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26일 오늘의 역사
2022년 인도 비하르주 하루동안 20명이 벼락 맞고 사망
2021년 일본 니사야 모미지 최연소 금메달 획득
7월26일 도쿄 아리아케 어반 스포츠파크에서 펼쳐진 2020도쿄올림픽 스케이트보드 여자 스트리트 부문에선 일본의 니시야 모미지가 금메달을 차지했다. 그는 13세 330일 만에 올림픽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올라 일본의 역대 올림픽 최연소 금메달 기록을 경신했다. 종전은 1992바르셀로나대회 수영 여자 200m 평영의 이와자키 교코가 기록한 14세 6일이었다. 이와자키는 금메달 획득 직후 인터뷰에서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라며 천진난만하게 소감을 밝혀 두고두고 화제를 모았다. 26일 니시야는 “기쁘다. 금메달이 무겁다. 1톤쯤 되는 것 같다”며 중학교 2학년의 10대 소녀다운 소감을 전했다
2021년 방탄소년단 싱글 '버터(Butter)' 메인 싱글차트 핫100에서 신곡 '퍼미션 투 댄스'로 7주 연속 1위를 차지했던 버터를 밀어내고 정상차지
2015년 김병지(전남 드래곤즈) 프로 데뷔 23년 만에 700경기 출장
2010년 러시아 모스크바 인근 산불(-8.2 744차례) 13만ha 피해
2010년 장태완 전 수도경비사령관 별세
1979년 12·12 사태 당시 수도경비사령관으로서 신군부측에 맞섰던 장태완(79) 전 국회의원이 2010년 7월 26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경북 칠곡 출신으로 육군종합학교를 졸업한 장 전 의원은 육군본부 군사연구실장, 26사단장, 교육참모부 차장 등을 거쳐 수도경비사령관에 올랐으나, 12·12 사태 당시 정권을 잡으려던 신군부측에 반기를 들었다가 강제 예편됐다. 이후 12·12 사태가 역사적으로 재조명되면서 '참군인의 표상'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장 전 의원은 1994년 재향군인회장으로 당선돼 6년간 재향군인회를 이끌었다. 2000년 3월 민주당에 입당, 같은해 16대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정치 활동을 벌였다. 민주당 최고위원으로서 당시 여당 지도부에서 활약했다.
2009년 안무가 머스 커닝햄 별세
‘현대무용의 아인슈타인’으로 불린 안무가 머스 커닝햄(Cunningham·90)이 2009년 7월 26일(현지시각) 미국에서 별세했다.
커닝햄은 “소음이나 정적도 음악”이라고 말한 음악가 존 케이지(1912~92)와 작업하며 현대무용의 새 영역을 개척했다. 무용이 인간의 심리나 내면세계를 묘사하는 전통을 거부했고, 새로운 동작을 탐구하며 형식미에 집중했다. “작품을 채우는 무용·음악·디자인 등은 우연성과 자율성에 따라 서로 섞이거나 흩어지기 때문에 관객에 따라 다른 의미로 전달된다”는게 그의 신념이었다.
머스 커닝햄은 1984년 존 케이지와 함께 내한공연을 했고, 2004년에도 머스 커닝햄 댄스컴퍼니 창단 50주년을 기념하는 ‘스플릿 사이드’ 등을 한국에서 공연했다.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은 40년 넘게 그의 예술적 동지였다. 커닝햄은 “우리는 각자의 영역과 실험성을 존중했기 때문에 많은 말을 나누지 않고도 친해졌다. 백남준은 빛의 마술사이며 빛 그 자체”라고 말한 바 있다
2008년 인도 아마다바드 힌두사원에서 16차례 연쇄 소형폭탄 폭발 사망 45명
2005년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외무장관회담 개막
2005년 북한에 제공될 쌀 육로로 첫 수송
2005년 올해 북한에 주는 쌀 차관 50만t의 수송이 7월26일 시작됐다. 쌀 1000t을 실은 25t트럭 40대가 이날 줄을 지어 동해선 도로를 통해 북으로 수송됐다.
