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mcgwire.com%2Ffanphotos%2Fdavid3.jpg) "Mark McGwire's arms are bigger than my legs." - Harmon Killebrew 마크 맥과이어의 팔뚝은 내 다리보다 더 굵다.... -하몬 킬브루(트윈스역사상 최고의 슬러거중 하나) "I've been the luckiest manager in baseball the last twenty years and one of the main reasons was because I was able to see Mark McGwire." - Tony LaRussa 나는 최근 20년간 가장 운이 좋은 감독이었다. 그 이유중 하나는 마크 맥과이어를 볼 수 있어서 였다. -토니 라루사(라루사이즘을 고안한 명감독) 리틀야구의 괴물....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mcgwire.com%2Fpicturearchive%2Fkid%2Fkidmac03.jpg) 마크 데이빗 맥과이어(Mark David Mcgwire는 1963년 10월 1일, 캘리포니아주의 포모아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렸을 적은 언제나 야구와 함께 였다고 전해진다.. 윗사진에서 3번이 바로 전설적인 슬러거 '마크 맥과이어'이다. 그는 오클랜드 산하의 리틀야구 팀에서 뛰면서 활약했는데 단 8살(1971년)에 첫번째 공식타석(리틀야구도 공식타석이 있나... 쩝... ㅡ,,ㅡ)에서 우측담장을 넘기는 홈런을 쳐내기도 했다. 또한 리틀야구에서 언제나 대장노릇을 하며 좋은 공을 던졌다고 한다.. 말하자면 투수였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mcgwire.com%2Fpicturearchive%2Fcollege%2Fcollege02.jpg) 아무튼간에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데민 하이 스쿨로 진학한다. 데민 하이 스쿨에서의 맥과이어는 골프, 농구를 즐겨했고 첫 해였던 1980년에 그가 올린 야구성적은 5승 3패 1.90이었다... 투수였지만 그의 타격능력을 알아본 세인트 루이스 카디널스 는 그를 마이너에 초청하고 그가 올린성적은 .403 13홈런 53타점(1981년), 14홈런 53타점 .415(1982년)이었다... 이런 엽기적인 성적을 올리고 그는 야구명문 대학인 USC로 진학한다.... USC는 맥과이어에겐 기회의 장소였다. 그는 1학년때의 1982년에 투수로써 4승 4패 3.04, 타자로써 3홈런 11타점 .200의 성적을 보여준데 이어서 1983년,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더니 84년 마지막해에는 31홈런 77타점 .388 .878장타율을 세우며 대학 3년간 성적을 147경기 503타수 134득점 168안타 30 이루타 2 삼루타 53홈런 147타점 83볼넷 100삼진 2도루 .302 .718장타율로 마치며 2년연속 홈런왕과 함께 1984년엔 USA의 올림픽대표로까지 선정된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mcgwire.com%2Fpicturearchive%2Fcollege%2Fcollege10.jpg) 미국의 주전 1루수로 참가한 마크 맥과이어는 올림픽에서 .391 6홈런 26타점이란 활약을 예선에서 보였으나, 본선에선 5경기 4안타 .190으로 극히 부진했다... 하지만 국가대표들의 시합에서도 좋은 성적을 보인 '빅맥' 마크 맥과이어는 당시 션 앱너, 빌 스위프트등과 함께 주목을 받으며 1라운드에서 전체 10번째로 오클랜드 에슬레틱스에 지명당한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mcgwire.com%2Fpicturearchive%2Fcollege%2Fcollege13.jpg) 이 당시 1라운드에서 맥과이어외에 제대로 큰 선수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만큼 애슬레틱스의 판단은 옳았고 당시 1982년에 이미 드래프트로 17살에 지명되어 마이너리그를 초토화시키고 있던 호세 칸세코와 함께 초대형 기대주로 주목 받는다.. 1984년에 싱글 A의 오클산하 모데스토에서 시즌을 시작한 맥과이어는 다음해인 1985년엔 24홈런 106타점으로 유망주로 주목을 받고, 1986년엔 무시무시한 장타력으로 더블 A, 트리플 A를 차례로 박멸(?)시키며 40인 로스터로 메이져리그로 승격된다.. 그의 첫번째 안타는 8월 24일, 양키스의 토미존에게 나왔고 첫홈런을 디트의 월트 테렐에게서 뽑아내며 가능성을 인정받은 '빅맥' 마크 맥과이어는 다음시즌을 기대하며 열심히 스프링 트레이닝을 맞이한다.. 당시(1986년) 오클랜드 에슬레틱스의 사정을 알아보자면 잘 나가진 않았지만 가능성을 인정받은 팀이였다. 마크 맥과이어가 놀라운 성장을 하였고, 팜 유망주였던 호세 칸세코가 33홈런 117타점으로 신인왕을 수상한데 이어서 커트 영, 호세 리요등의 영건이 가능성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또한 당시 3명의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던 오클이었지만, 마지막에 온 토니 라루사 감독(현 세인트 루이스)마저 감독으로 가세한다... 아무튼 당시 78승 86패로 지구 4위를 하였던 오클랜드는 1987년... 마크 맥과이어와 함께 완전히 바뀌고 만다...
