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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악회-제182차 산행] 삼척 두타산-쉰움산 (1)
▶ 2017년 11월 19일 (일요일)
[산행코스] ☞ 천은사(삼척시 미로면)-쉰움산-삼거리-두타산성터-무릉계곡-삼화사-주차장
• [프롤로그] — 2017년 겨울, 하나의 이념으로 독주하는 불안한 나라 …
이제 2017년 겨울의 길목에 들어섰다. 날씨가 점점 추위지고 있다! 온 산하가 현란한 단풍으로 빛나는가 하더니 11월 중순이 넘어가면서 차가운 바람이 우리의 몸을 긴장시킨다. 무성하던 나뭇잎, 땅에 떨어져 수북히 쌓이고 앙상한 빈 가지에는 싸늘한 겨울바람이 운다.
날씨는 추워지는데, 나라가 걱정스럽다. 서슬 퍼런 정국(政局)이다. 문재인 정권은 오직 자기만의 코드로 사정의 칼날을 마구 휘두르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가 되는 잘못된 관행이나 병폐는 고쳐야 한다. 그러나 지금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은 마땅히 적폐를 청산한다고 하지만, 기실 한풀이 정치 보복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전 정권과 관련된 공직자, 언론 경영인, 기업인들을 하나씩 솎아내거나 줄줄이 구속하고 있다. 정권은 분열된 민심은 아랑곳하지 않고 ‘내로남불’로 독주한다. 스스로 또 다른 적폐를 쌓아가고 있는 것이다. 오직 자신들의 이념의 잣대만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권력의 속성이 그렇다고 하지만, 도(度)를 넘어도 한참 넘어섰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권력을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안보의 위기(危機) 상황에서, 북핵(北核)에 대해서 공조해야 할 미국과는 엇박자를 놓고, 중국과는 소위 ‘삼불(三不)’을 밀약하여 굴욕적인 거래를 하고 있으니 나라를 지키기 위한 외교 정책에 철학이 없다. 지난달 말 한·중 간에 맺어진 사드 등 중국과의 ‘3불(三不)의 합의’는 분명 우리의 미래 군사주권을 훼손한 것이었다. 첫째 ‘사드 추가 배치를 검토하지 않는다’는 약속은 북핵 대비용이라는 사드 배치의 필요성을 우리 스스로 부정하는 결과로 돌아오고 있다. 북핵 위협이 없어지지 않는데 어떻게 추가 배치가 없다고 제3국에 약속할 수 있는가. 둘째 미국 MD(미사일 방어) 체계에 들어가든 들어가지 않든 우리가 결정할 사항이지 왜 중국이 간섭하는가. 셋째 한·미·일 동맹 문제도 마찬가지다. 우리 스스로 안보 전략에 족쇄를 채웠다.
어디 그 뿐인가. 현 정권의 법무부가 제주 해군기지, 밀양 송전탑, 사드 반대, 용산 참사, 세월호 등의 시위·집회로 처벌받은 사람들 현황과 사법 처리 내용을 파악해 보고토록 일선 검찰청에 지시했다. 올 연말 이뤄질 ‘특별사면’에 대비한 자료 수집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집회시위법 위반자뿐 아니라 공무집행방해·폭행·상해죄로 처벌받은 사람들까지 포함됐다. … 법무부가 굳이 제주 해군기지, 밀양 송전탑, 세월호 시위 등을 골라 사면을 검토하겠다는 것은 이들이 현 정권의 지지 세력이라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정부는 코드를 같이하는 집단의 지지를 놓치지 않기 위해 유별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것만 되면 다른 사람들 눈치는 볼 필요도 없다는 듯하다. 정부 인사(人事)도 누가 뭐라든 이 사람들만 챙긴다.
제주 해군기지 반대 시위는 공사를 14개월이나 지연시키면서 273억원의 국민 세금 손실을 불러왔다. 지금 제주 기지가 없는 상황은 생각할 수도 없다. 그걸 막겠다고 전국에서 전문 시위꾼들이 몰려와 온갖 방해를 했다. 이들에게 국민 세금 손실분 일부라도 물리려 했으나 새 정부는 이를 없던 일로 하려고 한다. 그것도 모자라 이젠 범법 사실 자체를 지워주겠다는 것이다. 2015년 서울 도심 집회에선 극렬 시위대가 경찰 차량 71대를 부수고 경찰관 74명을 부상시켰다. 밀양 송전탑, 사드 반대, 용산 참사 등도 폭력으로 법치를 파괴하고 공권력을 무력화시켰다. 이런 폭력 시위 세력을 사면해 준다는 것은 앞으로 안보건 경제건 국가 정책을 폭력으로 막아도 괜찮다고 정부가 보증하는 일이 돼버린다. 사면은 법치(法治)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더라도 국가 통합의 뚜렷한 목표 아래 최소한으로 절제해 시행돼야 하고 반대 진영의 사람들도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법무부가 검토한다는 사람들은 이와 너무 거리가 멀다. … 법이 무색한 나라, “이게 나라냐?” 하는 한탄이 절로 나온다.
