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5시에 잠이 깨이다.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잘 이루지 못하는 아내는 벌써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아내와 산책을 나가다. 아침부터 매미와 참새소리가 요란하다. 바닷가에 이르니 벌써부터 물에 들어가 헤엄을 치는 아이들이 보인다. 성급한 놈들.
바다로 돌출해있는 선착장으로 나간다. 하롱베이 시가 한 눈에 들어온다.
푸른 야산을 배경으로 죽죽 서 있는 하얀 호텔 건물들에 비해 슬레이트 지붕을 인 낡은 민가들은 너무 초라해 보인다. 공산주의 사회여서 하롱베이가 관광계에 알려진지 얼마 안 된다. 한적한 어촌 마을이 앞에 있는 섬들로 하여 졸지에 세계인에게 노출된 것이다. 그래서 민가들은 아직 옛 모습 그대로인 것이다.
가로수는 자귀나무, 고무나무, 야자수들이 주종을 이루고 매미나 새들은 회화나무 비슷한 고목들의 가지에서 운다.
마을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거리에 나서기 시작한다.
하루 중 가장 시원해야할 일출 직전인 아침인데도 30 분도 안 걸었는데 등줄기에 땀이 흐른다.
7시에 호텔에서 아침 식사.
호텔이 좋으니 음식도 좋은가 보다. 어제 하노이 스포츠 호텔보다 훨씬 낫다.
볶음밥, 보드라운 베트남 쌀국수, 토스트, 계란 프라이, 바삭 바삭한 베트남 만두, 바나나, 파이, 노니 등을 배불리 먹었다.
잘 자고, 잘 먹고, 좋은 사람들과 좋은 구경하러 다니는 것 - 건강과 여유가 주는 복이 아닌가.
복잡하고 짜증나는 국내 정치 소식을 안 들어도 숨 쉬는데 아무 지장이 없구나.
대통령이 무엇이라 한들 귀에 안 들리고, 명박이 성님과 근혜 동생이 뭐라고 한들 내가 알게 뭐야.
9시에 하롱베이 섬들로 향하는 유람선에 오르다. 선착장에는 50 여척의 2층짜리 동력 유람선이 떠 있고 바다에 이미 손님을 싣고 돌아다니는 유람선도 많다. 유람선 고물에는 용의 머리를 얹어 전체적으로 거북선을 닮았다.
이번 여행의 주제인 하롱베이의 섬들이 서서히 다가온다. 우리는 시야가 좋은 2층에 올라갔다.
석회석으로 된 섬들은 오랜 세월동안 빗물에 깎이고 깎여 가파른 절벽들로 해안을 만들고 있다.
거의 90 도 수직에 가까운 해벽에 나무와 풀들이 달라붙어 삭막한 해벽을 잎과 꽃들로 살리고 있다.
꼬끼리 머리섬, 낙타섬, 공룡 등뼈섬, 형제섬, 3 부자섬, 부부섬, 쌍곰섬, 거북섬, 쥐섬, 부처섬 등
내 마음대로 섬 이름을 지어 부르며 다가오는 섬, 뒤로 물러가는 섬들에 정신을 빼앗긴다.
Halong 이란 하늘에서 용이 내려와서 만든 섬이란 뜻.
下龍 이라고 한자화할 수 있다.
하늘에서 용이 내려와 베트남을 중국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3,000 여개의 섬을 만들어 방파제로 만들어주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원나라가 베트남을 침략했을 때 하롱베이에서 원의 수군을 물리쳤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이 왜군을 물리친 것처럼.
30 분을 항진한 유람선은 제 1 기착지 디엔 굴 섬에 도착.
이 작은 섬에는 자그마한 석회암 동굴이 있다.
바다 위의 섬에 있으니 이 동굴은 지상에 있는 셈이다.
천공동굴로 하늘을 향해 뻥 구멍이 나 있다. 돌아보고 나오는데 반시간 남짓 밖에 안 걸리지만 명색이 동굴이라고 있을 것은 다 있다.
