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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39권내용 요약^^
창세기 유대교 성서와 구약성서에 포함되며, 율법(토라, 모세오경)가운데 첫 번째에 해당되는 낱권이다.
출애굽기(탈출기) 구약성서의 두번째 부분이다. 신이 모세를 통해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인들을 구해 가나안땅으로 인도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시대상으로는 기원전 13세기에 있었던 내용으로 추정되며, 출애굽(出埃及)이라는 명칭은 중국어 성서에서 따온 말로 '이집트에서 나옴'을 뜻한다.
레위기 구약성서의 세번째 부분이다. 이스라엘인들이 신의 자녀로서 지켜야 할 종교, 생활, 관습. 제사의식 등 여러가지 율법에 대한 내용을 담고있다. 레위기라는 이름은 율법 가운데 제사와 종교를 관장하는 레위인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시기상으로는 출애굽기 이후 이스라엘인들이 가나안땅을 향해 이동하던 시기의 내용이다.
민수기 구약성서의 네번째 부분이다. 이스라엘인들이 시나이산을 떠나 모압평원에 이르기까지 겪었던 광야에서의 일을 담고 있다. 민수기라는 이름은 내용중에 잠깐 등장하는 인구조사의 내용에서 유래했다.
신명기 구약성서의 다섯번째 부분이다. 이스라엘인들이 가나안 땅에 도착하기 전, 모세가 야훼의 가르침을 마지막으로 전하고 죽기까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 대부분 출애굽기, 민수기 등에 등장했던 가르침이 반복되는 내용이기 때문에 신명기라는 이름이 붙었다. 보통 신명기를 모세5경중 하나로 보지만, 모세의 죽음에 대한 언급이 있기 때문에 신명기의 저자는 모세가 아닐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여호수아 기독교 성경의 구약성서와 히브리 타낙(Tanakh) 둘 다에 들어 있는 여섯 번째 책이며, 여호수아가 썼다고 여겨진다. 신명기에 뒤이어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약속의 땅에 들어갈 때부터 바빌론 유수에 이르기까지의 이스라엘 왕국의 역사를 개괄하는 예언서 가운데 첫 번째 책이다.
사사기(士師記) 원래 히브리어로 쓴 성경이며, 히브리어 성경(유대교 성서)과 기독교 구약성서에서 나타난다. 그 제목과 내용에 따르면, 판관기는 성경의 판관(현대의 재판관과 혼동되지 않기 위한 표현)과 그들이 고대 이스라엘을 통솔하는 동안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룻기 타낙의 케투빔(Ketuvim)(“성문학(聖文學)”)과 구약성경의 성문학 가운데 하나이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성경 가운데 가장 짧은 책 가운데 하나이며, 단지 4개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무엘 상하권 구약성서의 한 부분으로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 모두 읽히는 공용 성경이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위대한 판관인 사무엘의 일생과 그 시기에 일어난 사건들과 연합 이스라엘 왕국의 성립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열왕기상하 유대교의 타낙(히브리어 성서)의 일부이다. 원래 히브리어로 쓰였으며, 나중에 기독교 구약성경의 일부로서 받아들여졌다. 역대기에 따르면, 열왕기는 기원전 10세기에서 기원전 9세기까지 일어난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역대기상하 히브리어 성경(유대어 성서와 기독교의 구약성경)의 일부이다. 마소라 원본(Masoretic text)에서, 역대기는 케투빔의 첫번째 또는 마지막 책(또한 후반 배열에서 만들어진 유대어 성경의 마지막 책)으로 나타난다. 역대기는 사무엘기와 열왕기에 나타난 다윗 이야기와 닮아 있다. 이런 까닭에 역대기는 70인역 성서에서는 사무엘 상권과 하권, 열왕기 상권과 하권을 보충하는 "부
록(Supplements)"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역대기는 두 부분으로 나뉜다(역대기 상권과 하권). 역대기의 상하권 분할과 구약성서의 기독교 정경으로서의 지위는 70인역 성서에 따른다.
에즈라 또는 에스라는 성경인 구약성서와 히브리어 타낙 가운데 하나이다. 이 책은 바빌론 유수가 끝날 무렵 일어난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한때는 느헤미야에 포함되기도 하였으며, 유대인은 그 둘을 하나의 책으로 여긴다. 그 둘은 불가타 성서(Vulgate)에서는 여전히 에스드라스서 상권과 하권으로 구별한다.
