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거품이 한창이던 10여년 전, 한 벤처기업인과 밤새도록 술을 마신 일이 있다.
몇 차를 거쳐 함께 쓰러진 곳이 내 집이었다.
다음 날 아침 깨질 듯한 두통과 울렁증을 참지 못하고 일어나니, 머리맡에 쪽지가 놓여 있었다.
'출근 시간이 다가와 인사도 못 드리고 먼저 일어납니다'.
와이프에게 물어보니 새벽에 나갔다고 했다.
당시 그는 '청년 재벌' 소리를 듣고 있었다.
"운이 좋았다"는 냉소적인 평가도 따랐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날 쪽지를 보면서 아주 평범한 진리를 알았다.
'이렇게 부지런하니 돈을 버는구나'.
그 후 수많은 닷컴 기업이 사라졌지만 그가 만든 기업은 지금도 건강하다.
수행 비서들에게 악명이 높았던 경제 부처 장관이 있었다.
매일 새벽 관악산을 2~3시간씩 넘어서 과천 청사로 출근했기 때문이다.
수행 비서는 보통 고역(苦役)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 장관이 획기적인 정책으로 이름을 날렸다는 얘기를 들은 일이 없다.
대신 '자기 관리를 잘하는 관료'라고 하면, 누구나 그를 떠올렸다.
그는 공무원이 오를 수 있는 최고직까지 올랐다.
밖에선 '관운(官運)'이라고 하지만, 그를 아는 사람들은 "건강한 습관이 운을 불렀다"고 말한다.
지난달 만난 일본의 한 스시(초밥) 요리사는
"새벽 6시에 생선 시장까지 12㎞씩 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말했다.
자정까지 스시를 주무르려면 체력이 기본이라는 것이다.
그는 지난 28년 동안 이런 습관을 반복했고, 앞으로 30년 동안 같은 습관을 반복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가 반복하는 또 다른 습관은 교양 학습이다.
스시를 주무르면서 손님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독서와 경험을 통해 다방면의 상식을 습득하는 것이다.
그는 "손님에게 쓸데없는 소리를 하지 않는 것도 교양"이라고 말했다.
안무가 트와일라 타프는 이런 습관을 '반(半)종교적 의식(儀式)'이라고 말했다.
늘 좋아서 하는 습관이 아니라 강제적으로 자신을 끌어가는 의식이라는 것이다.
의식을 행함으로써 만들어진다"고 했다.
"×발, 세상 × 같다. 인생 사십 넘게 살아보니 결국 제일 중요한 것은 부모 잘 만나는 것."
얼마전 '우파의 싸움닭'으로 명성을 날리던 국회의원 강용석씨가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그의 말대로 한국 사회에서 '부모 잘 만나는 것'은 특별한 혜택에 속한다.
그리고 이런 혜택이 줄어들수록 우리 사회가 건강해진다고 믿는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이라는 의견엔 의문이 든다.
기자 생활 20년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났다.
중압감에 마약을 하거나 자살한 이까지 볼 수 있었다.
반면 가난하게 태어났지만 타고난 성실함을 미덕으로 대기업 사장까지 오른 이도 많이 만났다.
그의 인생에 오히려 힘이 되고 득(得)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인생 사십 넘게 살아보니' 나는 세상이 점점 더 아리송해진다.
그런 가운데 겨우 터득한 한 가지 깨달음이 있다.
세상 이치를 떠들기에 '사십'이란 연륜은 너무 짧고 유치하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에게 내는 퀴즈다. 호화유람선이 난파했다.
아수라장 속에서 선장은 구명보트에 사람들을 태웠다.
이때 개 한 마리가 뛰어들어 비좁은 자리를 차지했다.
언젠가, 어디선가 들은 영화 얘기다.
이제 질문이다.
사람이 탈 자리를 빼앗은 이 개를 어떻게 할까.
요즘 분위기라면 답은 뻔할 거다.
개를 밀어내고 대신 사람을 태우자고.