"He crushed it. He has the power of three men and I've never faced anybody like him. He's a man among boys." - Paul Wagner 그는 엽기다... 그는 인간 세명의 힘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이런 넘을 본적이 없다... 그는 최고의 선수이다.. -폴 와그너(맥과이어한테 527ft 초대형 홈런 맞은 투수)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ronphoto.com%2Fimages%2Fbaseball%2Fbaseball6_jp70.jpg) "If you put Willie Mays and Mickey Mantle next to Mark McGwire, they'd look like his grandkids." - Seattle Mariners Shortstop Alex Rodriguez (1998) 만약 당신이 윌리 메이스와 미키 맨틀을 마크 맥과이어와 나란히 세워놓은다면 그들은 그의 손자처럼 보일꺼에요. -알렉스 로드리게스(1998) BASH BROTHERS!!! 1987년, 빅리그에 풀타임으로 출전한 마크 맥과이어를 막을 투수는 없었다. 약관 23세의 나이로 마크 맥과이어는 전반기에만 홈런 30개를 넘기며 엽기적으로 취급받았고, 2경기에서 5홈런을 때리는 등 전후무후한 힘을 보여주었으며 여러가지 루키 각종 기록을 갈아 치우고 만다.... 당시 맥과이어가 기록한 기록만 나열해 보자면..
- 당시 루키 단일시즌기록인 183 롱 힛기록 - 루키로썬 처음으로 전반기에만 30홈런이상 기록 -1987년 8월 14일, 39홈런으로 57년간 깨지지 않던 루키 단일 홈런시즌 경신 - .618으로 AL 루키시즌 장타율 경신 - 당시(1987년) 테드 윌리엄스에 이어서 역사상 2번째 최고의 루키시즌 선정 - 당시 오클의 단일시즌 타점, 홈런기록 경신(49홈런 118타점, 현재는 맥과이어가 다시 52홈런으로 기록, 2000년 제이슨 지암비의 137타점이 기록, 알 시몬스, 지미 폭스는 기록에선 위나 그들은 아쉽게도 필라델피아 에슬레틱스였음..) - 두번째로 신인출신 홈런왕(안드레 다우즌과 타이) - 올스타선정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ronphoto.com%2Fimages%2Fbaseball%2Fbaseball1_jp70.jpg) 이라는 엄청난 기록이었다... 전체적으로 볼때 그의 기록은 .289 49홈런 118타점 .370출루 .618장타 344토탈베이스의 가히 엄청난 기록이었고 당시 31홈런 113타점등 전성기이던 호세 칸세코와 함께 배쉬 브라더스를 합작하며 팀 성적을 5할로 높였고 팀은 다시 3위에 복귀했다. 이 당시 오클은 '배쉬 브라더스'의 엄청난 화력과 더불어 영건들이 기대이상의 활약을 보여주었으며 데이브 스튜어트-커트 영-스티브 온티베로스의 원투쓰리펀치와 함께 컵스에서 이적한 '야생마'데니스 액커슬리등이 불팬을 완벽하게 지키며 강팀으로 부상했고, 좋은 성적을 바탕으로 마크 맥과이어는 신인으로 200안타 .323기록한 싯저등을 여유있게 누르고 만창일치 신인상을 수상한데 이어서 MVP 투표에서도 조지 벨, 폴 몰리터, 드와잇 에반스, 커비 퍼켓, 알란 트라멜등에 이어서 6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곧 전설이 된 '배쉬 브라더스;가 그해 합작한 성적은 무려 80홈런 231타점이었다. 마크 맥과이어의 기대를 훨씬 상회하는 성장과 호세 칸세코의 무시무시한 활약은 오클을 미래의 팀으로 만들고, 1987년만해도 미네소타, 캔자스시티등에 막혀 맥을 못 추던 그 팀은 1988년... 완전히 변하고 만다. 사실 1988년은 '오클랜드 에슬레틱스의 해'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때 라루사 감독은 데니스 엑커슬리를 전담마물로 돌리는 혁신을 가했고, LA 다져스, 뉴욕 메츠와 엄청난 초대형 삼각 트레이드를 만든다.... 이 트레이드를 설명해보자면(받은 선수는 어떤 팀에서 왔는지 가로로)