느헤미야(기) 구약성경의 한 책으로서, 페르시아 제국의 고위관리였던 느헤미야가 '하느님의 도성' 예루살렘의 성벽을 52일 만에 재건한 이야기를 담은 기록이다.
에스더 유대교와 그리스도교가 함께 경전으로 인정하는 종교문서들.
욥기 구약성서 가운데에 있는 지혜문학의 대표라고 할 시극(詩劇)이다.
시편 기독교와 유대교에서 쓰는 구약성서의 일부이다. 각 장을 지칭할때에는 특별히 '편'이라는 단어를 쓴다. 시편을 주제로하여 부르는 노래는 시편가(Psalter)라고 불린다.
잠언(箴言) 저자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대체로 솔로몬 왕으로 추정하는 구약성서 중의 한 권이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지혜로운 삶을 강조하고 있다.
전도서(傳道書) 또는 코헬렛 기독교와 유대교에서 쓰이는 구약성경의 한 책이다. 전도서의 저자는 자신을 다윗의 아들이며 이스라엘의 왕인 전도자(코헬렛)라 밝히고 있으며 책의 제목은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전도서는 삶의 허무함과 삶의 최선의 방법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가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신학자 구미정은 술람미 여인을 솔로몬의 아버지 다윗의 시중을 든 궁중여인 아비삭으로 추정한다.)에게 보낸 러브레터이다. 신부, 합창단, 신랑의 노래로 이루어져 있다.
이사야서 히브리 성경의 한 책이자, 기독교 구약성서의 23번째 책으로, 총 66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전통적으로 이사야가 저자로 알려져 있다.
예레미야서 예레미야 예언자의 예언(預言)과 설교를 담은 예언서이다.
자신의 동족들로부터 멸시를 받고 박해를 받으면서 기록했으며 자신의 설교들과 표적들을 통해 하느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만이 심판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선포했다.
예레미야애가 또는 애가 성경의 구약성서 및 유대교 성서(타낙) 가운데 하나이며, 예레미야가 읊은 노래이다. 전통적으로 유대인은 예루살렘 신전의 파괴를 기념하는 단식일 티샤 바브(Tisha B'Av)에 이것을 읽는다.
에스겔서/에제키엘 유다왕국 말기부터 바빌론 포로기 전반(前半)(약 BC 593년 - BC 571년)에 걸쳐 활동한 선지자 에스겔/에제키엘의 예언을 모은 구약성서의 글중 하나이다. 총 48장으로 되어 있다.
다니엘서 기원전 6세기에 살았던 선지자 다니엘의 행적과 예언을 기록한 선지서로, 구약성서의 한 책이다. 유대교의 전승에 따르면 저자는 다니엘이다. 유대 민족이 바빌론에 포로로 기원전 597년에 잡혀갔을 때 다니엘도 잡혀갔다.
호세아 서 유대교 및 기독교의 구약성서에 포함되는 소 서적 가운데 하나로, “소예언서” 또는 “12예언서”로 알려진 작은 예언서 가운데 순서 상으로 가장 첫 번째에 위치한다.
요엘서 기록연대는 BC 9세기 무렵부터 마카베오가(家) 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추정된다. 저자 요엘에 관해서도 정확하게 알려진 것이 없다. 내용은 메뚜기떼로 인한 재난과 회개의 촉구, 하느님의 동정과 약속, 거룩한 영의 부으심, 열국에 대한 심판, 이스라엘에 대한 축복 등으로 되어 있다.
아모스 BC 750년경 이스라엘의 예언자이자 구약성서 《아모스》의 필자. 하느님의 부름을 받고 북이스라엘 왕국으로 가서 하느님의 계시를 전하는 예언자가 되었다.오바디야 1장(21절) 뿐이다. 저자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이 책은 보통 1~14절과, 15~21절까지로 나눈다. 예언자 오바디야는 유다왕국의 이웃나라 에돔 백성을 세상 종말의 날에 하느님이 멸망한다는 것을 예언하고 있다
요나 구약성서에 나오는 인물로 《요나》서의 주인공. 요나서는 바닷속에 던져져 큰 물고기 뱃속에서 3일간을 지내다가 기적적으로 되살아나 자기의 사명을 완수한 이야기이다.
