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章 諫言.
남궁청우는 잠시 후에 이소보에게 다시 물었다.
"자네가 보기에 그 육지상(陸志常)이라는 자는 어떤 것 같던가?"
이소보는 즉시 생각을 굴린 다음에 공손히 대답했다.
"그는 비록 성격이 모나기는 하지만 그러나 근본적으로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이곳에서 그는 항상 모든 일에 열심히 하려고 하고 있고 또한 모든 사람들을 위해주고 있지요. 간혹 모든 일들을 독단적으로 처리하려고 해서 그렇지, 커다란 실수를 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남궁청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가 만일 정말로 나쁜 사람이었다면 내가 그를 본가에 그냥 있도록 두지도 않을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그의 그러한 단점들이 무인으로서는 장점으로 작용하는 수도 있는 것이다. 그의 외골수적인 생각과 높은 자존심은 무학을 배우는데 있어서 많은 고난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이고, 또한 소의(少義)에 구애되는 그 마음은 잘만 이끌어 주면 앞으로 아주 충성스러운 사람이 되는 밑거름이 될 수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한편으로는 그를 책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그의 장점을 높이 사려고 한다. 따라서 너는 앞으로도 다른 지시가 있을 때까지 열심히 그사람을 보필하여 이곳의 가업을 잘 이끌어 나가 주기를 바란다."
이소보는 그만 크게 감동한 듯이 즉시 길을 가다가 말고 그 자리에 엎드려 서 공손히 절하며 대답했다.
"예, 가주님의 그러한 말씀을 반드시 잘 기억하여 거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남궁청우는 미소하며 말을 좀 더 빨리 몰았다. 그때 심몽청이 신법을 발휘하여 그의 옆으로 다가오면서 문득 입을 열어 물었다.
"이봐요, 당신은 내가 그와 같은 당신네 가문의 기밀사항을 알게 되어도상관이 없다는 말인가요?"
남궁청우는 미소하며 그녀를 돌아보며 대꾸했다.
"사실 당신이 여기까지 나를 쫓아온 것도 모두 그와 같은 나에 대해서 알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오?"
심몽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는 그렇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당신이 그렇게 너무도 부담 없이 나를 대해주니 나로서는 의외(意外)라는 생각이 드는 데요?"
남궁청우는 미소하며 물었다.
"어쨌거나 당신은 이제 약간 만족하는 것 같소."
(......)
심몽청은 문득 흑진주(黑眞珠)와 같은 눈동자를 사르르 굴리면서 생각하는 듯 하다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예요. 당신이라는 사람은 아주 특이해서 가까이 접근하면 할수록 더욱 더 불가사의하게 느껴지고 또한 궁금한 느낌이 드네요."
남궁청우는 물었다.
"그렇다면 낭자는 앞으로 좀 더 나를 쫓아다녀야 하겠다는 말이오?"
심몽청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이제는 당신에게 폐를 끼치는 일은 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 * *
남궁청우와 일행이 막사의 앞에 도착하니 이미 잘 정돈된 막사의 앞마당에는 인부들이 장작을, 태워서 굽고 있는 소고기 요리가 한창 구수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고, 또한 그 옆으로는 일찍부터 커다란 화톳불을 피워 놓아서 주위에 둘러앉아서 식사를 하기에 좋게 하고 있었다.
남궁청우가 그쪽으로 다가가자 이소보는 재빨리 다가와서 그를 그곳의 상좌(上座)에 안내했으며 뒤이어 일행들이 자리에 앉자 식사를 날라오기 시작했다.
이곳의 요리들은 한결같이 매우 특색이 있고 풍미가 가득한 것들이었다. 대부분의 요리가 보통 산채나 더덕, 그리고 고사리나 버섯 등의 산에서 나는 재료들로 만들어 졌으며, 게다가 꿩고기나 토끼고기, 그리고 멧돼지고기 요리 등이 첨가되어 진미(珍覆들을 이루고 있었다.
중앙에 이미 불을 피워서 구워놓은 소고기 요리도 아주 훌륭한 맛이 있었다. 물론 그와 같은 진귀(珍貴)한 요리들은 결코 이곳의 사람들이 평소에 먹고 있는 음식들은 아닐 것이었다.
