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12월 3일, 주일오전예배>
찬송 : 563장(411)
성경 : 시 23:1~6(구약 818면)
제목 : 지팡이 시편
찬송 : 570장(453)
오늘은 <지팡이 시편> 이런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 베트남 전쟁 당시의 이야기입니다.
미군의 전투기 안에는‘서바이벌 키트’ 라는 조종사 생존 장비가 실려 있었다고 합니다. 한국말로 하면
‘생존용 상자’, 또는 소방대의 구조대원들이 가지고 다니는 ‘긴급구난용 주머니’ 같은 것입니다.
그 속에는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 비상식량과 권총, 의약품 등 100여 가지의 물품들이 들어 있다고 합니다.
이 생존 장비는 전투기가 적의 대공포를 맞아 적진 한가운데 추락하게 되었 을 때, 조종사가 구조될 때까지
생존하는데 필요한 것들입니다.
그런데 그 물품들 가운데 조그만 카드 한 장이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 카드는 어떤 카드일까?
세계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는 국제신용카드일까요? 아닙니다.
그러면 지루함을 이기고 정신을 차리라고 넣은 트럼프, 도박카드였을까요?
그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과연 이 카드는 어떤 카드일까요?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궁금하지 않습니까?
그 카드는 다름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 적혀있는 성경카드였습니다.
그 성경카드에 적힌 말씀이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23편입니다.
미국인들의 말씀사랑이 놀랍지 않습니까?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니 미국이 세계초강대국이 된 것입니다. ]]
시편 23편을 일명 <지팡이 시편> 이라고 부릅니다.
지팡이는 사람이 쓰러졌을 때 짚고 일어서는데 사용하는 도구입니다.
[[ 저의 고향은 경북 상주입니다.
겨울방학 때 할머니가 계시는 시골집에 가면 지게를 지고 산에 나무를 하려 가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나무를 한 짐 가득해서 지팡이 없이 일어서려면 여간 힘든 것이 아닙니다. 실수로 중심을 잃으면 지게를
진채로 앞으로 고꾸라지거나 옆으로 넘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지팡이를 지렛대 삼아서 조금만 힘을 주면 거뜬히 일어설 수 있습니다. 40대 이후의 분들은 이런
경험이 다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유용하기도 하며 긴급 시에는 나를 보호해 주는 것이 지팡이입니다. ]]
이와 같이 시편 23편은 외로운 인생길을 가다가 지쳐 쓰러졌을 때,
짚고 일어설 수 있는 지팡이가 됩니다.
몸과 영혼에 새로운 회복을 주는 하나님의 말씀 지팡이입니다.
이 시편 23편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노래한 사랑의 편지입니다.
목자이신 하나님과 양인 인간과의 관계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보고 하나님께서 기르시는 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시 79:13절에 “우리는 주의 백성이요 주의 목장의 양이니 우리는 영원히 주께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대대로 전하리이다”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요 나는 주님의 귀한 어린 양”
그런데 성경에는 왜 목자라는 말이 자주 나올까요?
유목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목자라는 말은 아주 친숙한 단어입니다. 목자는 양에게 없어서는
안 될 생명 같은 존재입니다.
시 28:9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주의 산업에 복을 주시고 또 그들의 목자가
되시어 영원토록 그들을 인도 하소서”
시편 23편은 다윗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아름다운 詩입니다.
신구약 성경 1,189장 가운데 성도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적진에 떨어져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조종사에게 두려움을 이기고 생존할 용기를 줍니다. 인생의 기가 막힌 웅덩이에
빠져 있는 이들에게 새롭게 일어설 기회를 제공해 줍니다.
질병의 고통으로 죽음을 눈앞에 둔 이들에게 살 소망을 불어 넣어 줍니다. 전 세계의 남녀노소 누구나
즐거운 마음으로 읽고, 암송하고, 노래하는 구절입니다.
또한 목사님들께서 자주 설교하는 본문 중의 하나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이 시편 23편이 슬픔과 절망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늘의 소망과 평안을 주기
때문입니다.
☛ 본문 1절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1절에서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 라고 고백합니다.
“여호와 나의 목자 내게 부족 없네, 푸르른 초장위에 나의 몸 누이시네”
이러면 벌써 힘이 나지 않습니까?
“여호와는 나의 목자” 다윗은 하나님을 여호와라고 불렀습니다.
* 여호와 로이 = 하나님은 나의 목자~, 아도나이 = 하나님은 나의 주인,
여호와(야훼) : 항상 살아계시며 스스로 존재하시는 하나님, 이런 뜻입니다.
