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21일 오늘의 역사
2021년 드루킹 여론 조작사건 김경수 징역2년 실형
드루킹 여론 조작 사건은 친노(무현) ・ 친문(재인) 성향 파워블로거이자 경제적공진화모임(경공모) 대표인 김동원(필명 드루킹)을 비롯한 경공모 회원이자 더불어민주당 권리당원들이 인터넷 댓글로 여론 조작을 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사건이다. 드루킹 일당은 2018년 3월 정부 여당에 인사 청탁을 했다가 거부된 것에 반감을 갖고 네이버 뉴스 기사 댓글에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문재인 정부를 비방하는 여론 조작 활동을 한 것이 적발됐다.
경찰 조사를 통해 이들은 기존 혐의 외에 19대 대선 이전부터 문재인 후보에 대한 우호적 여론 형성을 위해 포털 사이트나 커뮤니티 등지에서 조직적인 여론 조작을 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또한 드루킹 일당이 문재인 정부 및 민주당의 주요 인사들과 연관이 있다는 의혹도 불거지며 특별검사(특검)가 도입됐다. 특검은 드루킹 일당이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경수 경남도지사 측과 공모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 서울중앙지법은 2019년 1월 드루킹에게 징역 3년 6개월, 김경수 지사에게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으며 7월21일 대법원이 형을 확정했다.
2021년 중국 정저우 폭우로 지하철 승객 고립 12명 사망
중국 중부 허난(河南)성의 성도인 정저우(鄭州)에서 기록적 폭우로 12명이 숨졌으며 20만명 가까운 주민이 대피했다 전날 저녁 정저우의 지하철 안에 물이 차올라 승객 500여명이 갇혔는데 구조작업을 벌였지만 12명이 숨진채 발견됐으며 부상자도 5명 나왔다. 전날 오후 6시50분께 지하철 5호선이 갑자기 운행을 멈췄고 폭우로 인해 지하철 안으로 물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오후 7시 20분께는 수위가 승객들의 어깨 높이까지 올라갔다. 키가 작은 승객들은 물이 목까지 찼다. 오후 7시30분쯤 차량 안의 산소가 점점 희박해지자 승객들은 불안에 떨었고 스마트폰으로 현장 동영상을 찍어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많은 승객이 산소 부족 증세를 보였으며 한 임산부는 혼절하기까지 했다.
정저우에서는 전날 오후 4∼5시 1시간 동안에만 201.9㎜의 집중호우가 쏟아졌다.
지난 17일 오후 6시부터 20일 오후 6시까지 사흘간 정저우의 누적 강수량은 617.1㎜에 이르렀는데 정저우의 연간 평균 강수량 640.8㎜에 근접하는 수치다.
2020년 군 최초 독자 통신위성 아나시스2호 발사 성공…세계 10번째
한국군의 첫 전용 통신위성 ‘아나시스(Anasis) 2호’가 미국 플로리다주 케이프커내버럴 공군기지에서 발사됐다.
아나시스 2호는 발사 약 32분 후 고도 약 630km 지점에서 팔콘-9(Falcon-9) 발사체로부터 정상적으로 분리되고, 이어 약 18분 뒤(발사 후 50분 뒤)에는 프랑스 툴루즈 위성관제센터와 첫 교신을 시도해 오전 7시 8분 첫 교신에 성공했다.
아나시스 2호는 발사 후 안테나 및 태양전지판 전개를 통해 임무 수행에 필요한 전력공급 및 운용 가능 여부를 점검할 예정이며, 약 2주간의 중간궤도 변경을 통해 최종적으로 고도 3만6000km의 정지궤도에 위치하게 된다.
정지궤도 안착 후에는 약 1개월간 위성의 성능과 운용성을 확인할 계획이다.
