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산책**
희뿌연 안개가 살짝 드리워진 거리.
아직은 많은 사람들.
그리고 여관 안.
한명의 남성이 구석 탁자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아렌스.
원반 탁자 4번째 노인의 수하였다.
그리고 2달째 소식이 없는 그들의 독립수하
가르카느의 신변과 아이카의 행방을 찾는 중
이기도 했다.
떠나기 전, 그의 상관 포넷 노인은 그에게
지시를 내렸다.
-아이카가 먼저다. 가르카느를 찾는 것은 그
후의 일일지니! 명심하고 수행해라.
사실 가르카느는 자신과는 별 접촉이 없던
사내였다.
그럼에도 실력만은 괴물이라 들어온 자.
남보다 2배는 더 수련하는 자신과는 달리 별
노력 없이도 천재라 불려온 그였다.
그래서 아렌스는 그를 시기해왔고, 질투했다.
그러나 가르카느는 겉모습만 보기에는 그저
조금 잘생긴 것일 뿐이었으니,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아렌스는 그를 깔보고 경계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아는 선배가 그와의 대련이 있은 후
그는 선배가 자신에게 해줬던 말이 아직도
뇌리에 강력히 박혀 있었다.
-그 앞에서 쓸대없는 도발은 마라.
-예?
-그는 괴물이 아냐. 매우 신사적인 사내지.
하지만 그는 또 신적인 실력을 갖춘 사내야.
그래서 다들 괴물이라 부르는 것일 뿐이지...
괜한 자존심을 내세워 개망신 당하진 말고
새겨 들어둬라!!
-...!
사실 선배는 가르카느에게 아렌스가 섣불리
도발을 해도 그가 폭발을 해서 아렌스를 정말
개망신 당하게 만들리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신사니까.
그리고 상대방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사나이
중의 사나이니까.
그래서 그의 그런 사실을 모르는 자들은 그를
적대시했지만, 아는 자들은 그를 존경했다.
아무튼 어떤 이유로든지 유명하단 것만은
사실이니까.
"쳇."
낮게 중얼거리는 아렌스.
이미 식사는 다 끝마친 후였다.
아렌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숙소로 발
걸음을 옳겼다.
털썩!!
"후우--."
아렌스는 자신의 숙소 침대에 걸터앉아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자자."
그러고는 불을 끄고 옷도 갈아입지 않은채 그
대로 침대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아이카의 기운도 이 근처에서 느껴지는 것
같으니까...'
"시원해--."
마을 뒤의 작은 언덕.
가르칸과 랄라는 바로 이곳에 와서 한껏 상
큼한 공기를 들여마시고 있었다.
"머리까지 맑아지는군."
"진짜--."
가르칸은 풀 위에 걸터앉아 바로 옆에 서서
좋아하는 랄라를 바라보았다.
'이상한 일이로군.'
랄라는 적어도 자신보다는 여기에 오래 있었을
것이다. 비록 부랑아라 할지라도.
마을에서 살았다면 이곳 저곳 돌아다니고 또
산도 오르고 이곳도 한번쯤 와봤을 법한데 이
렇게 좋아하다니...?
"넌 이곳에 온 지 얼마 안 됐나?"
"응? 아니, 한달은 족히 넘었을꺼야, 왜?"
"그냥, 여기서 그만큼 살았으면 이곳 정도는
와 봤을 법한데 네가 너무 좋아하길래."
랄라는 그런 가르칸을 약간 의아해하면서 자
신 또한 그의 옆에 앉았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랄라가 뜬금없는 질문을 날렸다.
"가르칸은 언제 여기 왔어?"
"오늘."
"오늘...?"
"그래, 오늘."
'오늘이라니...'
랄라는 약간 땀을 흘리며 다시 물었다.
"그, 그럼 왜 굳이 내 집에서 신세를 지겠다
한 거야?"
"여관비를 내기엔 내 돈이 약간 부족해서."
"아하."
'결국은 모두 돈 문제네.'
랄라는 생각했다.
이해한다는 허탈한 심정으로,
그리고 또 뭔가 부족하단 표정으로.
그러나 가르칸이 그 뒤에 한 말은 또다시 랄
라의 마음을...
"그리고 또 친구네 집에서 신세지는 셈치면
되니까."
약간은 불쾌하고 또 아주 약간은 기쁘게 하는
말이었으니...
