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문화대혁명 때 관징 스님을 숨겨준 이야기
정수졘(부인, 중국 德化縣)
<이 내용은 2012년 12월 4일 쥐셴산 뀌거촌에서 인터뷰한 비디오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문화대혁명 때 극락을 다녀와 마을로 내려오다 쫓기던 관징 스님을 숨겨 주었던 정수졘의 부인이 직접 당시 상황을 증언한 것을 녹화한 것이다. 보통 벽장은 방안에서 들어가는데 이 집은 밖에 벽장 같은 방이 있어서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면 제법 높은 문이 두 개 있고 그 안에 방이 있는 것이다. 이 방에서 관징 스님은 2년간을 지냈는데, 주로 참선을 하거나 경전을 읽었다고 한다>
<문 1> 관징을 언제 처음 만났는가?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30대인가 40대인가?
처음 올 때 맨발로 왔으나 승복은 입고 있었다.
<문 2> 어디서 처음 만났는가?
남편이 어디선가 길에서 만나 데리고 왔다.
<문 3> 미륵동은 가보았는가?
주로 남편이 갔고, 나도 가끔 가 보았다.
걸어서 가기 때문에 2시간 이상 걸린다. 무엇인가 짊어지고 가면 3시간쯤 걸린
다.
<문 4> 주로 무엇을 가져다주었는가?
죽순 잎으로 싼 밥을 좋아했다. 오래 보관할 수 있다. 과일은 복숭아와 자두
같은 것을 가져다 주었다. 주로 바로 먹을 수 있는 것을 가져다 주었다.
바나나는 비싸서 살 수가 없었다.
<문 5> 벽장에 있을 때는 어떤 것을 주었는가?
죽, 남새, 고구마, 호박 같은 것이다. 모두 집안에서 심은 것만 주었다.
우리도 먹을 것이 많지 않아 많이 주지 못 했다.
<인터뷰를 오래 할 수가 없었다. 묻는 말에 대답하다가 자기 신세한탄으로 넘어가버리기 때문이다. 어떻게 시집왔고,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에 대해서 정황하게 늘어놓는다. 그런 얘기를 할 때는 앉아있지 못하고 일어서서 한다. 열심히 들어주다가 다시 다잡고 몇 마디 물어보면 대답하다가 어느 사이 또 신세한탄으로 넘어가 버린다. 관징 스님과 직접 관계는 없었지만 몇 가지만 더 덧붙인다.>
<6> 13살에 정씨 집에 와서 22살에 결혼했다. 친정은 너무 가난해서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장례비를 마련하기 위해 딸을 하나 팔아야 했다. 관징 스님 보다는 수귀칭 거사의 말이 크게 좌우되었다. 주로 인과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 해주었는데, 삶이라는 것은 본디 괴롭다는 말이 크게 와 닿았다. 인과를 배운 뒤로는 남새밥만 먹고 고기를 먹지 않았다.
아이 가졌을 때 빼놓고는 고기를 먹은 적이 없다. 일생 먹은 고기가 5kg도 안 된다.
<7> 지금도 구선산에 가서 수신을 한다. 주로 길가에 있는 소나 양의 똥을 치워 깨끗하게 하고 법회가 있는 날은 주방에 가서 돕는다. 지금도 여기서 걸어간다. 먹을 것, 입을 것을 준비 가지고 2, 3개월 있다 온다. 동굴에서도 잔다.
<그녀는 경전도 못 읽고 수행법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의 참된 보살행은 매우 감동적이었고, 인사는 늘 ’아미따바‘ 였다.
그녀는 관징 스님의 역사가 깃든 그 집에서 지금도 살고 있다. 자식들이 모두 도시로 나갔지만 아직도 같은 집에서 살고 있어 귀중한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나모아미따불
나모아미따불
나모아미따불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감사합니다
추운데 수고하셨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