방사청은 “지난 2014년 사업에 착수하여 약 7년간의 수많은 노력 끝에 아나시스 2호 위성 발사에 성공함으로써 우리 군은 기존의 민·군 공용 통신 위성으로 활용되었던 무궁화 5호 위성(이하 아나시스)을 대체할 최초 군독자 통신위성을 확보하게 되었고 군 위성체계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고 전했다.
2018년 추신수(텍사스 레인저스) 52경기 연속 출루 MLB 아시아 출신 신기록, 현역 최다기록
2018년 남북단일팀 국제탁구연맹 코리아오픈(대전) 혼합복식(남 장우진-북 차효심) 우승
2005년 대법원 여성의 종중회원 자격인정 판결
2005 MBC 이상호 기자 옛 안기부 불법도청 테이프 ‘X-파일’ 보도
검찰 수사결과 안기부와 국가정보원의 도청실태 밝혀졌으나 X-파일에 나오는 삼성그룹 경영진의 불법정치자금 제공과 검찰 떡값 제공 의혹은 모두 무혐의 결정, 검찰은 불법증거사용을 금지한 ‘독수독과론’과 공소시효만료 내세웠고 시민단체들은 검찰의 수사의지 부족을 비판, 김대중 정부의 신건 임동원 국정원장은 구속 기소됐으나 김영삼 정부의 안기부장들은 공소시효가 끝나 처벌 면한 것도 논란. X-파일에 나오는 떡값 검사 이름을 공개한 노회찬 의원은 대법원의 통신비밀보호법 위반혐의 유죄 판결(징역 4월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로 제19대 국회의원 당선 9개월 만에 의원직 상실
2005년 중국, 위안화 2.1% 전격 절상
중국이 21일 밤 10년 이상 고수해온 고정환율제를 전격 폐기하고 외환 바스켓에 기반한 변동환율제를 도입했다. 또 달러화에 대한 위안화의 첫 기준 환율을 조정, 위안화를 2% 절상했다. 중국은 그동안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들로부터 위안화를 절상하라는 강력한 압력에 시달려왔다. 특히 미국은 대규모 대중(對中) 무역적자가 실제보다 평가절하된 위안화 탓이라고 비판해왔다. 이번 중국의 위안화 절상폭 2%는 서방 선진국들이 요구해온 수준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다.
2003년 한희원 미국여자프로골프(LPGA)서 첫승
2003년 7월 21일, 프로골퍼 한희원 선수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 첫발을 내디딘 지 3년, 66개 대회 만에 첫 승을 올렸다.
미국 뉴욕주 뉴로셸의 와이카길골프장에서 끝난 대회 최종 4라운드에서 한희원은 이븐파(버디4, 보기2, 더블보기1)를 치며 최종합계 11언더파 273타를 기록, 전날 자신과 공동 선두였던 메그 말론(미국)을 2위(9언더파)로 밀어내고 애타게 기다렸던 우승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그러나 이 순간을 맞보기 까지 한희원의 골프 인생은 ‘사서 고생’ 그 자체였다.
상당한 재력가 집안 태생인 그녀는 9세 때부터 골프를 시작, 1993년 15세의 나이로 최연소 국가대표에 선발됐고, 1996년 세계여자아마추어팀선수권에서 한국을 사상 첫 우승으로 이끌었으며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는 은메달을 획득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러한 화려한 시작을 뒤로 하고 박세리, 김미현 등 선배들이 미국으로 진출한 것과 달리 일본으로 향했다.
1999년 일본무대에 데뷔한 한희원은 2차례 우승하면서 그해 신인왕에 올랐지만, 그녀는 곧 또다시 ‘가시밭길’을 택했다.
이듬해 LPGA 투어 퀄리파잉스쿨에 응시해 공동 27위로 ‘컨디셔널 시드’를 얻어 2001년 미국에서 ‘신인’으로 새 출발을 한 것이다. LPGA투어 생활은 힘들었다.
