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여행3 - 헤밍웨이의 자취를 찾아 노인과 바다의 무대 코히마르에 가다!
1월 15일 멕시코시티를 출발한 멕시카나 비행기는 두시간을 동쪽으로 날아 카리브해에
길게 드러누워 있는 섬이 나타나는데 산은 아주 가파른데 외줄기 길을 따라 집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을 뿐..... 거대한 밀림 지대 를 한참 날아 쿠바의 아바나 공항에 내립니다.
입국수속후 입국장으로 나오니 왠 할머니가 다가오더니 “잉그라떼라 호텔” 이라 부르는데 너무
비싼지라 작은 사무실에 들어가 Casa del Cientifico Hotel 을 내보이니 방이 다 찼다면서
전화를 돌리더니.... ‘Riviera Hotel (Vedado 소재)’ 이 106 쿠바 페소 라기에 캐나다
달러를 환전해 방 2개 2일치 숙박비를 선불하고 호텔 바우처 를 받아 쥔 다음 택시를 탑니다.
이윽고 Riviera Hotel 호텔에 도착하여 체크인을 한 다음에, 라운지의 “Cubatur’
창구에서 모레 아침에 휴양지 ‘바라데로’ 까지 가는 차편을 예약하는 데...
돌아오는 시간이 맞지 않자 버스 대신에 우리 4명을 위해 따로 승용차 를 내주겠답니다.
4인 전세 왕복에 122쿠바 페소 ( 달러로는 이중으로 환전 수수료 공제하면 150$ )
이고 호텔은 4성급 리조트가 2인 1실에 270 쿠바 페소 에 계약을 합니다.
바라데로 해변의 리조트 내에서는 음식과 술은 무제한 이고, 카약이며 보트와 스노클링
등 해변 이용시설등 일체 포함인 데, 스킨 스쿠버는 따로 비용을 받는답니다.
시간이 늦었기로 건너편 ‘Melia Cohiba’ 호텔에서 달러를 환전하는 데, 유로나 캐나다
달러를 조금밖에 준비하지 않은게 너무나도 아쉬운데... 이런 정보는 책에도,
인터넷에도 없었으니... 1쿠바 페소는 1달러인 데, 실제로는 환전시
수수료 20% 를 공제하므로 1.2 달러에 해당하며 캐나다 달러는 10%만 공제합니다.
리모델링을 한 Riviera Hotel 호텔 의 엄청 넓은 호텔방에 들어서서
커텐을 여니, 아!!! 환상적인 광경에 입을 다물 수가 없네요!
호텔의 모든 방이 해변을 향하는 데, 짙푸른 카리브 해의 거친 파도 가 해안을 따라 쌓은
방파제 위를 거침없이 넘어와 간혹 달리는 차위로 쏟아지는 모습 이라니....
달빛이 비추는 짙푸른 바다는 끊임 없이 파도를 밀어내니 이러다가 망부석이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데,밤이 늦도록 오래토록 창가에서 바다를
바라보니 온 가슴이 파도에 젖은양 촉촉해 지는 데... 문득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멕시코나 쿠바 모두 110볼트 라 전기남비를 가져오지 않았기로, 주방에서
뜨거운 물 을 얻어 컵라면과 햇반에 부어.... 고추장과
멸치 반찬으로 넷이서 저녁 파티를 벌이며 포도주 한잔에 행복해 합니다.
하지만 원래 계획으로는 ‘나씨오날호텔 레스토랑’ ( 식사는 8시부터,
공연은 9시 30분에 시작 ) 의 저녁 공연에 가기로 하였는 데......
그러나 일행들이 지치고, 지리도 모르는 데다가 밤이 늦어 이미 시작 시간도 지났고
안전 문제도 있고 하여 방에서 저녁을 드는 것이니 아쉬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네요!
