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릉에서 대구까지
이번에도 역시 조금 무모한 계획을 세웠는데 다름 아니라 이곳 대구로 전입된 지 3년 동안 늘 가슴에 품어오던, 강릉에서 자전거로 출발하여 대구까지 단숨에 혹은 쉬지 않고 또는 거침없이 달려오는 그림이었다. 그리고 거의 한 달 가까이 치밀한 계획을 구상하였고 이번 계획은 예전보다 훨씬 구체적인 것이어서 심지어 0.몇km까지 도면에 표시하였으며 중간에 예상되는 숙박업소에 일일이 전화하여 숙박가능 여부를 확인하고 시간대별 날씨와 풍속을 체크하는 등 어쩌면 이보다 더 상세한 여행 계획은 차라리 미련하다 할 정도로 준비에 완벽을 기하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미리 계획상 지정한 숙박업소에서 머문 적 없었고, 도면에 표시된 도로로 주행한 퍼센트는 채 10%가 넘지 않았다. 역시 계획에 우선하는 것은 마음 가는대로 출발하고 보는 액션이라는 경험칙을 새삼 깨달았다.
■ 따라서 최초 계획은 다음과 같았으나
대구(집) --24km-→ 대구북부정류장 -버스로 이동→ 강릉시외터미털 --1.5km-→ 임당사거리 -9.5km-→강릉승마장 --6.5km-→ 정동진역 --6.5km-→ 금진온천 --5.9km-→ 옥계초등학교 --12.9km-→ 어달항 --2.6km-→ 묵호역 --6.0km-→ 동해역 --6.5km-→ 추암역 --7.1km-→ 비치조각공원 --3.9km-→ 삼척교 --5.2km-→ 맹방초등학교 --18.2km-→ 장호중학교 --33.4km-→ 죽변면사무소 --8.9km-→ 울진군청 --12.9km-→국립수산과학원동해연구센터 --8.4km-→ 망양교차로--4.8km-→ 기성시외터미널 --5.7km-→ 구산해수욕장 --5.2km-→ 직산보건진료소 -6.5-km- 후포파출소 --16.0km-→ 고래불대교 --11.3km-→ 축산항초등학교(경정분교) --16.7km-→ 강구항 --31km-→ 칠포해수욕장 --16.8km-→ 포항역 -15.9-km-→ 안강시외터미널 --18.6km-→ 영천시청 --28.4km-→ 집 = 총 356.8km
■ 실제 아래와 같은 코스로 다녀왔고
대구(집) --19km-→ 대구북부정류장 --버스로 이동-→ 강릉시외버스터미널 --13km-→ 안인해수욕장 --7km-→ 정동진역 --9km-→ 금진해수욕장 --19km-→ 동해시 --15km-→ 삼척시 --62km-→ 울진 --21km-→ 기성면 --16km-→ 평해읍 --39km-→ 영덕 --46km-→ 포항 --49km-→ 영천 --25km-→ 대구 = 총 340 km (소요시간 : 38시간)
1일차(2013.12.12.목) : 집→대구북부정류장, 강릉→삼척 = 82 km (소요시간 : 10)
2일차(2013.12.13.금) : 삼척 → 평해읍 = 99 km (소요시간 : 11 )
3일차(2013.12.14.토) : 평해읍 → 영천 = 134 km (소요시간 : 14)
4일차(2013.12.15.일) : 영천 → 대구 = 25 km (소요시간 : 3)
* 총 주행거리 : 340 km (소요기간 및 시간 : 3박4일, 38시간)
■ 다음과 같이 준비하였다.