앞날이 첩첩산중이다. 도처에서 경제의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가계부채가 파국으로 가는 시한폭탄이 되어 있는데, 뒷생각을 하지 않는 17만 명의 공무원 증원에 따른 예산을 증액하는 것은 앞으로 엄청난 재정 파탄을 초래할 것이다. 국가의 경영철학이 반듯하지 못하고 지도자가 덕(德)이 없으면 국민은 불행하고 국가는 위태롭다. 불안하기 그지 없는 현실이다.
• [산으로 가는 길] — 국토의 허리를 가로질러 동해로 향하는 …
오전 7시 정각에, 서울의 능동[지하철 5 / 7호선 군자역]에서 출발했다. 오늘이 산행지가 워낙 먼 곳에 있으므로 평소보다 30분 앞당겨서 발진한 것이다. 이번 제182차 산행지는 강원도 동해안의 삼척시, 오십천 계곡의 심처, 미로면에서 오르는 <쉰움산-두타산>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맑은 아침, 영하 6도의 차가운 새벽 공기를 가르고 동해안으로 출발했다.
오늘도 남정균 회장, 호산아 고문, 김의락 위원, ‘하회탈’ 김준섭· ‘꽃구름’ 한영옥 부회장, 민창우 산행대장, 박은배 총무, 오수정 감사를 비롯하여 전진국, 안상규, 강재훈 삼총사, 늘 다정한 김재철 님 내외분, ‘하회탈’의 지기인 이경희·강완식 님 그리고 10월 산행에 처음 나왔던 남점식 님 등도 참석했다. 그리고 또 김숙이·정석희 님, 늘 변함없이 참석하는 향이·장영서·이명자 님, 그리고 나천옥 님은 임선지·현명순·신복·남선 님 등 친구들과 동행하고, 무칠이 안수경 님과 함께 온 박미화 님, 수정 님의 지기 배광승 님 내외분 등 오늘 처음 동행하게 되어 반가웠다. 쌀쌀한 날씨지만 산을 지향하는 마음이 아름다운 동행을 가능케 했다.
• [산으로 가는 길] — 제2영동고속도로와 동해의 고속도로 그리고 삼척
군자역을 출발한 우리의 <금강버스>는 중부고속도로 곤지암J.C에서 제2영동고속도로를 경유하여, 원주에서 영동선에 진입하여 일로 동해(東海)를 향하여 질주해 나갔다. 제2영동고속로(인천-광명-성남-곤지암-원주)는 내년, 2018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에 대비하여 지난 9월에 개통한 도로이다. 영동고속도로는 영서(嶺西)의 평창에서 백두대간 대관령 터널을 넘어 동해의 강릉으로 넘어간다. 우리가 달려가는 도로는 강릉의 분기점에서 동쪽의 바다를 끼고 남으로 방향을 바꾸어 망상-묵호를 경유하는 동해고속도로, 날씨는 청명하고 햇살이 화사하게 내리고 있었다. 차창으로 보이는 동해의 바다가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처럼 가슴에 안겨들었다. 시퍼런 겨울 바다를 끼고 질주하는 버스는 삼척I.C에서 국도로 내려 오십천(五十川)의 계곡길을 따라 올라가 미로면에 위치한 <두타산> 산행들머리에 이르렀다. 오전 10시 20분, 두타산(頭陀山) 천은사(天恩寺) 입구에 도착했다.