영화 속 선장은 달랐다.
사람을 더 실으라는 승객들의 아우성을 뒤로한 채 선장은 ‘고’를 명했다.
“사람을 먹을 수는 없지요”라면서.
망망대해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표류할지 모르는 터.
이런 판에 식량을 걱정한 선장을 ‘사람’ 운운하며 탓할 수 있을까.
사람이냐, 개냐의 윤리도 중요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선장의 ‘경제’도 못지않게 중요하지 싶다.
이 얘기를 꺼내는 건 요즘 정치판 때문이다.
사람 운운하며 경제를 깡그리 무시하는 듯해서다.
여야, 다 한통속이다.
심지어 민주당은 이걸 공천 심사 기준으로 삼겠다고 했다.
“경제 가치와 사람의 가치가 충돌할 경우 어떤 선택을 할지” 물어보겠단다.
강철규 위원장은 이미 정답도 내놨다.
“경제가 인권에 우선한다는 인식이 변해야 한다”고.
하긴 새누리당이 원하는 답도 마찬가지일 게다.
경제 민주화와 재벌개혁을 강조하는 게 민주당 판박이라서다.
하지만 경제와 사람의 가치를 가르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
경제는 빵의 문제다.
먹고사는 문제를 사람의 가치가 아니라며 내팽개치는 형국이라서다.
백보 양보해 ‘표(票)퓰리즘’에 죽고 사는 정치인이 했다면
그나마 이해되겠지만, 경제학자 강철규씨가 할 얘기는 아니다.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나도 사람이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눈부신 경제성장보다 사람답게 사는 세상, 잘릴 걱정 없이 평생 일하고 임금도 더 많이 받는 세상,
양극화와 빈부격차가 없는 세상을 진실로 원한다.
재벌의 모리배 관행도 사라지고 중소기업과 ‘아름다운 동행’을 하는 모습도 보고 싶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런 세상은 절대로 거저 오지 않는다.
사람 운운하며 경제를 무시하는 나라, 뜨거운 가슴만 있고 냉철한 머리가 없는 나라는 더욱 그렇다.
그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현실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노무현 정부 때를 돌아보면 알 일이다.
그때도 부자 때리기가 일상사였다.
그래서 얻은 교훈은?
부자가 지갑을 풀어야 경제가 돌아가고, 부자가 있어야 창의와 활력이 돈다는 것이었다.
재벌이 아무리 미워도 개혁과 청산 대상으로만 삼아선 안 된다는 교훈도 그때 얻었다.
재벌 때리기는 기업 할 의욕을 사라지게 만든다.
그러면 아무리 금리를 내리고 돈을 풀어도 기업 투자가 움직이지 않는다.
5년 내내 경제가 골골하고 일자리 타령이 입에 달렸던 이유다.
우리는 그리 대단한 나라가 아니다.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15위지만 1인당 국민소득은 35위에 불과하다.
미국과 유럽이 재채기하면 감기 걸리고,
세계 경제가 조금만 흔들려도 외환위기의 불안에 떠는 나라다.
이대로 가면 조만간 중국 눈치 보며 사는 신세로 전락할 수도 있다.
선진국이 되려면 아직 멀었는데도 잠재성장률은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고,
경제성장률은 그런 잠재성장률에도 못 미친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망망대해 속에서 어떻게 해야 우리가 살아남을까?
나라의 덩치를 더 키우는 것이다.
지금의 독일 정도가 되면 딱 좋겠다.
세계 4~5위권 규모가 되면 미국과 유럽이 설령 감기에 걸려도 끄떡없다.
외환위기의 불안에 떨 이유도, 중국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아직은 분배나 복지보다 성장에, 사람보다 경제에 주력해야 하는 까닭이다.
고른 분배와 함께 더디 가면 어떠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세계화의 노도가 늦게 가는 자유마저 허용하지 않는다는 걸 몰라서 하는 허언(虛言)이다.