준비물 : 추리닝(상하), 플래쉬 및 예비배터리, 충전기, 책, 돋보기안경, 선그라스, 장갑, 목도리, 빵모자, 그냥 모자, mp3 및 배터리, 충전기, 클래식usb, 양말, 수건, 내의(하의), 물, 보온병, 블랙커피, 컵, 소형 노트, 필기구, 맥가이버 칼, 과일 칼, 휴대폰 및 충전기, 시계(자전거 전면 부착), 체인에 오일, 타이어 공기주입, 혈압약, 아스피린, 휴지, 팩, 배즙, 사과, 귤, 팩, 발 크림, 대일밴드, 마데카솔, 자전거 후미등, 현금(10만원), 카드, 스키장갑
■ 2013.12.12.(목) 03:30 기상하여 며칠 동안 꼼꼼히 챙긴 준비물을 대형 가방에 담아 자전거 짐받이에 붙들어 매고 안방에서 주무시고 계시는 아내가 행여 깰세라 조용히 현관문을 닫고(물론 잠그고) 04:40에 대구 북부정류장(다른 지역은 거의 시외버스터미널이라 하는데 유독 대구는 정류장이라는 정감 있는 표현을 쓰고 있다)을 목적지로 하고 출발하였는데 이 역시 어떤 여자가 남편이 하필이면 이런 추운 겨울날 새벽에 무슨 자전거를 타고 강원도를 가겠다는데 걱정하지 않겠는가. 문제는 그 상황에 접하였을 때 마음이 약해지거나 본질이 흐려지거나 하여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을 수 있다는 우려지심에 이런 때 항상 사용하는 방법이 아내에게 들키지 않고 집 떠나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실 그럴 필요 없었던 게, 이런 일이 다년간에 걸쳐 여러 번 반복되자 이력이 났는지 이젠 걱정도 안하고 전날 말하기를 “날씨 추운데 돈 아낀다고 라면만 먹고 다니지 말고 비싼 것 사먹고 꼬지지하게 싼 방 찾지 말고 비싼 모텔에서 주무시라”고 제법 충고까지 하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3박 4일간 아침과 점심은 갈 길이 멀다는 이유로 라면만 먹은 것 같고, 내려오면서 동해안 바닷가 숙소들이 겨울 비철이라 그런지 대개 저렴한 가격이었다. 물론 작심하고 비싼 최신형 모텔에 들겠다면 그럴 수도 있었겠으나 목적지를 향하여 다만 10분이라도 아껴야 하는 형편에 한유한 관광객 흉내를 낼 수는 없었던 것. 경험에 의하면 무어든지 일단 목표를 정했으면 대개 뒤도 옆도 돌아보지 말고 오로지 목표를 향하여 일로 매진하는 다소 무모한 방법론이 결국 완성에 이르는 것이다. 이번에도 그랬다.
■ 머피의 법칙인지 이렇게 자전거 여행을 계획할 때마다 억수로 장맛비가 퍼붓거나 갑자기 날씨가 추워지거나 그랬는데 이번에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이번 주가 올 겨울 들어 가장 춥다고 보도된 대로 초장부터 너무 춥다. 손이 얼어 금호강 자전거길 달리다가 멈춰 벤치에 앉아 아래 내의를 꺼내 입고 속 장갑을 하나 더 끼고 그러다보니 몸이 더 얼어 아양교를 지나는데 일용직 노동자들이 장작을 태우고 있어 염치불구하고 꼽사리 껴 잠시 손과 언 몸을 녹이고 갈까 생각하다가 그냥 지나쳤다. 아직 캄캄한 새벽이라 차량이 많지 않아서 쉬지 않고 달려
■ 06:30 대구 북부정류장에 도착하여 강릉 가는 버스표를 20,800원 체크카드로 결제하고 버스 트렁크에 자전거를 뉘여 싣고 좌석에 앉아 잠을 청하였는데 물론 잠은 오지 않고 을씨년스런 차창 밖 듬성듬성 눈 온 풍경이 마음을 착잡하게 한다. 앞으로 며칠 동안 전에 했던 말 못할 고생을 사서 할 생각에 참으로 인생은 재미없는 시간이 훨씬 많다는 진리를 한 번 더 깨닫는다. 그러다가 잠시 20분쯤 눈을 붙인 것 같다. 딱 한 번 휴게소에서 쉬고 연속 4시간을 버스에 갇혀 있다가
■ 10:50 강릉시외버스터미널 도착. 집에서 새벽에 출발할 때 먹은 게 변변찮아서 분식집 어묵가게를 기웃거리다 포기하고 터미널 벤치에 앉아 완전무장을 재점검하고 드디어 강릉에서 대구까지 자전거로 주행하는 나름 대장정 길에 나섰다. 즉 출발하였다.
