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79년경,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사라진 비운의 도시, 이탈리아 폼페이의 '의사의 집'으로 추정되는 유적지에서 의료용 도구로 추정되는 유물들이 발굴되었다. 이 유물들의 출토로 고대 로마의 의료, 의학 체계에 대해 상당히 많은 연구 성과를 가져다주었으며, 또한 이렇게 온전한 상태로 발굴되는 도구는 상당히 희귀하기 때문에 고고학 그 자체에도 상당한 가치가 있는 유물이다.
[수술을 집도하는 로마 의사]
[직장 검경(라틴어: Rectal Speculum/그리스어: ἑδροδιαστολεύς)]
※ 검경(檢鏡)이란 인체의 내부나 세균 등을 검사할 때 쓰이는 도구를 일컫는다.
[현대의 직장 검경]
직장 검경(검사용 도구)과 관련된 최초의 언급으로는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고대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B.C. 4세기)의 언급이 있다. 직장 검경에 대한 가장 빠른 언급은 히포크라테스의 누공(상처·질병으로 인해 인체에 생긴 구멍)에 관한 논문에서 찾아볼 수 있다. 환자를 눕히고 직장 검경을 이용하여 직장의 궤양 부분을 검사한다.
[히포크라테스, 고대 그리스의 의사이자 철학가. 히포크라테스 선서와 지팡이를 휘감은 뱀 문양으로 알려져 있다.]
[뼈 지렛대(그리스어: μοχλίσκος)]
갈레노스에 따르면, 이 기구들은 골절된 뼈를 제 위치로 옮기는 데 사용되었고 이를 지렛대로 삼아 사용되었을 수도 있다.
[현대의 뼈 지렛대들]
[클라우디우스 갈레노스(Claudius Galenus)]
갈레노스는 서기 1~2세기경 로마 제국에서 활약한 뛰어난 그리스인 의사 중의 하나였다. 고대 로마의 의료계는 시인, 웅변학, 수사학자들처럼 뛰어난 재능을 가진 '그리스인'들이 다수 진출해 있던 분야였다. 이처럼 고대 그리스인들은 비록 그들의 모국인 그리스가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지만, 로마에서 '언어'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 중요한 흔적들을 남겼다.
[골겸자(날이 서지 않은 가위 모양으로 생긴 외과 수술 기구)]
[현대의 골겸자]
Soranus (lxiv) says that in case of impaction of the foetal cranium, the head may be opened with a sharp instrument and the pieces of the skull removed with bone forceps.
소라노스(Soranus)는 태아 두개골에 충격이 가해지면 날카로운 도구로 머리가 열리고 골겸자로 두개골 조각이 제거될 수 있다고 말한다.
[에페소스의 소라노스(Soranus of Ephesus)]
에페소스의 소라노스는 그리스인 의사였다. 에페소스에서 태어났으나 알렉산드리아에서, 그 후 로마에서 실습했으며, 방법론 의학(Methodic school)의 대표자 중 한 사람이었다. 그의 서적들 중 몇 권은 여전히 살아남았는데, 특히 그의 4권짜리 계통학 논문과 급성, 만성 질환에 대한 라틴어 번역본이 가장 눈에 띈다.
또한 그는 산부인과의 창시자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의학 교육을 받고 로마에서 40년 동안 의술을 펼쳤다. 그의 논문은 각종 미신을 잠재우는 역할을 했으며 임신, 피임, 낙태 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또한 그의 사상은 체계적이고 상당 수준 현대화된 면모를 보이고 있어 향후 1500년 동안 이 분야의 교과서가 되었다.
[채혈용 부항 용기(그리스어: Sikua(Σικούα/라틴어: Cucurbitulae]
고름이나 상처 부위의 혈액을 부항을 통해 뽑아내고 수용하기 위한 그릇으로 추정된다. 사진의 큰 부항 용기는 등이나 허벅지와 같은 신체의 비교적 큰 부위에 사용되었을 것이다. 이보다 더 작은 용기는 팔에 적용되었을 것이다.
[수축 및 접착 방지 튜브(그리스어: Μότος μολουβόςp/라틴어: Plumbea Fistula)]
로마 의사들은 코, 직장 등에 수술을 시행한 후 환부의 수축 또는 접착을 방지하고 약제를 전달하기 위해 납 또는 청동 튜브를 삽입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현대 기준으로 보면 저 도구들이 녹슬고 위험해 보이지만 당시에는 청동이나 납으로 만든 도구들이 사후 감염 방지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다. 물론 오늘날에는 실리콘, 플라스틱 재질의 안전한 튜브를 사용한다.
[소작기(그리스어: Κάουτεριον/라틴어: Ferrum Candens)]
※소작燒灼: ‘지짐술’의 전 용어. 신체 일부를 태워 환부나 혈액을 검사하기 위한 의학적 방법
의학적 소작술(지짐술)은 고대에는 거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널리 사용되었고, 외과 의사들은 이 도구의 다른 형태를 고안하는 데 많은 독창성을 발휘했다. 소작법은 거의 가능한 모든 목적을 위해 사용되었는데, 그것은 '유도 자극제(반대 자극제counter-irritant)', 지혈제, 의료용 무혈칼(Bloodless Knife), 종양을 파괴하는 수단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했다.
