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고전 우파니샤드에 따르면 명상이나 요가와 같은 수행을 통해 생식기와 항문 사이에 잠재된 쿤달리니를 각성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쿤달리니가 깨어나면 소위 일곱 개의 차크라(일종의 혈도)를 차례로 경유하여 마침내 우주의식과의 합일을 이룬다고 합니다. 달리 표현하면, 쿤타샘에 잠들어 있는 뱀이 깨어나서 차크라들을 따라 타고 올라가서 마침내 정수리를 뚫고 나가면 완전한 각성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쿤달리니 각성의 과정에서 다양한 현상들이 수반됩니다. 대표적으로 마치 성관계를 가질 때와 같은 황홀경에 빠져든다고 합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영안이 열리면서 다양한 환상들을 보게 된다고 합니다. 신체적인 반응으로는 머리가 좌우로 마구 흔들리거나 몸에 다양한 형태의 경련 및 진동이 발생합니다. 간질병 환자들이 발작을 일으키듯 제자리에 쓰러져서 진저리를 치기도 합니다. 정신나간 사람처럼 발작적으로 웃어대기도 하며 온갖 기이한 괴성을 내지르거나 다양한 동물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쿤달리니 각성이 심화되면 당사자는 실제로 공중부양과 같은 기이한 초능력을 경험하며 더 나아가 자의로 유체이탈을 행할 수도 있게 된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쿤달리니 각성은, 쉽게 말해, 귀신을 합법적으로 인간의 존재 안으로 불러들이는 접신법(接神法)의 열매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귀신이라고 하여 인간을 마음대로 점령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빙의에도 나름대로의 법칙과 절차가 있습니다. 일반적인 경우 귀신은 자유의지를 가진 사람들의 영까지는 쉽사리 장악하지 못합니다. 대체적으로 육이나 혼에 기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쿤달리니 명상(요가)법은 귀신을 향해 처음부터 대놓고 영과 혼과 육까지 장악하라고 대문을 활짝 열어주는 것과 같습니다.
쿤달리니 각성에 있어서 회음부로부터 정수리까지 뜨거운 기운이 치솟아오르는 과정은 귀신이 당사자의 영과 혼과 육을 점령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귀신도 사람의 영과 혼과 육을 제대로 장악하려면 상당히 용을 써야 합니다. 그러나 만약 숙주가 될 사람이 쿤달리니 명상이나 요가로 도와주면 이런 과정이 무척 용이해집니다. 이러한 쿤달리니 접신법은, 이름만 달리한 채로 티베트 불교나 중국의 기공, 부두교 등 세계 각지의 주술적 종교활동에서 폭넓게 발견되는 실정입니다. 그런데 충격적이게도 오늘날에는 교회 안에서까지 성령체험을 빙자한 쿤달리니 접신이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습니다.
이른바, 토론토 블레싱 이후로 이런 식의 쿤달리니 각성 현상이 성령체험을 빙자하여 전 세계로 확산되어 왔습니다. 그 당시, 집회 참석자들은 곳곳에서 넘어져서 바닥을 나뒹굴거나 실신했습니다. 술주정뱅이처럼 흐느적거렸고 발작하듯이 웃어대고 귀곡성을 연상시키는 괴성이나 기괴한 짐승소리를 토해냈습니다. 또한 간질병 환자들처럼 경련을 일으키고 몸을 사시나무처럼 흔들어댔습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퍼져가고 있습니다. 빈야드 운동권의 집회에서도 토론토 블레싱 당시와 동일한 현상들이 일상적으로 일어납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들은 전술한 것처럼 쿤달리니 각성에서 나타나는 현상들과 매우 흡사합니다. 하지만 빈야드 운동에서는 이런 현상들을 성령체험의 일종으로 간주하여 정당화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습니다.