‘먼데이 퀸(Monday Queen)’이라는 별명까지 얻어가며 힘든 강행군을 계속하다 결국 아버지 한영관씨와 함께 부녀가 바이러스 장염까지 걸려 한때 병원신세까지 져야 했다.
하지만 고비를 넘기면서 풀시드를 따낸 2002년에는 2위를 3차례나 차지하며 7번이나 ‘톱10’에 오르기도 했다. 이해에도 18개 대회에서 5차례 ‘톱 10’에 오르는 상승세를 보였다.
2003년 한국양궁 제42회 세계선수권대회서 8년째 우승 달성
한국은 2003년 7월21일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에서 막을 내린 제42회 세계선수권 남녀 단체전서 동반 우승, 개인전을 포함해 모두 금메달 셋, 은 둘, 동 하나를 따내며 1989년 이후 내리 8번 종합 1위 자리를 지켰다. 이 대회는 2년마다 치러진다.
4개 전 종목 우승을 휩쓸었던 1997년 대회의 ‘신화 재현’에는 실패했으나 역대 세 번째로 좋은 성적을 내 기대에 부응했다. 세계신기록 2개, 대회신기록 12개를 세워 메달 경쟁에서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풍성한 수확을 했으며, 2004년 그리스 아테네 올림픽 출전권(국가별 최대 3장) 역시 모두 확보했다.
윤미진(20), 이현정(20·이상 경희대), 박성현(20), 박미경(21·이상 전북도청)으로 이뤄진 여자팀은 이날 결승서 일본을 252대233(270점 만점)으로 가볍게 물리쳐 정상에 섰다. 지난 대회서 3위에 머물며 상처받았던 자존심을 되찾았다. 2000시드니올림픽 2관왕 윤미진은 전날 개인전 우승에 이어 단체전 금메달까지 걸어 2관왕에 올랐다.
박경모(28·인천계양구청)와 장용호(27·예천군청), 최영광(18·선인고), 임동현(17·충북체고)이 나선 남자팀도 결승서 스웨덴을 238대234로 따돌리고 시상대 맨 위에 섰다. 특히 개인전서 유일하게 입상(2위)한 임동현은 인도와 벌인 4강전서 4발을 10점에 꽂아 역전승(242대238)에 앞장섰다. 한국이 남녀 단체전서 나란히 1위를 하기는 1997대회 이후 6년 만이다. 남자 단체전 3위는 이탈리아, 여자 3위는 우크라이나가 차지했다.
1998년 미국 최초 우주비행사 앨런 셰퍼드 사망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조종사 출신인 셰퍼드는 지난 1961년 5월 5일 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우주선 ‘프리덤7’을 타고 15분간의 우주유영을 하는 등 역사적인 우주비행을 수행했다. 그는 1971년 1월 31일에도 아폴로14호 사령관으로 달 탐사에 나서 달을 밟은 5번째 인류가 되기도 했다. 특히 그는 9시간의 달 탐사 도중 달 위에서 인류 최초로 골프를 치기도 했다. 1974년 항공우주국과 해군에서 은퇴한 그는 기업체의 대표로 활동하며 각종 사회활동을 펼치다 말년에 백혈병을 앓아왔다.
미국이 최초로 선발한 7명의 우주비행사 중 한 명이었던 그는 1979년 명예훈장을 받는 등 미국 우주 개척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1997년 신한국당, 제15대 대통령선거 후보에 이회창 대표 선출
1996년 서울소년분류심사원 소년원생 150명 탈주
1996년 아랍계 필리핀인 위장 남파간첩 무하마드 깐수(정수일) 단국대 교수 체포
1994년 토니 블레어, 영국 제1야당인 노동당 당수로 당선
영국 제1야당인 노동당이 1994년 7월 21일 온건한 변호사 출신의 토니 블레어(41)를 새 당수로 선출했다. 블레어는 이날 노동당 의원 및 소속 당원들의 투표에서 57%를 얻어 당수 대행인 마거릿 베케트 후보와 존 프레스코트 후보를 압도적인 표차로 물리치고 당선됐다.
