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보 터뜨린 ‘살가운 육담’
박정희 정권 때 한동안 사람들은 ‘스마일 배지’를 달고 다녀야 했다.
정치적으로는 억압의 시대요, 경제적으로는 농촌 사회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면서 고향 잃은 사람들이 속출한 눈물의 시대에 웬 스마일 운동 웃지 못하는 사회의 역설이랄까. 정치적 구호로 웃음을 강요받을 만큼 우리의 얼굴은 어두웠다.
따지고 올라가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얼굴이 굳어진 건 조선시대 성리학의 영향이 크다.
공자의 가르침을 적은 <예기>는 ‘웃음 억제 이데올로기’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술을 마실 때도 얼굴빛이 변할 때까지 먹지 아니한다.
웃을 때도 잇몸을 드러내지 아니하고 화가 날 때도 욕을 하면 안 된다….
기쁨·노여움· 슬픔·즐거움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때를 ‘중’이라 하고, 그것들이 겉으로 드러나서 절도에 딱 맞는 걸 ‘화’라고 한다.”
특히 <중용>의 ‘혼자 있을 때를 삼간다’는 사상은 유가 수양론의 핵심으로 스스로 자기 억제 기제를 발동하라고 가르쳤다.
자기 억제에 중안 짧아 어두웠던 얼굴 해부학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얼굴이 웃기에 ‘불편’하다는 주장도 있다.
한국인의 얼굴을 연구해온 조용진 교수(서울교대 미술교육과)는 미간부터 코밑까지 이르는 중안(中眼)이 다른 민족들보다 짧은 데서 그 이유를 찾는다.
“중안이 짧고 우묵하면 치열이 내려가 입꼬리가 처져 보인다..
보통 동양 사람들이 서양인보다 중안이 짧은데 한국 사람들은 남방계와 퉁구스 북방계가 대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에 중안이 더 짧다.
입꼬리가 평균 6도가량 처져 있다.”
이와 견줘 일본 사람들은 평상시 입매가 수평을 유지하고 있다.
웃을 때 대부분 입꼬리가 7도가량 올라간다고 할 때, 일본 사람들의 웃음과 같은 효과를 내려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13도나 올려야 한다.
입꼬리가 처지면 전체적으로 침울하고 무뚝뚝한 분위기를 풍기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밝게 웃어야 그런 인상을 털어낼 수 있다.
조교수는 1970년대 이후 영양상태가 좋아지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골격이 많이 변한 것에 주목한다.
얼굴 또한 중안이 길어지고 치열도 올라감에 따라 미소 짓기가 상대적으로 쉬워졌다는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의 얼굴이 환한 것은 자유분방한 분위기와 아울러 해부학적으로 웃음이 편안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들의 얼굴이 크게 변했는데, 남자들보다 얼굴 길이나 중안의 길이 변화가 평균 1.5~2배가량 더 커졌다.”
이는 남성들에게만 쏟아지던 섭생 불균형이 해소되고, 여성들의 표정을 옥죄던 정서적 억압이 풀리면서 일어난 변화다.
하지만 아무리 한국 사람들이 유교의 자기 감시 이데올로기와 정치적·역사적 피폐함 속에 스스로를 가뒀을지라도 웃음을 좋아하는 낙천적 기질까지 묻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성리학적 질서가 낮의 양명한 햇볕을 쬐며 빛을 발했다면, 질펀한 웃음의 세계는 밤이슬을 머금으며 살아남았다.
김선풍 교수(중앙대 민속학과)는 한국 사람들의 웃음이 ‘육담’ 속에 농축돼 있다고 지적한다.
김 교수는 10년 전 헤이룽장성을 방문했을 때 일화를 놀라움으로 기억한다.
“과거 4인방의 문화대혁명 당시에도 조선족들은 일과가 고됐음에도 밤마다 마구간에 모여 육담을 즐겼다.
중국의 어느 소수민족도 그처럼 문화혁명을 보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옌볜 동포들은 이런 이야기들을 아예 ‘‘고기 얘기’라며 모닥불을 피워놓고 밤을 새우며 즐긴다.
예부터 양반 댁에선 재담꾼들을 식객으로 맞이해 귀하게 대접하며 이야기를 즐겨들었는데, 오히려 양반이 육담을 더 즐겼다.
가사문학의 대가인 송강 정철은 기생 진옥과 진한 ‘‘육담 시조’를 주고받았다.
“옥이 옥이라 거 늘 번옥만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하니 진옥 일시 분명하다/
내게 살송곳이 있으니 뚫어볼까 하노라.”
여기에 진옥은 한술 더 뜬다.
“철이 철이라 거 늘 섭철만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하니 정철 일시 분명하다/
내게 골풀무 있으니 녹여볼까 하노라.”
‘고기 얘기’라면 새벽이슬 마다하지 않아 정조 땐 특히 청계천 수표교 등 번화한 곳에서 소설을 낭독하고 이야기를 재미나게 해 돈을 버는 ‘전기수’란 직업적 구전꾼도 생겨났다.
조선 후기 이후엔 이런 유의 육담을 묶어 책으로 많이 펴냈는데, 오늘날엔 <고금소총> <촌담해이> <어면순> 등 10여 가지가 남아 있다.
김 교수는 우리의 육담에 대해 글자 그대로 살과 살이 닿는 듯한 감칠맛 나는 표현과 탄탄한 구성을 강점으로 꼽는다.
반면 서양과는 달리 계급적 전복을 노리는 얘기는 상대적으로 드물다고 지적한다.
그는 “허물없고 악의 없는 순수한 웃음의 세계가 우리 육담” 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