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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여행을 사랑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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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1 지역법회.불교행사 스크랩 서울경기 강화 보문사 / 향기롭고 따스함이 스며있는 곳
가야 추천 0 조회 132 06.07.10 10:51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강화 보문사 / 향기롭고 따스함이 스며있는 곳

드디어 석모도 선착장에 배가 도착했습니다.
차를 가지고 가지 않은 제가 첫번배로 내렸습니다.

석모도는 제게 여러모로 뜻깊은 곳입니다.




날씨는 무더웠지만
부드러운 해풍과 맑은 공기,



때마침 출발하려는 버스에 허둥지둥 오르려니,
기사님 왈, 차표를 끊어와야 한다나요.

바로 옆 간이매표소에서 보문사까지 표를 구입했습니다.
요금은 천원.




한적한 시골길을 달려 도착한 보문사 입구.
차에서 내리니 우리를 반겨주는 것은, 그곳에서 장사를 하시는 여러 분들.



맞은 편 도로
나란히 늘어선 파라솔 밑에서,
나물이며, 푸성귀 갖가지 곡식들을 파시는 할머님들.

 


마른 새우와 강화특산물이라는 무슨무슨 가지라는 이 식물,
기억력이 좋지 않아 이름을 ....




전국 어느 사찰을 가던지,
똑같은 풍경.

절 입구에 늘어선 음식점들.
어쩌면 이렇게 한결같을까요?





훠이훠이 땀을 훔치며 언덕길을 올라 매표소에 도착했습니다.
한 가족인듯 한 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아이들!

입장료는 대인 1500원입니다.
하지만 저는 보문사 기도카드가 있어 그대로 통과~
(천오백원을 벌었다는 기쁨~)




막 일주문을 들어서려다 현판글씨에 잠시 넑을 잃고 시선을 고정했습니다.
멋들어진 예서체 글씨의 낙가산!

눈이 나빠 글씨를 쓴 사람이 누구인지 낙관을 볼 수가 없었지만.
보면 볼수록 멋진 글씨였습니다.





현판만 크게 확대해 찍은 사진입니다.
어때요?

낙가산이란 글씨 멋지지 않나요?



일주문 뒷면입니다.
단청이 아름답길래 찍었는데 까맣게 나와서...



보기만 해도 숨이 헉헉 차는
가파른 오르막길,

저만치 위에
혼자걷기도 힘든 길을 아이를 업은 누군가가 걷고 있네요.



오르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내려오는 사람들도 있고요.
이 시간 7월 8일 오전 11시 10분.



보문사 부처님을 만나려 가는 길 양옆은 온통 울울창창 소나무 숲이랍니다.
소나무 줄기에 자란 이끼가 하많은 세월이 흘렀음을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군락을 이룬 소나무는 사이좋게 서로 머리를 맞대고,
도란거리며 한 여름을 보내고 있습니다.




허리를 잔뜩 구부린채 아이를 업고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는 어머님!
부처님을 뵈려가는 길,
좀 힘들고 더우면 어떻겠어요.





일주문을 지나 첫번째 만난 전각.
그런데 이 멋진 건물이 화장실이라면 여러분은 믿으시겠어요?



건물만 단아한 것이 아니라,
담장까지도.

손이라도 씻을 요량 잠시 들어갔더니,
겉모습처럼 깨끗하고 정갈한 내부.

잠시 시원한 물로 손을 씻고,
땀을 식힐 수 있었습니다.


 
이 건물의 용도는 잘 모르겠습니다.





수령이 400년이 넘었다는 은행나무입니다.
보호수임에 분명한데,
그 앞에 차들이 가득...




보문사 중창비인 듯 싶습니다. 






사정이 있어 타고왔겠지만,
이곳까지 차가 들어온다는 것은 좀 그렇습니다.



잠시 더 올라가니 단아한 건물이 그 모습을 드러내며 싱긋이 웃습니다.




왼쪽으로 멋진 종루도 보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인지는 몰라도
단청은 빛이 약간 바랜 것이 멋이 있고 운치도 더 한 것같습니다.

보세요.

그렇지 않나요?
고색창연한 모습!



오른쪽에 있는 건물 활짝 열린 문 사이로 등불이 손짓을 하고 있네요.




조금 더 올라와 찍은 종루의 모습입니다.


아하,
오른쪽에서 자꾸만 제게 미소를 보이길래 어느 건물인가 궁금했는데
올라와 보니 산중다원이었군요.




다원 앞 나무 탁자와 의자가 정겹게 놓여있고,
그 아래 넓은 오지그릇에 수련 한송이가 하늘을  떠 이고 피어있네요.