LA 다져스: 제시 오르스코(뉴욕 메츠), 알프레도 그리핀(오클), 제이 하웰(오클) 뉴욕 메츠: 잭 세베지(다져스), 케빈 타파니(오클), 월리 와잇허스트(메츠) 오클 : 밥 웰치(다져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mcgwire.com%2Fpicturearchive%2Fathletics%2Fathletics56.jpg) 이 틀드의 요점은 오클은 당시 다져스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던 밥 웰치를 델꾸 온것이 었다. 또한 라루사감독은 당시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향상된 선구안을 보여준 호세 칸세코를 2번으로 놓고, 3번 데이브 헨더슨 4번 마크 맥과이어 5번 데이브 파커의 클린업 트리오를 새로 개발해 내었다..... 이 것이 바로 오클 최고의 시즌중 하나를 만들었다.. 호세 칸세코는 42홈런 40도루로 40-40클럽에 첫 가입하며 MVP를 수상하였으며 마크 맥과이어는 155경기에 건강히 출전하며 32홈런 99타점 76볼넷 117삼진 .260의 남못지 않은 활약을 보이며 올스타에 선정되었고, 데이브 스튜어트(3.23 21승 12패)-밥 웰치(3.64 17승 9패)-스톰 데이비스(3.70 16승 7패)의 원투쓰리 펀치의 좋은 활약에 데니스 엑커슬리가 2.35의 방어율로 45세이브를 따내며 오클은 사실상 창단이후 최고의 성적인 104승 58패의 성적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한다!!! 당시 메이져리그에서 오클이 우승하리라는 걸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다져스도 발렌수엘라의 부상과 중심타자 커크 깁슨마저 시즌후반에 부상을 당하며 포스트시즌이 어려웠고, 오렐 허쟈이져등의 선발과 불팬진만이 2.96의 방어율을 보였을 뿐이었다. 그에 반해서 오클은 여러 타격부분차트에서 상위를 차지했고, 방어율도 아메리칸리그 1위인 3.44를 기록하며 투타가 절묘하게 조화된 팀이었다. 게다가 배쉬 브라더스는 포스트시즌경력은 전무했지만 그해에 84홈런 223타점을 합작해낸 그들은 보스턴과의 챔피언쉽에서 멋진 활약을 보였다. 우리의 마크 맥과이어는 .333 1홈런 3타점으로 좋은 활약을 했고, 호세 칸세코는 4경기에서3홈런을 날리는 괴력을 보였고 데니스 액커슬리가 4경기모두를 세이브해낸 오클에게 보스턴은 힘없이 무너졌다..... 오클랜드는 아무튼간에 가볍게 월드시리즈에 진출하며 우승을 눈앞에 두었다. 하지만..... 9회말에 다져스를 4:3으로 리드하고 있었던 오클랜드는 데니스 액커슬리를 내보내었고, 경기는 거의 끝난 듯 했다... 그 상황에서 라소다는 커크 깁슨을 내보냈고, 그는 다리를 쩔뚝거리며 타석에 섰다.... 그리고... 엑커슬리의 힘찬 포심을 완벽하게 넘겨버린 커크 깁슨은 그날의 영웅이 되었고, 라루사감독은 망연자실했다.. 갑작스럽게 패배한 오클은 남은 4경기에서 1승 3패로 부진하며 결국은 시리즈를 내주었다.. 마크 맥과이어는 홈런 한방에 그쳤고, 칸세코나 빅맥이나 둘다 타율은 0할대에 그쳐 아쉬움만이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젊은 타자들로 가득찼던 오클의 미래를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mcgwire.com%2Fpicturearchive%2Fathletics%2Fathletics04.jpg) "Mark (McGwire) hits the ball further than anyone I've ever seen." - Dusty Baker 마크 맥과이어는 내가 지금까지 본 어던 인간보다 큰 홈런을 때려낸다. -더스티 베이커(현 컵스 감독)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mcgwire.com%2Fpicturearchive%2Fathletics%2Fathletics02.jpg) 전성기의 도래...