불과 몇시진 전에 남궁청우가 내려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곳의 책임자인 육지상은 즉시 인원들을 동원하여 그 모든 것들을 준비하게 한 것이 틀림이 없었다.
남궁청우는 문득 그와 같은 음식들을 대하게 되자 육지상의 일이 궁금해진 듯이 이소보에게 물었다.
"그 육지상이라는 사람은 지금 어디에 있나?"
이소보는 잠시 주저하다가 공손히 대답했다.
"그는 사실 아까의 그 자리에서 여전히 무릎을 꿇고 앉아 있습니다."
(......)
남궁청우는 그만 실소했다.
"역시 쓸데없는 멋을 부리고 있다니 그 다운 짓이로군. 자네는 빨리 가서 그를 데려오게. 만일 그가 빨리 뛰어오지 않는다면 당장에 본가에서 쫓아낼 터이니 그리 알라고 말이야."
이소보는 즉시 엄숙한 표정으로 대답을 하고는 그쪽으로 신법을 펼쳐서 뛰어갔다.
"예, 알겠습니다!"
이소보가 멀리 뛰어간 이후에 남궁청우는 특별히 사대호위에게 이곳의 무사들을 이쪽으로 불러서 함께 식사할 수 있도록 하라고 했다.
청의무사들은 이 순간 아까 책임자가 그 꼴을 당했었기 때문에 다소 어정쩡한 입장이 되어서 주위를 서성거리고 있었는데 남궁청우의 부름을 받고는 즉시 이쪽으로 달려와서 공손히 두 줄로 섰다.
남궁청우는 그들에게 모두 앉아서 술과 음식들을 마음껏 먹고 마시라고 한 다음에 이윽고 옆에 있는 한 명의 무사에게 입을 열어 질문했다.
"자네들은 이곳에서 항상 이렇게 좋은 음식을 먹고 지내는가?"
그 청의무사는 공손히 대답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저희들은 본가에서 나오는 비용이 넉넉하지 못하기 때문에 거의 술도 마시지 못하는 형편입니다."
남궁청우는 약간 의아해져서 다시 물었다.
"아니, 자네들에게는 월급이 지급되고 있지 않다는 말인가?"
청의무사는 공손히 대답했다.
"비록 월급이 지급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곳의 책임자인 육위사(陸衛士)가 그것을 쓰지 못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저희들은 그것을 모두 저축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리고 본가에서 내려오는 운용비용이 아주 적고 또한 이곳의 모든 재산들은 너무나도 정확하게 계산되어 있기 때문에 저희들은 따로 비용을 낼 곳이 없습니다."
남궁청우는 약간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물었다.
"하지만 제아무리 상부에서 엄격하게 하고 있다고 해도 이와 같이 커다란 기업이라면 능히 마음만 먹으면 가축 수십 마리 쯤은 능히 빼돌릴 수가 있을 터인데?"
청의무사는 공손히 대답했다.
"하지만 육위사는 본가에서 그렇게 할수록 우리가 더욱 잘해야 한다고 하면서 결코 그와 같은 일을 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남궁청우는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자네들은 그럼 이곳에서 마냥 굶고 지낸다는 말인가?"
청의무사는 공손히 대답했다.
"매일 식사하는 비용이야 본가에서 책정되어 나오는 것이므로 굶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가끔씩 육위사가 자신의 일부를 떼어서 우리들에게 회식(會食)을 시켜주고 있기는 합니다."
(......)
남궁청우는 순간 모든 내막을 알 수가 있었다. 기실 청룡당의 당주인 좌현보(左賢死는 육지상을 이곳으로 내려 보낸 뒤에 다시 이소보를 딸려 보내고도, 안심을 하지 못하여 항상 이곳의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곳의 예산을 항상 빠듯하게 만들어서 육지상으로 하여금 어떤 나쁜 수작을 부릴 수 없게 할 뿐만 아니라 거의 매일같이 이곳의 상황을 감시하고 또한 가축의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육지상은 거기에 반발하여 오히려 가축의 숫자를 더욱 정확하게 유지하고 수하들에게는 조금도 은자를 쓰지 못하게 하고 자신의 은자를 사용함으로써 마치 제살을 깎아먹는 듯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었다.