[휴대용 진찰 케이스]
이 일반 원통형 케이스는 의사가 사용하는 얇은 프로브 및 큐렛(탐지기와 스크래쳐)을 보관하고 보호하는 데 사용되었다. 히포크라테스는 왕진에 사용하기 위한 휴대용 장비 케이스를 언급하기도 했다.
[오늘날의 진찰 케이스]
[환부 고정용 후크(산부인과용)]
뭉툭하고 날카로운 후크는 그리스와 라틴 문학에서 자주 언급되며, 우리가 사용하는 것과 같은 목적, 즉 현대의 동맥 바늘처럼 혈관을 절개하고 높이는 데 쓰는 도구이며, 작은 조직을 잡아 올리는 데도 쓰이고 상처의 가장자리를 고정시키고 수축시키는 데 사용하는 것과 같은 용도로 사용된다. 해부에서는 오늘날 해부용 힘줄로 수행하는 많은 의학적 기법이 이러한 예리한 갈고리를 가진 옛사람들에 의해서도 행해졌다.
[메스]
메스는 아마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들에게도 가장 널리 알려진 의료용 도구일 것이다. 메스는 일종의 속어이며 정식 명칭은 scalpel(절삭용 칼), knife이다.
[현대의 메스들]
[절골도]
말 그대로 뼈를 절삭하는 데 사용된 도구이다. 로마 의사들은 두개골까지 절삭하는 등 오늘날에는 믿기 힘든 고난도의 의료 기술을 선보였다.
17세기에 그려진 해군 외과 의사의 천두술(두피의 일부를 긁어내고 두개골에 구멍을 뚫어 두통이나 뇌 통증을 제거하는 시술) 시술 장면과 천두술 도구 키트. 고대 로마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천두술'은 매우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외과용 가위]
[현대의 철제 U자형 가위]
외과 의술에 꼭 필요한 이 가위 유물 역시 오늘날의 것과 놀랄 만큼 유사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폼페이 근처 나폴리 박물관에 전시된 고대 로마 시대의 다양한 의료&수술 도구들. 이처럼 로마 의사들은 오늘날 수준의 고도의 의료술을 행하지는 못했어도 어느 정도 발전된 의료 행위를 집도했다.]
또한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주(州)의 리미니(Rimini)에서 발굴된 '외과 의사의 집'에서도 이러한 정교한 의료용 도구들이 발굴되었다. 이를 통해 로마 제국은, 적어도 이탈리아 본토에서는 상당한 의료 행위가 이루어졌음을 짐작하게 한다. 고대에는 '아르미니움(Arminium)'으로 불렸던 리미니는 서로마 제국 말기에 제국의 수도가 되었던 역사적인 도시이다. (위 유적은 AD 2세기 후반 추정)
[또한 로마는 드넓은 지중해 세계를 제패한 군사 대국이었던 만큼, 제국의 군단 주둔지에는 항상 '군의'가 동행했다.]
[독일 뒤셀도르프 근처 로마군 요새 유적지의 '군병원(Valetudinaria)']
발레투디나리아(Valetudinaria)는 야전 병원이나 이동식 군사 캠프였다. 발레투디나리아는 부상 군인 전용 텐트와 요새의 작은 부속 건물들로 시작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러한 임시 요새는 영구 시설로 발전하게 되었다. 최초의 병원은 로마 정복지의 주요 도로를 따라 세워졌으며 곧 로마 요새 건축물의 일부가 되었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요새 외곽의 조용한 부분이나 성벽 근처에 배치되었다.
[벽화 속에 나타나는 로마 의사의 모습]
[의료 도구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또 다른 유명했던 로마 제국 내 '그리스인 의사', 비티니아의 아스클레피아데스(Asclepiades of Bithynia)]
[이처럼 로마 제국의 '의술' 발전에 매우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은 '그리스인 의사'들이었다.]
출처: 네이버 부흥 카페 '유럽매니아'님
첫댓글 두통 없애다가 뒤지긋네ㅡㅡㅋ
나름 그럴싸 하긴 합니다
충격이나 기타 이유로 인한 뇌부종시 비슷하게 처치하여 뇌의 압박을 저하시키긴 했습니다
물론 감염이나 쇼크는 차치하구요
잘 봤습니다.
미드rome에서도 잠깐이나마 수술장면 나오는데 그당시 진통제 없이 견디었다는게 정말 대단함
2222 과거와 현대 의술의 가장 큰 차이는 마취같습니다..
대단하네요
이런 자료 너무 좋습니다 ㅎㅎㅎ
저런 의술에 비하면 당시 우리나라 뿐 아니라 아시아권은 외과적인 시술은 너무 뒤떨어진게 아닌가 싶네요 ㅠ
로마는 이과가 쩌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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