지난 5월 심장마비로 타계한 존 스미스 당수의 뒤를 이어 영국 제1야당인 노동당의 새 지도자로 선출된 토니 블레어(41) 신임 당수는 변호사 출신으로 전임자인 스미스와 같이 현대화주의를 제창, 노동당에 대한 노조의 영향력 제한을 꾀할 것으로 보이며 유럽통합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지지입장을 표명하는 등 노동당 내 우파적인 성향을 띤 인물로 꼽힌다.
1953년 5월 에딘버러에서 출생, 형식을 중시하는 스코틀랜드의 사립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옥스퍼드대에서 법학을 전공한뒤 지난 1975년 런던의 한 법률회사에 들어가면서 노동당에 가입했다
1993년 우리나라 위성방송 전송방식 `디지털`로 결정
1989년 불가리아 동유럽 국가 중 5번째로 서울에 무역사무소 개설
1987년 전국교수협의회 창립
1987년 중부지역 큰 비 금강유역 피해 큼 사망 148명 재산피해 2,888억 원
1986년 한미통상협상 일괄타결
1983년 택시 시간거리 병산제, 운전사 기록전산화, 전자미터 설치 등 교통안전기본계획을 확정
1983년 중국, 상해 등 외국인에 개방
1983년 남극 대륙의 보스토크 -89.2℃ 세계최저기온
1981년 유엔안보리, 이스라엘 및 팔레스타인에 48시간내 전투행위 중지결의안 채택
1980년 비타르 전 시리아 수상 파리서 피살
1980년 솔라즈 미 의원 미 의원으론 처음 김일성면담 사실 공개
1980년 온 나라 큰 비 사망 102명 실종 65명 재산피해 6억 원
1979년 카터 주한미군 철수 계획 수정
1979년 삼천포 근해 간첩선 사건
1978년 낙동강 연안 종합개발 착수
1977년 이집트-리비아, 국경지대서 군사충돌
1970년 제3차 한미국방장관 회담
1969년 경인고속도로 전 구간 개통
1969년 미국 국무성, 대 중국 완화정책 발표
1968년 미국 현대무용 혁신가 세인트 데니스 사망
1967년 미국 체이스 맨하탄 은행 외국은행으로는 처음 한국지점 개설
1966년 초특급 맹호호 운행 경부선 5시간 45분 주파
1964년 싱가포르서 중국인과 말레이지아인의 유혈충돌사건 발생
1961년 미국 유인로케트 발사 성공(제2호)
1960년 스리랑카의 반다라나이케, 세계 첫 여성 총리로 선출
1960년 7월 21일 실시된 실론(현 스리랑카) 총선거에서 시리마보 반다라나이케가 이끄는 자유당이 여당인 통일국민당을 누르고 제1당이 돼 세계최초의 여자 총리가 탄생했다.
반다라나이케는 1959년 9월에 암살된 솔로몬 반다라나이케 총리의 미망인으로 실론 인구의 약 70%를 차지하는 신하리족의 호족출신이었다. 그녀는 남편 사후 세간의 동정을 싫어해 정계를 떠날 것으로 보였지만 예상을 뒤엎고 1960년 5월 만장일치로 자유당 당수에 선출됐었다. 선거에서 사회당ㆍ공산당과 공동전선을 구축하는 대담하고 유연한 정치력과 ‘실론 제1주의’의 중립외교정책을 표방해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지만 그는 선거에는 입후보하지 않고 유세에만 전념했다. 그 결과 자유당 73석, 통일국민당 30석, 타밀 연방주의자들 16석, 트로츠키당 12석, 공산당 5석, 무소속이 19석을 차지했다.