출 3:14절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여호와”는 구약성경에 7,040번 나옵니다.
그런데 신약에서 여호와라는 이름은 거의 나타나지 않습니다.
신약에서는 여호와가 “주” 라는 의미의 ‘큐리오스’ 로 번역 되어 717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
시 118:6절에 하나님은 내편이라고 고백합니다. 놀라운 신앙고백입니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다윗이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아름다운 사랑의 꽃다발입니다.
하나님과 나를 하나로 결속시키는 다윗의 믿음이 정말 놀랍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
하필이면 하나님을 왜 목자로 비유하였을까?
그것은 다윗 자신이 목자로서 생활하였기 때문입니다.
곰이나 사자가 나타나 양떼를 해치려 하면 자기의 목숨을 걸고 양떼를 지켰습니다.
삼상 17장 34~35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물어
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 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나이다”
자기의 양 떼를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은 다윗의 신실함을 보여줍니다.
목자가 양을 돌보듯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백성들을 돌보시는 분임을 알았기 때문에 “내가 부족함이
없다” 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23편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부르는 행복의 노래입니다.
사 40:11절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는 목자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 하시리로다”
☛ 2절입니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2절의 하나님은 우리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분” 입니다.
쉴만한 물가는 안전이 보장되고 편히 쉴 수 있는 곳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안식처요 쉼터입니다.
예전 저희 하늘교회 커피점의 이름이 “쉼터, 하늘1번지” 였습니다.
지금 청도에 있는 쉼터의 이름도 “하늘1번지”입니다.
저는 이 이름을 너무 좋아합니다. “쉼터, 하늘1번지”
목자는 양들에게 필요한 물을 찾아서 배불리 먹여야 합니다.
풀이 있는 곳 새로운 목초지를 찾아 먼 길을 가기도 합니다.
팔레스타인의 날씨는 덥고 건조하여 양들이 갈증을 느끼지 않도록 자주 물을 공급해 주어야 합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강수량이 아주 작습니다.
땅이 건조한 관계로 비가 오면 대부분 땅 속으로 스며들기 때문에 물이 아주 귀한 곳입니다.
물을 찾는 것이 생존을 판가름하는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성경에 물 때문에 싸움이 일어난 경우가 여러 곳에 나타납니다.
창 21:25절에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빼앗은 일에 관하여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책망하매”
또 창 26:20절에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이르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으로 말미암아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이 구절을 보아도 물로 인한 다툼이 많았던 것을 보여줍니다.
우물의 이름인 “에섹”은 ‘다툼’ 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은 양들인 우리에게 만족과 안식을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를 끊임없이 안전한 물가로 인도하여 생수를 먹여 주십니다.
☛ 3절입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3절의 하나님은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는 분” 입니다.
영혼이라는 단어가 구약성경에 755회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편에서만 144회가 등장합니다. 영혼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시 6:4절,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시 22:20절,
“내 생명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영혼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말씀합니다.
눅 12:20절,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
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혼을 소생케 한다 말씀합니다.
시 19:7절,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 4절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4절의 하나님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함께하시는 분” 입니다.
양은 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전혀 없는 온순한 동물입니다.
목자는 야생동물이나 도둑으로부터 양을 안전하게 보호해야만 합니다.
목자는 어디를 가든 지팡이를 두 개 가지고 다녔습니다.
2m가량 되는 기다란 지팡이가 하나 있습니다.
제 키가 1m 73cm니까 저보다 30cm 정도 더 긴 막대기입니다. 이 막대기는 무리를 이탈하여 딴
방향으로 가는 양을 돌아오게 하는데 사용합니다.
지팡이 끝이 고부라져 있어 양의 목에 지팡이를 걸어서 당기는 것입니다.
또 구덩이에 빠진 양의 목을 걸어서 끌어 올리는데도 사용합니다.
또 하나, 70cm 정도 되는 작은 막대기는 허리춤에 차고 다닙니다.
이 막대기의 끝에는 못과 같은 날카로운 금속이나 돌칼이 달려 있습니다.
이 작은 막대기는 맹수가 양들을 향하여 달려들 때 물리치는 무기로 사용합니다. 두 개의 지팡이는
말하자면 현대의 군인들이 한 손에는 소총을 들고 허리에는 권총을 차고 있는 그런 모습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지팡이는 하나님의 권위와 보호를 상징합니다.
출 4:20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모세가 그의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어떤 상황에서도 끝까지 자기의 양들을 지키는 것이 선한목자입니다.
요 10:11절에는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선한목자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기꺼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 5절입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5절의 하나님은 “원수의 목전에서 내 편이 되시는 분” 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알고 내 이름을 불러 주십니다.
