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파트너를 만날지 모른다는 생각
결혼을 미루는 남녀의 경우나 아직도 고정 파트너가 없는 내 경우가 비슷하다고 본다. 더 나은 상대가 나타날지 모른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섣불리 파트너를 정했다가 정작 마음에 드는 파트너가 나타나면 파트너 해달라고 요청할 자격이 없어진다. 파트너 만나기도 어렵지만 일단 정해지면 별 다른 이유도 없이 헤어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썸타기 사랑’을 한다고 한다. ‘어장 관리’ 수준에서 대충 불가근불가원의 상태로 만나다가 기회가 오면 갈아타자는 생각이다.
정신과 전문의 양창순 씨의 ‘나는 외롭다고 아무나 만나지 않는다’ 책에 보면 줄리언 반스의 소설 ‘내 말 좀 들어봐’에 나온 얘기를 인용해서 소개한다. 정말 마음에 드는 상대를 만나는 것은 슬롯머신에서 딸기 세 개를 나란히 세우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것이다. 딸기 하나를 붙들어 놓고 또 하나를 세우려고 하면 먼저 것은 이미 달아나버리고 없다며 한탄하는 내용이다. 여기서 ‘썸타기 사랑’의 취약점을 설명하는 것이다.
실제로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내가 마음에 들면 뭐하는가, 상대가 싫다면 그만이다. 그걸 모르지는 않지만 그래도 줄기차게 이상형을 찾아 헤메는 사람이 많다. 나도 그 중 한 명이다.
양창순씨는 이것을 ‘자신에 대한 환상’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자신은 그 정도에 만족해서는 안 되는 아까운 사람이라는 환상이 문제라는 것이다.
쉽게 이루어진 관계에서는 ‘사랑의 근거리 법칙’ 때문이라며 ‘임시로 만나는 사람’이라는 원칙을 정해 놓는다. 이상형에 비하면 여러 모로 모자라는 면이 많다며 비하한다. 좋은 점도 있지만 나쁜 면에 너무 확대 해석을 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장점이 안 보이는 것이라 했다.
정신의학적으로 양창순씨는 이런 현상을 자신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이 선택한 사람에 대해서도 확신을 갖지 못한다 했다. 그래서 더 나은 상대를 찾아 헤매지만 기적은 일어나지 않으며 자신이 지지리도 운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자신에게 있다는 것이다. 물론 내게 문제가 있다. 상대가 파트너로 삼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요소가 있는 것도 아니다. 돈이 많거나 잘 생겼거나 춤을 잘 추거나 인데 모두를 가졌어도 이상형을 만나기 어려운데 하나도 확실하지 않으면 상대가 다가 올 리 없는 것이다. 하나로는 당연히 모자라지만 슬롯머신처럼 딸기 2개로도 잭팟은 터지지 않는다. 딸기 3개가 나란히 서야 잭팟이 터지는 것이다. 그래서 힘든 것이다. 그래서 나는 현실을 알고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내게 다행히 상실감은 그리 진하지 않다. 이미 수많은 여성들과 썸타기 파트너 상태에서 수많은 결별을 경험했기 때문에 ‘학습효과’라는 게 생겼다. 기대도 그리 크지 않다. 잭팟은 어차피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것은 댄스 파트너뿐만 아니라 배우자를 만날 가능성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글:강신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