* 나시오날 클럽 : Hotel Nacional 나시오날 호텔은 VEDADO 지역으로 말레콘 중간쯤의 언덕 위에
있는데 주말 밤 9시 30분에 레스토랑 "살롱 1930" 에서는 1인당 40$ (식사 포함) 의 입장료
를 받고 공연하니 예전에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 이 공연 하던 곳이며 식사는 8시부터 시작합니다.
공연은 세군도를 추모하는 ‘찬찬’ 으로 시작하는 데 원초적 열망의 서사시로 거대한 감동이
조류처럼 밀려온다고 하는데..... 사랑과 정열, 향수와 기쁨을 노래하니 폭풍이
사라지고 난 다음 담담히 지내온 흔적을 회상하며 항구에 다다른 뱃사공을 연상 시킨답니다?
또한 현란한 기교의 남여 흑인 무용수의 춤 은 맘보, 차차차, 룸바, 살사의 고향임을 일깨워
준다고 하는데..... 마지막으로 ‘칸델라’ 를 열창하면 뒤쪽에서는 관중들이
일어서서 함께 춤을 추는감동의 무대가 된다네요! 그런데 이 모든게 꿈으로 그쳐야 한다니!
1월 16일 : 아바나 : 헤밍웨이집 - 코히마르 - 엘모르요새 - 아바나 시내
*** 헤밍웨이가 살던 집에서 내려다 보는 쿠바 시가지 와 해안 ***
쿠바 아바나의 서북쪽 방파제 말레콘 너머 자리한 리비에라 호텔에서 새벽에 일어나 희부염
하게 동이 터오는 카리브해 를 보니... 이건 또다른 맛으로 다가오는 감동 그 자체입니다!
호텔 커피숍에 내려가 빵 하나를 시키고, 뜨거운 물을 마호병 에
받아와서는 컵라면에 부어 방에서 아침 식사를 합니다.
우리 부부와 선배님 부부등 일행 4명은 호텔 현관 앞에서 택시를
세워서는, 수첩에 미리 적은 헤밍웨이의 유적을 위주로.....
헤밍웨이의 흔적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오늘 볼 5 곳을 도는 것을 계약
(전세) 하니, 5시간 소요 예정에 70쿠바 페소 ( 8만원) 를 달라고 합니다.
전세 택시는 남쪽으로 시내를 빠져 나가면서 보니 변두리에서 거대한
낙타버스 를 기다 리는 출근길 긴 행열 이 여기저기 눈에 뜁니다.
30분을 달려 시가지를 벗어나 도착한 산 언덕 중간 쯤에 "헤밍웨이의 집"
은 듣던대로 그야말로 대저택인 데.... 입장료는 2페소를 받습니다.
*** 헤밍웨이가 살던집의 거실 ***
오르막 길을 걸어 거실을 보고는..... 망루 처럼 생긴 높은 곳이
헤밍웨이의 서재 라는데, 책과 그림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서재를 지키는 아줌마 직원이 1페소 만 주면 사진을 찍게 해 주겠다며 남의 눈을 무척 의식하는데
당근이지..... 언제 다시 오겠나! 캠코더며 디카 를 찍을수 있다면야 무엇을 마다하랴!
*** 망루 위의 헤밍웨이의 서재 ***
서재인 망루는 너무나도 경치가 좋은게 야자수며 망고나무 너머로 멀리 아래쪽의 아바나 시가지와
카리브해 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이며 헤밍웨이는 여기 소방서에나 있을 법한 높다란
망루위의 단독 서재 에 앉아 저 멀리 산아래 시가지와 바다를 내려다 보며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요?
망루를 내려오니 한무리의 일본여성 단체 가 들어오는 데, 한 부인이 나를 보더니
반색을 하며 "욘사마" 를 닮았다는게 아닌가요? 어안이 벙벙.... 이 정도면
과히 병적이라 할만한데, 그러나 우리 일행들은 기분은 나쁘지 않은 모양 입니다.
