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경이(驚異)의 성채(城砦)-시기리야(Sigiriya)의 미녀들
담불라에서 버스로 1시간 1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시기리야와 1시간 40분 정도의 폴론나루와는 하루에 모두 볼 수 있다고 하지만 내 체력을 감안하여 하루에 여유 있게 한곳씩만 보기로 하고 먼저 시기리야로 향했다.
세계적인 유적지(인류문화유산)임에도 불구하고 밀림 속의 도로가 엉망이고 관광객을 태우고 가는 버스도 형편없이 낡아서 스리랑카의 경제 사정을 말해주는 듯 안타깝다.
수 km 밖에서도 한눈에 들어오는 거대한 원통 모양의 붉고 둥근 바위산(높이 180m)에 조성된 시기리야 성채(城砦)는 아름답고도 슬픈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높이 180m의 시기리야 성채 / 가파른 바위계단 / 사자발 문
AD 5세기, 궁녀소생의 서출(庶出) 왕자였던 카샤파 1세는 아버지가 이복동생인 적자(嫡子)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하자 아버지인 국왕을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하였는데 정적들에 의한 암살의 두려움에 이 바위산 꼭대기에 궁전을 짓고 이 위에서 18년간 통치하였다고 한다.
수직의 바위벽을 쪼아 만든 계단과 좁은 바위벽 통로를 올라야만 하는 이 요새는 당시 어떻게 오르내렸는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지금은 철로 만든 원통형 계단과 지그재그식 계단이 있어 오르기가 수월하지만, 현기증이 난다.
오르다 보면 당시 바위벽을 쪼아 만든 계단 흔적이 보이는데 아찔한 수직에 가까운 바위벽을 어떻게 기어올랐을까, 위로부터 밧줄이라도 내려서 잡고 올라갔을까? 신기하다.
원통형 나선 계단을 7~80m쯤 오르면 바위벽을 파내어 만든 높이 2m, 길이 10m 정도의 작은 통로가 보이는데 이곳 벽면에 그 유명한 시기리야의 미녀들(Lady of Sigiriya)이 기다리고 있다.
풍만한 여인들을 그린 이 프레스코 채색화는 원래 500여 명이나 되었다고 하는데 대부분 훼손되고 지금은 18명의 여인 그림이 비교적 온전하게 보존되어 현란한 색채로 당시의 복식(服飾)과 장신구 등을 보여주고 있다.
가슴을 드러낸 반라의 이 프레스코화는 지금도 그 아름다운 색채와 관능미로 보는 이들의 가슴을 울렁거리게 한다.
또 바깥쪽으로 열린 반대편 가슴높이의 벽면에는 당시의 글씨들이 흐릿하게 보이는데 여인들 그림이나 이 글씨들은 경비원이 지키고 서 있어 만질 수도, 카메라로 찍을 때 플래시를 사용할 수도 없다.
시기리야의 미녀들(프레스코화)
이곳을 지나 비스듬히 옆으로 돌아 올라가면 바위산 중턱쯤으로 제법 넓고 평평한 공간이 나타나고 나무들도 자라고 있어서 쉴 수 있다.
이곳에서 고개를 젖히고 쳐다보면 다시 까마득히 철제 계단을 지그재그로 올라 정상에 이르는 길이 보인다.
왕은 이곳에 다시 바위산을 오르는 돌계단을 파고 그 입구에 입을 벌린 어마어마하게 큰 사자를 설치해 놓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머리와 몸통은 없어지고 발(獅子足)만 남아 있다.
예전에는 사자의 두 발 사이를 지나 사자 몸통 속을 통과하여야 위로 오를 수 있었을 것이다.
사자는 불교를 수호하고 나쁜 기운을 몰아내는 상징성이 있다고 하는데 카샤파 1세는 이곳에 사자를 세워 지키게 함으로써 암살의 두려움을 털어내고자 했던 모양이다.
사자발 문 앞에서 바라보면 계단은 마치 사자 목줄기를 따라 머리 위로 오르는 형상이다.
산의 정상은 평평하고 제법 넓은데 당시의 왕궁건물은 남아 있지 않고 주춧돌들과 축대만 보인다. 그리고 탁 트인 사방으로는 푸른 밀림이 뒤덮인 넓은 벌판과 악어가 우글거린다는 호수(늪지)들이 한눈에 펼쳐져 보이며 기분이 상쾌해진다.
이 시기리야 성채의 또 하나의 신비는 ‘물의 정원(Water Garden)’이다. 꼭대기 왕궁터의 조금 낮은 곳에 정교하게 조성된 물의 정원이 있는데 넓이는 대략 사방 10m 정도의 야외 풀장 모양으로 맑고 푸른 물이 그득하여 관광객들이 발을 담그고 있었다. 이 바위산 꼭대기에 샘이 있는 것도 아닐 테고 빗물이 고였다면 썩거나 더러울 텐데 나도 손을 씻어 봤지만 비교적 깨끗하고 시원했다.
바위산을 둘러싼 해자(垓子) / 정상의 물의 정원 / 정상의 성곽 유적
이 물의 정원에서 왕궁으로 오르는 계단이 서너 군데 남아 있었는데 바위벽을 쪼아 정교하고도 아름답게 설계된 계단이 너무나 아기자기하여 놀라웠다.
인도 아잔타 석굴사원과 거의 같은 시기에 조성된 이 성채는 고대 세계 8대 경이(驚異:8th Wonder of the Ancient World) 중 하나로 꼽히며 유럽인들이 ‘죽기 전에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 중 첫 번째로 꼽은 곳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