자.. 1989년부터 마크 맥과이어의 전성기는 도래하였다. 25세의 나이로 33홈런 95타점을 기록한 마크 맥과이어는 올스타선정과 함께 팀을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이끌며 전성기를 맞는다.. 호세 칸세코와 함께 1991년까지 공포의 '배쉬 브라더스'를 형성하며 384홈런을 단 6년만에 합작해낸 마크맥과이어는 1990년 골드글러브까지 수상했으나 타율은 2할대 초중반에서 놀고 있었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계속해서 다리, 발목등 잔부상에 시달리며 전문가들의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한다. 아무튼간에 당시 오클팜에서 칸세코, 맥과이어가 현재 택스의 블레이락, 터셰이러정도로 주목을 받았는데, 그들이 제대로 터져주니 오클은 진짜 기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에게 평가를 더 받았던 호세 칸세코는 사생활관리의 부재로 인하여 결국은 500홈런도 못 채웠고, 맥과이어는 몸관리를 잘해야 대 선수가 되지만, 그도 부상으로 인하여 행크 아론의 기록은 넘기지 못하고 은퇴한다... 아무튼간에 맥과이어는 1991년까지 타율보다 1할은 높은 확실한 출루율과 함께 오클의 기둥으로 성장하고, 5년연속 올스타에 선정되며 전성기를 맞는다. 팀도 그사이에 맥과이어-칸세코와 함께 리키 헨더슨이란 최고의 리드오프, 액커슬리, 스튜어트-웰치 원투펀치등을 보유하며 88~90년간 리그 3연패를 달성한다.. 1991년 맥과이어는 22홈런 75타점 .201로 극히 부진하고(154경기출장) 팀마저도 침체에 빠지지만 1992년 맥과이어는 마침내 그의 기량을 만개한다.. 거의 신인때의 파워를 가지고 고작 139경기에서 42홈런 104타점 .268 90볼넷/105삼진 .385 .585를 기록한 맥과이어는 팀을 다시한번 지구정상의 자리에 올려놓고, MVP후보에서도 4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게다가 올스타전 홈런더비에서도 12개로 1위를 차지하며 최상의 컨디션을 마음껏 뽑낸다. 또한 UBI(맞나?)가 선정한 올해의 컴백 플레이어에도 선정된다. 그리고 자유 계약자격을 얻어서 팀과 재계약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 20대 마지막 불꽃이었던 것을...... 1993, 1994년은 맥과이어에게는 최악의 순간이었다. 잔부상이 이젠 큰 부상으로 바뀌며 두시즌간 단 74경기에 출장했고, 이 기간은 마크 맥과이어에게는 시련의 시간이었다. 설상가상으로 팀 성적도 사실상 꼴찌를 다투며 심리적압박을 많이 받았고, 먹튀소리를 들으며 은퇴생각까지 할 정도였지만 아직 나이가 젊었기에 맥과이어는 오히려 더욱더 끊임없는 웨이트트레이닝을 한다... 그리고 찾아온 1995년은 맥과이어로썬 기회의 해였다.... 