 

드디어 보문사 경내에 들어섰습니다.
잠시 가쁜 숨을 정리합니다.




종루의 측면 모습입니다.
목어와 법고 그 앞에 쌓아둔 기와가 정겹지 않나요?





종루 옆으로 윤장대,
그 옆으로 이런, 진짜 종루가 있네요.

그렇다면 제가 종루라고 했던 건물은 목어와 법고가 있는 건물이니, 목법루라고 불러야 하나?




웅장한 극락보전 측면모습입니다.
10여년 전 그러니까 1995년 7월에는 이 건물은 신축 중이었는데....




대웅전 오른쪽 뒷편에 위치한 삼성각






목어와 법고의 또 다른 각도의 사진입니다.






10여년 전이나 2006년 지금이나
보문사는 여전히 불사중~

지금은,
석실 왼쪽 옆으로 나한전을 불사 중이랍니다.
그 뒤에 커다란 나무가 바로 400년 된 은행나무 입니다.





이 하얀탑 옆쪽이 바로 나한전 조성공사 부지랍니다.
포크레인과 불도저 소리로 요란하더군요.







극락보전의 오른 쪽 옆면





극락보전 빙 돌아가며 양쪽으로 십이지신상 부조를 설치해 두었습니다.






드디어 오늘날 보문사를 있게 한 나한님을 모신 석굴 입구입니다.




사진은 나한전 불사에 대한 안내문입니다.






보문사 석굴에 관한 안내문입니다.
글씨가 잘 안 보이시죠?


아래의 사진은 보문사 석굴 모습입니다..



보문사 나한님들에 얽히 설화를 살펴보겠습니다.
(아래 글들은 보문사 홈페이지에서 모셔왔습니다.)





강화군 삼산면 매음리 629번지 낙가산에 있는 사찰.
강화도 서쪽의 석모도에 있다.
양양낙산사와 금산보리암과 함께 우리나라 3대 해상 관음 기도도량이다.
신라 선덕여왕 4년(635)년에 회정대사가 금강산에서 수행하다가 이 곳에 와서 절을 창건하였는데, 관세음보살이 상주한다는 산의 이름을 따서 산의 이름을 낙가산이라고 하였고, 중생을 구제하는 관세음보살의 원력이 광대무변함을 상징하여 절의 이름을 보문사라고 하였다.


신라 선덕여왕 4년(635)에 한 어부가 바다에 그물을 던졌는데, 사람 모양의 돌덩이 22개가 한꺼번에 그물에 걸렸다. 고기를 잡지 못해 실망한 어부는 돌덩이를 바다에 버린다. 다시 그물을 쳤는데 또 다시 바로 그 돌덩이들이 걸리게 되자, 어부는 또 다시 그 돌덩이를 바다에 버렸고, 돌이 두번이나 그물에 걸리게 되자 그만 집으로 돌아간다. 그날 밤 어부의 꿈에 한 노승이 나타나서, 낮에 그물에 걸렸던 돌덩이는 천축국에서 보내온 귀중한 불상인데, 바다에 두번이나 버렸다고 질책하고, 내일 다시 그곳에서 불상을 건져서 명산에 봉안해 줄 것을 당부하였다. 다음 날, 23개의 불상을 건져올린 어부는 꿈 속에서 노승이 당부한 대로 낙가산으로 불상을 옮겼는데, 현재의 보문사석굴 앞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불상이 무거워져서 더 이상 옮길 수 없었다. 그리하여, 석굴이 불상을 안치할 신령스러운 장소라고 생각하고, 굴 안에 단을 만들어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 깨어진 옥등잔 전설

옛날에, 보문사의 어린 사미승이 부처님께 등공양을 하기 위해 법당에 들어갔다. 나한전에는 보문사에 전해내려오는 귀중한 보물인 옥등잔이 있었는데, 사미승은 옥등잔에 기름을 부으러 가는 것이다.
사미승은 옥등잔을 내리고, 등잔에 기름을 붓다가 실수로 등잔을 떨어뜨리게 된다. 떨어진 옥등잔은 두조각이 나게 되고, 사미승은 혼비백산하여 법당을 빠져나와 구석에 주저앉아 훌쩍이게 된다.
마침 지나던 노스님이 사미승이 울고 있는 모습을 보고, 무슨일인지 물어보자, 사미승은 옥등잔을 깨게 된 일을말하게 된다.
사미승과 노스님은 깨진 옥등잔이 있는 나한전으로 들어갔는데, 두동강난 옥등잔은 멀쩡히 불빛만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이상히 여긴 노스님은 옥등잔을 자세히 살펴 보았지만, 깨진 흔적조차 없이 멀쩡하였다. 이에 노스님은 "이것은 분명 나한의 신통력 때문이로다" 하며 놀라워했다고 한다.



