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53주년에
2월 14일 오늘은,
발렌타인 데이,
재의 수요일,
53년 전 결혼식을 올린 날.
남원에서 막 초임 공무원을 시작하며 올렸던 결혼식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어언 53주년이다.
마치 한 권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참 파란만장의 연속이었다.
경제적인 부침과 죽음의 문턱에 다녀오길 그 몇 번이며,
가정이 파탄지경의 위기에 이르길 그 몇 번이었던가?
마침 발렌타인 데이라고 떠들썩하건만
동갑내기 우리 내외는 그저 무덤덤 했다.
군에 근무하는 아들은 설이라고 내려왔다가 올라가고,
외식이라도 할까 하다가 손자 일정부터 살핀다.
영어, 독서·논술, 돌봄교실, 태권도장.
초등 2학년 손자가 방학 중이지만 오히려 더 바쁘다.
그래도 그냥 넘어가기가 뭐했다.
“여보, 우리 뭐 맛있는 거 먹으러 나갈까?”
“할아버지, 오늘 무슨 날이야?”
“응, 53년 전 할아버지 할머니 결혼식을 올린 기념일이야.”
“할머니, 우리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하루초밥!”
가는 길에 결혼식 전날 친구들과 술을 코가 비뚤어지게 마신 바람에
신랑 입장~ 때 비틀거렸던 흑역사를 생각하며 회상에 젖어본다.
사진 속 그때 친구 중에는 벌써 하늘나라에 간 친구도 있고.
그런데
대장암 양성 판정을 받고서 내시경 예약을 하러 가는 날이 하필 오늘이라니....
그렇지만
폐암을 이겨냈는데 그깟 대장암을 못 이겨내랴?
마음을 다잡으며 두 손을 모았다.
주님,
저희 남은 생애 동안
저희 부부에게 건강을 지탱하도록 힘을 주시고
저희 자녀들에게 축복을 내려주시고
저희 가정에 평화를 내려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