위 영상을 통해 확인하셨듯이 이런 현상들의 상당 부분은 성령체험이 아니라 귀신들림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명백하게 비성경적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술주정을 하는 것 같은 흐느적거림은 결코 성령충만에 따른 현상이 아닙니다. 성령충만을 술취함에 비유한 내용이 성경에 언급되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들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 것을 사실적으로 기록한 대목일 뿐입니다. 더군다나, 이방인들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게 한 광경은 술취해서 흐느적거리는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느닷없이 터져 나오는 방언기도를 듣고서 놀란 마음을 그렇게 표현했을 뿐입니다(행 2:1-13). 술 취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성경에 기록하신 성령님께서,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는 가르침을 성경에 기록하신 성령님께서 술주정을 연상시키는 현상을 주실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고전 14:33).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고전 14:40).
“…너희가 질서 있게 행함과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이 굳건한 것을 기쁘게 봄이라”(골 2:5).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게으르게 행하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살후 3:6).
하나님은 질서께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께서는 집회현장에서 그렇게 난잡한 현상을 일으키시지 않습니다. 그런 현상들은 결코 질서 있는 모습이 아닙니다. 결코 덕스럽거나 은혜로운 모습도 아니며 오히려 성도들로 하여금 혼란과 의구심, 혐오감만을 유발할 뿐입니다. 이는 마치 사탄숭배자들의 록콘서트장에서나 있을 법한 집단적 귀신들림을 방불케 합니다. 빈야드/늦은비/신사도 사역자들의 다수가 종교다원주의적이고 종교혼합주의적인 설교를 합니다. 또한 그 열매는 회개와 성결이 아니라 방종과 방탕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23).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가운데 마지막 열매는 절제입니다. 물론 모든 열매는 가치 있고 소중하지만 절제가 마지막에 언급된 데에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이런 순서에는 신앙생활과 사역이 절제라는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하지만 빈야드/늦은비/신사도 운동권의 많은 집회들은 그야말로 무절제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역동성으로 포장하지만 덕을 세우지 못하는 역동성은 단지 방종일 뿐입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고전 10:23).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고전 14:26).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롬 14:19).
때때로 극단적인 감정의 분출 현상이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 있을지라도 의구심과 혼란 및 혐오감을 유발하는 현상들은 결코 공개적으로 격려하고 조장할 사안이 아닙니다. 저도 예수님께서 다른 모양으로 오실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막 16:12). 성령님께서 반드시 우리의 제한된 사고의 틀 안에서 행하시지 않음도 인정합니다(살전 5:19).
하지만 그 역시도 어디까지나 성경적인 진리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비성경과 초성경은 다른 것입니다. 그런 현상들은 초성경적인 것이 아니라 비성경인 것입니다. 물론 축사사역의 현장에서는 혐오스럽고 괴상한 현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조차 적어도 그런 현상 자체는 성령님으로 인한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의 권능을 견디지 못한 귀신이 도망가면서 괴기스러운 현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저가 땅에 엎드려져 굴며 거품을 흘리더라”(막 9:20).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막 9:26).