보문사의 유명한 맷돌 입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아,


맷돌 위에 동자스님들이 잔뜩 올라와 쉬고 계십니다.





멧돌에 대한 설명입니다.
글씨가 작아 죄송합니다.(용량관계상 크게 올릴 수가 없어.)





보문사 석실 앞을 지키고 있는 향나무에 대한 안내문입니다.
잘 보이시죠?
한번 읽어보세요.





밖에서 촬영한 석실 내부 모습입니다.
하나도 안 보입니다.
아무래도 제 마음의 눈이...





95년 7월에 같이 와 서원을 올리던 사람은 없고,
달랑 나 혼자서

다시 나한님 전에 앉았습니다.

그날처럼 석실 안은 너무나도 무덥습니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땀은 뚝뚝 떨어지고,

저는 미리 준비해간 목 캔디 2통을 나한님 전에 올렸습니다.
생각같아서는 제과점에서 파는 예쁜 병에 담긴 사탕을 올리고 싶었는데,

시간이 일러 제과점 문을 연 곳이 없어,
목 캔디로 대신해야 했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래요.

목 캔디가 이미 뜯겨져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뜯어진 물건을 팔다니,
그러면서 혹시 나한님이 이 문제로 화를 내시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당혹함을 감추면서 조심스럽게 나한님들을 우러러보니,
아무렇지도 않으신 듯 담담한 표정.

마음을 놓고,
108배를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나한님 앞에서 맹세한 것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제 그 끈 놓으려하니,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10배쯤 하였을 때,
너무나도 가벼워진 몸!

그렇게 나한님은 제 스스로 옭아맨 질긴 인연의 끈을 풀어주신 모양이엤습니다.

사진을 찍었으면 좋겠다고 법당을 지키는 보살님께 부탁을 하니,
완강하게 거절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정을 하여 한 번만 찍으라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한번만 찍겠다고 해놓고서
자그마치 5번이나 찍었습니다.



   


왼쪽에서 바라본 나한님들의 모습입니다.

저는 대부분 비슷하게 생기셔서 그 분이 그 분같은데,




사진이 잘 안나올까봐 같은 위치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석실 내부 신장님 부조입니다.

사탕을 두 캔 산 것은 하나는 나한님 전에 
또 다른 하나는 신장님 전에 올리려던 것인데,

하나가 뜯겨진 것이라 두 개다 나한님 전에 올리고 말았습니다. 

신장님,   
다음에 정말 신장님 몫으로 맛있는 캔디 사다 올릴께요.



가운데에서 바라본 나한님들의 모습입니다.




오른쪽에서 바라본 나한님들의 모습
(하도 조심스럽게 찍다보니, 너무나 어둡지요?)



구불구불 세월의 풍상을 고스란히 겪어왔음을 온 몸으로 말해주고 있는 향나무!





석실 오른쪽 옆에 모셔진 용왕님,




더위에 지친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통에
저도 한참을 기다린 끝에 달디 단 물을 마실 수 있었답니다.




작고 아담한 삼성각의 모습입니다.






대웅전 측면에 있는 꽃살문입니다.
너무나 예쁘죠?




옛부터 있었던 범종각의 고색창연한 모습


 

이곳은 절의 후원
지하에 공양간이 있습니다.



이 곳은 다시 극락보전.




오백나한과 와불법당을 조성한다는 불사 공고 현수막이 붙어있습니다.





극락보전 현판과 그 옆에 위무 당당한 용!



극락보전 안에 모셔진 세 분의 부처님.





특이한 것은 세 분의 부처님 위 웅장한 닷집 가운데 부처님이 계시네요.





극락보전 안에 계신 지장보살님!





극락보전을 옆에서 본 모습입니다.








경주 불국사의 청운교 백운교처럼 멋진 석조 다리.
샷터를 누르려는데 웬 꼬마숙녀가 고개를 쑥 내밀었네요.

 


극락보전의 단청




날아갈 듯한 범종각의 처마 모습입니다.





푸른 이끼가 낀 범종각
군데군데 채색이 벗겨진 단청,

깨끗하게 색칠한 곳보다 훨씬 정겹습니다.





또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 범종각의 풍경





잠깐 보문사의 비밀스런 곳간을 훔쳐보았습니다.
돌담과 커다란 항아리

많은 이들에게 귀한 음식을 제공해 주는 맛의 근원지가 바로 이곳이랍니다.