• [오늘의 산행지] — 백두대간 두타산의 가슴팎을 타고 오는 <쉰움산> 능선
휴전선, 그 분단의 철조망을 넘어온 백두대간(白頭大幹)은 저 북쪽의 설악산(1,708m)에서 기암절경과 대청봉(1,708m)을 밀어올리고, 다시 힘차게 남하하여 오대산(1,563m)의 첩첩 산들과 황병산(1,407m)의 거대한 산체를 지나면서 광활한 선자령(仙子嶺) 고원을 펼쳐 놓는다. 거침없이 남하하는 백두대간은, 동해와 내륙을 잇는 요로인 대관령에서 잠시 몸을 낮췄다가 다시 솟아오른 능경봉을 지나 고루포기산(1·,238m)으로 이어지고, 그 아래의 남쪽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두리봉-석병산(1,055m)이 되고, 남으로 다시 이어지는 산줄기가 삼척의 청옥산-두타산(1,353m)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계속 남으로 이어지는 대간의 산줄기는 태백시의 대덕산-금대봉-함백산-태백산으로 뻗어나가는 것이다.
오늘의 산행지 두타산(頭陀山)은 높이 1,353m로 청옥산(1,403.7m)·고적대 등과 함께 백두대간의 거봉을 이루며 우리 국토의 동·서간의 분수령을 이룬다. 백두대간의 북쪽과 동쪽[영동]은 급경사를 이루어 험준하며, 서쪽[영서지방] 사면은 비교적 완만한 것이 지형적 특색이다. 산의 북동쪽 사면에서 발원한 하천이 ‘무릉계곡’을 지나 살내[箭川]를 이루며, 천은사 계곡물을 비롯한 동쪽 사면에서 발원한 하천이 ‘오십천(五十川)’을 이루어 동해에 흘러든다.
붉은 색의 산줄기가 백두대간(白頭大幹). 태백산맥은 잘못된 표기이다.
한편 두타산 백두대간의 남동쪽 기슭에서 발원한 계곡의 물은 정선의 골지천과 합류하여 남한강 상류로 흘러든다. 우리가 오늘 산행하는 두타산은 그 북동쪽에 고찰 천은사가 있다. 천은사에서 산제당이 있는 쉰움산 능선을 타고 주봉인 두타산에 오르면, 바로 장대한 백두대간 능선이다. 두타산에서, 북으로는 청옥산으로 이어지고 남으로 대덕산-함백산-태백산으로 뻗어가는데, 두타와 청옥 두 산에서 발원하는 계곡이 바로 ‘무릉계곡’이다. 이곳에는 신라시대에 창건된 삼화사를 비롯해 무릉반석·관음사·학소대·금란정 등이 있다. 학소대에서는 4단 폭포가 기암괴석을 타고 쏟아져 내린다.
오늘, 두타산 산행은 천년 고찰 천은사에서 시작한다. 천은사는 삼척시 미로면 오십천의 한 지류의 심곡(深谷)에 위치해 있다. 쉰움산(683m)은 두타산의 영지이며 산정에는 천제봉, 고초봉 등이 있다. 두타산(1,352.7m) 정상에 북동쪽으로 3km 정도 거리이다. 쉰음산은 산정에 많은 사람이 앉을 수 있을 만큼 넓고 편편한 반석이 있고, 기암괴석이 솟아 있는 반석위에 크고 작은 구덩이 우물[巖穴]이 50개가 있어 그래서 그 이름을 오십정(五十井)이라 한다. ‘쉰움산’의 명칭도 ‘쉰 개의 우물’을 축약하여 부른 것이다. 정상의 바위 표면이 흡사 달의 분화구 같기도 하다. 바위에 패인 자국은 작은 메추리알에서 공룡알 크기 까지 다양하며 가뭄에도 항상 물이 고여 있다.
• [두타산 천은사(天恩寺)] — 이승휴(李承休)가 은거하며『제왕운기』를 썼던 곳
두타(頭陀)는 원래 불교의 수행법의 하나로 산스크리트어인 두타(dhuta)의 음역이다. 의·식·주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완전히 무소유의 삶으로 탁발(托鉢) 수행(修行)하는 것을 말한다.
산행들머리인 천은사(天恩寺)는 고려시대 문신 이승휴(李承休)가 오랫동안 기거(寄居)하였는데, 그래서 그를 ‘동안거사(動安居士)’라 한다. 이승휴는 29세 때인 1252년(고려 고종 39년)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외가(外家)가 있는 삼척(三陟)으로 간 사이, 몽고의 침입으로 돌아갈 길이 막히자 두타산 구동(龜洞)으로 들어가 학문을 연구하면서 이곳에 터를 잡았다. 1263년(원종 4) 관직에 올랐으나, 1280년(충렬왕 6) 전중시사로 있을 때 올린 상소로 인해 파직된 후,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
이승휴(李承休)가 거처하던 곳을 ‘용안당(容安堂)’이라 하였는데, 용안당은 도연명(陶淵明)의『귀거래사(歸去來辭)』구절에서 따온 것으로 이승휴의 호(號)이기도 하다. 그는 이곳에서 1287년(충렬왕 13)《제왕운기(帝王韻紀)》를 저술하였다. 71세 되던 1294년(충렬왕 20) 용안당을 간장사(看藏寺)로 개칭하고 불가에 희사하였으며, 그 후 1889년(조선 고종 26) 다시 천은사(天恩寺)로 바뀌었다. 2000년 9월 16일 사적 421호로 지정되었다.