비록 보아하니 이곳의 수하들이 육지상을 어느 정도 신뢰하고 있는 듯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결코 좋을 리가 없는 것이었다.
남궁청우는 그 청의무사에게 말했다.
"좋아,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을 테니 자네들은 너무 걱정하지 말도록 하게."
청의무사는 공손히 읍하며 대답했다.
"감사하옵니다. 가주님."
그때 심몽청은 왠지 불안스러운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보면서 식사도 하지 않고 안절부절못하는 태도였다.
그러다가 문득 막사의 저편에서 걸어오고 있는 일단의 사람들을 보고는 즉시 반색하여 얼굴에 희색을 떠올리는 것이었다.
(......!)
지금 나타나고 있는 사람들은 물론 그녀의 일행인 그 세 명이었다. 심몽청은 그들이 다가오자 자리에서 일어서며 반가운 표정으로 소리쳐서 말했다.
"하노권사(何老拳師)! 요호법(姚護法)! 대체 당신들은 어디에 갔다가 이제
서야 나타나는 거죠?"
깡마른 늙은이인 하노권사 백승신권(百勝神拳) 하굉명(何宏明)은 먼저 남궁청우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던져서 슬쩍 바라본 다음에 다시 그녀를 향해 정중하게 말했다.
"갑자기 일이 생겨서 늦었습니다. 아가씨께는 미안합니다."
심몽청은 이에 웃으며 말했다.
"조금 늦었지만 이제라도 왔으니 상관이 없어요. 나는 사실 당신들을 이 사람들에게 소개시켜 주겠다고 했었는데 하마터면 약속을 지키지 못할 뻔 했잖아요!"
......
심몽청은 이어 남궁청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남궁대협(南宮大俠)! 당신들은 이미 서로 대면한 적이 있죠? 이제 저의 일행과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세요!"
남궁청우는 그녀를 향해 가볍게 포권하며 말했다.
"대협이라니 과분한 말씀이오."
백승신권 하굉명(何宏明)이 먼저 남궁청우를 향해 포권하며 말했다.
"남궁가주! 노부는 바로 하굉명(何宏明)인데 남들이 하노권사(何老拳師)라고 불러주고 있지요. 전번에는 사정이 있어서 미처 인사를 드리지 못하고 떠나게 되었음을 양해해 주시오."
남궁청우는 즉시 신형을 일으켜서 그쪽을 향해 마주 포권하며 말했다.
"별 말씀을, 소생은 남궁청우(南宮靑牛)라고 하오."
뒤를 이어 신행무영(神行無影) 요춘(姚春)이라는 중년인이음침한 인상으로
웃으며 인사를 해왔다.
"요춘(姚春)이라고 하오. 남궁가주의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남궁청우는 웃으며 마주 포권했다.
"요호법이시군요. 귀하의 섬류무형수(閃流無形手)은 이미 견식을 하였습니
다."
신행무영 요춘의 안색이 약간 굳어지는 듯 하는 것을 보고 대력신 소강(蘇剛)이 겨우 포권하며 입을 열어 말했다.
"저는 소강(蘇剛)이라고 합니다. 그날의 실수는 본의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남궁청우는 그 대력신 소강이 아직도 내상이 심하여 안색이 창백한 것을 보고 웃으며 대꾸했다.
"물론 나는 그 일을 마음에 두고 있지 않소. 그나저나 내상이 너무 심한 것은 아니오?"
소강은 즉시 다시 포권하며 말했다.
"아닙니다. 나의 내상은 별 것 아니오."
서로 간에 이렇게 우선 간단한 수인사를 마치게 되자 남궁청우는 그들에게 권하여 자리에 앉도록 하려고 했다.
그런데 하굉명이 이어 심몽청을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아가씨께서는 이제 그만 돌아가셔야 하겠습니다."
(......)