50만t은 육로와 해로로 연내에 북한에 모두 전달되었다.
2005년 북핵관련 제4차 6자회담 개막(베이징)
2004년 미국 랜스 암스트롱, 투르 드 프랑스 101년 사상 첫 6연패
2004년 7월 26일 투르 드 프랑스(프랑스도로일주사이클대회)에서 랜스 암스트롱(미국)이 101년 역사상 첫 6연패를 달성했다. 해발 2000m가 넘는 알프스·피레네 산맥의 가파른 산악도로가 포함돼있는 3395km 코스. 23일 동안 달리는 ‘지옥의 레이스’를 83시간36분2초에 주파한 이 사나이가 쓴 모자에는 ‘강하게 살아라(Live Strong)’는 문구가 써 있었다.
1993년 약관의 나이로 세계선수권대회와 투르 드 프랑스 베르뎅 구간 최연소 우승. 3년 뒤인 1996년 생존율 50% 미만의 고환암 판정. 한쪽 고환과 뇌 조직 일부를 도려내는 대수술…. 1년 반이 지난 뒤의 재기 선언. 이후 재활훈련과 항암치료를 병행해온 암스트롱은 1999년 이후 전인미답(前人未踏)의 투르 드 프랑스 6연패 위업을 이뤄냈다. 암스트롱은 이날 몬테로에서 샹젤리제까지 대회 마지막 구간(163km)에서는 구간 선두를 놓쳤지만 전체 21개 구간(프롤로그 구간 포함)에서 2위 안드레아스 클로덴(독일)을 6분19초 차이로 따돌리고 우승했다
2001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러시아 방문을 위해 열차편으로 북한 출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7월26일 오전 열차편으로 국경을 통과, 러시아에 입국했다.
김 위원장을 태운 특별열차는 이날 오전 8시20분께 러·북 국경도시인 하산에 도착했으며, 러시아와 북한 당국은 이 시각에 맞춰 동시에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을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러시아 방문과 입국 사실만을 짤막하게 발표했을 뿐, 구체적 일정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하산역에는 콘스탄틴 풀리코프스키(Konstantin Pulikovsky) 러시아 극동지구 대통령 전권대리인(부총리급)이 영접을 나갔다. 김 위원장은 하산역에서 간단한 입국 행사를 가진 뒤, 9시20분께 하바로프스크로 향했다. 김 위원장을 태운 특별열차는 17개 객차로 이뤄져 있으며, 수행원은 약 150여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 위원장은 시베리아 횡단 철도편으로 계속 여행, 모스크바에 도착, 4일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관계 및 국제현안에 대한 양국의 기본 입장을 담은 ‘북·러 모스크바 선언’을 발표했다.
2000년 미국 연방법원 온라인 무료 음악공유 사이트 `냅스터`(Napster) 잠정폐쇄 명령
미국 연방법원이 2000년 7월 26일 온라인 무료 음악공유 사이트인 `냅스터`(Napster)에 대해 저작권침해혐의로 잠정폐쇄 명령을 내렸다.
냅스터는 이용자들이 네트워크에 접속한 다른 사람들의 컴퓨터에서 압축된 음악파일(MP3)을 검색, 그 중 원하는 것을 복사할 수 있도록 연결해 주는 회사다. 하지만 이틀뒤 항소법원은 법원의 최종 판결이 있을 때까지 냅스터 사이트의 한시적인 운영을 허가한다고 판시, 냅스터에 기사회생의 기회를 부여했다.
소니, 유니버설 등 4개사와 함께 냅스터를 상대로 저작권법 위반혐의로 소송을 제기한 베텔스만은 10월 31일 소송을 취하하고 냅스터와 공동으로 음악파일 제공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발표했다. 이후 냅스터는 음악파일의 유료화를 추진하고 있다
1998년 캄보디아 첫 다당제 총선
유엔 감독하의 1993년 총선 이후 캄보디아가 자체적으로 실시한 첫 총선이 1998년 7월 26일 전국 1만1천여개 투표소에서 실시됐다. 유권자 5백40만명이 의회 의원 1백22명을 선출한 총선에는 집권 캄보디아인민당(CPP)과 야당인 푼신펙당을 비롯, 39개 정당이 후보를 냈다.