앞서지 못하면 몇 걸음 처지는 게 아니라 아예 대열에서 탈락하고 마는 세상이다.
미국의 석학으로 꼽히는 존 미어샤이머 교수가
“한국민에겐 한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고 말한 배경이다.
이런 살벌한 생존 원리 앞에서 ‘경제보다 사람을’ 외치는 정치권이 참으로 걱정이다.
‘사람보다 경제를’ 원하는 정당은 어디 없나.
김영욱 논설위원·경제전문기자
"억울 신드롬’ 대한민국 30대, 희망으로 가는 탈출구를 찾아라 "
비비 꼬인 92학번의 전설
1992년 1월21일 새벽 경기도 부천시 서울신학대학에서 황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튿날인 22일 치를 예정이었던 92학년도 학력고사 문제지가 도난당한 것이다.
결국 교육부는 후기대 입시 일정을 취소,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예비소집까지 다녀온 수십만 명의 수험생들 입장에서는 허탈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전기에 떨어진 것도 속상한 일인데 시험마저 미뤄지는 바람에 심한 마음고생을 감수해야 했다.
‘꼬인 92학번’의 전설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한 92학번 남학생은 ‘실감나게’ 군 생활을 해야 했다.
1994년 3월 남북접촉에서 튀어나온 북한 측의 ‘서울 불바다’ 발언에 이어 그해 7월9일에는 김일성이 사망했다.
온 국민이 긴장했던 시기였다.
군대는 말할 것도 없었다.
서울 올림픽이 열렸던 ‘쌍팔년(88년)’ 군번이 그러했듯 이들의 군 생활도 고달플 수밖에 없었다.
진짜 시련은 군복무를 마친 후였다.
92학번 남학생이 군복무와 대학을 마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을 때가 1998~1999년 즈음이다.
IMF 외환위기의 무지막지한 한파가 이들의 앞길을 떡하니 막아서고 있었다.
1980년 27.2%였던 대학진학률은 지난 2005년 82.1%까지 상승했다.
이러한 엄청난 변화는 주로 90년대에 발생했다.
90년대 초 30%였던 대학진학률이 90년대 말에는 60%를 넘어섰다.
92년은 10명중 8명 이상 대학에 진학하던 지금과는 상황이 달랐다.
당시 대학진학률은 34.3%. 대학 졸업장이 나름대로 값어치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졸업할 때에는 사회가 그 값어치를 인정해주지 않았다.
100만 명이 감원의 고통을 겪었던 시절이었다.
몇 해 앞서 사회에 진출한 고졸 동년배와 92학번 여학생들도 이때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풋내기에게 돌아갈 일자리는 없었다.
어렵사리 직장을 얻고 결혼을 한 후에도 92학번의 시련은 계속된다.
이번에는 집이었다.
92학번 중에는 하루가 다르게 집값이 치솟던 2004~2006년 이른바 ‘막차’를 탄 사례가 유난히 많다.
‘비비 꼬인 92학번’의 기구한 인생 역정은 이 땅에 사는 30대의 일반적인 초상이기도 하다.
1971~1980년에 태어난 한국의 30대는 우울한 성장배경을 공유하고 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대학에 입학했건만 ‘준비된 실업자’를 피하기 위해 졸업을 늦춰야 했던 세대다.
신입이 아닌 경력직이 고용시장을 좌지우지한 것도 이 즈음부터다.
이들은 1998~2000년 IMF 외환위기에 이어, 2000년대 초반 IT 버블 붕괴의 충격도 함께 경험한 세대로 꼽힌다.
‘낙타 바늘구멍’ 수준의 취업문을 뚫다 보니
1~2년씩 졸업을 고의적으로 미루거나 졸업 후에도 취업을 못한 경우가 많았다.
집에 치를 떠는 대한민국 30대 집에 치를 떠는 것도 30대가 유난히 많다.