심몽청은 그만 약간 어리둥절해 하다가 놀라 물었다.
"그럼 아버지께서 저를 부르고 있다는 말인가요?"
하굉명은 말하기가 다소 난처한 듯이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바로 그렇습니다."
심몽청은 잠시 주저하는 듯 하다가 이윽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요. 그렇다면 일단 아버지를 만나 보도록 하겠어요."
......
심몽청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서 신형을 돌려서 남궁청우를 바라보며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어 말했다.
"남궁가주님, 저는 이만 급한 일이 생겨서 돌아가 봐야 하겠어요. 그동안의 후의(厚意)는 고마왔어요. 앞으로 다시 만나뵙기로 해요......"
남궁청우는 그녀를 향해 포권하며 미소하며 대꾸했다.
"급한 일이 생겼다니 낭자는 그만 돌아가 보도록 하시오. 앞으로 기회가 있다면 다시 만나게 되겠지요."
(......)
심몽청은 문득 왠지 두 눈에 눈물을 글썽거리는 듯 하다가 이윽고 신형을 날려서 저편으로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하굉명은 그것을 보고 남궁청우를 향해 다시 대표로 작별인사를 했다.
"그럼 남궁가주, 다시 뵙도록 하겠소이다."
남궁청우는 미소하며 답례했다.
"편히들 가시오!"
......
심몽청 등의 일행이 사라져가고 있을 때 마침 이소보가 육지상을 데리고 이쪽으로 오다가 약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남궁청우는 즉시 그들을 불렀다.
"어서 그를 이리로 데리고 오시오!"
이소보가 서둘러서 육지상을 남궁청우의 앞으로 데려오자 육지상은 즉시 남궁청우의 앞에 무릎을 꿇고는 엎드리는 것이었다.
"가주님!"
(......)
남궁청우는 그를 향해 담담하게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어 말했다.
"자네는 어째서 아까 나의 뒤를 따라오지 않고 그렇게 계속해서 그 자리에 앉아 있었는가?"
육지상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그것은, 속하가 가주님께 죄를 지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남궁청우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음, 자신이 죄(罪)를 지었다는 것을 알기는 아는군. 그래, 그런 것을 아는 사람이 감히 나의 앞에서 뻣뻣하게 굴었다는 말인가? 그리고 자네는 듣자하니 이곳에서 사람들에게 회식도 거의 시켜주지 않는다면서?"
(......?)
남궁청우는 품속에서 백냥 짜리 은표(銀票) 하나를 꺼내서 육지상의 손에 건네주면서 다시 미소하며, 말을 이었다.
"비용이 부족하다면 그런 얘기는 미리 했어야지. 자, 이것은 자네들의 회식비로 사용하도록 하게. 그리고 앞으로는 좀 더 비용을 넉넉하게 내려 보내라고 지시 할 터인즉, 자네는 모든 일들을 너무 그렇게 빡빡하게 하여 수하들을 고생시키지 말도록 하게. 그들도 모두 똑같은 본가의 식솔들이 아닌가? 내 말을 알아 듣겠는가?"
육지상은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가주님."
남궁청우는 이에 문득 신형을 일으키며 뒤쪽의 막사를 둘러보더니 다시 말했다.
"자, 그럼 이번에는 어디 막사의 내부를 한번 구경해 보도록 할까? 육지상, 자네가 직접 나를 안내해 주겠나?"
육지상은 즉시 신형을 일으켰다.
"예, 가주님!"
남궁청우가 천천히 막사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육지상이 앞장 서서 안내를 했고 좌선비 등의 사대호위가 조용히 남궁청우의 뒤를 따랐다.
이 막사는 육지상을 비롯한 이곳에 파견되어 내려온 남궁세가의 무사들이 거주할 수 있도록 건축된 것이었는 데 오래도록 사용할 수 있도록 상당히 견고하게 지어져 있는 건물일 뿐만 아니라 각종의 편의시설이 잘 만들어져있었고 게다가 내부는 아주 깨끗했고 잘 정돈되어 있었다.