총선은 실력자 훈 센 제2총리가 이끄는 CPP와 노로돔 라나리드 전 제1총리가 이끄는 야당인 푼신펙당과 삼랭시 전 재정장관이 주도하는 삼랭시당 간의 3파전 양상을 보였다. 개표는 7월 27일부터 시작됐고 투표결과는 8월 5일 발표됐다.
개표 결과, 훈센 총리가 이끄는 캄보디아인민당(CPP)이 승리했다. 선관위가 예정보다 나흘이나 늦은 8월 5일 국영TV를 통해 발표한 개표결과에 따르면 CPP는 2백3만표(41.4%)를 얻어 제1당이 됐으며, 축출된 노로돔 라나리드 전 총리가 이끄는 푼신펙당은 1백55만여표로 31.7%의 지지율을 확보하며 제2당이 됐다.
1994년 미국 하원에서 ‘화이트워터’ 사건 청문회 시작
클린턴 대통령의 아칸소 주지사 시절 부동산 투기 의혹 사건인 화이트워터 스캔들에 대한 의회 청문회가 시작됐다.
하원 금융위원회가 26일과 28일, 상원 금융위원회는 29일과 내달 1일 각각 이틀간씩 청문회를 열어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의회 청문회는 첫날부터 증인 한 사람을 놓고 지루한 설전만 벌여 일반 국민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하원 금융위는 최근에 임명된 레온 파네타 비서실장을 제외한 백악관 고위관리들과 벤슨 장관을 비롯한 재무부 일부 고위관리 등 20여명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첫날에는 로이드 커틀러 백악관 법률고문만 증언대에 세워 늦게까지 심문했다. 저명 변호사인 커틀러는 의원들의 소나기성 질문을 요령있게 잘 피해 소방수 역할을 충분히 했다는 평을 들었다.
피스크 특별검사는 앞서 백악관 관련 의혹 수사를 종결하면서 백악관측이 형사소추를 받아야 할 위법행위를 하지는 않았으며 윤리규정 위반여부는 자신의 소관이 아니라며 유보적 입장을 취했었다.
공화당 의원들은 “권력의 오만함과 특권의식을 말해주는 것이 바로 이 사건이며 법망을 피해 집권의 지름길을 택한 새 정치계급에 의해 운영되는 정부의 실상이 드러났다”고 질타했을 뿐 커틀러의 증언을 뒤엎을 만한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1993년 미국 육군 장교 리지웨이 사망
1993년 아시아나 여객기 전남 해남 야산에 추락해 66명 사망
1993년 7월 26일 국내서 발생한 항공기 사고사상 최대의 참사가 빚어졌다. 승객과 승무원 등 1백6명을 태우고 김포공항을 출발, 목포공항에 착륙할 예정이었던 아시아나 항공 보잉 737기가 오후 3시41분쯤 전남 해남군 화원면 마산리 마천부락 앞산 골짜기에 추락했다. 이 사고로 기장과 승객 등 66명이 사망했다. 추락한 기체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대파됐다.
추락사고 원인을 조사한 정부합동조사반 발표에 의하면 기장이 시계불량과 악천후에도 불구, 무리하게 착륙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착륙접근 항로상에 있는 운거산(해발 1천63피트)은 넘은 것으로 착각, 비행고도를 정상(1천6백피트)보다 훨씬 낮은 8백피트까지 낮춰 일어난 것으로 밝혀졌다.
항공기 추락후 1시간여가 지난 오후 5시20분쯤 생존 승객 가운데 한 사람이 인근 마을로 내려와 주민에게 사고사실을 알려 주민이 이를 다시 경찰에 신고,구조활동이 시작됐다. 신고를 받은 군경합동구조대는 군용 헬기 5대를 이용, 40여명의 승객을 목포 등지에 후송했으며, 날이 저물자 헬기구조작업을 중단한 다음 전등을 가설하고 철야 구조작업을 했다.