미가 구약시대 유다 왕국의 예언자 미가(Micah)가 지은 책이다.
나훔서 구약시대 이스라엘의 예언자 나훔이 아시리아 제국의 수도 니네베로 가 예언을 한 예언서이다.
하바꾹 예언자 하바꾹의 예언을 적은, 구약 성경의 하나이다.
스바니야 '야훼가 감추신 노래'라는 뜻. 이 책 서두에 "…야훼를 찾지 아니하고 등지고 떠나가는 것들을 다 없애버리리라"고 전제하고, 유다 백성의 우상숭배·천체 예배·밀곰 숭상을 공격하고(1장), 불레셋·모압·암몬의 백성과 에티오피아 백성을 저주하며(2장), 마지막으로 포악과 퇴폐의 도시가 된 예루살렘의 사제(司祭)와 예언자들의 죄를 힐책한 후 '주(主)의 날', 즉 야훼의 심판의 날이 임박했음을 알리며 경고하고 있다. 이러한 스바니야의 예언 활동은 여호수아의 종교개혁에 큰 영향을 끼쳐, 1장에서 비난받은 이교적 예배를 바로잡았다.
하깨 서 유대교 및 기독교의 구약성서에 포함되는 소서적 가운데 하나로, '소예언서' 또는 '12예언서'로 알려진 작은 예언서들 가운데 순서 상으로 10번째에 위치한다. 전체 38절로 구성되어 있다.
즈카르야 서 유대교 및 기독교의 구약성서에 포함되는 소서적 가운데 하나로, '소예언서' 또는 '12예언서'로 알려진 작은 예언서들 가운
데 순서 상으로 11번째에 위치한다
말라키 서 유대교 및 기독교의 구약성서에 포함되는 소서적 가운데 하나로, '소예언서' 또는 '12예언서'로 알려진 작은 예언서들 가운데 순서 상으로 가장 마지막에 위치한다.
신약 27권 내용요약^^
마태복음 4복음서의 하나이며, 《마르코의 복음서》 《루가의 복음서》와 함께 공관복음서(共觀福音書)로 일컬어진다.
사도(使徒) 마태오가 쓴 것으로 여겨져 왔으나 최근의 연구결과 그 설이 번복되었다. 저작 시기는 80∼90년경으로 보며, 쓴 곳은 시리아 근처로 추측된다. 내용은 예수의 계보(系譜)로부터 시작하여 탄생, 세례 요한의 출현과 요한에 의한 수세(受洗), 광야에서 마귀로부터의 유혹, ‘산상수훈(山上垂訓)’, 예수의 갈릴리에서의 선교활동과 가르침이 제목별로 다루어져 있다.
마가복음 베드로에게서 들은 자료를 근거로 하여 그리스어로 쓴 것으로, 문체가 소박하고 간결하며, 수식이 없어 문장에 박력이 있다. 내용은 예수의 전도 전야부터 시작하여 그가 부활하는 아침까지를 다루고 있다. 예수는 이 땅 위에 나타난 하느님의 아들임을 전제하고, 이를 예수가 세례받을 때(1:9~10), 변화산 위에서(9:2), 백부장의 고백(15:39), 또 사탄까지도 복종하는 등의 이야기를 통하여 확증시키려 한다.
누가복음 주제는 '인자(人子)인 그리스도'이다. 이를 위해 그 내용을 인자로 온 그리스도(1:5~4:13), 인류를 위한 인자의 사역(4:14~9:50), 배척된 인자(9:51~19:27), 인류를 위한 인자의 수난(19:28~23:56), 인류 앞에서 증거한 인자(24:1~53)로 나누고, 목격자들의 증언을 통해 예수의 일생을 아름다운 문체로 묘사하였다.