우리는 일제 40년 ( 을사조약 부터 쳐서...) 의 콤플렉스 가 있다 보니 항상
일본을 의식하며 살아왔으니... 그래서 우리가 가장 싫어하는 나라이자
경제는 가장 본 받아야 할 나라로 생각하는 이중적인 기준을 가졌었는 데....
그런데 일본인들이 언제 우리나라에 관심이나 있었더냐? 90년대 까지는 일본인에게 한국
에 대해 물으면 부정적인 대답이 의외로 적었던 것은? 한국인을 싫어하는게
아니라 관심이 없었던 것이니.... 무관심만큼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 것은 없는 법입니다.
그런데 김연자와 이미자에다가 조용필을 거쳐 "겨울연가 " 에서 배용준 과 최지우가
"한류열풍" 을 일으킨 이래 한국사람이 이렇게 관심의 대상으로 떠올랐으니
해서 일본 중년 여인들은 마치 순례하듯.... 춘천과 남이섬을 찾고 있는 것인가 봅니다?
*** 헤밍웨이가 애지중지 했다는 고양이들의 무덤 ***
생전에 헤밍웨이가 애지중지 했다는 수십마리 고양이들의 무덤 을 지나.....
여배우 "Eva Gardner" 가 맨몸으로 헤엄쳤다는 수영장 에
서니.... 물살을 가르는 인어! 그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유쾌해집니다!
그 너머 한척의 보트 가 전시되어 있는 데, 여기서도 여직원이 1페소 를 주면
사진을 찍게 해 주겠다는 데.... 역시나 바깥을 무척 의식하는 눈치입니다.
쿠바의 대부분의 직장에서는 월급은 적은 데, 서양 상품들은 밀려오니 바야흐로
돈의 위력 앞에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인데? ( 원래 사진은 5$, 비디오는
25$ 라고 책에서 본 기억이 난다, 그러나 보통은 입장료만
내고 들어옵니다! ). 남자 직원이 배의 뒷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데, 아!!
*** 여배우가 맨몸으로 수영했다는 ... ***
갑판에는 헤밍웨이가 낚씨하던 의자 앞에.... 큰고기와 씨름하며 버틸 발받침까지 설치
돼어 있는게 아닌가? 야자와 팜유며 대나무 등 무성한 숲으로 둘러쌓인
정원을 빠져 나오며..... 새삼 헤밍웨이는 멋진사람 이라고 이구동성으로 감탄합니다!!
*** "노인과 바다의 무대" 코히마르에서 노인이 맥주 대접 받은 곳 ***
다시 차는 30여분을 북쪽으로 달려 "코히마르" 에 도착하니, 골목길을 몇구비나
돌아 깊이 들어온 만 안쪽에 레스토랑 ‘La Terraza' 에 멈춥니다.
소설 "노인과 바다" 에서 가시만 남은 물고기를 끌고 돌아온 노인에게
소년이 맥주 한잔 을 사 주었다는...... 바로 그 레스토랑입니다.
레스토랑의 건물 안쪽 바다 옆의 세팅된 좌석위 벽에는 헤밍웨이가 낚씨하는 모습과 카스트로
를 만나는 장면 이며 영화배우들과 찍은 사진 들이 많이 걸려 있으니 맥주 한
쪼끼에 1.5페소 를 받는 데.... 무더운 날씨에 찬 것이 뱃속을 내려가니 찌르르 온 몸을 떱니다.
*** 코히마르의 바다를 바라보는 헤밍웨이의 흉상 ***
레스토랑을 나와 해변으로 300여 미터를 걸어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헤밍웨이의 흉상과 프랑스
나 영국의 해적을 막기 위해 건축한 오래된 요새 를 구경하는데 방파제 위에
걸터 앉아 키타를 치는 50여세의 남자 가 신나게 노래를 부르기에 그 옆에 앉아 따라 부르니.....
서로 흥이 상승작용을 하여 어깨동무를 하고 목청껏 노래 부릅니다...