본인 커리어 하이인 18경기 연속안타 포함, MLB당시 역대 최고였던 평균 418ft의 홈런비거리, 8.1타석당 홈런, 269홈런으로 프랜차이즈 기록 경신, 392타석이하 역대 최다홈런(39홈런)을 기록하며 그의 1995년 성적은 35홈런 90타점 .274 .441 .685의 환상적인 활약이었고, 이것이 단 104경기에 나온 기록이었다. 이 해 완벽하게 재기한 맥과이어는 1996년엔 더욱 정진하여 130경기에서 52홈런 114타점 116BB/112K를 기록하며 커리어 최초로 3할을 돌파(.312)하고, .467의 출루율, .730장타율로 각부문에서 1위를 하였고, 1.198의 OPS가 1위라는 건 당연했다. 그리고 이해에 한이닝에 홈런 2개를 뽑기도 하고 1977년이후 가장 높은 52홈런, 140경기이하 출전 50홈런(유일), 한경기 3 2루타(프랜차이즈 기록), 실버슬러거 선정, 6월의 선수, 올스타, 5월 28일 보스턴전에서 팀 역사상 9000번째 홈런, 790타점으로 팀 타점레코드 갈아치움, 7번째 30홈런으로 지미 폭스가 기록한 에슬레틱스의 30홈런 시즌기록과 타이, 1000안타등 셀 수도 없는 기록을 세우며 오클랜드의 간판스타로 다시한번 부상한다. 1997년은 더욱 엽기적인 성적을 거두었으나 팀 사정상 그는 다음해 FA가 되기에 틀드가 되었고,(클블에게 자일스랑 1:1 오퍼넣었다가 실패한 뒤 카즈로부터 에릭 루드윅, T.J 매튜스, 블레이크 스틴받고 틀드....)총 58홈런으로 전체리그에서 홈런왕을 차지했다. 아무튼 이제부터 오클의 프랜차이즈 스타라고 말하기 힘든 선수가 되었지만, 그가 오클에서 세운 기록은 - 363홈런(1위) - 941타점(1위) - .551장타율(1위, 참고로 알 시몬스, 지미 폭스등은 캔자스시티 애슬레틱스였다는 걸 다시한 번...) - .931OPS(제이슨 지암비에 이어 2위) 등의 기록을 남기고 이제 오클의 대스타는 아쉽게 오클을 떠나서 카즈에 새둥지를 텁니다.. 또한 1997년에 맥과이어는 선수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에도 선정되는 영광을 누리죠.. *덧 붙이자면 맥과이어가 카즈로 간 이유는 그의 아들 '매튜 맥과이어'가 친구가 많다고 하여 가자고 졸랐고, 카즈는 매튜에게 구단비행기에 전용석까지 주겠다고 한 점이 매우 컸죠. 아들사랑이 유별한 맥과이어였기에...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mcgwire.com%2Fpicturearchive%2Fathletics%2Fathletics59.jpg) "These guys are amazing. To watch them with all the pressure that's on them, to hit a home run every time. It's really something." - Billy Wagner 이 두 사나이들은 정말 대단해. 모두가 이 자들의 홈런쇼를 보리고 달려들고 있어. 정말 대단한 일이라구!! -빌리 와그너(필리스의 마무리...라고 하니까 진짜 어색하군..ㅡ,,ㅡ)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mcgwire.com%2Fpicturearchive%2Fathletics%2Fathletics20.jpg) 70홈런..... 전설의 시작....