인용한 말씀만 제대로 이해해도 빈야드 운동권 집회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을 어렵지 않게 분별할 수 있습니다. 위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귀신은 사람들을 땅으로 쓰러뜨리고 거품을 물게 만듭니다. 소리를 지르게 만들고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만들며 때로는 죽은 것처럼 실신시키기도 합니다. 뭔가 연상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빈야드 운동권 집회현장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나는 현상들과 동일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주제가 축사사역이 아니라 성령세례라는 데에 있습니다. 귀신을 쫓아낼 때 불가피하게 동반되는 현상이 아니라 성령체험이라는 미명하여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현상이라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즉, 과거의 은사사역이 정말로 귀신을 쫓아내는 사역이었다면 빈야드/늦은비/신사도 운동권에서 진행하는 다수의 은사사역(?)은 귀신을 불러들이는 사역입니다. 귀신이 나갈 때 방금 언급된 현상들을 일으키지만 들어올 때도 동일한 현상들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빈야드 운동권 집회는 아예 귀신들림을 사모하고 귀신들림을 추구하는 집회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집회에서는 성경적인 용어로 채색된 쿤달리니 각성법이 성경적인 용어로 고스란히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쿤달리니 각성법이란, 간단히 말해, 귀신에게 자신의 자유의지를 양도하는 방법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토론토에서의 해프닝은 실제로는 축복이 아니라 저주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릅니다. 건전한 은사주의 진영 안으로 힌두교의 뉴에이지 귀신들이 침투하는 대문을 활짝 열어준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토론토 해프닝이 빈야드/늦은비/신사도 운동이 발흥하는 요람이 되었으며 전 세계로 퍼져나가서 은사주의 진영을 급격하게 오염시켰습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전 세계 대부분의 은사주의 진영이 소위 '제3의 물결'이라 불리는 빈야드/늦은비/신사도 운동에 휘말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토론토 해프닝의 강물이 전 세계로 흘러나가서 수천여 개의 교회에서 성령의 역사를 빙자한 쿤달리니 귀신들림의 현상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신실한 복음주의자들은 역으로 은사중단론에 빠져버리고 신실한 은사주의자들도 혼탁해져버립니다. 무엇보다 이따위 거짓된 영성운동 때문에 참된 은사사역까지 덩달아 매도되고 있습니다. 토론토 해프닝의 강물이 그리스도의 몸을 갈가리 찢어놓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빈야드/늦은비/신사도 운동에 참여하는 분들의 다수는 신실한 분들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완벽하게 위장하고 있는 주동자들에 의해 미혹되었을 뿐일 겁니다. 설령 그렇더라도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멋모르고 휘둘린 분들은 이제라도 정신 차리고 당장 거기서 벗어나야 합니다.
가끔씩 집중적인 기도를 위해 기도원을 방문해보면 정상적인 방언 못지않게 귀신방언을 하는 자들도 많음을 목격합니다. 요즘 들어 그런 사례가 점점 더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어떤 교회는 귀신방언을 하는 자들이 대다수인 경우도 있습니다. 미국교회는 특히 심각합니다. 은사주의 진영이 이렇듯 혼탁해지는 결정적인 이유는 소위 ‘제3의 물결’의 침투 때문입니다. 한편으로는 그동안 열린 마음으로 은사주의 진영과의 교류를 시도하던 복음주의 진영의 많은 크리스천들이 이러한 혼탁함에 제대로 데여서인지 아예 마음의 문을 쾅 닫아버리고 다시금 은사중단론적인 태도로 퇴행해버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은사중단론에 영향을 받은 복음주의자들은 ‘제3의 물결’을 은사주의 진영 전체와 동일시하여 도매금으로 매도하며 비난하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제3의 물결’은 참된 은사주의 진영의 가장 큰 적입니다. 은사주의의 요람인 1907년도의 아주사부흥은 하나님께서 주신 부흥이 분명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토론토 블레싱(?)은 매우 의심스럽습니다. 물론 토론토 블레싱(?)에서 성령님의 역사가 전혀 없었다고 단정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그것은 부흥이 아니라 뉴에이지적 해프닝이었습니다.
토론토 해프닝이야말로 아주사부흥을 기점으로 활성화되어 급격하게 성장해온 은사주의 진영이 송두리째 흔들릴 정도로 변질시킨 주범이라고 생각합니다. 토론토 해프닝으로부터 시작된 제3의 물결에서 나타나는 모든 현상이 마귀 역사라고 매도하지는 않겠습니다. 그 안에도 성령님으로 인한 역사들도 적지 않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양신 역사(성령님의 역사와 악령의 역사가 혼재되는 현상)가 너무 심각하다는 사실입니다.
