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30일 오늘의 역사
2021년 한국 양궁선수 안산(20)이 도쿄 올림픽에서 사상 처음 3관왕 달성
안산은 7월30일 일본 도쿄 유메노시마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양궁 여자 개인전 결승에서 옐레나 오시포바(러시아올림픽위원회)를 슛오프까지 가는 접전 끝에 6-5(28:28/30:29/27:28/27:29/29:27/<10-8>)로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앞서 혼성 단체전과 여자 단체전을 제패하며 2관왕에 오른 안산은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양궁 3관왕에 등극했다. 이번 대회부터는 양궁에 혼성 단체전이 추가돼, 개인 별로 최대 3개까지 금메달 획득이 가능해졌다.
2016년 이화여대 본관점거농성 학생 해산 위해 경찰투입 요청, 경찰 1600명 학내 투입
2014년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11곳 새정치민주연합 4곳 승리
2009년 인도 마지막 왕비 갸야트리 데비 타계
2009년 7월 30일 인도 북서부 라자스탄주에 존재했던 토후국 자이푸르의 마지막 왕비인 갸야트리 데비가 90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왕비는 동부 벵갈지역 왕족 출신으로 지난 1939년 당시 토후국인 자이푸르의 왕(maharaja)이자 갑부였던 사와이 만 싱의 세번째 부인이 됐다.
유명 패션잡지인 보그가 한때 ’세계 10대 미인’ 가운데 하나로 선정할 만큼 출중한 미모를 자랑했던 데비는 인도 전통의상인 사리 등을 전 세계에 알리며 인도의 패션 아이콘이 되기도 했다.
또 데비는 1962년 스와튼트라당을 창당해 현 집권당인 국민회의당에 맞섰으며, 3차례나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등 정계활동도 활발히 했다.
그러나 1970년 당시 총리였던 인디라 간디의 왕족 탄압 정책에 따라 탈세 혐의로 5개월간 투옥되기도 했다.
2009년 800 연안호, 북한 장전항에 예인
2009년 7월 29일 출항한 29t급 오징어 채낚기 어선인 ‘800 연안호’(선장 박광선.54. 거진 선적)가 30일 GPS 고장으로 NLL 북쪽 수역 11.2km까지 올라간 후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나포되었다.
통일부는 연안호가 예인된 직후 해사당국간 통신을 통해 귀환을 촉구했으나 북한은 다음날인 31일 동해지구 군사실무책임자 명의의 대남 전통문을 보내 “현재 연안호에 대해 북측 해당 기관에서 구체적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조사 결과에 따라 선원들과 연안호 문제가 처리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통일부는 매일 해사당국간 통신을 통해 연안호 조사 상황을 문의했으나 그 때마다 돌아오는 북측은 ‘조사중’이라는 답변만 보내와 연안호의 송환은 비관적이었다.
그러나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다음달인 8월 10일 평양을 방문, 16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면담하면서 연안호 석방에 대한 긍정적 답변를 받아왔으며, 서거한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을 위해 8월 21일 서울을 방문한 김기남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는 “연안호는 문제 없을 것”이라는 말로 석방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후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 일정이 확정된 28일 석방을 통보받은 연안호와 선원 4명은 29일 무사히 속초항에 도착했다.
연안호와 선원 4명은 이날 오후 5시 고성군 저진 북동방 16마일 지점(북위 38도 37분, 동경 128도 44분) NLL 상에서 북측으로부터 해경 경비정에 인계됐으며 오후 8시25분께 속초항으로 귀환했다.
2007년 스웨덴 영화감독 잉마르 베리만 세상 떠남 ‘산딸기’ ‘화니와 알렉산더’
2007년 이탈리아 모더니즘 영화의 거장 미켈란젤로 안토니오(94세) 세상 떠남
2007년 미 하원 일본의 위안부 강제동원 비난결의안 통과
2004년 배우 출신 오기 지카게, 일본 여성 최초 참의원 의장 선출
2004년 7월 30일 오기 지카게(扇千景) 전 국토교통상이 일본의 상원에 해당하는 참의원 의장으로 내정됐다. 참의원 의장에 여성의원이 선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오기 의원은 시원시원한 이미지의 정치인으로 한때 여성 총리설이 나왔을 정도의 여걸이다. 1952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극단 다카라즈카(寶塚)에 입단, 이후 연극·영화 배우를 거쳐 TV사회자로서도 큰 활약을 한 연예인 출신 의원이다. 연예인들의 정계 진출이 활발하던 1977년, 당시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 총리 등 자민당의 거물의원들이 직접 스카우트에 나설 정도로 지명도 있는 인물이다.
