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에 의로운 네트웍 형성을 위해(장수영)
우리나라에 의로운 네트웍 형성을 위해
장수영(성토모 부산지부 대표)
성토모 부산지부를 처음 시작하게 된 동력은 부산 영도구에 위치한 남성교회에서 지인들과 함께 드린 통일 318기도회를 통해서였습니다. 통일 318기도회의 대표적인 슬로건중의 하나는 우리나라에 의로운 네트웍을 형성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초점을 두고 기도했던 기억이 요즘 부쩍 자주 떠올려 지게 됩니다.
그런데, 지난주부터 수능 입시 부정 사건이 나라전체를 휘어감고 있는 총제적인 부패를 바라보며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 나라의 장래를 짊어지고 가야할 아이들이 기성세대의 더러운 권모와 술수, 정치적인 조작, 목적을 위해 부정한 수단이라도 한번 올인(작년에 방영했던 도박 드라마 제목과 같은)해서 고지를 달성하고 보자는 식의 삶의 방식을 그대로 모방했다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른바 고지론(성장을 통한 축복,엘리트 주의등.)은 한국의 메이저 교회의 단골 강론 메뉴가 아니었는지요?
게다가 그동안 우리나라가 IT(첨단산업, 그중에 (이동통신 단말기 만드는 기술)강국임을 또 얼마나 자랑해 왔는지요? 인터넷 강국이라며 정보 고속도로의 구축규모가 국가 경쟁력에서 세계수위를 달리고 있다고 자랑해 왔는데,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음란과 거짓, 죽음의 영이 도사리고 있는 접속망을 끊임없이 헤매는 영혼들의 잔치마당이 아닌가요? 이 거짓의 영이 이제 이 나라의 장래를 좀먹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할 의로운 네트웍의 핵심은 거룩과 나눔, 사랑, 그리고 공의가 현실사회와 가상공간에서 확산되어 거짓과 음란, 폭력, 죽음의 영이 유·무선 통신망을 통해 더 이상 설 자리를 잃도록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선 이 일을 위해 성토모에서 지속적으로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점령해야 할 땅은 지면과 바다, 하늘뿐만 아니라 가상공간과 전파영역까지 아우르는 포괄적인 개념의 그것으로 확대해서 이루어나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우선 저부터 다시 기도를 시작하겠습니다. 함께 기도하시지요.
■ 금식을 선포하며(김상연, 백요셉)
금식을 선포하며
김상연(성토모 영성위원장)
백요셉(성토모 영성위원회 총무)
“그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마태복음 4장)
예수님께서 금식기도를 하신 후에 그는 사단을 이기시고 그의 사역은 성공하였습니다. 그가 어떻게 사단을 이기셨는지, 어떻게 사역을 성공적으로 감당하셨는지는 여러분 모두들 성경에서 살펴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성공과 승리가 있기 전 그는 광야에서 40일간 밤낮으로 금식하며 기도하셨습니다.
이 예수께서 밟으셨던 길이 우리 성토모가 또한 밟아야 할 길이라고 생각됩니다. 금식하여 사단을 짓밟고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이 땅을 하나님의 나라로 일구어야 하는 것입니다.
금식기도는 여러분의 자원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먼저 한분이 한달에 금식할 횟수를 헌신하십시오. 가령 두 번이라고 한다면 한달에 이틀, 즉 하루 한 끼씩 이틀을 금식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금식날짜에는 주일도 포함시킬 것입니다. 각자가 원하는 요일이나 피하는 요일이 있으면 말씀하여 주십시오. 최대한 의견을 반영하여서 금식기도표를 작성하겠습니다.
가능하면 이번 주 금요일까지 백요셉 형제에게 알려주십시오. 13(월)일부터 연합금식기도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백요셉 : way7942@hanmail.net 019-656-2406
■ 수능 부정 행위와 벌거벗은 대한민국(이태경, 오마이뉴스)
수능 부정 행위와 벌거벗은 대한민국
- 한국교육의 본질이 폭로되다 -
이태경(성토모 회원)
출처: <오마이뉴스>
수능시험 부정행위가 전국 도처에서 일어났다는 증거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물론 대학입시에서 부정행위가 저질러진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대학입시에서 저질러진 부정행위의 역사는 대학입시제도가 예비고사, 학력고사, 수능시험 등으로 변해온 세월만큼이나 오래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해마다 사용하는 도구와 수법은 달라졌을지라도 좋은 점수를 받아야 한다는 부정행위의 본디 목적은 조금의 변함도 없다.
이번 부정행위를 둘러싸고 각계의 의견이 분분하다. 한국사회의 도덕성 타락을 개탄하는 유명 목사님의 격정토로에서부터 휴대폰을 통한 부정행위를 근절하기 위해서 전파차단기를 설치하자는 의견까지 다양한 견해와 입장들이 난무하는 중이다. 마치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춘추전국시대로 돌아간 듯한 착각마저 일게 한다.