1989년 문규현 신부, 임수경양의 판문점 귀환에 동행하기 위해 방북
1989년 문교부 전교조 교사 1,516명 직위해제. 전교조 명동성당서 무기한 단식농성
1988년 한국-멕시코, 항공협정 체결
1984년 美 여론조사 전문가 갤럽 사망
1981년 이란 대통령에 라자이 수상 당선
1981년 인도 국민단합회의, 동북아지역 국제단합상 수상자로 전두환 대통령 선정
1976년 미 항공우주국(NASA) 바이킹 1호가 보낸 화성표면 사진 공개
1974년 구로공단사건 범인 이종대, 문도석 다시 살인난동끝에 자살
1972년 공화당 의장서리에 정일권 임명
1972년 태풍 리타호 강타 사망 실종 54명
1971년 백두진 제8대 국회의장 피선
1962년 한국-요르단, 국교수립
1957년 한국서 영국연방군 철수
1957년 아르마스 과테말라 대통령 피살
1956년 이승만 대통령 휴전협정 이미 사문화(死文化)임을 강조
1956년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 수에즈 운하의 국유화를 선언
이집트 나세르 대통령이 알렉산드리아에서 거행된 혁명 4주년 기념연설에서 수에즈 운하의 국유화에 관한 성명을 발표했다. 나세르는 `수에즈 운하는 이집트의 희생하에 구축된 것인데 외국의 부당한 지배하에 있어 이제까지 착취를 받아왔다. 운하를 국유화하면 이집트가 얻을 수익은 연간 1억달러에 달할 것이다. 따라서 외국에 원조를 얻지 않고도 애스원댐을 건설할 수 있고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운 국가를 건설하게 될 것이다`라는 강력한 어조로 연설했다.
군중은 나세르의 연설에 환호를 보냈지만 구미 각국은 강한 충격을 받았다. 수에즈 운하 회사는 사실상 프랑스 소유였고 조차권도 아직 12년이나 남아 있었다. 나세르는 미국과 영국이 신애스원댐 원조를 취소시킨 보복으로 국유화를 선언했고 영국과 미국은 28일과 31일에 각각 이에 대한 보복조치로 자국에 있는 이집트의 재산을 동결하기로 결정했다. 8월 9일 영국과 프랑스는 수에즈운하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합동군 창설을 결정했다.
1953년 피델 카스트로, 쿠바 산티아고의 몬카다 병영 습격 실패로 체포
피델 카스트로가 주도하는 반 바티스타 세력이 1953년 7월 26일 몬카다 요새병영을 공격하면서 1959년 카스트로가 혁명에 성공할 때까지의 6년간 싸움이 시작됐다. 모두 160명인 카스트로의 소규모 군대는 1000명의 수비대가 있는 산티아고 부근의 몬카다 병영을 공격했다. 공격은 실패했고 혁명군은 도주했다. 혁명군과 관계없는 사람들까지도 체포되거나 살해됐다. 카스트로도 체포됐으나 5월, 76일 만에 석방됐다.
아바나로 돌아간 카스트로는 비폭력적인 선동만으로 행동을 자제했으나 결과에 실망, 추종자들을 이끌고 멕시코에서 다음 기회를 준비했다. 멕시코에서 체 게바라를 만나 함께 혁명을 준비했던 카스트로가 82명의 대원을 이끌고 다시 쿠바로 향한 때는 1956년 11월이었다. 이 시도도 실패로 돌아가 대부분의 대원들은 살해됐거나 체포됐다. 12명만이 안전지대에 도착했고 그 가운데는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도 포함돼 있었다.
1952년 ‘에비타’, 에바 페론 사망
1952년 7월 26일, 에바 페론이 사망하였다. 사생아로 태어나 밑바닥을 전전한 끝에 27세라는 세계 최연소 나이로 영부인 자리에까지 올랐던 드라마 같은 33년의 삶이었다.