2억 3천만년 동안 자란 석순이며 석주들이 용바위, 박쥐바위, 거북바위, 부처바위, 할배 할매 바위, 원숭이 바위, 선녀와 나무꾼 바위, 남근석, 선녀 옥문석 등등 --- 이 이름들은 한국인 가이드들이 제 마음대로 지어 부쳤다. 동굴에는 두 개의 분수가 있는데 이것은 우리나라의 한일 자동 펌프에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다시 배는 섬들을 헤치고 나아간다.
에메랄드 빛 바다 위에 그림같이 떠 끝없이 다가오는 수많은 무인도들.
가장 걸작은 마주보는 곰 암수 바위. 뽀뽀라도 하려는 듯 입 부분이 닿을 듯하다.
대나무 쪽배 삼판배를 저어 이 하롱베이 바다까지 따라 나온 가족이 있다.
30 대 로 보이는 여인이 논 삿갓 아래 한 두 살배기 머슴애를 눕혀 놓고 돈 한 푼 달라는 듯 손을 흔든다.
그 억척이 섬뜩하기조차 하다. 세상에 이 난바다까지 쪽배를 저어 애기를 앵벌이로 삼아 구걸에 나서다니.
500 원짜리 동전을 1,000 원짜리로 싸서 던져 주었다.
저렇게 목숨을 걸다 시피 하루 만원을 벌면 성공일 것이다.
베트남에서는 한 달에 평균 5만원을 벌어도 괜찮은 편이라니까.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 반 23 명은 배안에서 다금바리 회 판을 벌였다.
다금바리는 농어 비슷한데 길이가 1m 이고 부산에서는 뿔농어라고 한다.
제주에서 많이 나는데 아주 비싼 횟감으로 서민들은 먹기가 어려울 정도.
그런데 1 인당 3만원을 내고 먹기로 했다. 우리 팀은 회를 먹지 않는 여학생들이 셋이나 되어 한 사람이 15,000 원씩만 내고 2인분만 시켰다. 나온 다금바리를 보니 광어회나 같고 맛도 그와 비슷하다.
서비스로 나온 새우며 조개도 맛있어서 가이드가 제공한 소주와 내가 가져간 C1 소주로 깜짝 파티가 벌어졌다.
C1 병과 잔을 들고 테이블을 돌며 인사를 나누다가 부산일보 논설위원을 지냈고 지금은 퇴임한 안기호 씨와 알게 되었다. 나로 말하자면 부산일보의 50 년 독자이며 안기호씨의 칼럼을 많이 읽었던 독자 아니겠습니까? 이런데서 만나니 반갑습니다요.
역시 부산일보 논설위원을 했던 15회 동기 이진두 친구 이야기를 하며 금세 말이 통해졌다.
여행이란 이래서 좋은 거다.
생판 몰랐던 사람들하고도 한 가족처럼 친해질 수 있는 것이다.
유람선 제 2의 기착지는 도아 디톱.
디톱은 베트남 전쟁시 월맹을 도왔던 구소련의 고관 이름. 도아는 베트남어로 섬이란 뜻.
디톱과 당시 베트남 대통령 호치민이 하롱베이를 관광하던 중 이 섬에 이르러 디톱이 호치민에게
“전쟁이 끝나면 이 많은 섬들 3,000 여개 중에서 하나쯤은 별장용으로 나에게 줄 수 있겠소?”
이 때 호치민은 섬의 모래를 한 줌 집어 들고
“각하, 이 한 줌의 모래도 다 베트남 국민들의 것이지 제 것은 한 알갱이도 없습니다.
그 대신에 이 섬 이름을 각하의 이름으로 지어드리겠습니다. 각하가 저희 베트남에 끼친 은혜는 이 섬과 더불어 영원히 우리 국민들의 가슴에 남지 않겠습니까?“
이에 감격한 디톱은 더욱 그의 최선을 다하여 월맹을 도왔다는 이야기다.