이승휴는 이 용안당[천은사]에서 『제왕운기(帝王韻紀)』와 『내전록(內典錄)』을 저술하였다. 이승휴의 문집은 이밖에도 아들 이연종(李衍宗)이 편집한 『동안거사집(東安居士集)』이 함께 전해지고 있다. 이승휴의『제왕운기』는 중국과 우리나라의 역사를 칠언시(七言詩)와 오언시(五言詩)로 엮은 서사시(敍事詩)로서 이승휴를 비롯한 당대 신진사류(新進士類)들의 역사의식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에 대해서는 원(元)나라의 정치적 간섭 속에서 민족문화의 우월성과 역사전통에 대한 강렬한 자부심을 드러낸 자주적 역사서라는 평에서부터, 유교사관을 내세워 원(元)나라에 대한 사대(事大)를 합리화하는 사대적·비자주적 성격의 저술이라는 비판 등 다양한 평가가 있다.
• [두타산-쉰움산 산행의 들머리] — 삼척 오십천 계곡의 심곡, 천은사 입구에서
오전 10시 25분, 산행에 돌입했다. 산행기점은 천은사(天恩寺) 일주문 앞이다. 하늘이 맑고 천기(天氣)가 신선했다. 비록 싸늘하기는 하지만 바람 한 점 없는 날씨, 겨울 특유의 화창하고 청명한 하늘이다. 여기는 삼척 오십천 상류의 깊고 고즈넉한 계곡이다. 가슴으로 스며는 공기는 신선하고 정결했다. 산의 들머리에 <이승휴기념유적비>가 있다. 유적비의 모습은 아주 현대적인 디자인이었다. 사각의 흰색 기둥을 높이 올려 그 위에 사각의 까만 오석(烏石)을 얹어놓았다. 그 주탑 주위의 바닥에는 네 개의 각진 화강암을 배치해 놓았다. 해설에 의하면, 이것은 삼척의 바다와 산을 상징하고 가운데 기둥은 이승휴의 고매한 정신세계를 형상화해 놓은 것이라고 한다.
이승휴기념유적비
• [계절의 정취, 물고운 은행잎 낙엽] — 고요한 산사의 풍경
오늘 산행에는 민창우 대장이 선두에서 길을 잡고, 김준섭 부회장이 후미를 수습해 오기로 했다. 고요한 심산의 분위기, 천은사 일주문을 지났다. 조금 올라가니 완만한 언덕배기에 노란 은행잎이 황금빛 비단처럼 깔려 있는 은행나무 군락지가 있다. 맑은 햇살을 받은 노란 은행잎이 곱다. 지나는 나그네의 마음을 이끄는 풍경이다. 몇 분의 대원이 그 아름다운 풍경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가을의 정취, 맑은 수채화처럼 아름다운 풍경이 카메라에 잡혔다. 언덕배기를 조금 올라간 산길, 계곡의 건너편에 천은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천은사는 규모가 크지 않는 소박한 천 년 고찰이다. 먼 고려시대 대학자 이승휴(李承休)의 숨결이 흐르는 겨울 산사, 긴 세월을 넘어 한 시대를 풍미한 지성(知性)의 체취를 느낀다.
겨울나무 사이로 건너다 보이는 천은사
• [계곡의 가장 자리 산기슭의 길] — 호젓한 산길, 파란 하늘 속의 앙상한 겨울나무
산길은 계곡의 남향받이 산기슭을 타고 완만하게 올라가고 있었다. 햇살이 맑고 따뜻했다. 계곡에는 바람기가 전혀 없다. 산길에는 우리 대원 이외에는 사람은 전혀 없었다. 조용하고 눈부신 대명천지(大明天地)의 적막강산이다. 고요한 산 중에 말없이 걷는다. 발밑에 부셔지는 낙엽의 소리, 앙상한 가지를 옮겨 다니는 산새의 울음소리, 그 작은 소리들이 적막한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킨다. 마음이 맑아지는 청정산행이다.