회사로 치면 대리로 일할 때인 2003~2006년에
일생일대의 재테크를 시도했다가 낭패를 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극심한 취업경쟁의 ‘트라우마’가 “지금 집을 사지 않으면 영원히 살수 없다”는 불안심리로 연결돼
무리한 주택 구입에 나섰다는 분석도 있다.
경기도 고양시 식사지구에 4년 전 아파트를 분양받은 후 집값 추락으로
지난해 잔금을 치르지 못해 건설사와 법적분쟁을 치르고 있는 윤모 씨(39).
윤씨는 인터넷 카페에서 단체소송을 위해 회원을 모으다가
자신과 비슷한 연배의 회원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소송에 참여하는 분양자의 3분의 1이 자신과 같은 70년대 출생이었다.
대학에 진학했다면 90년대 학번이다.
윤씨가 사는 아파트 단지만 그런 게 아니다.
통계적으로 볼 때에도 30대, 90년대 학번은 집값 버블 붕괴의 최대 희생자다.
통계청 가계금융조사의 2010년 가계부채 총액을 살펴보면
30대 가구주 부채는 5632만원으로 30대 미만의 세배에 이른다.
이에 비해 자산에서 부채를 뺀 순자산 부분에서
30대는 1억5519만원을 기록하며 20대를 제외하면 최저다.
이 자료를 토대로 현대경제연구원이 분석한 ‘하우스푸어의 구조적 특성’ 보고서는
30~40대 가구주의 주택대출 부담이 가장 크게 나타난다.
30대 중 20.1%가 하우스푸어로 집계돼 연령대별로 가장 많은 분포를 나타냈다.
판교 1단지 휴먼시아 매입자 통계를 분석해보니 30대의 근저당 설정 비율이
80.7%로 가장 높았다는 조사결과(김재영 MBC 전 PD수첩 PD 저 `하우스푸어`)도 있다.
지난 9월 매일경제신문이 리서치 전문사 엠브레인과 공동으로
국민 1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민의식 설문 조사에서도
주거비는 30대 한국인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로 나타났다.
이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걱정거리 1, 2위는 ▲20대는 진로문제(30.1%)와 부족한 금전문제(27.9%)
▲30대는 비싼 주거비 문제(35.2%)와 부족한 금전문제(27.4%)
▲40대와 50대는 각각 32.2%, 37.5%가 노후대책을 꼽았다.
30대의 주거비 걱정은 한국인 평균(24.9%)은 물론이고 40대(23.1%), 50대(18.2%)보다 훨씬 높은 비율이었다.
집 때문에 고민하는 30대의 모습은 주변에 널려있다.
2010년 봄까지 서울 소재 유명 공기업 A사에 다니던 직장인 최현철 씨(가명·33)는 아예 지방 근무를 자원했다.
최씨는 2007년 말 A사에 취업했다.
이내 결혼을 위해 은행에서 7000만원을 대출받아 서울 등촌동에 전세 8000만원의 56㎡(17평) 규모 아파트를 구했다.
아내는 임신을 하면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최씨와 아내 모두 지방 출신이라 아이를 맡길 친척도 없었기 때문이다.
근근이 대출금을 갚아나가던 최씨에게 집주인은 2년간의 계약기간이 끝나자 전세금을 2000만원 더 올려달라고 했다.
일단 마이너스대출을 받아 전세계약을 연장했지만 이내 최씨는 인사팀에 지방 지사 전보 신청을 냈다.
지금은 서울에 살던 집보다 두 배 가량 넓은 109㎡(33평) 규모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사실 명문대 법대를 졸업한 최씨는 사장까진 아니더라도 임원을 달아보고 싶은 욕심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최씨는 “근무하면서 보니 공채 직원이 임원을 다는 경우는 거의 로또나 다름없다”며
“집값도 비싼데 굳이 서울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30대 공통정서는 ‘억울함’
대한민국 30대 또는 90년대 학번에는 통계수치로 표현할 수 있는 공감대가 존재한다.
이 땅의 30대가 갖고 있는 공통정서는 ‘억울함’이다.