요한복음 복음서는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 말씀은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라는 유명한 말로 시작되어 말씀의 성육신(成肉身)으로서의 빛, 하느님의 독생자에 관한 증언을 하기 위하여 나타난 세례자(洗禮者) 요한에 관한 설명, 갈릴래아 지방의 가나 혼인잔치에서의 물을 술로 바꾼 기적, 바리사이파의 지도자 니고데모와의 대화, 예루살렘 베짜타 연못가의 고질병자 치유와 장님의 개안, 예수 자신의 증거에 대한 설명, 죽은 라자로의 소생, 예수의 부활 등, 다른 복음서에서는 볼 수 없는 기사가 실렸을 뿐만 아니라 많은 기적과 표적이 하느님의 아들 예수라는 증거로서, 그리스도교 교리(특히 교회에 관한)와의 유기적 또는 상징적인 연관성에 관해서 해설하고 있다. 또 다른 복음서에 비해서 생명이나 사랑(하느님의 사랑, 그리스도의 사랑, 그리스도 교도의 사랑)이 더욱 강조되고 있어 ‘사랑의 복음서’라고도 한다. 12 사도 중 제배대오의 아들인 사도 요한이 쓴 것으로 보고 있다.
사도행전 예수가 승천한 뒤 사도(使徒)들이 성령의 인도로 널리 복음(福音)을 전한 행적을 기록한 책으로, 신약성서 가운데 유일한 역사문서로 평가된다.
로마서 신약성서에 포함된 하나의 책으로, 사도 바울로의 여러 편지 중 가장 중요한 편지.바울로가 동부 지중해의 전도(傳道)를 마치고 로마로 갈 결심을 하고 그 준비로 이 편지를 썼다. 56년경 고린토(코린트)에서 쓴 것으로 보이는 이 편지는 후세의 신학사상에 큰 영향을 끼쳐, 아우구스티누스로부터 K.바르트에 이르기까지 신학상의 유력한 전거(典據)가 되었다.
고린도전서 사도 파울로스가 쓴 편지로, 신약성서 중 한 권이다. 공동번역성서에서는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표준새번역과 개역한글판에서는 고린도전서로 번역했다.
눈물을 흘리면서 회개를 촉구했던 바울(바울로)의 심정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서신이다. 로마서(로마에 있는 신자들에게 보내는 편지)가 가장 이성적인 서신이었다면, 고린도전서는 가장 감정적인 서신이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도 또한 넘친다는 구절이 이 서신 전반에 걸쳐 느껴진다.
고린도후서 사도 파울로스가 쓴 편지로, 신약성서 중 한 권이다. 공동번역성서에서는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두번째 편지, 표준새번역과 한글개역판에서는 고린도후서로 번역했다.
갈라디아서 갈라디아교회는 바울로가 직접 전도하여 세운 교회였으나, 그가 떠난 후 들어온 유대주의 교사들이 그의 사도권(使徒權)을 부정하고 할례와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온 교회가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그는 유대주의의 오류를 지적하고 자기의 사도권과 믿음의 본질을 밝히기 위하여 이 서신을 썼다.
에베소서 교의적인 것과 윤리적인 부분으로 나누어,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얻어지는 구원을 강조하고 있고, 교회에 있어서의 신앙의 일치, 성성(聖性), 개인적 ·사회적 도덕과, 영성(靈性)에 의한 생활의 실천방법에 관하여 가르치고 있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비유하여 이해하기 쉽도록 쓰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빌립보서 바울로가 에페소의 감옥에서 쓴 글이다. 그때 그는 그리스도교 사역자들의 반대에 부닥쳐 상심하고, 필립비 교회에서 거짓되게 가르치고 있는 것을 알고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바울로의 그리스도에 대한 깊은 신앙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기쁨과 확신에 차 있다. 이 편지는 그가 곤궁할 때에 필립비 교인들이 그에게 보내준 선물에 대해서 그들에게 감사하기 위한 것이었다.
골로새서 골로사이의 신자들은 이교(異敎)로부터의 개종자가 많아, 당시 이교에서 유래한 잘못된 교설을 가르치는 자가 있어 신자들에게 혼란을 일으켰기 때문에, 이곳에 복음을 전한 에바프라가 이 교회의 상황을 바울로에게 보고하고 지도를 청하였다. 이 편지는 그 요청에 따라 쓴 것으로 4장으로 나뉘어져 있는 짧은 내용인데, 바울로는 그리스도교적 전망을 우주적으로 확대하여 그리스도가 행하는 구원의 역사(役事)와 창조역사와의 관련성을 밝히고 있다.