이역만리 타국 땅 이건만 오늘 어찌 흥겹지 않을 소냐!!!
*** 헤밍웨이 흉상앞에서 기타치는 쿠바 현지인 아저씨와 함께 노래 부르네.. ***
쿠바가 미국의 영향하에 있을 때는 설탕, 담배, 카피 그리고 관광산업에
치우친 결과... 이런 환금 작물인 상품을 미국에 수출하고는.....
밀, 옥수수, 소고기, 닭고기 등 육류, 석유, 의약품, 비료와 농약 및 비누와 옷이며
가전 제품등 모든 공산품을 수입하는 미국의존 경제였는 데....
1,959년 카스트로가 혁명을 일으켜 바티스타의 친미정권을 전복시키고 미국인
들이 투자 한 모든 산업을 국유화하니 이에 미국이 극심한 경제 봉쇄조치를 취합니다.
당시는 소련과 동구권으로 수출입 돌파구를 찾았으나 90년에 그마저 붕괴
하니 미국의 경제봉쇄 조치 로 설탕등 수출이 올스톱되니....
자연히 수입도 전면 금지되어 식량과 석유 및 생필품을 구하지
못해 살기 어렵게 된 사람들이 보다 나은 세계를 찾아 고향을 떠나게 됩니다.
이 어촌에서 드럼통과 나무 를 얽어 만든 보트피플 이 미국의 마이애미 를
향해 바다 에 목숨을 내 맡겼으니....... 아이러니가 아닐수 없습니다.
초창기에 어느 외국 기자가 이런 사태에 대해 어찌 대처할 것이냐고 물으니
자존심 센 카스트로가 우린 막지 않을 것이라고 큰소리 친 결과.....
이후 한 말이 있으니..... 떠나는 사람들을 제지하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고 하는데.... 떠난 사람의 절반 가까이는 바다에 빠져 죽었다고 하네요!
*** 코히마르에서 카누 타는 소년들 ***
조금 걸어부는데 바다는 말이 없고 만 안쪽에서는 카약을 타는 소년들
의 모습이 한가로운데 다시 차에 올라타고 2- 30 여분을
달려 모로요새 에 도착하니 입구에서 입장료로 4페소씩을 받습니다.
3-4백년 전 스페인 식민지 시절 프랑스와 영국의 해적 들로 부터 아바나를 지키기
위해 만 입구 양쪽에 거대한 요새 를 축조한 것이 바로 이곳 모로요새 입니다.
당시의 대포들을 보노라니 세월의 흐름을 반추하게 되는 데,
넘실대는 카리브해 를 바라보는 경치는 참으로 훌륭합니다.
*** 프랑스와 영국의 해적을 막던 모로 요새 ***
등대를 보는데는 추가로 2페소를 더 내야 한다. 가파르게 경사진 어두컴컴한 계단을 손으로
더듬으며 숨가쁘게 올라가니, 한국말이 들리니 어찌나 반갑던지! 쿠바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은 한국말 이니.... 어찌 안그렇겠는가? 어디서 왔느냐니까 평양 에서
왔다기에 나도 농담으로 “그쪽이 평양이라면 나래 함흥서 왔수다래” 하고 농을 건넵니다.
아, 그랬더니 웃으면서 “저는 대사관에서 나왔고 이 부부는 평양 서 왔습니다”
라고 신사는 서울 표준말로 나지막하게 다시 되풀이하는데.....
어!!! 그래서 우리 대사관 직원 이 북쪽에서 온 사람을 안내하는 구나 싶어
“사진을 같이 찍어도 돼냐” 고 물으니 사양하길래 웃으며 인사하고는 헤어집니다.
아니??? 되돌아 나오면서 생각하니... 여기는 쿠바! 우리나라 와는 아직 외교관계
가 없으니 대사관이라면.... 북한대사관 인 게다? 고정관념 이란
이처럼 무서운 것이 대사관 이라니까..... 당연히 우리 대사관 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