■ 12:20 강원도 겨울날씨가 매섭다. 길가 중국음식점에서 짬뽕을 주문하고 식당 화장실에서 조끼와 동내의(하의)를 착용하고 서둘러 길을 떠나는데 매우 춥다. 더군다나 칼날 같이 차가운 바람이 매섭다. 이번 자전거 여행이 쉽지 않은 고생길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다.
■ 13:22 정동진 가는 동해안 바닷길. 앞서 착용했던 조끼와 목T를 벗었다. 참으로 사람 살아가는 게 번거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운데 가다가 자전거를 세워놓고 겉옷을 벗자마자 찬 대기에 가감 없이 노출된 가운데 조끼를 벗으니 더 춥고, 목T마저 벗으니 더욱 춥고 하여 서둘러 겉옷을 입는데 이놈 작크가 말을 듣지 않는다. 만약에 작크가 고장이라도 나버리면 그야말로 난감한 상황이 펼쳐질 것이다. 겉옷을 입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 상태로 겨울을 원치 않게 만끽하며 몇 시간을 달려야 하는 바보 같은 상황이 바야흐로 펼쳐지는 것이다. 다행히 몇 번 시도하였더니 작크가 온전히 채워졌다.
동해 바다는 참 좋다. 맑고 웅장하고 깨끗하고 넘실대며 파랗기까지 하다. 이런 데서 어부가 되어 물고기 잡으며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다가 그만 겨울 찬바람에 으스스해져 갈 길을 재촉하였다.
■ 13:22 정동진 도착. 간간 말로만 듣던 정동진에 도착하였다. 역 앞에 지나가는 젊은 부부 중 남자에게 부탁하여 사진을 몇 방 찍었다. 근거로 삼기 위함이다. 그러고서 출발하는데 맞바람이라 전진이 너무 힘들다. 즉 마음껏 페달을 밟으며 겨울 동해안 바다를 감상하는 건 차치하고 한발 한발 구르는 게 힘이 너무 들어가니 차라리 내려서 끌고 걸어가다 타다 하는 동작의 빈번한 반복으로 영 재미없는 상황에 처해진 것이다. 그런데다 설상가상 새벽부터 대구 북부정류장까지 자전거로 출발하여 강릉 오는 시외버스에서 거의 뜬눈으로 왔던 탓에 엄청 졸리다. 눈꺼풀이 천근이요 만근이라 반은 눈을 감고 꾸벅거리며 라이딩 하는데 거기다가 칼날 같은 겨울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들고 우선 장갑을 두 개나 덧끼었는데도 손이 많이 시리다. 길가 버스정류장에 잠시 여장을 풀고 휴식을 예정하고 가져온 귤 하나 까먹는데 집에선 천덕꾸러기 취급받던 귤이 달다. 달아도 너무 달다. 비유하자면 꿀맛이다. 하나 더 까먹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많이 가져올 걸 그랬다.
■ 16:07 삼척 가는 4차선 도로. 무릎 보호를 위하여 조금만 경사진 도로가 나오면 잽싸게 내려 자전거를 끌고 하염없이 걸어간다. 이 동해안 바닷가는 강원도답게 해안도로도 굴곡이 심하다. 마치 산악 행군하는 모양이다. 눈발이 제법 휘날린다.