어느 사회에서든 30대는 기둥이다.
육체적인 강건함과 정신적인 성숙함을 겸비한 30대가 사회와 조직을 굴러가게 만든다.
30대가 진취적이고 긍정적이어야 그 사회의 앞날이 밝은 법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의 30대는 그렇지 못하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사회는 모른 척한다는, 국가와 사회의 발전이
자신들의 발전과 철저히 무관할 수도 있다는 좌절감 같은 정서다.
문제는 이들의 억울함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리서치전문기관인 엠브레인이 한국인 1200명을 대상으로
국민인식 조사를 한 결과에서도 30대의 ‘억울함’이 두드러진다.
이 설문조사는 1997년 4월 매경비전코리아의 국민의식 설문조사와
동일한 질문을 오늘날 한국인에 묻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최우선 국가목표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10명 중 6명(56%) 꼴로 ‘삶의 질 개선’을 꼽았다.
1997년 12.9%에 불과하던 소수 의견이 14년 만에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한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대목은 연령과 소득별로 분류했을 때 30대에서 ‘삶의 질 개선’을 꼽은 비율이 높았다는 점이다.
연령별로 살펴보면 30대가 62.3%로 가장 높았고 이어 20대 59.6%, 40대 51.5%, 50대 50.6% 순이었다.
이에 대해 최인수 엠브레인 대표는 “본격적으로 가정을 꾸리기 시작하는 30대와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삶의 질 개선에 대한 욕망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30대의 ‘억울함’은 이미 20대의 분노를 압도한다.
각종 설문조사나 투표결과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안철수 서울대 교수, 박원순 현 서울시장에 대한 지지도는 30대가 모든 세대를 앞지른다.
지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방송 3사의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20대의 69%, 30대의 75%, 40대의 66%가 박 시장을 찍었다.
한국의 30대가 억울함에 사무쳐있다는 사실은 절대 예사롭게 넘길 일이 아니다.
30대가 열심히 뛰지 않으면 당장 사회 전체를 불안하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미래도 어둡게 한다.
30대는 국가와 사회의 미래 지도자 그룹이다.
10~20년 후에는 어차피 이들이 대한민국을 이끌어 나가게 된다.
고단한 30대 현주소
`LUXMEN`은 대한민국 90년대 학번의 현주소를 통계적으로 분석해봤다.
분석에 활용된 기초자료로는 통계청의 ‘2011년 2분기 가계동향 조사’와 ‘2010년 가계금융조사’가 활용됐다.
각각 1인 이상 236만457가구와 221만8320가구가 조사대상으로 분류됐다.
대졸 이상의 학력을 가진 31~40세(1971~1980년생) 가구주들이다.
일단 이들의 소득 월평균 수준은 402만원에 지출 330만원으로 월평균 흑자액은 72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출 가운데 비소비지출 76만원이었고, 소비지출은 254만원 수준이었다.
소득에서 비소비지출을 뺀 처분가능소득은 326만원이었다.
여기서 비소비지출이란 실제 지출 가운데 생활비 외의 지출을 말한다.
세금, 사회보장비, 이자, 도난금, 분실금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소비지출은 간단히 말해 생활비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에 따라 소비지출을 처분가능소득으로 나눈 평균 소비성향은 78%였다.
실제 쓸 수 있는 돈은 100원 가운데 78원이라는 의미다.
대한민국 90년대 학번들의 가구당 평균 총자산은 2억4940만원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부동산평가액은 1억5862억원이었다.
30대의 자산구조 역시 부동산에 저당 잡혀 있는 셈이다.
항목별로는 거주 주택 1억150만원, 비거주 주택 5399만원, 계약금·중도금 납입액 313만원 등이었다.
기타 자산평가액은 1057만원으로 자동차가 851만원, 귀금속이 164만원 등이었다.
이에 비해 금융자산은 8022만원에 불과했다.
이중 전월세 보증금 3646만원을 빼면 평균 저축액은 4376만원이었다.