[[ 목자들은 여럿이 같은 지역에서 목축을 할 때가 있습니다.
밤이 되면 한 울타리에 모든 양떼를 넣고 돌아가면서 날이 새도록 지킵니다.
군대에서 불침번을 서듯이 도적이나 맹수들의 공격에 대비합니다.
밤을 지내고 난후 아침에 문을 열고 자기의 양들을 불러냅니다.
양들에게는 목자가 각각에게 붙여준 이름이 있다고 합니다.
목자가 양의 이름을 부르면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주인 목자에게로 갑니다. 양들이 목자의 음성을
안다니 신기하지 않습니까? ]]
창 30장에 보면 야곱이 삼촌 라반의 양떼를 칠 때에도 양의 이름이 나옵니다.
“아롱진 양, 점 있는 양, 검은 양”
[[ 서부 개척시대의 영화 중에 “늑대와 춤을” 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말이나 양, 개 등 모든 짐승에게 인디언들이 이름을 붙여줍니다.
주인공인 미국 남자가 사랑하는 인디언 처녀에게 <늑대와 춤을> 이라는 이름을 붙여 줍니다.
“당신이 늑대처럼 사납지만 그래도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집에 가셔서 아내에게, 남편에게 어울릴 것 같은 이름을 하나씩 붙여 보십
시오. 아마 희얀하고 얄궂은 이름이 다 나올 것입니다. ]]
⇨ 요 10:1~5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또 5절 말씀에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신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머리에 기름을 붓는 의식은 왕의 대관식이나 대제사장의 임관식에서
행하여지던 의식의 한 부분입니다.
기름은 향이 좋은 올리브 기름을 사용하였습니다.
눅 7:46절에는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은 여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여자를 칭찬하고 있습니다.
“기름을 바른다”는 것은 “살찌게 한다, 생기를 회복하게 한다” 라는 뜻이 내포 되어 있습니다.
양이 무언엔가 놀라 떨면 목자는 기름을 손에 묻혀 양의 목덜미에 바르며 살살 문질러 줍니다.
그러면 양이 진정을 하면서 생기를 찾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말씀으로 회복시켜주십니다. 그리고 다시 살리십니다.
☛ 마지막, 6절입니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6절의 하나님은 “평생토록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보살펴 주시는 분”
입니다. 그런 분이기 때문에 “여호와의 집에 영원토록 살 것” 이라고 노래하는 것입니다.
나의 인생이 끝나는 그 날까지 하나님의 보호아래 있겠다는 다짐입니다. 이 얼마나 위대한 신앙고백
입니까?
성도 여러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만족함을 누리는 양은 절대 목자를 떠나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있습니다.
목자를 떠난 양은 결코 만족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목자를 떠난 양은 안전을 보장 받을 수가 없습니다.
목자이신 예수님 곁을 떠나지 마시기를 축복합니다.
요 10:16절에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 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밖의 양이 되지 마시기를 축복합니다.
이 시편 23편을 힘들고 외로울 때마다 읽으십시오. 묵상하십시오.
마음 깊은 곳에서 말할 수 없는 기쁨이 넘쳐 날 것입니다.
현재의 고난에서 새롭게 일어설 용기가 샘솟듯 솟아날 것입니다.
히 11:1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보이지 않는 하나님,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보이는 것처럼 바라보십시오.
이 시간 주님 앞에 세상 무거운 짐 다 내려놓으시기를 바랍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주님의 음성 듣기를 바랍니다.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라는 주님의 음성 듣기를 원합니다.
[[ 시편 23편 미국 버지니아 주의 찰스 알렌 콜라(Charles Allen Colla) 라는 의사가 지은 “심령의 치료자
하나님” 라는 놀라운 보고서가 있습니다.
육신이 병든 자에게 매일 약을 먹이듯이 시편 23편을 하루에 5번씩 읽고 묵상하게 했더니 육체의 회복
속도가 엄청나게 빨랐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하루 5번씩만 읽어 보십시오. 큰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
말씀을 맺습니다.
혹시 인생의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있지는 않습니까?
가혹한 질병으로 절망과 죽음의 불안에 떨고 있지는 않습니까?
물질적인 가난으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서 울부짖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도 여러분, ‘인생의 지팡이’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우리 인생의 방주가 되시는 하나님께 우리를 맡겨야 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오라고 초청하시는 예수님의 품에 안기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안식을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예수님 안에서 믿음대로 다 이루어 질 것입니다.
하늘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 모두 목자이신 주님께 붙어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