도아 디톱은 디톱의 섬이란 뜻이다.
계단을 따라 오르면 전망대가 셋 - 전망대가 높아짐에 따라 시야가 점점 넓어지고 보이는 섬의 수가 많아진다.
정상의 제 3 전망대는 팔각정 - 팔각정을 빙 돌아가며 주변을 조망하면 동에도 섬, 서에도 섬, 남에도 섬, 북에도 섬, --- 섬섬섬, 섬들뿐이다.
섬 총회.
5대양에 흩어져 있던 내노라하는 섬들이 모두 하롱베이에 달려와서 구수회의를 하는 모양이다.
완전히 섬에 쌓인 섬에 서서 인생이란 무엇인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철학적인 생각에 잠겨 본다.
엄청나게 많은 섬들을 본 것 같은데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우리 시야에 들어온 섬의 숫자는 3,300 개 중에서 10분의 1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리고 가이드는 이 섬 중의 어느 섬에서 대우 그룹 김우중 회장이 몇 년을 은신했다고 한다.
베트남에 대우 공장을 지을 때 사귄 어느 베트남 고관의 보호로.
그러던 중 어느 측근의 배신으로 은신처가 한국 당국에 알려지게 되자 자진해서 출두했다는 미확인 소문도 있다고 한다.
우리 세대의 우상이었던 김우중 회장이 세계 경영의 꿈을 계속 추진시켜 더 멋진 대우, 더 큰 대우를 만들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다오 디톱은 그 많은 섬들 중 드물게 해수욕장과 부두 근처에 몇 개의 업소가 있다.
그늘에서 얼음을 채운 야자수 액을 마시면서 수영복을 입고 다니는 여자들의 몸매 구경을 하다.
해수욕장에는 주로 자신 있는 여자들만 비키니를 입어서 그런지 체구는 작지만 날씬한 아이들이 많다.
가무잡잡한 피부에 물이 뚝뚝 떨어지는 모습은 싱싱 생생 그 자체다.
가끔은 피부가 놀랍게 희고 키가 커서 서양물이 튀긴 여자도 보이는데 아마 프랑스 식민지 시절의 수액이 흘러든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뿐만이 아니고 베트남 인의 피 속에는 따이한 용사들의 피도 흘러들었다.
한국군이 월남에 파병되어 베트콩과 싸운 10 여 년간 - 34 만 명 정도의 피 끓는 젊은이들이 다녀갔는데
번식력이 왕성한 단군의 후손들이 어찌 씨를 뿌리지 않았겠는가.
통계에 의하면 현재 라이따이한 (베트남 엄마와 한국군 아빠의 아이) 은 4,000 여명.
엄마의 재혼으로 호적을 완전히 바꾼 아이들도 많을 것이니 7,000 명은 되리라는 것이 가이드의 주장이다.
아이노꼬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그들은 서러운 소년 시절을 보내고 이제는 2~30 대의 청년들로 자라났지만 아직도 아버지를 찾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있는데 정작 아비들은 내몰라 하고 방치하고 있단다.
1시 반에 귀로에 오르다.
배안에서 점심을 먹다. 색다른 맛이다.
하얀 쌀밥에 베트남 만두, 생선찌개, 두부 튀김, 고등어구이, 시금치 데친 것 까지 배에서도 잘 먹었다.
2시 50 분에 하롱베이 부두에 도착하여 베트남 국영 웅담 판매소에 들렀다.
에어컨이 시원해서 좋다.
코코넛 과자와 야자차를 대접하며 한국인 매니저가 설명한다.
웅담 즙 1 CC 를 고량주 1 병에 타서 하루에 두 잔 씩 마시라고 한다.
식전에 한 잔, 취침 전에 한 잔.
1 CC 에 5 만원인데, 10 CC 면 40 만원으로, 단체 구입이면 30 만원으로 깎아주겠단다.
하도 사기가 많은 세상이니 마취시킨 곰을 운반해 와서 수의사가 우리들 보는데서 직접 바늘을 꽂아 곰의 쓸개에서 웅담을 뽑아내는 것이 아닌가. 처음 보는 광경이다.