데살로니가전서 어렵사리 개척한 교회를 경험 있는 지도자도 없이 두고 떠나오게 된 것이 마음에 걸린 바울로는 디모테오를 보내 소식을 알아오게 하였고, 디모테오는 그들이 꿋꿋하게 신앙생활을 할 뿐만 아니라, 바울로를 만나고 싶어한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이에 바울로는 그들을 격려하기 위하여 이 편지를 보냈다. 그는 이 초신자들이 박해를 이겨내고 전날의 타락한 생활로 돌아가지 않도록 격려하였으며(1:2~3:13), 성적(性的) 문란 및 분열과 파벌주의(派閥主義)를 경계하였고(4:1~12), 주(主)의 재림(再臨) 전에 살아 있는 또는 죽은 성도는 어떻게 되는가 하는 종말론(終末論)을 다루었다(4:13~5:28). 초대교회의 소박한 면을 보여주는 편지이다.
데살로니가후서 첫번째 편지의 답장을 통하여 재림(再臨)에 관한 가르침에 다소 오해가 있음을 알고 그들에게 건전한 재림신앙을 가르치기 위하여 쓴 것이다. 이를 위해 어떤 것이 주(主)의 재림에 대한 바른 견해인가(2:1∼17)를 말하고, 이어 기도와 규율에 관한 교훈(3:1∼15)을 언급하면서 성도가 고난을 받는 참된 의미는 장차 하느님의 대적들이 멸망한 후에 미래의 영광을 얻을 수 있도록 연단받는 데 있음을 가르쳤다.
디모데전서 1장 : 인사, 그릇된 가르침에 대한 경고, 율법의 역할, 바오로의 감사, 디모테오의 책무 2장 : 모든 사람을 위한 기도, 올바른 예배 자세 3장 : 교회 지도자의 자격, 봉사자의 자격, 위대한 신앙의 신비 4장 : 거짓 교사들에 관한 경고, 그리스도의 훌륭한 일꾼 5장 : 신자들을 대하는 자세, 과부들에 관한 지침, 원로들에 관한 지침 6장 : 종들에 관한 지침, 이단과 탐욕에 대한 경고, 믿음을 위한 싸움, 부자들에 관한 지침, 마지막 권고와 인사
디모데후서 1장 : 디모테오에 대한 문안 인사 순수한 믿음에 대한 감사 2장 : 그리스도인의 고난에 대한 언급 3장 : 마지막 날에 대한 언급 이단자들에 대한 언급 성서(구약성서)의 권위에 대한 강조 4장 : 디모테오가 사목을 끝까지 해내기를 바라는 격려
디도서 디도는 이방인으로서 바울로의 인도로 그리스도교인이 된 자로 바울로의 믿음의 아들이며, 그의 훌륭한 협력자였다. 바울로는 그레데(크레타)에서 전도한 다음, 그곳에 남겨 놓은 디도에게 교회를 세우는 일과, 교회를 지도 ·관리하는 데 알아둬야 할 일들을 열거하고 있다. 그레데 사람들은 신앙과 그 실천에서 떠나 지식이나 난잡한 이야기, 공소(空疎)한 토론을 일삼고 있었던 것이다.
빌레몬서 바울로가 자기에게로 도망쳐 온 노예 오네시모를 신자인 주인 필레몬에게 돌려보내면서 부친 편지.
히브리서 80년경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신도가 신앙을 권면하기 위해 편지투로 쓴 것이다. 사도 바울로가 로마 교회의 어떤 단체에 보낸 글이라는 설도 있다. 13장으로 이루어진 편지라기보다는 설교집인 동시에 권고문이다. 박해가 장기화함에 따라 신앙생활에 지쳐 있거나, 박해를 당하고 있는 사람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심오한 그리스도론(論)을 전개하며 그리스도교의 훌륭한 점을 제시하고 있다.
야고보서 편지의 형식으로 시작되어 있지만 편지라기보다는 교훈적 내용을 담은 권고문이다. 환란의 소용돌이 속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위로하고 격려함과 동시에 신앙에 도취되어 행위를 무시하는 자를 경계하는, 일반 신도에게 주는 권고이다.