복음주의자로서 마음이 열려서 성령님의 건전한 은사사역을 받아들이려던 분들이 이 혼탁한 제3의 물결에 제대로 당하여 다시금 은사중단론적 사고에 사로잡히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예컨대, 제3의 물결 운동권 리더들이 사역하는 단체에 소속된 평신도들의 상당수는 귀신방언을 합니다. 그런데 만일 어떤 신실한 복음주의 크리스천이 거기에 참여했다가 그 광경을 목격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마도 은사주의 진영의 모든 크리스천들이 귀신방언을 하고 있는 것으로 여기고 방언의 은사 자체를 거부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필이면 귀신방언 밀집지대에 우연히 머물렀을 뿐이지만 이런 맥락은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심각한 오해에 빠져들게 되는 것입니다. 건전한 은사주의 진영의 성도들 대부분은 성령님으로 인한 정상적인 방언기도를 드리는데도 방언의 은사 자체를 터부시하게 되는 겁니다. 이에 따라 정상적인 방언기도를 드리는 신실한 크리스천들조차도 혼탁한 영성운동가들과 도매금으로 취급하고 배격하게 되는 겁니다. 쉽게 말해, 표본 자체의 선정이 잘못된 것뿐인데도 성령님께서 주시는 모든 신령한 은사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방언의 은사조차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은사중단론의 미혹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 역시 또 다른 극단입니다. 거짓된 영성운동이 가장 나쁘지만 은사중단론 역시 기독교 신앙의 한쪽 날개를 원천적으로 꺾어버리는 심각한 미혹임을 자각해야 합니다. 이러한 은사중단론을 타파하기 위해서라도 거짓되고 사악한 영성운동가들을 그리스도의 몸 밖으로 축출해야 합니다. 이제 은사주의 진영의 신실한 크리스천들은 제3의 물결의 오염된 강물을 마셔서는 안 됩니다. 또한 복음주의 진영에서는 이 오염된 물결 때문에 은사주의 진영의 신실한 성도들까지 덩달아 매도해서는 안 됩니다. 지나친 조심증 때문에 정반대 극단인 비성경적인 은사중단론으로 퇴행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를 모두 배격하여 순수한 개신교 복음주의 진영과 순주한 개신교 은사주의 진영을 모두 회복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이 두 진영이 진정으로 연합해야 합니다. 그래서 세계종교통합 및 세계단일정부를 추구하는 바티칸과 맞서 싸워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일단 두 진영 사이의 오해부터 풀어야 합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침공을 받아 카톨릭을 받아들인 라틴 아메리카는 수백 년 동안 오직 천주교 신앙이 사람들의 의식과 행동을 지배해왔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남미에서도 천주교의 아성에 위협을 가할 정도로 개신교인이 급속하게 불어난 적이 있습니다. 남미는 1960년대에 1천 5백만 명의 개신교인이 있는 것으로 타임지에 의해 추산되었으나 오늘날 4천만 명으로 늘어났으며 이와 같은 수치는 전체 인구의 10%에 해당하는 수치입니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천주교를 물리치고 개신교 열풍을 일으킨 장본인은 아주사 부흥 이후로 활성화된 은사주의 진영입니다. 이들은 '제3의 물결'에 오염되지 않은 참된 은사주의 진영이었으며, 이 가운데 많은 치아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즉, 치아의 기적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성령님으로 인한 치아의 기적이 있는가 하면 애굽의 마법사들이 사용한 오컬트적 신비력에 따른 치아의 기적도 있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계복음주의개혁운동(WEC) 대표 패트릭 존스톤은 지난 25년간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개신교인이 3배 가까이 늘었으며 많은 곳은 여섯 배가 늘어난 곳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러한 추세라면 천주교의 전성시대가 끝나고 대표적인 개신교 국가들이 될 것으로 내다보면서, 16세기 당시 유럽에 불어 닥쳤던 것보다 더 강한 개신교 바람이 라틴 아메리카에서 불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과테말라의 경우, 이미 30%가 개신교 신자로서 최초로 기독교인 대통령이 선출되기도 했으며 브라질에서는 연간 60만 명의 로마교 신자들이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황 바오로 2세는 1991년 브라질을 방문했을 때, 이렇게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는 복음적인 개신교를 향해 ‘사이비 종교집단’이라고 비난한 바 있습니다. [유석근, 『밝혀진 적그리스도의 정체』, 374-375.]
그 당시, 요한 바오로 2세는 “전통적인 로마가톨릭 국가 내에서 카톨릭 복음 전도 캠페인을 하여 경쟁적 종교의 급격한 팽창을 저지하라.”며 브라질의 감독들을 격려하였고, “지난 몇 년 동안에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서뿐만 아니라 브라질에서의 폭발적인 팽창은 당신들에게 심각한 대상이 되어야만 한다.”고 감독들을 다그쳤습니다. [LA 타임즈 1991년 10월 14일자 보도내용, 유석근, op.cit., 375에서 재인용.]