남궁청우는 막사의 안으로 들어서서 내부를 천천히 둘러보면서 역시 육지상이 지나칠 정도로 엄격하게 수하들을 이끌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문득 신형을 멈추고 내부의 한 의자에 앉으며 그의 앞에 서있는 육지상을 향해 입을 열어 말했다.
"자네는 보아하니 나에게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한데, 자 이제 그럴만한 기회가 만들어졌으니 한번 나에게 말해보는 것이 어떤가?"
육지상은 이에 마치 이미 생각해둔 것이 있는 듯 다소 주저하다가 남궁청우의 주위에 서있는 사대호위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우선 주위의 사람들을 물리쳐 주시면 좋겠습니다."
(......)
좌선비와 가우왕 등은 육지상의 그러한 말을 듣자 일순 거의 노골적으로 그에 대해서 불쾌한 표정들을 지었다.
그들은 그 육지상이 분수도 모르고 또한 경우도 없이 함부로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남궁청우는 그러한 사대호위의 마음을 짐작하고는 웃으며 육지상에게 다시
말했다.
"나와 자네는 이제 처음으로 대면을 하는 것인데 무슨 특별히 두 사람이서 회포를 풀 일이라도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만일 자네가 하려는 말이 본가의 중요한 사안(事筵에 관계되는 것이라면 이들은 내가 가장 신임하고 있는 사람들이니 들어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네."
육지상은 이에 의식적으로 좌선비 등을 돌아보다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저는 솔직히 본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종의 비리에 대해서 가주님께 단독으로 말씀드릴까 했었는데, 가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로서는 달리 드릴 말씀이 없군요."
순간 가우왕이 화를 참지 못하고 일장으로 탁자 하나를 후려쳐서 부셔버리며 소리쳤다.
"뭐라구? 듣자하니 정말로 분수를 모르는 작자로군! 네가 뭔데 감히 본가의 비리를 운운한다는 말이냐?"
(......)
육지상은 가우왕의 얼굴을 한번 주시한 다음에 여전히 태연한 신색(身色)으로 서있었다.
남궁청우는 이에 가볍게 웃으며 다시 말했다.
"육지상, 너는 비단 담도 작을 뿐만 아니라 마음도 좁기 이를 데가 없는 졸장부로구나. 지금 만일 네게 하늘을 우러러 한 점의 부끄러움이 없는 진심(眞心)이 있다면 어째서 말을 하지 못하겠다는 말이냐? 너는 혹시 나중에 이들에게 보복을 받을 것이 두려워서 몸을 움츠리고 있는 것이 아니냐?"
그러한 말은 아마도 육지상의 가슴을 바로 찌른 모양이었다. 육지상은 이에 두 눈에서 불이 번쩍하도록 안광(眼光)을 발출시키더니 이를 악물며 말했다.
"나는 보복을 받을 것을 두려워하는것은 아닙니다. 좋습니다. 나는 지금 그 얘기를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남궁청우는 미소하며 말을 받았다.
"나는 네게 정말로 그러한 말을 할 수 있는 담이 없는 줄로 알았다. 자, 그럼 어서 그 비리에 대해서 내게 말해 보아라."
(......)
육지상은 잠시 머뭇거리면서 생각하는 듯 하다가 이윽고 입을 열어 말하기 시작했다.
"저는 근본적(根本的)으로 본가의 체제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로지 사대가문(四大遽6)에 의해 장악되는 본가의 사당(四堂)체제는 근본적으로 뜯어 고쳐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뭐, 뭐라구!"
가우왕이 다시 크게 노하여 앞으로 나서려고 했으나 남궁청우는 그것을 제지하며 미소와 함께 다시 물었다.
"그래, 그러한 체제가 대체 어째서 그렇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는 말인가?"
육지상은 가우왕의 쪽은 신경도 쓰지 않고 말을 계속했다.
"본가의 사대당주는 별로 뛰어난 능력(能力)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당주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많은 유능한 인재들을 망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오로지 자신들에게 아부를 하는 사람들만을 중용하고 정직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려고 하는 사람들은 배척하고 있으니, 아마도 이대로 나가다가는 본가에는 정말로 무공을 할 줄 아는 사내다운 사람들은 하나도 남지 않게 되고, 오직 계집들처럼 얼굴에 분만 바른 녀석들만 판을 치게 될 것입니다."