■ 17:00 동해시 도착. 이제 본격적으로 앞이 안보일 정도로 눈이 퍼붓는다. 내리는 눈은 안경과 장갑과 털모자와 겉옷을 적시고 이게 찬바람을 맞으며 얼어간다. 매우 춥다. 트럭과 버스 등 대형차들이 끊임없이 내 곁을 스쳐가고 앞은 안보이고 하여 감으로 전진하는데 도저히 안 되겠어서 길 가 주유소로 다짜고짜 들어가 지나가는 과객인데 저기 석유스토브에 손 좀 녹이고 가겠노라 통보하고 난로 앞 의자를 점령하여 젖은 장갑과 손을 말리고 덮히는데 손님 차 기름 주유하고 실내로 들어온 종업원들이 내가 난로 앞에 버티고 앉았으므로 주객이 전도되어 내 곁에 꼽사리 낀 형국으로 옹기종기 서서 있다. 조금 미안했지만 일단 언 몸을 녹이는 게 주관적으론 나에게 더 중요하므로 안면 불식하고 한동안 그러고 있었다. 이왕이면 자판기 커피 한 잔 뽑아먹을까 생각 들었으나 그랬다가 “거지도 양심이 있어야지”하는 폭발적인 소리 들을 것 염려하여 굳세게 참아내고 감사의 예를 표하며 작별을 고하였다. 마지막 품위는 지킨 셈이 되었다. 물론 그들은 아무런 생각도 없었겠지만.
■ 강릉에서부터 불과 60여km밖에 안되는데 힘들었던 건 젖은 눈이 눈(eye)으로 치고 들어 긴 언덕이나 버스와 화물차 왕왕거리는 복잡한 도로변에서 내려 끌고 걸어야 했기 때문이다. 배고프고 지쳐 많이 힘들다. 이는 오늘 새벽 3시에 기상하고 4시 반에 대구정류장까지 16km을 주행했던 전초전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환경이 따뜻한 아파트 방에 앉아 마누라가 깎아온 내가 꿀이라 명명한 배를 먹으면서 타자하고 있는데 그때 당시 즉 춥고 배고프고 힘들어 지쳐가는 상황에서 이런 따뜻한 기온과 꿀맛 같은 배(바다에 떠다니는 배를 말함이 아니라 먹는 배를 칭한다) 한 조각이 얼마나 소중한 것들인지 과거 육군 제2하사관학교에서 열여덟 꽃다운 청춘에 필설로 다하기 어려운 힘겨운 훈련 과정을 겪어본 잊혀 지지 않는 기억과 맞물려 새삼 인생이란 젊을 때나 늙어버린 때나 대동소이하다는 물질 현상학적 진리가 새롭다.
■ 마침내 삼척 시내로 접어들었는데 도착 시간은 기록하지 않아서 분명치 않지만 아마 19:30 정도 아닌가 짐작된다. 시내 주요지점(식당과 모텔이 운집한 지역)을 세 바퀴 쯤 자전거로 순례하고 모텔에 들어 가격을 질문하니 3만원이라 하여 모텔치고는 저렴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깎아줄 수 있느냐 되물으니 선뜻 5천원 깎아주겠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모텔 하루 숙박비가 2만 5천원이라는 말이 되는데 물론 세상에 공짜는 없었다. 방은 바깥 날씨와 동일하도록 냉랭했고 욕실에 샤워기에서 흐르는 물은 간신히 그 흉내만 내는 것이어서 하도 궁금하여 모텔 주인에게 왜 이렇게 춥고 썰렁한가 물으니 보일러는 아예 없고 오로지 이불 밑에 전기장판 하나가 전부라 그런다. 그러면 그렇지! 질량 불변의 법칙(E=mc자승)이 들어맞는 순간이다.