1965년까지 총리를 역임한데 이어 1970~1977년에도 총리로 재임했으나 1977년에 총선 패배로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1994년에 대통령이자 딸인 찬드리카 쿠마라퉁가가 그를 다시 총리로 기용함으로써 2000년 8월까지 총리직을 역임하다가 그해 10월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1959년 세계최초 미국 원자력상선 사반나호 진수
1958년 대구 부정투표사건 고발
1956년 정부, 재일교포 북송에 국제적십자사에 항의
1954년 제네바 협정 조인 (인도차이나 휴전협정)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의 종결을 논의하던 제네바 회담 도중 프랑스군 거점 디엔비엔푸가 56일간의 사투 끝에 1954년 5월7일 북베트남에 함락되면서 제네바 회담의 속도도 빨라졌다.
인도차이나 전쟁은 1945년 9월 호치민이 독립을 선언했으나 2차대전 발발로 일본에 베트남을 빼앗긴 프랑스가 이를 인정하지 않고 베트남 재정복을 목표로 1945년 10월에 남부를 점령한데 이어 1946년 11월에 북부를 무력공격하면서 시작됐다.
프랑스군 9만5000명과 베트남인 130만의 생명을 앗아간 9년간의 전쟁에 프랑스 국민들도 진절머리를 내며 휴전을 원하고 있었다. 7월21일, 3개월에 걸친 회담 끝에 스위스 제네바에서 휴전협정이 조인됐다. 프랑스ㆍ베트남ㆍ라오스ㆍ캄보디아가 조인 당사국이었고 미국ㆍ영국ㆍ소련ㆍ중국 등 강대국들도 회담에 참여, 자신의 입장을 내세웠다.
회담에서 북베트남 대표는 베트남의 즉각 독립, 모든 외국군 철수, 통일선거 실시 등 8개항을 주장했으나 강대국의 중재로 프랑스가 제시한 안(案)이 채택됐다. 북위 17도선을 잠정 군사경계선으로 북은 호치민이, 남은 프랑스가 지원하는 바오다이가 통치한다는 것이었다. 또 남북통일선거를 1956년에 실시하는 것으로 합의했지만 남베트남 정권이 이를 거부하면서 베트남은 새로운 수렁 속으로 빠져들었다.
1951년 당인리발전소 5000kw 발전 시작
1950년 첫 학사경관제 실시
1949년 이스라엘-시리아 휴전협정 조인, 19개월 전쟁 종식
1944년 2차 대전 중 미국군 괌도 상륙 개시
1941년 일본-프랑스, 인도방위협정 체결
1941년 독일 최초로 모스크바 공습
1940년 소련 발트 3국 병합
1939년 추풍령 지역 무더위(39.8℃)
1932년 캐나다 오타와서 대영제국 경제회의 개막
1932년 영국제국 경제회의, 영국연방내의 특혜관세제도 채택(블록경제 형성)
1925년 美원숭이 재판 종결
“진화론자들은 우리가 유럽 원숭이에서 진화했다고 결론지을 겁니다 !(브라이언)
지금 이 법정에 소환된 것은 다름 아닌 문명이오!(대로)
1925년 7월 미국 테네시 주의 작은 마을 데이턴에 세계의 눈길이 쏠렸다.
진화론자와 창조론자가 법정에서 맞붙은 원숭이 재판(Monkey Trial)이 열렸기 때문이다.
그해 3월 테네시 주 의회는 공립학교에서 진화론 교육을 금지한 버틀러법을 제정했다.
유럽에선 진화론이 정설로 굳어진 지 오래였지만 미국 남부에선 여전히 성경을 원론적으로 해석하는 근본주의자의 영향력이 강하던 터였다.
버틀러법에 반대하는 몇몇 사람은 일부러 법을 위반하자는 작전을 짰고, 24세의 고교 축구 코치이자 생물교사인 존 스콥스가 나섰다.
5월 25일 스콥스는 수업시간에 진화론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기소됐다.
검사는 세 번이나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 변호사는 약자 변론으로 유명한 클라런스 대로가 각각 맡았다.