베드로전서 첫째 편지는 베드로가 소(小)아시아의 각 지방에 산재해 있는 신도들에게 보낸 편지인데 5장으로 되어 있다. 당시 이 지방 사람들은 그리스도교도가 됨으로써 갖은 고난과 박해를 받아야만 하였다. 베드로는 이들에게, 눈앞에 닥친 박해를 두려워하지 말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삶의 소망을 가지고 굳건한 신앙 위에 서서 인내로써 시련을 극복하라고 격려함과 아울러, 사회 각계 각층의 사람들에게 각자의 분수에 맞는 권고를 하고 있다
베드로후서 문체·표현이 다를 뿐 아니라 시대 배경이 다른 점으로 미루어 베드로가 쓴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 유력하다. 여기서 죽음이 가까워진 필자는 신자들에게 유언과도 같은, 마지막 권고를 하고 있다. 당시 교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던 그노시스주의를 배격하고, 또 거짓 예언자나 거짓 교사를 멀리하고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을 대망하며 살라고 당부하고 있다.
요한 123서 편지는 1세기 말 여러 교회에 써 보낸 권고인데, 내용은 교회생활 또는 교회의 사귐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교 윤리서라고도 일컬어진다. 교회는 하느님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가 교통하는 단체이며 하느님이 빛이듯이, 그들은 빛 속을 걸으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아 생활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스도인의 윤리는 사랑의 실행에 있으며 그 전제는 하느님의 사랑이다. 4장 7∼21절은 이 하느님의 사랑에 관하여 쓴 유명한 대목이다. 이 편지는 당시 이단시된 그노시스파(派)의 잘못된 신앙관과 자유분방한 생활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의 율법에 따를 것을 역설하고 있다.
유다서 당시 이단시된 그노시스파(派)에 대하여, 교회가 참된 신앙으로 살며 그들에게 대항하여 투쟁할 것을 편지 형식으로 기록한 권고문이다. 저자는 스스로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야고보의 동생인 나 유다’로 밝히지만 누군지 분명하지 않다.
요한계시록 그리스도가 가장 사랑하던 제자 요한이 파트모스(밧모)섬에서 받은 다분히 환상적(幻想的)인 계시(啓示)를 적은 것. 요한 계시록 또는 줄여서 계시록이라고도 한다. ‘묵시록’이란, 여러 가지 환상적인 이야기를 통하여 비(非)인간적 세계의 사건들을 묘사한 문학을 말한다. 그리스도교의 대표적인 계시문학서가 바로 이 《요한의 묵시록》이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가 경험한 기독교에 관하여
우리가문은 친가&외가 모두가 기독교가 아닌, 천주교집안이다. 어렸을 때까지 천주교와 기독교에 대한 구분이 없었다. 둘 다 똑같이 하나님을 믿는 종교로만 생각했다. 그렇게 별 특별함 없이 유년기를 지나 청소년기가 되었다. 고등학교2학년때 심리적으로 정서적불안함이 온 적이 있었다. 그 때 부모님의 이혼으로 힘든 시기를 교회를 다니면서 잘 버틴 친구가 나에게 성경책을 주면서, 교회를 다니자는 권유를 했다. 그렇지만 그 당시 나는 교회가 이상하게도 부정적으로만 생각해서 친구의 권유를 거절하였다. 그런데 당시 한체대에 다니는 호감 있는 오빠가 내 친구 교회에 다닌다는 소리를 듣고, 예수님을 믿으러 간 것이 아니라, 이성의 호기심으로 교회에 발걸음을 하였다. 정말 처음에 교회에 사람들의 기도하는 모습에 너무너무 무서웠다. 교회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처음 발걸음한 교회에서는 사람들이 대성통곡을 하면서 예수님께 고백하면서, 중얼중얼 주문을 외우듯이 울고 있었다. 나는 큰 충격을 먹게 되었다. 그래서 다시는 교회에 다니지 않겠다고 다짐하였고, 더 부정적으로 생각만 하게 되었다. 그렇게 몇 개월동안 교회는 내 머리에서 잊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고2에서 고3으로 가는 겨울에 엄마가 쓰러지는 일이 생겼다. 엄마가 아파서 쓰러졌는데, 병원에서 검사를 더 해봐야겠지만, 코에 암이 생겼다고 진단을 내렸다.