이처럼 초창기 남아메리카 지역에서 발생한 은사주의 진영의 부흥은 수많은 사람들을 천주교에서 개신교로 개종시켰습니다. 즉, 원래의 은사주의 진영은 종교개혁자들의 전통 그대로 반카톨릭적입니다. 그런데 피터 와그너 박사에 의한 신사도운동이 은사주의 진영을 급격하게 잠식해 들어간 이후 남아메리카에서는 다시금 천주교가 살아나고 있습니다. 신사도운동 이전의 은사주의 운동은 천주교 진영에 실로 심대한 타격을 입혔던 반면, 신사도운동이 은사주의 진영을 장악한 이후로는 천주교가 재차 힘을 회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천주교 안에서의 은사운동의 실체가 무엇일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그것은 '마리아 여신숭배'를 위한 뉴에이지 운동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천주교 안에서 소위 성령세례를 받았다는 신도들의 다수가 예수님이 아니라 마리아를 이전보다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열매를 통해 사역을 평가할 수 있습니다. 마리아 여신 숭배를 더욱 강화시키는 성령세례는, 실상은 광명한 천사로 둔갑한 악령이 주는 세례인 것입니다.
물론 천주교 안에서도 진짜 성령세례가 있을 수도 있으나 다수는 마리아 여신 숭배로 귀결되는 악령세례라고 간주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로마가톨릭은 유구한 세월 동안 바벨론 여신 숭배 사상의 한 변형으로 도입된 마리아를 숭배 사상을 강화하고자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상세히 설명한 바 있습니다. 오늘날의 마리아 숭배사상의 가르침들을 간단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유석근, 『밝혀진 적그리스도의 정체』, 132-134.]
“오 마리아시여,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께서 당신에게 한 이름을 주셨으니... 곧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이며,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 위에 있는 것들과 땅 아래 있는 것들로, 모든 무릎을 당신의 이름 앞에 꿇게 하실 이름이니이다.” [Alphonse de Liguory, 배규환 역, 『성모마리아의 영광』(대전: 한빛출판사, 1992), 260, 유석근, op.cit., 132에서 재인용.]
“우리의 구원은 마리아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마리아에 의해 보호받는 자가 구원을 받게 될 것이며, 보호를 받지 못하는 자가 구원을 잃게 될 것입니다.” [Alphonse de Liguory, 배규환 역, 『성모마리아의 영광』, 169-170, Ibid., 132에서 재인용.]
“하늘에 계신 성모 마리아여! 우리에게 현 변호인이 계시오니 그분이 바로 당신이니이다.” [Alphonse de Liguory, 배규환 역, 『성모마리아의 영광』, 168, 유석근, op.cit., 133에서 재인용.]
“마리아를 공경하지 않는 자는 구원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Alphonse de Liguory, 배규환 역, 『성모마리아의 영광』, 215, Ibid., 133에서 재인용.]
“동정녀 마리아는 천상영광으로 승천하셨다.” [교황 교령(1950년 11월 1일)]
▲교황과 천주교도들의 마리아 여신 숭배 모습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심해지는 천주교의 마리아 숭배 행위에 대해 다음처럼 성토한 바 있습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편집부 역, 『로마카톨릭 사상평가』(서울: 안티오크, 1994), 30-31.]