7월 10일 시작된 재판은 원숭이 재판으로 불리며 방송에 중계되고 인구 1800여 명에 불과한 작은 마을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브라이언이 원숭이가 우리 조상이란 말인가하고 비난하면 법정 안에서는 아멘 소리가 메아리쳤다.
대로는 진화론 교육 금지는 반(反)문명적 발상이라고 맞받아쳤다.
과학자를 증인으로 내세우려던 계획이 재판부의 거절로 좌절되자 대로는 브라이언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두 사람의 맞대결에는 5000여 명이 몰려들어 재판이 야외에서 열릴 정도였다.
대로는 이브가 정말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어졌는지 등을 집요하게 물었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는다고 주장하던 브라이언은 심문에 말려들어 끝내는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대답하는 자가당착에 빠지고 말았다.
근본주의 바람이 거센 곳답게 7월 21일 배심원의 판결은 피고의 유죄였다.
스콥스에게는 100달러의 벌금형이 선고됐다. 브라이언은 선고 5일 후 숨졌다.
‘원숭이 재판 이후에도 버틀러법은 1967년까지 효력을 유지했지만 근본주의는 폐기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미국에서 근본주의는 다시 살아났다. 때로 역사의 시계는 거꾸로 돌아간다.
1910년 신용산선(용산-한강) 전차 운행 개시
1908년 영국, 포클랜드제도 보호령 선언
1902년 소설가 백릉 채만식 태어남
1899년 헤밍웨이 출생
사고하는 지성인이자 정력적인 행동가였던 미국의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1899년 7월 21일 미국 시카고교외의 오크파크에서 태어났다. 헤밍웨이는 낚시와 사냥을 좋아하는 의사인 아버지와 음악과 그림에 뛰어난 어머니에게서 기질과 재능을 이어받으며 자랐다. 그는 고교졸업 후 대학을 진학하지 않고 캔자스시티 스타지(誌)의 기자로 첫 펜을 들었다.
유난히도 전쟁의 마(魔)가 세상을 휩쓸던 20세기 전반, 종군기자들은 역사적 현장에 서 있었던 탓인지 문학과 연관이 많았다. 헤밍웨이 역시 그랬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을 겪고서 ‘무기여 잘 있거라’(1929년)를 집필했고, 스페인 내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1940년)를 써내려갔다. 전쟁의 허무함, 상처받은 영혼들을 저술한 헤밍웨이는 이 작품들을 통해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의 대표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삶의 질’에 대한 그의 끝없는 의문은 1952년작 ‘노인과 바다’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그는 이 작품에서 삶이 비록 패배하는 싸움일지라도 그 패배가 갖는 존엄성과 그 자체로 승리인 삶이라고 우리에게 말해주었다. 헤밍웨이는 이 작품으로 1953년 퓰리처상과 이듬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이렇듯 진정한 ‘삶의 질’을 추구했던 그였지만, 두 번의 아프리카 여행에서 얻은 사고 후유증과 평생 네 번에 걸친 결혼생활의 불화에서 비롯된 신경쇠약으로 말년을 보내다 1961년 7월 2일 엽총으로 자살했다.
1885년 청ㆍ일軍 `텐진조약`따라 철병
청의 개입으로 갑신정변이 실패로 돌아가자 일본은 조선에 대한 청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했다. 불안감 해소를 위해 2개 대대 병력을 조선에 파병한 일본은 이토 히로부미를 중국 톈진에 파견, 1885년 4월에 중국과 `텐진조약`을 체결했다.
청ㆍ일 양군은 4개월 이내에 조선에서 물러나고, 향후 조선에서 변란이 일어나 어느 한쪽이 출병할 경우 이를 문서로 알리고 사태가 진정되면 곧 철병한다는 내용이었다. 조선에서 무력충돌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일본의 주장이었지만 이는 구실이었을 뿐 사실은 청군의 조선철병을 위한 노림수였다.