에바 지지자들은 슬픔에 젖었다. 조문 행렬은 3km나 늘어섰고 국장으로 치러진 장례는 전례없는 대규모였다. 유랑극단의 3류배우, 나이트클럽의 무명 댄서였던 그의 인생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은 것은 24살이나 나이 차가 난 육군 대령 후안 페론을 만나면서였다.
에바는 아름답고 총명하면서도 야심까지 가득한 여성이었다. 페론이 군부에 잡혔다가 풀려날 때도, 또 대통령에 당선될 때도 에바는 조연이 아니라 사실상의 주연이었다. 페론이 대통령에 취임(1946년)하자 에바는 아예 노동부 건물에 사무실을 차리고 정치 일선에 뛰어든다. 노동자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였고 하층민에게는 병원·고아원·학교를 지어주었다. 그의 선심정책은 하층민으로부터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반페론주의자들 눈에는 전형적인 선전·선동으로 비쳤다.
한쪽에서는 성녀였고 반대편에서는 악녀였다.
에바 사후, 아르헨티나는 우려한대로 서서히 혼란으로 빠져들었다. 곪아있던 환부도 터지기 시작했다. 3년 뒤 페론은 군부쿠데타로 망명길에 오른다. 인플레이션과 부정부패, 민중선동과 탄압 등에 염증을 느낀 국민들의 정서가 반영된 결과였다.
1950년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
1950년 7월 26일 6.25전쟁에 참전한 미군이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경부선 철로위에서 피난 중이던 영동읍 주곡-임계리 주민들을 전투기에서 총을 쏘아 사살했다. 피난민들이 철로밑으로 피신하자 제1기갑사단 7연대 장병들이 뒤쫒아가 계속 사살했다. 희생된 사람들의 대부분은 노인, 부녀자, 어린이들이었다.
이 사건은 미군에 의해 500여명이 사살된 베트남전 당시 `미라이 학살사건` 다음으로 희생자가 많은 사건이었다. "피난민 중에 북한 군인이 위장해 숨어있을지도 모르니 이들을 일단 적으로 간주해 적절한 행동을 취하라"고 지시한 당시 미군사령부의 기록도 발견됐다. `노근리양민학살대책위원회`는 이 사건으로 최소한 121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처음부터 이 사건이 공개된 것은 아니었다. 1994년 `노근리양민학살대책위원회` 정은용이 사건을 토대로 한 실록소설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를 출간하자 AP통신 등의 외신과 국내 언론이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을 취재하여 일반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1999년 유족들이 미국을 방문, 미 육군성은 사건의 대한 철저한 조사와 유족들에 대한 보상문제를 밝혔고, 2000년 1월에는 미국에서 대책단과 자문위원단이 내한하여 충북 영동군 사건 현장을 찾아 주민들의 증언과 요구사항을 들었다. 2001년 1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하여 사건의 실체를 인정했으나 피해주민 및 유족에 대한 실질적인 보상은 미흡했다.
1948년 미국-영국-프랑스 3국 군정장관 서독정부 수립 결정을 성명
1945년 포츠담선언 발표
포츠담 회담 1945년 5월 8일 독일이 항복한 뒤, 일본의 항복 문제와 전후처리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독일 베를린 교외 포츠담에서 열린 연합국의 세 번째 전시회담이다. 회담은 1945년 7월 17일에 시작하여, 8월 2일 종결되었다. 회담의 주요 의제는 패전국 독일의 통치방침, 해방국 폴란드의 서부 국경 결정, 패전국 오스트리아의 점령방침, 동유럽에서 러시아의 역할, 패전국의 배상금문제, 대일(對日) 전쟁 수행 방침 등이었다.
1945년 7월 26일 미국의 대통령 트루먼, 영국의 수상인 처칠, 중국의 총통인 장제스가 포츠담 선언에 서명하였고, 그 후 8월 8일 소련 공산당 서기장 스탈린도 대일전 참전과 동시에 이 선언에 서명하였다.