사람이란 참 잔인한 동물인가 보다. 아무리 곰쓸개가 좋아도 이렇게 해야 하는가.
70%의 쓸개를 빼도 곰에게 아무 지장이 없다고 한다. 곰에게 물어봤나.
전시효과 덕분인지 대번에 100 CC 가 팔린다. 돈 없단 말은 거짓말이다.
5시 호텔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잠시 쉬었다가 호텔 인근의 하롱 식당에서 저녁.
한국인 경영의 한식점.
칼치 찌개와 닭 도리 탕이 주식인데 여기서 재배했다는 상치가 아주 아삭아삭 부드럽고 맛있다.
곳곳에서 상추 더! 상추 더! 소리가 연발된다.
밥을 두 공기나 먹었다.
7시에 발 마사지 받으러 가다. 태국이나 중국보다 비싸다. 30 달러 - 3만원이다.
비싸다는 생각이 들어 별로 가고 싶지 않았는데 가이드 보기가 좀 그래서 따라 갔다.
남자에게는 여자가, 여자에게는 남자가 마사지를 해주어야 기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아내의 계군들은 마사지가 부정의 4촌이나 되는 듯 일제히 호텔로 돌아가 버렸다.
네 명의 중늙은이들이 누워서 20 전후의 영계들의 마사지를 받는다.
1시간 반동안.
이름이 발마사지라 먼저 발이 집중 공격을 받았다.
발가락을 꺾고, 잡아당기고, 좌우로 돌리고, 발가락 사이를 후비고, 발바닥을 비비고 돌리고 치고.
아프면 ‘아파’, 세면 ‘살살’ 하라고 하면 알아듣는다고 하는데 점잖은 체 한다고 간지럽고 아파도 참아주었더니 이 아이가 더 세게 하는 바람에 땀이 다 날 지경이었지만 인내와 끈기를 발휘하여 한 마디 하지 않고 참았다.
발에서 임무를 완료하고 부드러운 손길은 종아리와 허벅지를 공략하기 시작.
무슨 미끈미끈한 크림을 발라 아래위로 훑으며 문지른다.
아가씨 손은 남자의 중요 부분 10 센티 아래까지 진출. 성감대는 잘 피해간다.
지그시 감았던 눈을 슬쩍 떠서 아가씨를 보니 이마에 땀이 번질거린다. 고생하네.
이번에는 나를 뒤집어 엎어놓더니 어깨와 목을 주무른다. 아주 올라타서 짓누르기를 시도한다.
시원하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아무튼 큰 고역이다. 마지막에는 눈을 감기고 얼굴까지 문지른다.
돈이 뭐길래 꽃 같은 나이의 아가씨가 제 애비보다 나이 많은 사람의 몸을 더듬으며 서비스를 해야 하는가.
호텔로 돌아오니 우리 팀 여자들 5 명이 모두 우리 방에 와 있다.
나의 제자 이영숙이 제공한 열대 과일 한 바구니를 처분하기 위하여 모여 있는 것이다.
아내의 부탁으로 사장이 우리 방에 특배시킨 것이리라.
파인애플, 바나나, 귤, 노니, 사과, 배, 레몬 7가지 과일이다.
C1 소주를 내서 ‘위하여’ 를 한 번 하고 먹기 시작하다.
귤, 사과, 배는 맛이 우리 것만 못한 것 같다.
하기야 1년에 한 번 씩 전력을 투입해서 결실을 맺는 우리나라 과일과 1년 내내 열리는 것들하고 비교가 되겠는가.
첫댓글 마사지 받을 때의 기분 묘사가 인상적이군요. 그래도 그 아리따운 아가씨와 단 둘이만 방에 머물면서 남자의 몸을 여자의 부드러운 손으로 이래 저래 마음껏 만지고 주물렀는데도 딴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마사지에만 열중했다니 안심이 되군요. 잘했군 잘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