나는 너무 슬펐다. 그래서 다시 교회를 찾게 되었다. 그래서 열심히 기도하였다. 엄마가 좋은 결과만 있기를 기도했다. 장난으로 아닌 진심으로 기도하였다. 그렇게 열심히 기도한 결과는 좋은 결과를 나오게 되었다. 엄마가 암이 아닌 종양으로 수술만하면 쾌유할 수 있다는 최종진단이 나왔다. 그 때부터 교회(기독교)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에서 긍정적인 시각으로 점점 개선되고 있었다. 교회를 나가면서 찬양하는 노래도 외우기 시작하고 mp3에 넣어서 흥얼흥얼 거리면서 교회에 다닌는 것을 어느 정도 자부심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런데, 교회에서 명지대에서 하는 교회축제를 가게 되었는데, 나는 그 곳에서 발을 헛디뎌 날카로운 돌계단에 이마와 눈썹사이가 심하게 찢어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내가 부주의해서 다친 사고인데, 또 나는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괜히 이곳에 와서 다치고, 얼굴에 흉이 진다는 생각을 하게되니, 눈물도 나고, 또 다시 교회는 오고 싶지 않은 곳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또 몇 개월이 지나고 체육대회에 다가오는 계절이 왔다. 나는 체육대회를 나의 일년 중 가장 큰 행사라고 생각해, 같은 반 친구들에게 힘들게 운동을 시키고, 강요하고 불편을 주게 되었다. 나의 욕심 때문에 같은 반 친구들에게 피해를 받자 아이들과 나 사이의 트러블이 생겨버렸고, 운동을 하다가 다치는 사고도 이러나면서 체육대회 우승과는 점점 멀어지고 아이들과의 사이도 멀어지게 되었다. 그러다 체육대회 전 날에 잠자기 전에 정말 진심을 다해서 같은 반 친구들과의 문제와 체육대회에서의 우승을 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열정적으로 했다. 다음 날 체육대회에서 배구를 하는 도중에 나도 모르게 기도를 하게 되고, 하나님과 예수님을 찾으면서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그래서 우리 반은 배구 우승을 하게 되었고, 같은 반 친구들과의 사이도 다시 예전처럼 좋아지게 되었다. 그 때 진심으로 기도하면 모든 일은 다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고등학교에서의 기독교에 대한 경험을 하고 2009년 꿈에 그리던 대학에 오게 되었다. 관동대학교가 기독교학교인 걸 알았을 때, 조금은 놀랐지만, 학교를 다니면서 1학기에 기독교와 경제라는 교양과목을 듣게 되었다. 그 수업은 기독교적 관점으로 경제를 배우는 시간인데, 기독교와 경제 교수님과 나는 앙숙처럼 매 시간마다 싸우기 시작했다. 수업시간에 떠드는 나도 문제였고, 나에게 귀신이 씌였다는 등 이상한 소리를 하시는 교수님도 문제였다. 그렇게 또 기독교라는 자체가 부정적으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은 다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기독교와경제 교수님과 상담을 하는 기회가 생겼다. 난 정말 지루하고 재미없는 시간이 될 거라고 예상하였지만, 교수님께서 교회 좋은 말씀을 해주시고, 내가 힘들게 생각하는 일에 해결책도 제시해 주면서, 화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면서 나에게 강릉 교동에 있는 교회에서 유명한 전도사 분이 오신다고 꼭 오시라면서, 메모지에 연락처와 일정을 적어주시면서 꼭 좋은 기독교인이 되면 좋겠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 때부터 대학 동기들 중 교회를 다니는 동기와 함께 법정대 지하에 있는 대학교회를 주말마다 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지루하고 졸리고, 힘들었지만, 점점 가다보니 익숙해지고, 찬양들도 좋은 노래로 듣게 되었다.
솔직히 지금 매주 교회를 다니지 않고 있지만, 내가 심리적으로 마음이 불안하고 힘들 때 교회를 찾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왠지 모르게 위로와 편암함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이제 고칠 점은 내가 힘들 때만 교회, 즉 예수님을 찾지 말고 평소에도 기도하고 교회를 잘 다녀야겠다고 생각한다. 비록 집에서 반대는 하지만, 나에게는 천주교보다는 부담이적고, 아담하고 더 편안한 교회를 선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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