"나 여잔데? 가르칸은 남녀간에 우정이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야?"
"왜 아니겠어? 너 내 친구 맞아."
가르칸은 웃기는 질문을 한단 표정으로 랄라를
쳐다봤다.
그러나 랄라는 약간 기대하는 표정으로 조심
스래 다시 물었다.
"난 숙녀인데도...?"
그러나 가르칸은 그녀의 그런 기대하는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 미안. 니가 숙녀였다니, 이거이거 미처
못 알아챘지 뭐야."
"너, 너 말 다했어?!"
랄라는 얼굴에서 목까지 분노로 벌개졌고,
가르칸은 그런 그녀를 보며 계속 웃기만 했다.
"그만 웃어."
"큭... 큭큭."
"가르카느!"
"아, 미안. 그래서, 내가 뭘 어쩌길 바래?"
"응?"
랄라는 놀랐다. 지금 이 남자가 뭔 뜻으로 이
런 말을 하는 거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랄라는 결국 체념
하고 그의 옆에 그냥 누워버렸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적어도 내가 여자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해."
가르칸은 짗굳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래주지."
랄라, 불충분한 대답에 또다시 발끈.
"'그래주지' 가 아냐! 차라리 '그러지' 라고
말하면 어디 덧나냐고?"
"아하하하..."
실성한 듯 웃는 가르칸.
'귀여워.'
실제로 그는 지금 랄라가 너무 귀여워서 죽을
지경이었다. 또 지켜주고 싶단 생각도 들고.
그래서 그는 12대 아이카와 그녀의 관계 여부
조사가 끝날 때까지라도 이 예쁜 영혼을 지키
리라고 다짐했다.
"짜증나! 집에 갈래!!"
그런 그의 마음을 알리가 없는 랄라는 씩씩거
리며 혼자 언덕을 내려간다.
"어어, 랄라. 같이 가!"
갑작스런 랄라의 행동에 깜짝 놀란 가르칸은
웃음도 멈추고는 황급히 그녀의 뒤를 쫓아 내
려갔다.
아무튼 혼자라고는 해도 그녀를 지키리라 속
으로 다짐을 했는데 벌써부터 이러면 곤란하
지 않은가.
"가르카느...!"
깊은 밤.
원반 탁자의 5노인 중 막내 파이버는 술잔을
세게 내려놓으며 낮게 중얼거렸다.
"어쩌자고, 어쩌자고 그런 임무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늦둥이 아들.
항상 늙은 아버지 뒤에 든든히 서 있던 아들
이었다.
-전 아버지를 가장 존경합니다.
자신의 소원대로 건강하고 예의바르게 자라
주었다.
아들이 많은 걸 경험해 더욱 훌륭한 인물이
되기를 바라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늘 자신의 옆에서 있어주
기를 바란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 아비를 떠나다니...!"
처음 맛보는 허전함.
장성한 아들을 항상 흐뭇해오던 그였다.
자청해서 아이카의 후손을 찾아오겠다고 했을
때는 너무 놀라 그만두라고도 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아들을 보내주었다.
"하필 그런 어려운 임무를..."
어렵다니?
가르카느에게는 분명 아주 간단하게 찾는 법을
일러주지 않았던가.
후회할 짓은 애초에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
는 말이 이제가 뼈에 사무치게 와 닿다니!
하지만 임무가 임무인만큼 막중했고 또 그
방법도 쉽지만은 않은 것이 당연했다.
일단 아이카의 기운을 제대로 파악할 줄 아는
능력이 필요했고 위험요소도 약간 잇달은다.
그래도 보내줬다.
왜냐하면 아들의 그 흥분하고 기대하는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싶지는 않았기에.
하지만 아들을 떠나보내 놓고 파이버는
왠지 불안했다.
그렇잖아도 다른 4노인이 그를 탐탁해하지 않
는데 언제 그들이 신변을 위협해 올지 모르는
일 아닌가.
게다가 아들은 떠나간지 2달이 흘렀는데도 아
무 기별이나 소식도 없다.
아버지로서, 인생의 스승으로서 그는 이만저
만 걱정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파이버는 술잔에 술을 가득 따라 쭈욱 들이키
고는 깊게 한숨을 내쉬면서 체념하듯 말했다.
"아무튼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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