(......)
좌선비 등은 육지상이 대략 그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줄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러나 정작 그에게서 그와 같은 말을 듣게 되자 너무나도 어이가 없는 표정들이었다.
남궁청우는 가볍게 미소하더니 이윽고 말했다.
"자네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것이 다인가?"
육지상은 대답했다.
"그들은 비단 그와 같은 인사(人事)문제 뿐만 아니라 금전적으로도 많은 착복을 하고 있으며 또한 무학방면에 있어서도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만 특별히 중요한 구결(口訣)들을 가르치는 등의 온갖 비리들을 저지르고 있지만은 그러한 모든 문제는 가주께서 그 사당의 체제를 뜯어고치시게 되면 모두 해결되리라고 생각합니다."
(......)
좌선비 등은 육지상의 그와 같은 말을 듣자 그만 대꾸할 마음도 없어져서 망연한 표정들이었다.
남궁청우는 이에 가볍게 웃으며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자네야 말로 그러한 체제하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본 사람이겠군?"
육지상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반드시 그렇다고는 말할 수가 없겠지만, 아무튼 저도 그와 같은 피해를 본 사람들 가운데의 한 사람에 속한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남궁청우는 미소하며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자네는 그 사당의 체제를 뜯어고친다면 앞으로 어떻게 만들면 좋으리라고 생각하는가? 자네와 같은 사람들이 당주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그러한 체제를 만들어야 좋을까?"
육지상은 즉시 대답했다.
"만일 저희들이 당주의 직위에 오르게 되면 결코 그러한 비리는 생겨나지 않을 것입니다."
(......)
남궁청우는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떠올리며 다시 물었다.
"그래? 하기는 자네야 이미 그러한 고충을 겪었으니 다시는 그와 같은 비리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겠지.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자네는 일단 당주가 된 이후에는 다시 본가가 오직 남궁씨(南宮筵의 직계로 전해져 내려오는 일에 대해서 불만을 품게 될 것 같은데?"
(......!)
육지상은 순간 안색이 창백해져서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결코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남궁청우는 이에 약간 싸늘해진 시선(視線)으로 소리치며 말했다.
"세상의 어느 체제이든 간에 완벽한 것은 있을 수가 없어서 저마다 약간의 모순과 비리들을 갖고 있기가 마련이다. 그리고 본가의 사대가신(四大件筵들은 일찍이 본가를 일으켜 세우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공적을 쌓은 가문의 사람들이기 때문에 본가에서는 그들의 그러한 공적을 높이 사서 커다란 과오가 없는 한은 그러한 당주의 직위를 세습토록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들이 본가에 반역적(反逆的)인 행동을 하지 않는 한은 앞으로 좀 더 부(富)를 늘려주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 새로 당주의 월급을 두 배로 늘려주는 일을 단행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감히 너와 같은 자가 본가의 체제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이냐!"
육지상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가주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로서는 달리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남궁청우는 여전히 싸늘한 표정으로 다시 말을 이었다.
"세상에는 완벽한 것은 없기 때문에 따라서 사람들은 저마다 욕심을 적게 가지는 것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만일 일단 본가에 들어온 사람이라면 우선 본가의 체제에 순응을 하고 나서 충성을 바치면서 이끌어주는 대로 따르고, 그리하여 설령 다소간의 섭섭한 대우를 받게 되었다고 해도 욕심을 적게 하여 유순(柔順)하게 그것을 받아들이는 성품(性品)을 길러야만 할 것이다. 이 단체의 생활이라는 것은 반드시 그때그때마다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이익이 돌아가지 않을 수가 있기 때문에, 그 단체의 일원(一員)이 된 사람은 우선은 그러한 불이익을 순하게 받아들이는 마음의 수양을 쌓아야 하는 것이며, 그래야만 비로소 그 단체는 안정되게 성장을 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
남궁청우는 안색을 부드럽게 고치고서 다시 말을 계속했다.