완만하게 이어지던 산길이 오른쪽으로 가파른 산기슭을 치고 올라간다. 이제 본격적으로 고도(高度)를 높여가는 것이다. 한참을 오르다가 평탄한 길이 이어지고 그리고 다시 지그재그로 올라가는 경사진 산길, 몸이 더워지고 땀이 나기 시작했다. 차가운 공기가 오히려 신선한 감촉으로 피부에 와 닿는다. 발길을 멈추고 다시 복장을 가볍게 정비했다. 그렇게 한참을 가파르게 올랐다. 산기슭에는 떨어진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있고, 잎이 여읜 나무는 앙상한 가지만을 파란 허공에 맡긴 채 긴 침묵 속에 들었다. 청명한 겨울 하늘, 무궁한 깊이로 빠져 드는 심연과 같다. 양지 바른 곳, 가파른 산을 오르던 대원들이 걸음을 멈추고 해바라기를 한다. 맑은 햇살이 씻은 얼굴마다 화사한 표정이 빛난다.
• [장대한 금강송(金剛松)의 기개(氣槪)] — 파란 하늘을 찌르는 거송과 장중한 바위
고도를 높이는 산(山)의 길목에는 장대한 소나무들이 그 당당한 기개를 뽐내며 하늘을 받치고 있었다. 이곳 삼척의 백두대간 산록은, ‘준경묘’를 비롯하여 금강송의 군락지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 두타산의 산록이나 계곡, 또 1,000고지 이하의 능선 주위에는 짓푸른 금강송(金剛松)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모든 활엽수들이 잎을 내리고 앙상한 나목으로 서 있는 한겨울에도, 그 푸른 솔은 유난히 싱그럽고 강인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공자(孔子)가 말씀하시기를 “추운 겨울이 지나고 나서 소나무와 잣나무가 늘 푸른 것은 안다(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也)”고 했다. 예부터 소나무는 고절(高節)하고 변하지 않는 인품(人品)을 지닌 군자의 풍모로 비유되어 왔다. 추사(秋史)가 그린 <세한도(歲寒圖)>의 소나무 역시 그러한 인간의 지조(志操)와 의리(義理)를 예찬하는 내용이다.
바위와 금강송(金剛松) - 역광(逆光) 촬영 / 캐논(CANON) EOS 650D
• [시야가 환하게 열린 암반] — 쉰움산의 바위 능선을 조망하다
가파른 산길을 올라서니 사위(四圍)가 환하게 열리는 완만한 반석(磐石)이 나타났다. 선두의 민 대장을 비롯하여 뒤를 이어 올라오는 모든 대원들이 걸음을 멈추고 휴식을 취하였다. 남향받이 화사한 햇살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곳이다. 지나는 사람들이 쌓은 ‘돌탑’이 여기저기 서 있었다, 마음의 돌탑들이다. 고개를 들어보니 쉰움산의 바위 능선이 시야에 들어 왔다.
• [쉰움산 정상의 암반에 서다] — 거대한 백두대간의 산체 그리고 동해의 수평선
다시 능선을 향하여 완만한 산길을 오른다. 길목에 서 있는 고사(枯死木)이 또한 풍경이다. 살아있는 소나무와 고사목이 대비되는 풍경은, 세월 속에서 시퍼렇게 살아있는 삶과 적막한 죽음의 형상을 보여준다. 생명의 푸른 기백과 앙상하게 뼈만 남은 형해(形骸), 죽어서도 하늘을 받치고 있다.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산행을 계속했다. 얼마가지 않아 암릉지대를 만났다. 각진 바위 사이로 가파르게 오르는 바윗길, 설치된 안전 자일을 잡고 올랐다. 규모는 크지 않으나 절벽 바위로 이어지는 능선이었다. 암릉의 바위 아래의 길을 따라 올라서니 널따란 암봉이 나타났다. 바로 쉰움산[五十井]이었다. 해발 670m로 그리 높지 않지만 사위가 확연히 열려서 사방의 풍경이 한눈에 안겨들었다.
