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공지우의 주례 없는 결혼
글/김덕길
어느 날 친구에게서 청첩장이 왔다. 딸의 이름이 ‘사공지우’(가명입니다)란다. ‘사공’이라는 성을 처음 듣는다. 내가 아는 그녀의 성은 ‘윤’씨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청첩장을 살펴보았다. 사공지우의 어머니는 분명 ‘윤씨’ 성을 가진 나의 친구가 맞다.
중국 성이었던 사공 씨는 황소의 난을 피해 우리나라에 가족과 함께 들어왔다. 그 해가 897년이다. 이후 고려 충숙왕 때 판의시사를 지낸 효령군에 봉해진 사공중상을 1세조로 하여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단다. 2000년 인구수는 4,307명으로 성씨 인구 순위는 133위라고 한다.
이른 아침 용인의 날선 공기가 살갖을 쿡쿡 찌른다. 신갈 버스정류장에 도착해서 동대구 행 버스를 알아보니 이미 매진이다. 한 시간을 기다리기 지루해 수원역으로 다시 향한다. 기차 역시 매진이다. 다행히 대전을 경유하는 환승열차를 타면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다는 직원의 말을 듣고 표를 끊는다. 어떤 친구는 버스로 어떤 친구는 자동차로 어떤 친구는 지하철로 결혼식장을 향해 모여든다. 무궁화호의 열차는 의자가 허공에 붕 뜬 것처럼 흔들린다. 마치 물에 뜬 배를 사공이 노를 젓는 듯한 착각이다. 옆 좌석의 여 승객은 잠에 취해있다. 나도 잠시 잠을 청한다. 꿀맛이다. 눈을 뜬다. 한때는 차창 밖 풍경을 보느라 여념이 없었는데, 지금은 책의 페이지만 넘긴다. 이명수 기자가 쓴 ‘깨달음을 얻은 바보’란 책이다. 아파트 쓰레기 더미에서 발견한 책이다.
바닷가에 홀로 사는 말 못하는 할머니가 있었다. 사람들은 얼음위에서 얼음낚시를 즐겼다. 아이들은 팽이를 치고 썰매를 탔다. 평생을 이곳에서 살았던 할머니의 눈에 거대한 검은 구름이 몰려오는 것이 보였다.
‘폭풍우가 몰려오면 순식간에 바다와 강을 덮칠 텐데......’
할머니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빨리 나오라고 손짓을 해도 사람들은 돌아보지 않았다. 할머니는 자신의 집 지붕에 불을 질렀다. 집은 거대한 불기둥과 연기를 뿜으며 활활 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제야 “불이야!” 소리를 지르며 불을 끄려고 모두 뛰어왔다.
바로 그때 거대한 폭풍우가 순식간에 바다를 집어삼켰다.
할머니는 자신의 소중한 재산을 희생하고 수백 명의 목숨을 구한 것이다. 할머니의 감동적인 사연에 절로 숙연해진다.
열차는 어느 덧 동대구역에 도착한다. 역에서 만난 한 친구와 택시를 탄다. 동촌 유원지를 흐르는 강물은 대체 어느 강물인지 궁금해 택시기사에게 묻는다.
“금호강이지요. 이곳 음식 맛도 좋고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울산에는 대숲 십리 길을 타고 흐르는 태화강이 있듯, 이곳 대구에는 금호강이 유유히 흐른다.
우리는 지난여름 이후 드디어 그리운 벗들을 만난다. 서로 안부 나누기에 바쁘다. 모두 멋지고 예쁘다. 전국에 흩어져 살면서도 이렇게 반가울 수 있었던 것은 sns의 힘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사공지우의 어머니도 있다. 사공지우가 있는 신부대기실에 잠깐 간다. 눈물이 그렁그렁 거리는 고운 신부가 거기 있다. 모든 혼수 준비를 사공지우 스스로 해결하고 결혼을 하는 거란다. 대단한 딸이다.
예식장은 호화롭다. 26년 전 결혼했던 나의 예식장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갖가지 꽃 장식과 은은한 조명, 몇 명 앉지 않아도 충분히 사람이 많아보이게 만드는 공간배치까지 멋지다. 식장 안에 사람은 인산인해다.
그런데 주례가 없다.
서로 입장하고 결혼 선서문을 낭독하더니 신랑 측 아버지가 앞에 나가 소감문을 발표한다.
“8년을 서로 만나다가 우리집 사람이 된 신부 사공지우양 여러분! 예쁘죠?”
박수소리가 우렁차다.
“제 아들이래서가 아니라 우리 신랑 어쩌면 저리도 듬직할까요? 여러분 그렇죠?”
좌중은 폭소가 터진다.
형식적으로 하는 주례를 세우기보다 직접 낳고 키운 부모가 주례를 대신하는 모습은 잔잔한 감동이다. 지금처럼 오래오래 두 사람 행복하게 살면 좋겠다.
그렇게 멋지게 딸을 키워준 친구 윤 여사에게도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울지 마! 화장이 지워지잖아.”
우리 친구들은 즐겁게 식사를 하고 팔공산 자락에서 커피를 마시며 그동안의 시간을 추억했다. 시간은 참 빨리도 간다. 다시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벗님! 고맙습니다.
그대들의 아름다운 인연 마중에 흐뭇한 미소안고 올라갑니다.
또, 그대들이 그립겠지요. 다시 볼 때까지 건강 합시다. 행복 합시다. 오래 아름다운 우정 함께 하기로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