"너는 그렇게 한다면 끝까지 손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결코 그렇지 않다. 실로 그와 같은 깊은 마음의 수양(修養)을 쌓으면서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은 동료들 가운데에서도 조용히 빛나는 것이며 나중에는 필시 중요한 인재(人才)로서 등용되게 될 것이다. 그 단체가 올바른 단체라면 그 인재를 끝까지 버리지는 않는 법이다. 그런데...... 실로 너와 같은 자는 항상 마음속에 불만이 가득차 있고, 또한 매사에 손해를 보는 일을 당하지 않으려고 두 눈을 항상 부라리고 있으니 동료들에게서 좋은 평판을 듣게 될 리가 없다. 너는 항상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노력해 왔지만 기실은 그것으로 인해서 더욱 커다란 손해를 보게 되었던 것이다. 너의 동료들은 이기적(利己的)이고 마음속에 불만으로 가득차 있는 너를 점차로 멀리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본가의 단체생활에 있어서 물의가 일어나게 되었다. 너는 만일 네가 당시의 당주(堂主)였다면 어떻게 했었을 것 같으냐?"
(......)
"청룡당주는 너로 인해서 당내(堂內)의 화합이 깨지는 것은 물론이요, 너 자신마저 앞으로 계속 그러한 환경 속에서 견디어 내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사실을 간파하고는 일부러 너를 이곳으로 보내주었던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너를 구해주기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왜 모르느냐? 청룡당주가 만일 정말로 너를 매장시킬 생각이었다면 그것은 그에게는 아주 쉬운 일이었을 것이며 결코 이와 같은 까다로운 방법을 쓰지는 않았었을 것이다. 그는 너의 단 하나의 장점인 그 순수(純粹)한 무예정신(武藝精神)을 아끼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너는 당연히 그러한 청룡당주의 고심(苦心)을 알고서 이곳에서 조용히 마음을 수양하여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 동료들과 화합(和合)하게 될 그날을 기다리고 있었어야 할 것인데도, 감히 그와 같은 마음속의 불만을 고조시키고 있었으니 이것은 그야말로 큰일이 아니겠느냐? 실로 너와 같은 자를 어떻게 본가에 계속 머물게 할 수가 있겠느냐는 말이다!"
"......"
남궁청우는 묵묵히 서있는 육지상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만일 내가 그 청룡당주의 입장이었다고 해도 결코 너처럼 그와 같은 불만이 가득찬 사람에게 높은 지위를 주지 않았을 것이며, 또한 무학의 중요한 구결(口訣)을 말해주는데 있어서도 다소 망설였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청룡당주와 같은 사람들은 그야말로 본가의 충신(忠臣)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가 만일 네가 좀 더 유순하게 동료들과 화합을 하면서 살아왔었다면 어째서 그렇게 차별을 두었겠느냐? 어리석은 놈! 내가 실로 너와 같은 자의 말을 듣고서 충신들을 물리칠 것 같은 아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는 말이냐! 감히 네놈이 나를 어떻게 보고서 그 따위의 망발을 하고 있는 것이냐!"
남궁청우의 음성이 더욱 추상(秋霜)같은 냉기(冷氣)를 띠기 시작하자 육지상의 고개는 점점 더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남궁청우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다시 말을 이었다.
"너는 아마도 너 자신의 순수한 무예정신을 아주 대단하게 생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사실상 그것은 내가 보기에는 그야말로 보잘 것 없는 것이다. 본래 상승의 무학(武學)이라는 것은 너와 같이 강한 욕심(慾心)과 불만(不滿)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터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마음이 유순하게 잘 수양(修養)되어 있고 성품이 맑아진 그러한 사람들만이 보다 높은 경지(境地)를 터득할 수가 있는 것이다. 너는 지금 자신이 상승의 무학경지에 올라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러나 기실은 너의 무학의 경지는 그저 이전의 고수들의 흉내를 내고 있는 것에 불과하고, 또한 장난에 불과한 것이다. 마음이 맑아진 상태에서만이 무학은 자유로운 조화(造化)를 부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너는 단체생활에서 그렇게 마음의 수양을 쌓으면서 성실(誠實)하게 무예를 닦아가는 유순(柔順)한 사람들을 도리어 비웃었다는 말이냐?"