아무튼 씻는 척하고, 눈에 젖은 옷을 걸어두고 늦은 저녁 먹으러 오다가 봐 둔 순대국 집에서 과감하게 특(순대국 보통은 6천원이요, 특은 7천원이라 되어있다)으로 주문하고 아울러 날짜 지난 신문을 펼쳐 드니 사실 그 시간만큼은 배부르고 등 따신 행복한 순간이라 할 수 있었다. 더욱이 그 집 요리 솜씨가 전에 평택에서 유명한 순대국집 못지않아 주인아주머니에게 이를 칭찬하고 마침 TV 뉴스에서 국방관련 보도를 보고 내친김에 조국과 민족의 의미가 무엇인가, 대한민국 공조직 시스템에서 어쨌거나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가 바로 국방을 담당하고 있는 조직이다. 나라가 있어야 민족이 있고 가족이 있으며 장사할 수 있고 나처럼 휴가 받아 여행할 수 있는 것이다. 국민의 세금과 국가방위의 사명감을 최고 가치로 삼는 군대가 대한민국을 지키고 5천년 유구한 역사의 명맥을 잇는 것이다. 그중 오늘날 가장 중요한 건 공군력이다. 초전에서 공군 전투기의 역할이야말로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며 국운을 가르는 실질적 최고의 전력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를 잘 이해하고 특히 대한민국 공군에 대하여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야 할 것이다.
열변을 토하는데 맞은편에서 식사하고 있던 젊은 남자 하나가 불쑥 내 자리로 찾아와 소주잔을 내밀면서 자기도 같은 생각이라며 한 잔 권한다. 옆을 보니 주인아주머니는 무슨 잡지책 같은 걸 보다가 딴 생각하는지 영 경청하는 태도가 좀 그렇다. 순대국 한 그릇 먹으면서 너무 강론이 길었나보다. 내일을 위하여 이쯤 해두고 자리에서 일어나 좀 전에 그 예의바른 젊은이에게 감사의 예를 표하고 모텔로 들어와 순전히 전기의 힘으로 덮혀진 꼬지지한 이불 속으로 들어가니 아무튼 따뜻해서 좋다. 순식간에 잠이 들고
■ 12.13.(금) 04:30 잠에서 깨어 자리에 누운 채로 핸드폰 지도를 열어 1시간 정도 오늘 여정에 대한 면밀한 계획을 구상하고, 라면 한 개 끓여먹으면서 뉴스를 보니 오늘이 금년 들어 가장 추운 날씨라고 호들갑이다. 08:30에 출발할 예정이었으나 결국
■ 09:20 일단 울진을 목적지로 두고 출발
■ 11:20 논스톱으로 4차선 대로변을 2시간을 달리는데 뒤에서 찬바람이 강풍으로 세게 몰아친다. 그러나 하늘과 햇살이 맑으므로 예보와 달리 그다지 춥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렇게 말했다가 즉후부터 대단한 추위에 시달린 생각을 하면 예측이란 결코 함부로 단정 짓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졸음이 쏟아져서 캔 콜라를 단숨에 들이켰다.
■ 12:42 작진항 쪽으로 가다가 해안도로 버스주차장. 춥지 않다고 메모지에 기록했다가 인과응본지 지금 현재 너무 춥다. 손 시리고 발 시리고 몸 떨리고 따라서 기분 우울하고 하여 아침에 섞어 온 보온병에 담긴 블랙커피 마실렸더니 식어서 영 이 맛도 저 맛도 아니다. 역시 야전에서 커피란 인스턴트가 정답이란 생활상의 지혜를 깨달았다. 명색이 해안 도로를, 즉 해안도로라 함은 완벽한 수평의 바다에 면한 도로로써 당연히 수평을 이루고 있어야 정답인데 설마 바다를 낀 도로가 오르락내리락 할 줄 내 상상이나 했으리요. 무슨 반칙 같은 풍경 내지 산악도로가 끊임없을 듯 펼쳐진다. 제기랄!