널따란 암봉에는 높이를 달리하는 암반이 있고, 크고 작은 바위 웅덩이가 많이 눈에 띄었다. 그것을 두고 쉰 개의 우물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암봉의 여기저기에 몇 그루의 암송(巖松)이 있어 운치를 더했다. 청명한 하늘에서 맑은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지만, 대간(大幹)을 넘어가는 바람이 아주 세찼다. 사방을 둘러보니, 남서쪽으로 두타산(頭陀山)으로 이어지는 산의 능선이 선명하고, 북서쪽을 청옥산(靑玉山)-망군대 등 백두대간의 우람하고 거대한 산줄기 첩첩이 이어지고 있다. 동쪽으로 눈을 돌리면, 가까이는 오십천의 천은사 계곡과 멀리 동해의 시퍼런 바다가 아득히 수평선을 이루고 있었다. 바위 위에 올라서면 동해의 수평선이 사람의 등에 걸린다.
동해의 푸른 바다 - 수평선이 등에 걸리다.
두타산의 거대한 산체
천은사(天寺사) 계곡과 멀리 동해東海해)의 풍경
• [두타산-쉰움산에서 발원한 오십천] — 관동팔경의 하나인 삼척 오십천 죽서루 …
오십천(五十川)의 물은 삼척(三陟) 시내 한 복판을 경유하여 동해로 흘러드는데, 삼척 시내 오십천 절벽 위에 죽서루(竹西樓)가 있다. 예로부터 관동팔경(關東八景)의 하나로 꼽히는 죽서루(竹西樓)는 창건 연대와 창건자는 알 수 없으나《동안거사집》에 1266년(고려 원종 7) 동안거사 ‘이승휴’가 안집사 ‘진자후’와 같이 서루(西樓)에 올라 시를 지었다는 기록이 있어 1266년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보물 213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누각을 세울 당시 동쪽에 죽장사(竹藏寺) 또는 죽죽선(竹竹仙)이라는 이름 난 기생이 살던 집이 있어, 이름을 ‘竹西樓’라 하였다고 한다. 누대 안에는 수많은 현판(懸板)이 걸려 있는데, ‘제일계정’(第一溪亭)은 현종 3년(1662) 허목(許穆)의 글씨이며, ‘關東第一樓와 ‘竹西樓’는 조선 숙종 때 이곳 부사였던 이성조가 쓴 글씨이다. 숙종의 어제시(御製詩)와 율곡(栗谷)의 시도 걸려 있다. 송강 정철은 죽서루에 오른 소감을 <관동별곡>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삼척 시내를 관통하는 오십천(五十川) 절벽 위의 죽서루 (서쪽)
‘진주관 듁셔류 오십천 내린 믈이, 태백산 그림재를 동해로 다마 가니 찰하리 한강의 목멱의 다히고져 왕뎡이 유한하고 풍경이 못 슬믜니 유회도 하도 할샤, 객수도 둘 듸 업다.
삼척 죽서루 아래를 흐르는 오십천이 태백산(두타산)의 그림자를 담아서 동해로 흘러가는데, 마음 같아서는 이 맑고 아름다운 풍경을 한양의 임금님께 보여주고 싶구나. 갈 길은 정해져 있고 풍경은 아름다우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구나, 외로운 심사를 둘 데가 없다.
• [두타산 정상을 향하는 여정] — 가파른 경사를 치고 오르는 고행(苦行)
쉰움산(670m) 바위 위에서 동해 푸른 바다와 천하를 조망하며 한참을 머문 뒤, 두타산(頭陀山) 정상을 향하여 산행을 계속했다. 이어지는 산길은 기암으로 이어지는 암릉이었다. 바위와 소나무가 어울려 멋진 풍경, 파란 하늘 아래 바위와 푸른 소나무가 어울려 아름다운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암릉 구간이 지나고 나서는 평탄한 토산의 흙길, 장대한 소나무가 울창한 숲속의 산길이었다.
산길은 무지막지하게 하늘을 치고 올랐다. 산길의 경사가 매우 가팔랐다. 지그재그의 산길이 고도를 높인다. 고난(苦難)의 여정이었다. 다리가 아프고 숨이 턱에 차 올랐다. 대원들의 간격이 많이 벌어졌다. 백두대간을 넘어오는 세찬 바람이 얼굴을 때린다. 산(山)은 그 높이만큼 우리에게 고통(苦痛)을 요구한다. 진정한 산악인은 그 고통을 즐기는 묘미(妙味)로 존재의 행복감을 느낀다. 인생에 있어서 지향하는 목표(目標)가 있다는 것은 고난을 극복(克服)하는 힘이다. 그래서 흔쾌히 땀을 흘리는 것이다. 가파른 산길, 길고 긴 구간이었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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