“이 부분은 우리를 가장 경악스럽게 하는 터무니없는 궤변 중의 하나이다. 로마가톨릭주의의 마리아 숭배가 놀라울 정도로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카톨릭에서는 마리아는 ‘하늘의 여왕’으로 일컬어지며, 그녀는 우리가 일차적으로 찾아가야 할 대상이 되고 있다. 많은 성당들 가운데서 성모 마리아 상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자리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마리아에 의해 가려져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여기에 대해 그들은 이렇게 답변한다. ‘인간적인 모습을 지닌 성모 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보다 훨씬 사랑스럽고 부드럽게 다가오며, 예수 그리스도는 위대하고 강력하며 권위 있으신 반면 너무 엄격하십니다.’ ― 이것이 그들의 가르침이며, 마리아 숭배에 대한 설명의 전부이다 ― 예수 그리스도는 너무 엄격하기에 우리는 그에게 직접적으로 다가갈 수가 없다. 하지만 다행히도 성모 마리아가 거기에 함께 계시는데 그녀는 사랑이 넘치며 더욱이 그녀는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시기 때문에 예수님께 영향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를 대신해서 중보해 주시도록 성모 마리아에게 기도를 드린다는 것이다. 성모 마리아는 바로 우리 영혼의 구주이신 하나님의 아드님과 우리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로마가톨릭은 점증적으로 마리아의 권능에 뭔가를 ‘첨가’해 왔다. 카톨릭 교회는 1854년에 마리아의 ‘무염시태설’을 교리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마리아의 무염시태설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 없이 태어나셨듯이, 성모 마리아 또한 그렇게 태어나셨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마리아의 몽소승천’의 교리를 발표했는데, 그 의미는 마리아가 여타의 일반인들과는 달리 결코 죽지 않았고 묻히지도 않았으며 그녀의 아드님처럼 문자 그대로 하늘로 승천하셨다는 것이다. 이같은 가르침은 여러분도 알다시피 성모 마리아의 이미지를 세워주며, 그녀를 두드러지게 부각시킴으로 그리스도 자신은 아예 시야에서 가려지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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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로이스 토마슨 박사는 바티칸을 목격한 이후 다음처럼 증언했습니다. [유석근, 『밝혀진 적그리스도의 정체』, 138.]
“바티칸을 다녀온 사람이면 누구에게라도 물어 보십시오. 나는 거기서 구역질나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유리 상자 속에 보석이 박힌 순금의 면류관이 두 개가 있습니다. 1,000달러는 족히 될 것 같았습니다. 하나는 사람의 머리 위에 올려놓기에 충분한 크기의 것이었고 또 하나는 좀 적고 그보다는 덜 귀한 것 같았습니다. 큰 것은 마리아에게 드리는 것이고 적은 것은 예수께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로마가톨릭 교회가 마리아에게 더 높은 지위를 주는 확실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천주교는 온갖 거짓말로 예수님보다 마리아에게 더 높은 지위를 부여하고 있으며 요한 바오로 2세로 인해 시작된 천주교 내의 성령쇄신운동 역시 같은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유석근, 『밝혀진 적그리스도의 정체』, 324-325.]
오늘날 천주교 사제들도 소위 ‘성령쇄신운동’이라는 것을 하는데, 이를 통해 신도들로 하여금 성령의 불을 받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천주교 은사운동 지도자들의 교훈에 의하면 성령의 세례를 받은 신도들의 특징과 열매는 하나같이 성모 마리아를 향한 신심이 더욱 심화된다고 합니다. 이것은 천주교 성령쇄신운동에 종사하는 신부나 수녀들의 공통된 가르침입니다. 물론 그러한 사상을 지닌 천주교 성령운동지도자들은 당연히 누구보다도 모범적으로 마리아를 향해 기도를 하며 그녀의 형상을 숭배합니다.
실로 이와 같은 행위는 진리의 성령께서 가장 혐오하는 비성경적인 행습이 아닙니까? 바로 이런 것이 거짓 표적입니다. 단언하건대, 마리아를 의지하고 숭배하게 하는 영은 결코 진리의 영이 아닙니다. 그 영은 예수의 영이 아니라 미혹의 영, 즉, 귀신의 영입니다. 그런 악한 영은 단호하게 거부하고 대적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사역을 하는 배교자들을 꾸짖어야 합니다.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 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그가 네게 말한 그 이적과 기사가 이루어지고 너희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따라 섬기자고 말할지라도 너는 그 선지자나 꿈 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신 13:1-3).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마 24:24).
아래는 천주교의 성령쇄신운동 지도자인 로버트 드그란디스(Robert DeGrandis) 신부가 집필한 『예언의 은혜』라는 책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그들의 은사집회에서 있었던 예언의 내용을 녹취한 글인데, 마리아에 대한 신심을 고취하는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로버트 드그란디스, 백젬마 역, 『예언의 은혜』(서울 : 성요셉출판사, 1990), 84, 유석근, op.cit., 324에서 재인용.]