■ 13:50 이러다간 휴가기간 내 대구는 고사하고 포항까지 가는 데 하세월일 것 같은 원치 않는 예감에서 7번국도(뒤에 알고 보니 7번 국도가 자동차 전용도로로써 엄격하게 기능하는 곳은 강릉에서 울진 정도인 것 같다. 그 아래로는 가다가 면소재지 등과 면하여 차라리 도심 4차선 정도로 변질되어 있는 느낌이다. 실제 네이버에서 자전거 길을 검색하면 7번 국도로 소개되어 있다) 자동차 전용도로를 타기로 결심하고 실행에 옮겼는데 그렇게 10분도 채 안가서 교통경찰 순찰차에 딱 걸렸다. 그 범생이 같은 교통경찰이 막무가내로 오던 길 되돌아 가 꼬불꼬불한 국도를 타라는데 “아니 그럼 여기서 도로를 역 주행하라는 말이냐”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따져 물었더니 다음 빠져나가는 길이 하염없으니 그렇게 하라고 단정 짓는다. 그건 명령이냐고 물으니까 법이요 규정이라고 맞받아친다. 인간이 대개 법과 규정이라는 데는 말문이 막히는 법 또는 규정! 그렇게 아니할 수 없었다.
인상을 북북 긁어가며 오던 길 되돌아가면서 세상에 너무도 나약한 내 자신의 처지를 마침내 비관하기까지 이르렀으니 젊은 사람한테 이래라 저래라 지시받는 무능력함과 무슨 국어책 읽듯이 법과 규정을 지시하는 강원도 순 깡 촌 순경한테 무시당했다는 자괴감으로 잠시 멈춰 핸드폰을 열고 자동차 전용도로 위반의 죄를 검색하니 아뿔싸 그 처벌이 만만치 않다. 순간 자격지심이니 무시당했다느니 하는 한가한 심려에서 노닥거릴 때가 아니라는 위기의식에 봉착하고 고이 하라는 대로 하는 게 상책이라는 현실주의로 가닥을 잡게 되었다. 저 무지막지한 교통경찰이 지금이라도 맘 변하여 쫓아와 나를 불러 세우고 “귀하는 도로교통법 어쩌구”하면서 벌금 내지 과료에 처해버린다면 나는 간만에 자전거 여행이고 나발이고 그딴 게 문제가 아니라 잘못하면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자전거 탄 죄로(그런데 생각해보니 그것 참 이상하다. 분명히 자전거는 도로교통법 상 자동차 취급받는데 이런 때만 자동차 대열에서 왕따라니 헌법 제11조 평등의 원칙이 무색한 지경에 처했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체포와 영장과 판결과 과료의 세상에서 헤엄치고 있어야 한다면 또는 그럴 수도 있을 수 있지 않지 않을 수 없지만은 않다는 불길한 생각에 잽싸게 우선 교통경찰 시야에서 라인오브싸이트(Line of sight) 되도록 신속하게 페달을 밟기 시작하였다. 쪽팔리긴 하지만...... 그렇게 2차선 국도로 접어들어 반은 내려서 끌고 반은 타는 굼벵이 같은 속도로 전진하여
■ 14:22 울진 북면에 도착하여 이 때 쯤 점심을 먹어야겠다는 일편단심으로 길가 면소재지 주변을 탐색하는데 식당 해물칼국수 집 앞에 붙어있는 가격표에 해물칼국수만 가격이 적혀있지 아니하여 상상하기를 전에 제주도에서 전복해물탕이라 명명하고 시중에서 많아야 6천원이면 족할 음식을 13,000원씩이나 수거하는 상도덕 제로의 상술에 걸려든 아픈 기억이 떠올라 간단히 지나치고 그 뒤로 이 동해안 관광지와 같은(사실 그곳에서 바닷가 관광지는 육안으론 보이지도 않고, 차 타고도 20분은 족히 가야할 것이다. 즉 거기는 내 생각으로 본래 관광지라 할 수 없는 4차선 도로변 식당일뿐인 것이다) 군 또는 읍이나 면이라는 장점을 최대한 악용한 여타 식당들을 배제하고 즉시 그 돼먹지 못한 동네를 떠나버렸다.
첫댓글 참 맛깔스럽게 재미있게 쓰신글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