포츠담 선언은 모두 13개 항목으로 되어 있다. 제1∼5항은 전문(前文)으로 일본의 무모한 군국주의자들이 세계인류와 일본국민에 지은 죄를 뉘우치고 이 선언을 즉각 수락할 것을 요구하였다. 제6항은 군국주의의 배제, 제7항은 일본영토의 보장점령, 제8항은 카이로선언의 실행과 일본영토의 한정, 제9항은 일본군대의 무장해제, 제10항은 전쟁범죄자의 처벌, 민주주의의 부활 및 강화, 언론·종교·사상의 자유 및 기본적 인권존중의 확립, 제11항은 군수산업의 금지와 평화산업유지의 허가, 제12항은 민주주의 정부수립과 동시에 점령군의 철수, 제13항은 일본군대의 무조건항복을 각각 규정하였다
1943년 이탈리아 바도리오정권 성립
1939년 미국, 대일 통상항해조약 파기 통고
1931년 독일의 금융공황구제 7개국회의
1930년 한국독립당 및 한국독립당군 창설
1928년 미국의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 출생
1926년 이청천, 홍진 등 길림에서 한국독립군 조직
1922년 일본 신사현(나카다현), 신월전력공사장에서 한인 노동자 100여명 학살됨
1920년 문학평론가 조연현 태어남
1909년 스페인에서 공화주의자 반란
1909년 피의 일주일-에스파냐 정부, 계엄령하에 총동맹 파업 진압
1908년 칠레의 대통령 아옌데 출생
1896년 국내전보규칙 반포
1895년 노벨 물리학상 받은 마리 퀴리 결혼
예복이나 금반지도, 피로연도 없이 평상복차림으로 식을 올렸고, 자전거 타고 신혼여행 떠남, 1902년 퀴리 부부는 방사성원소를 발견, ‘라듐’이라 이름 붙임(라틴어로 ‘광선’이라는 뜻의 ‘라이우스’에서 따옴) 라듐은 인체의 병든 세포들을 파괴시켜 암을 치료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퀴리 부부는 그 다음 해에 노벨 물리학상 받음
1894년 영국 작가 헉슬리 출생
1887년 매독 검사법을 개발한 미국의 면역학자 칸 출생
1875년 스위스 심리학자 칼 융 출생
1872년 독립운동가 손정도 목사 출생
1856년 영국 극작가 버나드쇼 출생
1848년 최초의 개신교 신자 서상륜 출생
1847년 라이베리아 독립
1782년 `피아노를 위한 야상곡`을 만든 아일랜드의 피아니스트 필드 출생
1610(조선 광해 2) 사명대사 세상 떠남
1485년 서거정(徐居正) 등, 신찬(新纂) 동국통감 완성
역사서 동국통감이 1485년 7월 26일 완성됐다. 동국통감은 조선 성종때 서거정 등이 신라에서 고려까지의 역사를 편찬한 사서로 활자본이며 56권 28책으로 구성돼 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권근의 `동국사략`으로 대표되는 기존의 고대사 서술이 부실해 이를 보완하라는 세종의 지시에 따라 1458년(세조 4년)에 편찬이 시작돼 1476년(성종 7년)에 고대사가 `삼국사절요`로 간행됐고 마침내 이날 `동국통감` 전체가 완성됐다. 여기에 사론(史論)을 보충한 56권의 `신편동국통감`이 1485년 간행됐다.
동국통감은 편년체로 단군조선에서 삼한까지를 외기(外紀), 삼국의 건국으로부터 신라 문무왕9년(669)까지를 삼국기, 669년에서 고려 태조 18년(935)까지를 신라기, 935년부터 고려말까지를 고려기로 나누어 편찬했다. 신화와 전설적인 내용은 배제했고 역사적 사실들을 발췌해 서술했으며, 고려기에서는 세가(世家)와 열전 부분을 강화시켰다.
1440년 삼각산에서 일식과 월식을 관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