돌담 너머로 아스라히 바다가 보이는데,
날씨가 맑지 못해,

사진에서는
아쉽게도 바다는 보이지 않는군요.




무설화중전인가요?
(한자실력의 부재로 제대로 읽은 건지 모르겠네요.)




종무소 앞에서 잠시 망중한의 시간을 보내고 계시는 분들,
불교신문을 읽고 계시는 분도 계시네요.





이 단아한 사대부집 같은 건물이 보문사 행정을 총 담당하는 곳입니다.
작은 가게도 딸려있구요.





1시가 얼추 되었습니다.
배가 고파, 공양간으로 내려갑니다.




산에 오면 자연 그 자체가 작품이요,
사찰에 오면 모든 것이 다 예술인 듯,

계단까지도 멋집니다.



넓은 아주 넓은 공양간으로 들어섰습니다.
수백명이 동시에 식사를 해도 좋을 만큼 넉넉합니다.




열 댓명이 삼삼오오 앉아 공양을 들고 계십니다.




그럼 절간의 비밀스런 곳,
공양간을 잠깐 엿보기로 할까요?

사진을 찍으면서도 혹시 공양주보살님이 뭐라고 하실까봐
조마조마 했는데 다행히 아무 말씀 없으시더군요.

대신,
식사를 하던 어느 분이 왜 사진을 찍느냐고 따지듯 묻더군요.





위에 놓인 다섯 가지가 오늘의 반찬입니다.
열무김치, 배추김치, 깬잎, 콩나물. 무우김치



부부인듯한 두 분이 꿇어앉은 자세로 밥통의 밥을 푸고 있습니다.
밥통이 바닥에 있는지라.

각자 식판에 밥과 음식은 양껏,
그러나 절대 남기면 안 됩니다.

흰쌀밥에 우거지 국입니다.





반찬을 준비하고 계시는 공양주 보살님
(항상 감사합니다.^^)






저기 보이는 압력밥솥은 대형 식당에서나 봄직한 밥통으로 한 솥에 밥을 지으면 50~60인분의 밥이 지어집니다.


그런 대형 밭솥이
자그마치 6개 씩이나.

상상이 되시죠?
하루에 보문사에서 얼마나 많은 양의 밥을 하시는지..

참고로 사찰에 가시면 반찬은 아주 조금만 가져다 드시고,
싱거우면 더 갖다드시길,

대부분 사찰이 산 정상이나 고지대에 위치한 관계로
많은 양의 음식물을 준비할 수 없어
엄청 짜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마시길.

오늘 열무김치와 깬잎을 먹고 너무나 짜 죽는줄 알았습니다.
남길 수도 없고 하여,
그냥 다 먹었지요.

오는 길에 얼마나 물을 많이 마셨는지.
배가 올챙이 배가 되어~




그래도 맛있게 공양을 마치고
식판을 깨끗히 설겆이하여 엎어두고 공양간을 나왔습니다.

바라다보이는 곳이 화장실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화장실로 쓰기에는 너무 아깝습니다.

내 작업실로 쓰면 정말 좋을 텐데...
그림의 떡이 따로 없습니다.




허걱,
이곳에 웬 황토 찜질방?


지금 스님들도 웰빙 중이신가봅니다.
아담한 토담집,
지붕까지 초가로 올렸습니다.






아마 세 사람이 누우면 방이 꽉 찰 듯,
문을 활짝 열어두었는데 바로 뒷문이 보이죠?

앞뒷문을 열어놓으면 맞 바람이 쳐
엄청 시원하겠지요.

옛날 시골의 우리 집이 생각나네요.






옆에서 바라본 공양간의 웅장한 모습입니다.
정말 큰 건물입니다.



다시 그 운치있는 돌 계단을 오릅니다.
오른쪽에 스님들의 처소가 있습니다.

마당엔 승복도 널려있고,
처소 이름이 대조헌




이 곳이 스님들이 기거하시는 곳인가 봅니다.



 
이 곳은 여러가지 의식에 쓰고난 물건을 태우는 곳입니다.



공양간에서 올라와 바라본 극락보전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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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6.07.10 10:59

    첫댓글 忍 忍 忍

  • 06.07.11 08:55

    멋진 산사풍경과 친절하고도 상새하신해설문 감사히 봤읍니다 겸하여 두고두고 보기위해 내앞으로 옮겨갑니다

  • 06.07.12 13:11

    가야님 덕분에 자세한 세부적인 설명과 사진 감상 잘하고 갑니다

  • 06.07.13 00:08

    보문사 입구까지가서 못올라가봤어요ㅡㅡ! 넘 높고 힘들까봐서리...사진으루 보니 넘 좋으네요 담엔 꼭 도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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