“기도할 때 주님께서 예언의 선물을 통하여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 …너희가 너희 자신을 내게 바치니 내 너희를 힘차게 사용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딸 마리아가 예수를 낳아준 것처럼 너희도 성령이 너희를 감싸주어, 너희 마음을 내가 쉬는 곳으로 만들어서 마리아를 본받아 나를 세상에 줄 수 있도록 기도하여야 한다. 마리아가 이 새로운 성령강림에서 전파되고 있으니 너희는 마리아에 관하여 더 많이 말을 하여야 한다… 마리아와 성령과 베드로는 내 성령이 일으키는 새로운 물결의 일부이다.”
여기서 언급된 ‘새로운 물결’은 빈야드/늦은비/신사도 운동이 일으키는 ‘제3의 물결’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실제로 제3의 물결은 마리아 숭배만 언급하지 않았을 뿐 천주교 안에서의 성령쇄신운동과 여러모로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왠지 섬뜩한 기분이 느껴지시지 않습니까?
실제로 바티칸에서는 고도로 훈련된 예수회의 신부들을 개신교 진영의 곳곳에 침투시켜서 온갖 종류의 교란 및 파괴 공작을 벌여왔습니다. 이에 관한 역사적 증거들도 얼마든지 있거니와 오늘날에도 사정은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앞에서도 이미 살펴본 것처럼, 예수회 소속 신부로서 개신교회들을 와해시키는 데에 혁혁한 공을 세워서 초고속 승진을 했던 알베르토 리베라 신부는 회심한 다음, 양심고백을 통해 바티칸의 적나라한 실상을 여실하게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알베르토 리베라의 간증서 제1권 『거듭난 알베르토』의 내용을 살펴보면, 은사주의 개신교도들에 의해 천주교가 크게 위협받던 20세기 중후반에 바티칸이 이를 막기 위해 어떤 공작을 벌였는지 잘 나와있습니다. 그 당시, 바티칸에서는 예수회의 신부들을 은사주의 진영의 구심점이라고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성회’ 소속 교회로 대거 침투시켜서 수많은 교회들을 교란시키며 무너뜨렸습니다. 이는 초창기의 은사주의 진영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에 대한 반증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오염되고 부패한 것이었다면, 즉, 처음부터 그것이 뉴에이지 영성운동이었다면, 바티칸이 그렇게 무너뜨리려고 애쓸 리가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티칸이 사주하여 활성화시킨 뉴에이지 영성운동 때문에 은사주의 진영 전체를 매도해서는 안 됩니다.
프리메이슨이 바티칸의 하수조직이라는 사실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실제로 1983년 1월 25일 교황의 칙령에 따라 천주교 신도들이 프리메이슨에 자유롭게 가입할 수 있도록 조치했습니다. 원래는 은밀한 한통속이었으나 이제는 구태여 숨기려고 하지도 않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해진 것입니다. 바티칸과 프리메이슨은 공생관계입니다. 따라서 천주교가 왕성한 곳에는 프리메이슨도 왕성해집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은사주의 진영이 프리메이슨 커넥션으로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원래는 은사주의 진영이 복음주의 진영보다도 프리메이슨에 대해 더욱 단호하고 격렬하게 대항했었습니다.
