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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노조 만들어야 직협이라도 따낼 수 있다
영국경찰노조의 뿌리
경찰노조의 길 5
문성호
한국자치경찰연구소 소장
영국경찰노조(Police Federation)는 명칭은 노조가 아니지만 사실상 경찰 노동3권을 모두 행사하며 유럽경찰노조연합에도 가맹되어 있다. 그 뿌리는 1918~19년 1,2차경찰파업에 있다. 영국에서는 19세기 후반부터 몇차례 소소한 경찰파업이 있었지만 경찰노조는 불허되었다. ‘1895년의 영국형법’은 제3자가 경찰 근무활동에 개입하거나 파업을 요청하거나 경찰 스스로 동료에게 근무를 거부하거나 지지하는 행위들을 형사상 범죄로 다스리도록 규정하였다.
그러나 1913년 <경찰평론> 9월호는 경찰노조(NUPPO)가 설립되었으며 일선경찰이 비밀리 가입하고 있음을 알리는 익명의 독자편지를 게재한다. 당시 누구라도 경찰노조 가입이 밝혀지면 즉각 해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노조는 무럭무럭 자라나 현장조합원이 증가한다. 당시 에드워드 헨리 런던경찰청장과 영국정부 측은 단지 경찰노조 조합원 해임과 연금지급 배제조치만으로도 막아낼 수 있다고 오판한다. 그러나 1918년 8월경 경찰현장 분위기는 고조되어 오히려 파업으로 치닫는다. 즉 경찰노조조직의 핵심인물이던 테일순경 해임조치가 1918년 경찰파업을 촉발시킨다. 이로부터 테일순경 복직은 물론이고 임금과 노동조건 문제도 줄줄이 불거져 나온다. 경찰노조 집행부는 1918년 8월 29일 자정까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파업에 돌입한다고 통보한다.
당시 영국은 국내외적으로 노동분규가 들끓던 시기여서 경찰파업은 무방비상황으로 내몬다. 신속한 경찰파업 돌입과 강고한 연대는 정부를 경악시킨다. 다음날 사실상 1만2천여 런던경찰 전원이 파업에 돌입한다. 하는 수 없이 수도핵심거점에 군대를 배치하며 경찰파업중단이야말로 정부의 최대현안이 되었다. 프랑스에 있던 로이드 조지 총리는 급거귀국 31일 경찰노조집행부와 면담을 갖고 그날부로 파업을 마무리짓는다. 파업중단조건은 주급13실링인상, 연금자격 30년근속에서 26년근속으로 하향조정, 유가족연금 신설, 전쟁보너스 12실링 지급, 학자금수당 신설, 테일순경복직 등이었다. 경찰노조 공식승인을 제외한 모든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경찰파업이 대성공을 거두자 조합원수는 그해 8월 1만여명에서 세달 후인 11월에는 5만여명으로 급증한다.
그러나 1918년말부터 1919년초의 시기는 영국은 온갖 노사분규를 일으키던 시기며, 1919년 중반 부두 철도 운수 노동자들이 파업을 일으킨다. 전국적인 제빵노조파업 및 글래스고우 주택건설노조파업 등이 휘몰아친다. 언론은 소련의 볼셰비키혁명이 영국도 집어삼켜버릴 것처럼 보도한다. 정부는 경찰이 노총(TUC)이나 다른 노조와 연대파업하는 것은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 만일 그런 상황이 닥친다면 걷잡을 수 없다고 우려한 것이다.
경찰노조 승인문제에 대해 로이드 조지 총리는 전시라서 승인할 수 없다고 버틴다. 그러나 총리가 경찰노조지도부를 직접 면담하고 경찰노사분쟁을 해결한 사실로 인해, 제임스 마스톤 당시 경찰노조위원장은 당연하게도 정부가 경찰노조를 승인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후 런던경찰청장에 임명된 현역군인 네빌 매크리디 장군은 경찰노조와 대화를 단절하고, 노조 대신 직협을 설치운영한다. 26개 지구별 비밀투표로 1명씩 대의원을 뽑아 구성한다. 정부나 경찰노조와 협의를 거치지 않은 청장의 독자조치라고 하나, 추후 하원에서 법제화된다.
결국 이 1919년 경찰법은 경찰노조에 대해 사형선고였다. 노조 대신 직협만 허용하고 상급연맹가입을 금지한 것이다. 경찰노조는 싸우거나 항복하는 도리밖에 없었다. 싸움을 택한다. 그러나 1차파업때와는 정반대로 이번에는 경찰노조측이 오판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이 제2차파업은 18,200여 런던경찰 중 단지 1,158명만 파업에 참여한다. 2차파업에서 파면된 천여 명의 경찰은 결코 복직되지 않아 큰 고통을 겪는다.
간단한 이 영국경찰노조 역사가 우리나라 경찰에게 보여주는 교훈은 불법 경찰노조를 결성해 천여명 이상 항구파면까지 당하며 싸워얻어낸 것이 경찰직협이라는 점이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이 경찰직협이 사실상 경찰노동3권을 행사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