본명은 하야시 히로코(林寬子)로, ‘오기 지카게’라는 이름은 출신지인 고베(神戶)항의 별명인 오기(扇)와 존경하는 배우인 아와시마 지카게(淡島千景)에서 따온 예명이다.
건설교통상 재임시 ‘주부감각’을 내세운 정책을 표방, 밤 시간 이용이 어려운 나리타(成田)공항 대신 하네다(羽田)공항에 국제선 정기편 취항이 가능하도록 했다. 탈당경력이 약점으로 지적됐으나 경쟁자였던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의 아들인 히로부미(弘文·58)씨가 경쟁파벌의 견제 등으로 탈락하며, 결국 의장에 내정됐다.
2003년 빌 뮬러 미국 야구 사상 최초로 한 경기서 좌우 연타석 만루홈런 기록
보스턴 레드삭스의 빌 뮬러(Bill Mueller·32)가 미 프로야구(MLB) 사상 처음으로 한 경기서 좌·우 타석 만루홈런을 치는 진기록을 세웠다.
레드삭스―텍사스 레인저스전. 스위치 히터(Switch Hitter) 뮬러는 1―2로 뒤지던 3회초 선두타자로 나와 왼쪽 타석에서 상대 우완 선발 R.A.딕키로부터 우월 솔로 홈런을 쳤다. 뮬러(1m78·82㎏)는 1996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데뷔한 이후 지난 시즌까지 통산 홈런이 41개에 불과해 ‘슬러거’와는 거리가 멀었다. 첫 타석 홈런(11호)이 자신의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일 정도였다.
뮬러는 5―4로 앞서던 7회 네번째 타석서 1사 만루의 기회를 잡았다. 상대 구원투수인 애런 풀츠가 왼손 투수였기 때문에 이번엔 오른쪽 타석에 섰고, 볼카운트 2-2에서 풀츠의 공을 잡아당겨 좌중간 담장을 훌쩍 넘기는 만루 홈런을 뽑아냈다.
그런데 8회말 뮬러 앞에 다시 주자가 꽉찼다. 우완 투수인 재이 파월을 상대하기 위해 왼쪽 타석을 고른 뮬러는 2번째 공을 받아쳐 우월 만루포를 뿜었다.
메이저리그에서 ‘한 경기 2 만루홈런’이 나온 경우는 이번이 12번째. 1999년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서 뛰던 페르난도 타티스(현 몬트리올 엑스포스)가 LA 다저스서 선발투수로 활약하던 박찬호(현 텍사스 레인저스)로부터 1이닝 2 만루홈런이라는 수모를 안기기도 했다. 하지만 좌·우 타석에서 번갈아 그랜드슬램을 날린 선수는 뮬러가 처음이다.
2001년 가수 황금심씨 별세
‘알뜰한 당신’의 원로 여가수 황금심(79)씨가 2001년 7월 30일 자택에서 별세했다. 작고한 황금심씨는 한국 가요 초창기인 1930년대 중반부터 1950년대 말까지 인기를 누렸던 가요사의 큰 별이었다.
가수 고복수씨와 최초의 ‘스타 가수 커플’로 유명했던 황씨는 목소리가 워낙 고와 ‘꾀꼬리 여왕’이란 애칭으로 불렸다. 황씨가 가수로 데뷔한 것은 열두살 나던 1934년, 동네에서 그녀의 노래 소리를 들은 레코드 판매원의 소개로 OK 레코드에서 판을 내면서였다. 1938년 빅타레코드사로 옮겨 발표한 ‘알뜰한 당신’이 대히트를 기록하며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고, 얼마 뒤 같은 레코드사 소속이던 당대 최고 남자가수 고씨와 비밀 연애 끝에 결혼해 장안의 화제를 한 몸에 모았다.