1990년 후반 세계 최대의 은사주의 진영인 ‘하나님의 성회’ 소속 교회들은 프리메이슨을 배척하는 이유를 나열한 약 700페이지의 보고서를 배포했고 이를 통해 미국인들은 프리메이슨의 사악함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프리메이슨에 대한 미국인들의 정서는 문선명의 통일교에 대한 한국인들의 정서와 비슷합니다. 하지만 미국의 대표적인 복음주의 진영인 남침례교단은 프리메이슨에 가입하는 것을 각자의 양심에 맡겼으며, 통계에 의하면 약 35%의 남침례교인이 프리메이슨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이는 일찍부터 복음주의 진영으로 침투한 바티칸의 트로이목마인 빌리 그래함이 벌인 공작의 결과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복음주의 성향의 신실한 크리스천들에게 권면합니다. ‘제3의 물결’과 같은 뉴에이지적인 영성운동 때문에 신실한 은사주의 성도들을 무분별하게 정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안 그래도 지금 전 세계는 급속하게 바티칸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많은 언로보도 자료들을 통해 여실히 드러나듯 W.E.A까지 W.C.C.와 야합함으로써 이미 전 세계 개신교의 90%는 친카톨릭 성향으로 돌아섰습니다. 이렇듯 얼마 되지 않는 아군인데, 대적들의 반간계(이간질 교란전술)에 휘말려서 무턱대고 서로를 배척하며 분열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신실한 은사주의 크리스천들은 신실한 복음주의 크리스천의 둘도 없는 아군입니다. 앞으로 전 세계적인 배도가 본격화될 때 실로 목숨을 걸고 함께 싸워가야 할 소중한 전우란 말입니다.
특정한 사역공동체의 건전성에 대한 객관적인 진단준거는 경전으로서의 성경의 권위의 인정 여부, 종교다원주의의 수용 여부와 더불어 바티칸 커넥션(교황청과의 밀월관계) 유무를 살피는 것입니다. 빈야드/늦은비/신사도 운동권에서는 이 세 가지 모두에서 하자가 발견되었습니다. 소위, 제3의 물결의 핵심적인 주도세력들은 대체적으로 성경의 권위를 파괴하고, 종교다원주의적인 색채를 보이며, 바티칸(프리메이슨)과의 커넥션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제3의 물결 운동권이 연계하여 전체주의적 교권조직까지 구축하고 있으니 그 위험성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그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철저하게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뉴에이지 및 외계인’과 관련된 주제의 칼럼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토드 벤틀리(Todd Bentley)로 인하여 토론토 해프닝으로부터 흘러나온 세 갈래의 물줄기(빈야드/늦은비/신사도)가 전 세계 은사주의 진영을 마음껏 유린하다가 다시금 하나로 합쳐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제3의 물결 운동은 은사주의 진영 버전의 W.C.C.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바티칸이 개신교의 복음주의 진영을 집어삼키기 위해서 고안한 덫이 W.C.C.라면 제3의 물결 운동은 바티칸이 개신교의 은사주의 진영을 정복하기 위하 고안한 덫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혁신앙과 더불어 반드시 연합신앙도 견지해야 합니다. 빌리 그래함처럼 처음부터 늑대였으나 양의 탈을 쓰고 침투한 스파이가 있는가 하면 원래는 양인데 늑대의 감언이설에 미혹되어 늑대처럼 행동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 양자를 구분해야 합니다. 교묘하게 미혹하는 자인지 단순히 미혹된 자인지를 구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를테면, 처음부터 프리메이슨의 일원으로 개신교회의 파괴를 위해 침투한 자들도 있지만, 멋모르고 프리메이슨과 어울리다가 덩달아 네거티브 당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우리는 이 양자를 구분해야 합니다. 그래서 전자는 배격하고 후자는 적절하게 견책하여 진정으로 뉘우치면 다시 품에 안아야 합니다.
사탄의 1차적인 목표는 최대한 정체를 들키지 않은 상태에서 침투시킨 하수인들을 통해 직접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파괴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정체가 드러날 경우, 지나친 조심증을 유발하여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는 상황으로 몰고 가서 그리스도의 몸을 분열시키는 것입니다. 사탄의 입장에서는 전자가 가장 좋지만 후자도 좋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그리스도의 몸만 망가뜨리면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이미 그리스도의 몸의 상당 부분이 사탄의 하수인들의 손에 넘어갔음을 확인하셨을 겁니다. 우리에게는 지금 아군이 얼마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사탄의 농간에 넘어가서 분열되어서는 안 됩니다. 비록 소수일지라도 참된 복음주의자들과 참된 은사주의자들이 진정으로 연합하면 말세에 하나님의 완전하신 뜻이 이 땅에서 성취될 것입니다.
첫댓글 힌두교의 뉴에이지 종교통합운동,
빈야드/늦은비/신사도,
모두가 귀신의 역사입니다.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