이 해는 설명 안 해도 모두가 소사vs맥과이어의 홈런쇼라는 건 다 알고계실 것이다... 그의 성적보다는 바로 이 홈런에 대해서 The Baseball Page라는 곳에서 글을 허접하나마 번역해 본다. 홈런대결은 5월의 끝자락부터 진정으로 시작되었다. 5월 24일, 24홈런을 치고있었던 맥과이어였고 그 당시 소사는 고작 9홈런을 치고 있었다.(!!!!) 그렇지만 새미 소사는 5월 25일부터 6월 23일까지 단 30일에 20홈런을 치며 메이져리그 한달 최다홈런기록을 갈아 치워 버렸고, 소사와 맥과이어의 홈런경쟁은 시작되었다. 이 당시 최대의 관심사는 "누가 과연 로저 매리스의 기록을 깰 수 있을까?"였다. 로저 매리스의 기록이라면 1961년 맨틀과 경쟁하며 기록한 61홈런이었다... 거의 37년간 안 깨졌던 불멸의 기록이었고, 맥과이어, 칸세코, 마이크 슈미트등이 몇번 도전해 봤으나 모두 실패한 불멸의 대기록이었다... 그 대기록에 도전장을 내민 두남자.... 8월 19일, 새미 소사는 48홈런을 치며 처음으로 맥과이어를 넘어섰다. 그러나 맥과이어는 다음경기에서 홈런 2개를 치며 49홈런으로 다시 리드하며 경기장을 흥분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노동절휴가가 끝나고, 카디널스와 컵스가 경기를 가지며 홈런슬러거들의 대결까지 있었고, 당시 모든 잡지란 잡지는 소사vs맥과이어의 홈런매치로 가득했고 한국에서도 필자에겐 처음으로 MLB라는 걸 알린 엄청난 사건이었다. 9월 8일, 62홈런으로 마침내 로저 매리스의 기록을 깬 맥과이어는 홈 플레이트에서 그의 아들 매튜와 함께 로저 매리스에게 경의를 바쳤고, 우측외야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소사는 냉큼 달려와서 맥과이어와 가슴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라이벌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5일후, 소사는 2개의 홈런을 몰아치며 맥과이어와 62홈런으로 타이를 만들었고, 9월 25일, 소사와 맥과이어는 둘다 66홈런을 기록하고 있었다. 소사는 플레이오프 결정전이 남아있어 더 유리했으나 그는 홈런을 치지 못했고, 그에 반해서 마지막 2경기에서 4홈런을 몰아친 맥과이어는 70홈런으로 메이져리그기록을 세웠다!!! 이 해 마크 맥과이어가 세인트 루이스 카디널스로 이적한 이후 첫 풀타임시즌에서 기록한 성적은 무려 70홈런(1위)147타점(2위) 162볼넷(1위)/155삼진(3위) .299 .470(1위) .752(1위) 1.222OPS(1위)라는 엄청난 대기록을 세웠으며 올스타에도 다시한번 선정되며 그의 인기를 실감캐 했다. 이 해 맥과이어가 세운 이정표를 한번보자... - 4726타석만에 400홈런기록(엠엘비 최단 타석) - 원정경기에서 32홈런을 치며 베이브 루스가 1927년에 세운 기록과 타이 - 400홈런을 릭 리드에게 뽑아냄 - 41경기에서 20홈런(엠엘비기록타이) - 최단경기 40홈런(90경기) - 최단경기 50홈런(125경기) - 최단경기 60홈런(필자가 알기론 이중 몇가진 배리 본즈가 깼습니다. 위에 있는 기록도 마찬가지구요.. 하지만 제가 기록을 잘 못 찾기에 그 당시까지라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최단경기 70홈런 - N.L. 홈경기 홈런 기록, 38홈런으로 갈아치움 - N.L. 볼넷 신기록(162개) - 33솔로홈런, 28 투런, 7 쓰리런, 2 만루홈런침 - 65명의 다른 투수들에게 홈런을 뽑아냄 - 미국 국방 훈장 수상(엄청난... 엄청난 영예입니다...) - N.L 이주의 선수 3번선정 - MVP투표에서 새미 소사에 이어 2위 - NL 4월, 5월, 9월의 선수 - AOL 선정 올해의 미국인 선정 - 새미소사와 함께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트 선정 "올해의 사나이"선정 - 새미소사와 함께 스포팅뉴스선정 "올해의 스포츠맨"선정 - 운동연합선정 "올해의 남자 체육인"선정 - BA선정 "올해의 선수"선정 - 베이스볼 위클리 선정 "올해의 선수" - ABC 와이드 월드선정 "올해의 사나이" - 선수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 - 바바라 월터선정 "1998년 기억에 남을 사람 10인"중 하나로 선정
등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상과 영예, 기록을 세워버린 마크 맥과이어는 당시 엠엘비최고의 스타였고, 그 누구도 그의 인기에 대항을 하지 못했다. 심지어 새미 소사마저도...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mcgwire.com%2Fpicturearchive%2F9798pics%2Faway10.jpg) "Mark (McGwire), you know I love you. It's been unbelievable. I wish you could be here with me today. I know you are watching me and I know you have the same feelings for me as I have for you in my heart." - Sammy Sosa 마크 맥과이어, 당신은 내가 당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죠. 믿을 수 없는 일이에요. 나는 당신이 오늘 나와 같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당신이 저를 제가 느끼고 있는 똑같은 감정으로 보고 있다는 걸 제 심장에 뿌리깊게 알고 있죠 - 새미 소사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mcgwire.com%2Fpicturearchive%2F9798pics%2Faway11.jpg)
나 자신을 위한 노래해..... 카디널스의 영웅....
