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줍기만 하면 돈이 되는 ‘로또’로 통하며 나오는 대로 팔리던 무순위 청약이 이제는 물량이 쌓이는 신세로 전락했다.
청약 대기자들의 외면으로 여러번 무순위 청약이 진행되는 사례가 늘면서 올해 무순위 청약으로 나온 단지는 작년 대비 2배 수준까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단지는 무순위 청약으로도 손님을 찾지 못해 분양을 취소하기도 했다.
13일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올해 1~12월(11일 기준) 게시된 무순위 청약 공고는 총 378개(중복포함)로 집계됐다. 지난해 올라온 무순위 청약 공고가 189개였던 것과 비교하면 1년 만에 딱 2배가 된 것이다. 올해가 아직 2주 이상 남은 만큼 무순위 청약 공고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과거 분양만 하면 ‘완판’됐던 서울도 예외는 아니다. 올해 들어 게시된 서울 지역 무순위 청약 공고는 총 52개로, 작년(20개)와 비교해 2.5배 이상이다. 규모가 작은 것과 중소 건설사가 시공한 아파트 단지가 대부분이지만, ‘한화포레나 미아’, ‘북서울자이 폴라리스’ 등 대형 건설사가 짓는 단지도 없지 않았다.
무순위 청약은 청약 통장을 사용하지 않고 거주지와 무주택자라는 요건만 맞으면 신청할 수 있다. 집값 상승기에는 대부분 일반청약 완료 후 부적격 당첨에 의한 계약 취소 물량이 공급 시점의 분양가로 나와 ‘로또’로 인식됐다. 최근엔 집값 하락을 우려한 청약 당첨자들이 일부러 계약을 포기한 경우가 많아 무순위 청약 물량이 늘어나고 있다.
계약자를 찾지 못해 서울에서도 여러 차례 무순위 청약을 진행한 단지가 여러 곳이다. 서울 강북구 수유동 칸타빌 수유 팰리스가 대표적이다.
이 단지는 지난 2월 일반분양 당시 평균 경쟁률 6.43대 1로 1순위 청약을 마감했지만, 많은 당첨자가 계약을 하지 않으면서 올해만 5번의 무순위 청약을 진행했다. 현재는 할인된 가격에 선착순 분양을 진행 중이다.
올해 서울 분양시장의 ‘대어’였던 둔촌주공 아파트가 예비 당첨자 기준을 못채우면서, 계약률이 저조할 경우 무순위 청약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지난 4월 분양한 서울 노원구 ‘한화 포레나 미아’는 평균 청약 경쟁률이 10.68대 1로, 예비 당첨자 기준을 채웠음에도 지난달까지 5차례 무순위 청약을 진행한 바 있다.
둔촌주공을 재건축한 ‘올림픽파크포레온’은 1·2순위(해당 지역·기타 지역) 청약 결과 총 16개 타입 중 12개 타입이 순위 내 마감했다. 39㎡A·49㎡A·84㎡D·84㎡E 등 4개 타입은 순위 내 청약 마감에 실패했다. 수도권 거주자 및 2순위 청약까지 했지만, 공급 가구 수의 5배에 달하는 예비 당첨자를 채우지 못했다.
무순위 청약에도 입주자를 모집하지 못하는 아파트 단지가 늘어나면서 입주자 모집 공고를 취소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1·2순위 청약에서 계약률이 저조할 경우 무순위 청약을 진행해야 하는데, 무순위 청약을 진행할 때마다 비용이 나가니 아예 분양을 미루는 것이다.
지난 10월 분양한 전라남도 광양시 ‘더샵 광양라크포엠’은 최근 계약자들에게 ‘입주자 모집 취소 및 분양 연기 검토 중’이라는 내용의 문자를 발송했다. 청약 당시 898가구 모집에 530명이 지원해 미분양 물량이 상당수 발생했는데, 다수의 당첨자가 계약 하지 않는 일까지 벌어지며 아예 분양을 취소한 것이다.
수도권에서는 지난 7월 분양한 인천 미추홀구 도화동 ‘서희 스타힐스 더 도화’가 최근 분양을 취소했다.
청약 당시 73가구 공급에 249명이 몰렸지만, 전체 공급 물량 중 72.2%인 104가구가 미계약 물량으로 남게 됐다.
이후 지난 8월 한 차례 무순위 청약을 실시했지만, 미분양 물량이 대거 발생했다.
시행사와 시공사는 지난달부터 분양 계약을 전면 취소하는 방안을 검토한 끝에 최근 분양을 취소하고 견본주택을 폐관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흐름이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고준석 제이에듀 투자자문 대표는 “집값이 오를 때 무순위 청약은 분양가가 시세 대비 수 억원 낮아 인기가 있었지만, 최근엔 집값이 하락하면서 시세가 분양가보다도 낮아질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면서 “분양 시장에 한파가 불고 있어 무순위 청약 물량이 당분간 늘어날텐데, 조합과 시행사의 금융 부담도 증가해 시장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