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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이야기, 박월수의 『숨, 들이다』를 읽고
낮에도 마른하늘에 낮달이 걸리는 때가 있다. 하얀 달이다. 태양의 광도가 너무 높아서 달은 하얀 색으로 보인다. 빛나는 태양 뒤에서 숨은 듯 하얗게 그림자처럼 실체가 없어 보이는 달도 밤이 되면 어김없이 노란 제 모습을 드러내 보인다. 박월수의 『숨, 들이다』는 그런 달의 이야기다. 태양에 가려있으나 서서히 제 몸의 빛을 자연 가득 발산하는 빛나는 달의 내력이다. 『숨, 들이다』는 삶의 애환과 생활 속에 깊이 체득되고 체험된 달의 발화라 하겠다.
달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별 이야기를 하자. 우리는 흔히 별을 떠올리면 윤동주 시인을 생각한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어머니를 생각한다거나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는 시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순히 별을 적었으므로 그가 ‘별시인’으로 각인되는 것은 아니다. 그 시대 대한제국이라는 나라가 처한 상황에서 별이 상징하는 것은 희망이었다. 사람들은 그의 시를 읽고 그의 시를 들으면서 미래를 꿈꾸었다. 깜깜한 밤에 어둠을 뚫고 존재를 드러내는 별은 윤동주에게뿐만 아니라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꿈을 주었다.
자, 그럼 윤동주 시인에 버금가는 ‘달’의 작가 바로 박월수의 달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생명체의 기원이 어디인지에 관한 물음으로 인간은 끊임없는 갈증을 품어왔다. 그것에 대한 대답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러나 우리의 몸을 우주에 빗대자면 가장 근접한 것이 달이라 하겠다. 이지러진 달로부터 시작해서 반달이 되고 다시 보름달이 되었다가는 하현달로 사그라지는 그 형태를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탄생과 더불어 소년과 청년기를 거쳐 다시 장년기와 노년기를 거친 후 후세로 이어져 그 순환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인간의 삶과 너무나도 닮았다. 박월수의 현재의 달은 보름달을 살짝 지나 있지만, 달빛을 머금은 윤회의 달은 여전히 그의 뒤로 따르고 있다.
그는 부산일보 신춘문예에서 ‘달’이라는 작품으로 당선된 작가이자, 사진작가이며 수필 창작 강사이기도 하다. 가장 좋은 글은 삶에서 나오는 것이며, 그중에서도 민낯을 드러낼 때 최고의 글이 탄생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으리라. 그의 글에 나오는 ‘달’은 속을 훤히 드러내라는 인간의 근원적인 물음에서 하나도 이탈한 작품이 없다. 어머니에게서 자신에게로 또 딸에게로 이어지는 달의 순환은 인류의 거대한 역사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여자는 부끄러워야 하고, 숨겨야만 하는지’(16쪽), 에서 시작된 작은 반란은 딸을 잉태하면서 ‘내게로 들어온 달의 소중함은 여자에게만 허락된 의무이며 축복’(17쪽) 이라는 반전으로 전환되며, 인류의 역사야말로 여자가 이루어왔다는 자신만만한 존재감을 피력한다. 그러나 달이 늘 태양에 가려 제빛을 내지 못하듯 「새」에서는 바람에 상처를 입은 풀을 그린다. 「이탈하다」와 「진실의 입」을 통해 그는 한 남자의 탈출을 본다. 그로 인한 상심과 상처는 ‘내 속에는 쓴맛을 내는 것들이 얼마나 남아있는지’(41쪽) 와 같은 깨달음으로 인해 새로운 변화로의 길을 모색하며 종국에는 바람을 달래주는 위로로 귀결한다. 이는 그리스 신화의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만물을 품는 형상이라고도 하겠다.
이름이 ‘월수’여서 그런지 작품에서 다양한 달과 관련한 상징을 찾을 수 있다. 「달의 등」이라는 작품의 월배를 제외하고서라도 달밭, 달막, 달풀, 달외폭포와 같은 단어들은 그가 얼마나 달과 같은 삶을 고집하고 달과 혼연일체가 되는 삶을 그리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속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달은 조금도 쉴 틈이 없이 바람에 의해 이지러지고 쓸쓸한 모습을 보여준다. 「쓸쓸하다」에서 쓸쓸함은 적막이 되고 적막은 다시 무서움으로 변한다. 이런 두려움에 굴복한다면 글은 그 가치를 잃는데, 그것들은 종래에는 ‘쓸쓸함은 살아있음의 또 다른 표현이다.’라는 결구를 가진다. 이것은 새로운 희망의 모색이며 끊임없는 외로움과의 대결에서 얻어낸 결론이기도 하다.
달은 원래 둥근 하나의 근원적인 모양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공전과 자전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바꾸며 그믐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보름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러한 변화는 「혹」에 잘 드러난다. ‘달콤한 향기를 뿜으며 달려들던 바람처럼 대책도 없이 나를 비집고 들어왔던 것들은 언제나 처음 모습으로 머무르진 않았다.’(36쪽)
또한, 그의 글에서는 ‘소금’과 관련된 작품이 제법 눈에 띈다. 달이 지구와의 만유인력 관계에 놓여 있어서 바다는 조수간만의 차가 있다. 거기에서 얻어지는 것이 바로 소금이므로 「간수」나 「소금꽃」 또한 달과 매우 밀접한 관계의 글이기도 하다.
이제 작가는 글을 통해 ‘숨, 들이기’를 한다. 지나온 삶과 생활에서 발견한 깨달음이 책에 고스란히 들어있다. 이 책을 통해 누군가 위로를 받기를 원한다는 그의 말처럼 한 줄 한 줄 정제된 글은 우리에게 은은한 달빛으로 스며들어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세상 어디에나 바람은 불고 꽃은 피고 또 진다.’(60쪽) 는 그의 말이 ‘마음에 한소끔 소금 간이 배’게(83쪽)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