두 나라는 약속대로 7월21일 조선에서 철병한다. 일본은 갑신정변 실패 후의 열세를 만회하고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에 안도했다. 더 중요한 것은 9년 뒤 동학농민운동 때 다시 조선으로 파병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그때의 일본은 이미 예전의 일본이 아니었다.
1884(조선 고종 21) 의열단 김지섭 열사 안동에서 태어남
1861년 남북전쟁 중 불런 전투 발발
1861년7월 21일 남북전쟁 기간 중 북부 버지니아의 머내서스 근처 불런 강 일대에서 불런 전투가 벌어졌다.
같은 해 여름 북부 연방정부는 어빈 맥도웰 장군에게 워싱턴의 불런으로 진격해 버지니아 주 리치먼드를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P. G. T. 보러가드 장군이 이끄는 남군은 방어태세를 갖추고, 조지프 E. 존스턴 장군의 지휘로 셰넌도어에 있던 추가병력이 이동했다.
7월 21일 북군이 남군을 공격함으로써 일진일퇴의 전투가 벌어졌지만, 남군의 지원부대가 도착하자 북군은 워싱턴으로 퇴각했다.
1년 뒤 로버트 E. 리 장군이 이끄는 남군과 존 포프 소장이 이끄는 북군은 또다시 불런 강을 두고 부딪쳤다.
리 장군과 T. J. 잭슨 장군은 대규모 기동작전을 펼쳐 북군을 격퇴해 남군이 승리를 거두었으나, 북군이 계속되는 공격을 일정 지역에서 막아냈다는 점에서 이 승리는 완전한 것이 아니었다.
1831년 벨기에, 네덜란드로부터 독립
1817(조선 순조 17) 추사 김정희 북한산 신라 진흥왕순수비 판독
1816년 세계 최초의 통신사인 `로이터 통신사`의 창설자 로이터 출생
1792년 스코틀랜드 시인 번즈 사망
1773년 교황 클레멘스 14세 예수회 해산
1602(조선 선조 35) 문묘 대성전 준공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와 영국함대 대해전
스페인의 보고인 네덜란드에 반란이 일어나자 필리페의 전처인 메어리 여왕의 나라 영국이 지금까지의 추종을 버리고 스페인에 반기를 들어 네덜란드의 독립전쟁을 지원하자, 스페인의 필리페 2세는 영국에 항의를 제기했다.
그러나 필리페의 항의에 대하여 영국의 엘리자베드 여왕은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자 필리페는 「세계를 떨게」할 수 있는 스페인의 무력을 보여 주기 위해 직접 영국 본토 공격을 계획했다.
그리하여 전함 1백 27척, 선원 8천명으로 이루어진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준비되었다.
무적함대가 리스본항을 출항한 것은 1588.5월이었고 도버해협에 그 모습을 나타낸 것은 7월 21일이었다.
스페인의 우월한 국력은 뒤에도 유지되었으나 이 무적함대의 패배에 의해서 입은 스페인의 실추된 위신은 회복할 도리가 없었다.
1545년 을사사화
사화는 '사림의 화'의 준말로 사림파들이 화를 입은 사건들을 말하며 을사사화는 4대사화 중 하나다. 을사사화에는 외척 간의 갈등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다.
외척인 윤원로·윤원형 형제가 조카 경원대군으로 세자를 교체하려 세자의 외숙인 윤임과 충돌했다. 세자였던 인종이 왕위를 계승하여 사림파를 중용했으나 8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이에 경원대군이 명종으로 즉위했다. 윤씨 형제는 명종의 보위를 굳힌다는 미명 아래 을사사화를 일으켜 윤임 등을 축출했다.
홍문관과 양사의 사림파가 그 부당성을 지적하고 항의하자 사림파 관원을 파직시키고 윤임 등과 종친인 계림군을 역모로 몰아 죽이고 정권을 장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