"......"
"유순하게 화합(和合)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설령 많은 것들을 생각하느라 무학의 발전이 느려지게 된다고 해도 본가라고 하는 단체는 실로 그와 같은 사람들을 원하는 것이지, 너와 같은 독불장군(獨不將軍)격인 불만이 가득찬 사람들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그 유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마치 계집들처럼 마음이 유약해서가 아니라, 진실로 대장부와 같은 넓은 포용력을 가지고 유순하게 살아가고 있다고는 어째서 생각하지 못하고 있느냐는 말이다. 실로 너와 같이 불만이 가득차 있는 사람들은 설사 그 당시의 불만이 해소되었다고 해도 역시 다음의 불만이 다시 생겨나게 될 것이다. 너라는 자는 정말로 당주의 직위에 올려놓게 되면 다음에는 본가의 가주(嵌主)의 지위를 노리게 될 그러한 사람이다. 내 어찌 너와 같은 자를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있겠느냐?"
(......)
육지상은 이윽고 입을 열어 낮은 음성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저는 그렇다고 해도 다시 본가로 돌아가서 그와 같은 대우를 받으면서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순간 남궁청우는 약간 화가 난 듯이 크게 소리쳤다.
"누가 너와 같은 자에게 본가로 돌아오라고 할 것 같은가? 사대호위는 어서 명을 받들어서 지금 당장에 저 배은망덕(背恩忘德)한 작자를 처단하도록 하라!"
(......!)
남궁청우가 갑자기 큰 소리를 내며 좌선비 등에게 그와 같은 살벌한 지시를 내리자 정작 좌선비 등도, 약간 놀라서 어리절한 표정을 지었다.
남궁청우는 다시 큰소리로 말했다.
"너는 지금 너 자신의 무공이 이미 황화예의 경지에 올라 있다고 해서 지금 저 사대호위의 무공은 안중에도 두지 않고 있는 것이겠지? 그래서 네가 그렇게 오만방자한 것이겠지? 그렇다면 좋다. 사대호위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 어서 저놈을 일시에 협공하여 죽여버리도록 해라! 저런 놈은 본가에 있는 것보다 차라리 못하니까!"
(......)
좌선비 등은 처음에는 망설였으나 뒤를 이은 남궁청우의 재촉하는 말을 듣고는 즉시 저마다 일신(一身)의 공력을 모조리 끌어올리고는 신형을 날려서 육지상을 포위하면서 빠르게 공격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육지상은 그것을 보고 크게 안색이 변해서 소리쳤다.
"가주, 이러실 수는 없습니다! 제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러십니까?"
남궁청우는 차가운 표정으로 냉랭하게 대꾸했다.
"너는 이제까지 나의 말을 헛되이 들었다는 말이냐? 다시 그와 같은 헛소리는 듣고 싶지도 않으니 사대호위는 어서 그자를 제거하도록 해라! 만일 이 소리가 끝나기 전에도 그자를 공격하지 않는다면 나는 오히려 사대호위를 문책(問責)할 것이다!"
좌선비 등의 사대호위는 이 순간의 남궁청우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 잘 알수가 없었으나 일단은 그가 그렇게 단호하게 나오는 것을 보고는 정말로 공격을 퍼붓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사사삭
네 명의 황화예의 공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일제히 창궁 무한보(蒼窮無限步)를 밟으면서 중앙의 한사람을 향해 섬전지(閃電指)와 벽공장(劈空掌)으로써 공격해 들어가자 일시에 실내에 거대한 풍운(風雲)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사위(四圍)에서 마치 거대한 장력(掌力)의 벽(壁)이 빠르게 쏟아지는 듯하자 육지상은 감히 더 이상 그대로 서있지 못하고 황급히 신형을 보법에 따라서 움직이며 역시 벽공장으로 응수했다.
펑펑펑펑-----!
확실히 그 육지상의 무공은 사대호위보다 이미 한수 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