1999년의 마크 맥과이어는 1998의 기세를 몰아치며 좋은 페이스로 시즌을 시작했다. 하지만 전해의 2위를 다시 되찾겠다는 각오로 나선 새미 소사는 70홈런을 갈아치울 기세로 나오며 맥과이어를 쌀벌하게 만들었다. 실제로 8월중순까지만 해도 맥과이어는 소사에게 상대가 안 될정도였지만, 98년에도 보여 주었듯 무시무시한 몰아치기로 결국은 65홈런을 치며 이미 그가 97~98년에 세웠던 2년 홈런기록(70+58=128)을 7개차이로 다시경신하며 사실상 불멸의 기록을 세웠다. 147타점으로 첫 타점타이틀도 수상했으며 올스타에도 당연히 선정되어 13홈런으로 1라운드 홈런더비기록까지 세우며(이거 지암비가 깼나?)최상의 컨디션을 자랑했고 단 5486타석만에 통산 500홈런을 뽀아내었다. 이해 그가 세운 기록은 2년 홈런기록(135), 3년 홈런기록(193), 4년 홈런기록(245, 이기록은 소사가 깬 거 같군요..)와 함께 MVP후보에서도 5위에 오르며 기량을 마음껏 뽑냈다... 하지만 이것이 맥과이어에겐 사실상 마지막 풀타임시즌이었다..... 2000년..... 무시무시한 홈런기세로 단 35경기만에 20홈런을 세워버린 맥과이어는 고작 89경기 236타석만에 32홈런 73타점 .305 .483 .746을 기록하고 있었다... 이 기록들은 98년의 그것을 훨씬 상회하는 기록들이었다. 만약 맥과이어가 풀타임에 나왔다면 70홈런 150타점을 기록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페이스였다... 하지만 그의 발목부상은 고질적이었다...... 그럼에도 첫 플레이오프를 진출하기도 했다... 2001년엔 신예 푸홀스와 함께 멋진 쌍포를 이뤘으나 부상은 그의 발목을 잡았고, 그는 팀의 제의를 마다하고 신사답게 은퇴를 선언했다. 그의 은퇴문을 들으며 이 지겨우실 글을 마친다.. ㅡ,,ㅡ "저번 1월에 드윗씨(카즈오너)는 2년의 연장계약에 거의 확정을 봤습니다. 하지만 많이 생각해 본 결과 전 더이상 좋은 활약을 보일 수도 없고, 예전처럼 호쾌한 홈런포도 보이기 거의 불가능합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mcgwire.com%2Fpicturearchive%2Fpress%2Fpress04.jpg) 전 아직도 카디널스팬들과 카즈에게 빛진게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서 제가 이번계약을 포기하는 건 팬들에게 다시한번 보답하는 일이며 더 나아가선 카디널스에게 "월드시리즈 챔프"란 선물을 주는 셈이지요. 그래서 저는 저의 10년간의 기회, 기억, 친구를 모두 버리려고 작정했습니다. 저는 저에게 많이 물어봤죠.. 나같이 운좋은 사람이 있을까? 라고요 전 정말 운좋은 사람입니다. 저는 특별히 카디널스, 드윗씨, 조케티씨, 토니 라루사씨에게 감사를 하고 싶구요. 그리고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모든 팬들에게 각별히 인사를 드리고 싶네요. 베이브 루스? 제가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요? 그의 이름은 제 이름 바로 다음에 있군요. 저는 그시대로 돌아가서 그를 한번 만나보고 싶네요. 물론, 그는 그당시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스포츠인물이었어요. 저는 소망적으로, 언젠가 제가 그를 넘어 서길 기대하고 있었지만 그건 안될것 같군요.... 저는 그를 만나고, 진정으로 제가 그를 넘어설 수 있는지 저를 확인하고 싶었답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mcgwire.com%2Fpicturearchive%2Fout%2Fout04.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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