부채총액은 4982만원이었다.
주목할 점은 부채총액 중에 담보대출이 3010만원으로 높은 비중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빚을 내서 집을 산 경우가 많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결국 90년대 학번의 가구당 순자산액(총자산-부채총액)은 1억9959만원이라는 계산이 나왔다.
90년대 학번의 순자산이 대한민국 전체 가구당 평균 순자산(2억3005만원)에 비해 3000만원 적은 셈이다.
90년대 학번들은 다른 특징들도 눈여겨볼 만하다.
90년대 학번들은 평균적으로 ▲가구주 은퇴연령을 62세로 보고 있으며
▲월평균 최소생활비는 167만원 ▲월평균 적정생활비는 259만원인 것으로 보고 있다는 분석이다.
또 ▲노후대비 저축은 매월 40만원씩 하고 있으며 ▲거주하는 주택 전용면적은 71.2㎡였다.
살고 있는 집의 보유 형태는 ▲자기집 43.8% ▲전세 36.6% ▲보증금 있는 월세 13.9% 등이었다.
혼인 상태와 관련해 2011년 현재 대한민국 30대의 83.4%는 배우자가 있었으며 미혼은 14%, 이혼은 2.2%, 사별 0.4%였다.
위기의 30대, 그래도 희망은 있다 대한민국의 30대에게 ‘너희 선배 세대도 그랬다’고 무조건적인 인내를 요구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참다 보면 좋은 날이 온다’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경제가 고도성장을 이어가고 국가와 사회 시스템이 재편을 거듭하던 지난 수십 년과 지금은 분명히 다르다.
60년대 이후를 ‘변화의 시대’라고 한다면 지금은 ‘고착의 시대’다.
노력 여하에 따라 인생 역전이 가능하던 시절에는 고달프긴 했어도 버틸 구석이 있었다.
그렇다고 삶이 안정적으로 변한 것도 아니다.
평생고용은 옛날이야기가 되어 버렸고, 한번 밀려나면 만회할 기회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30대, 90년대 학번들에게는 희망이 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정치권과 정부가 이들의 억울함과 어려움을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지난 10.26 보궐선거에서 확인된 30대의 집단적인 표심은 2012년 19대 총선과
18대 대통령선거에서 최대 변수로 취급될 전망이다.
선거에서 승리하려면 30대의 표심을 잡는 것이 중요해졌다는 의미다.
이미 30대의 불만과 억울함을 달래기 위한 정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가 2012년 중 시행하겠다고 발효한 정책 가운데 ▲기존 40만원에서 50만원으로 늘어나는 출산지원비
▲취학 전 아동에 대한 전 계층 보육비 지원 ▲자산형성을 돕기 위해 세금혜택을 주는 장기펀드
▲무주택자를 위한 장기 저리 대출 ▲생애최초 주택구입자금 지원 강화 등이 30대 연령층을 겨냥한 대책들로 꼽힌다.
대한민국 30대가 기대할 만한 또 다른, 어쩌면 가장 큰 희망 요인은 바로 흘러가는 시간이다.
어차피 대한민국의 파워와 리더십은 지금의 30대에게 돌아가게 되어 있다.
시간이 걸릴 뿐이다.
따라서 오늘날 30대들이 느끼고 있는 사회불만 중 상당수는 10년, 20년 뒤에 근본적인 개혁 대상이 될 공산이 크다.
가난에 찌들었던 세대가 60년대 이후 한국의 산업화·근대화를 이끌고,
젊은 시절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던 386세대가 노무현 정부에서 ‘국민 참여’와 ‘권위 타파’에 앞장섰던 것과 비슷하다.
예로부터 30세를 이립(而立)이라고 불렀다.
말이을 이(而)에 설 립(立).
논어에서 나온 말로 기초를 세우는 나이 ‘서른 살’을 일컫는다.
대한민국 30대가 그렇다.
고단하고 억울하지만 그래도 미래에 희망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