아쉬운 것은 이번 수능부정행위를 바라보는 시선과 입장들이 지나치게 표피적이고 미시적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부정행위를 저지른 수험생들과 이에 가담한 사람들은 도덕적 비난을 감수해야 마땅하고 필요하다면 형사처벌까지 받아야 하겠지만, 모든 사태의 근본원인을 개인의 도덕적 결함으로 환원한다면 이번 사태가 주는 사회적·정치적 교훈을 간과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수능부정행위의 본질은 과연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왜 일부수험생들이 부정행위를 하면서까지 높은 점수를 받으려 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누구나 알다시피 이들이 높은 점수를 받으려고 한 까닭은 높은 점수가 세칭 명문대에 입학하는 것을 보장해 주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이들이 그토록 명문대에 집착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더 나아가서 한국사회에서 교육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들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이번 수능부정행위의 본질을 파헤치는 작업과도 맥을 같이 한다.
사전적 의미에서 교육의 정의는 1) 지식을 가르치고 품성과 체력을 기름 2) 성숙하지 못한 사람의 심신을 발육시키기 위하여 일정한 기간 동안 계획적·조직적으로 행하는 교수적(敎授的) 행동(가정교육, 학교 교육, 사회 교육 등이 있음)이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한국사회에서 대학입시로 상징되는 교육은 사전적 의미와는 아주 거리가 멀고 심지어 그와는 반대말처럼 읽히기 일쑤다.
한국사회에서 교육이란, 무엇보다 한 개인과 그 개인이 속한 가족이 머물 계급을 결정짓는 일종의 생존게임이다. 상황이 더 고약한 것은 이 게임에서 패배한 자들에게는 재기의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잊지 마라! 이 게임은 단판 승부다!
한국사회에서 서울대학교를 나왔다는 것은 단순히 대한민국 최고 명문대학을 졸업했다는 사실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 사회의 주류(main current)에 편입할 수 있는 든든한 발판을 마련하였다는 의미이고, 은폐된 카스트 제도의 맨 위 계급에 속할 자격이 부여되었다는 사실을 정확히 가리킨다.
오래 전부터 한국사회는 이른바 'SKY'출신이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사회적 부와 권력과 담론 등을 그들 사이에 교환하는 구조로 고착되어 왔으며, 이러한 구조는 더욱 더 공고화 되어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른바 '학력 피라미드'의 정점에 서울대가 위치하고 있고, 그 밑으로 많은 대학들이 서열화 되어 있으며, '학력 피라미드'의 밑바닥에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이 사회의 대다수 사람들이 위치하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출신학교가 어디냐에 따라서 한 개인과 그 개인이 속한 가족의 사회적 운명이 거의 결정되는 사회가 바로 대한민국인 것이다.
이러한 사정을 모를 리 없는 대다수의 수험생들과 부모들은 대학입시를 앞두고 흡사 전투에 참가하는 병사의 심정이 되는 것이 당연하며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해 고액과외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런 방법조차 여의치 않을 때 사용되는 최후의 방법이 최근 불거지고 있는 다양한 행태의 부정행위인 것이다.
대학입시에서 승리한 자에게 사회적 부와 권력이 독점되고 있는 사회적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는 한 명문대 입학을 위한 건곤일척의 승부는 계속될 것이고, 이를 둘러싼 추문들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개인의 능력과 업적이 아니라 그의 출신학교가 그의 사회적 지위와 가치를 평가하는 척도가 되는 시스템을 바꾸지 못한다면, 수능부정행위는 더욱 진화된 행태로 탈바꿈을 거듭할 것이다.
이번 수능부정행위는 교육이 본래의 기능에서 일탈하여 부와 권력을 합법적으로 세습하는 도구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대한민국의 벌거벗은 알몸을 드러내주는 사건이라고 표현해도 지나침이 없을 듯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이번 사건이 불미스러운 일임에 틀림없지만,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한국교육이 직면하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긍정적 부면도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한 번 상상해보자! 만약 공장에서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손노동자들-물론 이들은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다-이 적정한 수준의 경제적 보상과 사회적 평가를 받는 사회가 도래한다면 대학 졸업장이 주는 매력은 한층 떨어질 것이고 당연히 대학입시와 관련된 여러 병폐들은 눈에 띄게 해소되지 않을까?
대학졸업장이 사람구실의 징표가 아닐 때 비로소 아이들은 공화국 시민의 덕성을 배울 것이고 자신들이 가진 소질과 개성에 따른 교육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결국 난마(亂麻)처럼 얽힌 '교육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근본적인 해법은 교육에 있지 않고 정치에 있음을 알게 된다. 정치는 사회적 부와 권력을 권위적으로 분배하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한국교육이 봉착한 문제의 근저에는 교육문제의 해법은 교육부문에서 찾아야 한다는 그릇된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교육은 교육관료들과 교육가들에게만 맡겨두기에는 너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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