는 언제인가요? 동명 초기 부분이신지? 말년부분인지 궁금하군요.

  • 09.07.22 02:12

    님의 노파심중에 환단고기와 동급 취급이 되어서, 환단고기처럼 박해를 받을거라는 예상은 안 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건 환단고기류와 차원이 다릅니다. 삼국사기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는 사서입니다. 자꾸 연구할수록 삼국사기의 문제가 많은 부분이 더 들어납니다.

  • 작성자 09.07.22 02:13

    저도 사람이고 제가 생각했던 것과 남당유고가 어느 정도 일치한 만큼 저는 남당유고를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입장입니다.^^; 저에 대한 박규호님 개인의 관점을 강요할 수 없는 노릇이니,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요.^^;

  • 작성자 09.07.22 02:19

    저도 환단고기와는 감히 비교도 안 될 차원이 다른 사료라 여겨집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남당유고를 환단고기 같은 극단적으로 쓰레기 취급하는 부류도 있습니다. 요즘 그나마 나아진 편이지만, 화랑세기도 여전히 일부 부류에게 그런 취급 받고 있지요.;;; 제가 제일 관심 있는 사료는 추모경으로 모수제기와 추모왕의 성장기 입니다.^^;

  • 09.07.22 02:18

    남당유고집은 님이 여태까지 연구한 공력의 3배 이상을 투입해야 연구를 좀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존에 쌓엿던 내공에다 다시 공부와 노력을 더 기울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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