이후 조선악극단(1939년)과 백조악극단(1945년) 등을 거치며 명성을 떨친 황씨는 1950년대까지 ‘삼다도 소식’ ‘여자의 일생’ ‘장희빈’ ‘뽕따러 가세’ ‘한양낭군’ 등 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가수 활동을 하면서도 헌신적 내조로 유명했고,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난 뒤 홀로 3남2녀를 키웠다. 1992년 문화훈장 옥관장을 받았다.
2000년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재선
베네수엘라 대통령 선거에서 좌익 성향의 우고 차베스(46) 현 대통령이 야당 연합의 프란시스코 아리아스(49) 후보를 누르고 재선에 성공했다.
차베스는 지난 92년 1만여명의 부하를 이끌고 쿠데타를 일으킨 인물로, 뛰어난 연설로 대중적 인기를 모아왔다. 라이벌 아리아스와 인연을 맺게 된 것도 함께 쿠데타를 일으키면서였다. 쿠데타는 실패했지만 두 사람은 지난 98년 차베스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다시 결합했다. 아리아스는 지난 2월 논쟁 끝에 차베스와 결별했고, 결국 정권을 놓고 한판 승부를 벌였다.
아리아스는 상류층과 중산층의 지지를 얻는 데는 성공했으나, 부유층 후보라는 이미지를 벗지 못해 정권 창출에 실패했다. 차베스는 부패 척결과 경제 재건 등을 내세워 전체 국민의 80%를 차지하는 빈민층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승리를 따냈다.
1998년 오부치 게이조 일본 제84대 총리에 선출
오부치 게이조가 1998년 7월 30일 일본 제84대 총리로 선출됐다. 2세 정치인 오부치는 대학1학년 때 사망한 부친의 뜻을 받들어 26세때 군마 3구에서 처음 출마해 3위 당선에 성공했다. 최연소 당선이었다.
와세다대 영문과를 졸업한 그는 재학중 서클도 웅변회, 서도회, 합기도부처럼 선거에 도움될 만한 곳만 골라 가입했다. 오부치는 연설도 어눌했고 경제를 잘 모른다는 치명적 약점을 갖고 있었지만 반면에 조정력이라는 강점을 갖고 있었다. 무대뒤의 협상과 절충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 `인품의 오부치`로 불리기도 했다.
그는 26세 때 처음 중의원에 당선된 이후 다케시다 전총리에게서 정치를 배웠다. 35년 정치인생의 태반을 다케시다의 충실한 오른팔 역할을 해 온 끝에 1992년 자민당 최대 파벌 다케시다파를 통째로 이어받기도 했다. 총무장관, 관방장관, 외무부장관을 역임했다
1994년 영국의 추리 소설가 로빈 쿡 암으로 사망
영국의 인기 추리 소설가인 로빈 쿡(63)이 1994년 7월 30일 암으로 사망했다. 뉴욕 태생인 쿡은 의학 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의사 출신 작가이다. 의학정보와 의료계 비리에 정통한 그의 작품들은 당시 국내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교보문고 집계결과 의학 스릴러 `바이러스`(원제 Outbreak), `돌연변이`(Mutation) `브레인`(Brain) `코마`(Coma) 등 4작품이 추리소설 베스트셀러 10위안에 들었다.
웨슬리언 대학과 콜롬비아 의대를 졸업한 쿡은 하버드 의대에서 강사로 활동하기 시작한 1972년 `인턴시절`을 발표하면서 데뷔했으며, 1977년 장기 이식과 뇌사 문제를 다룬 장편 `코마`로 본격적인 의학 소설을 선보였다.
그의 작품들은 현대사회에서 의료계가 비양심과 결합할 때 얼마나 무서운 해악이 초래될 수 있는가를 섬뜩한 필치로 묘사한 것이 특징이다. 그가 지금까지 발표한 작품은 모두 15권으로 작품마다 각기 다른 소재를 사용해 독자들에게 끊임없는 흥미를 유발했다.
1991년 IBMㆍ모토로라ㆍ애플 3사 ‘파워PC동맹’ 체결
1987년 북한적십자 손성필 위원장 대한적십자사에 수해위문문 발송,
1983년 미국-중국, 무역분쟁 종식
1981년 감비아 좌익 군사쿠데타
1980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교육정상화 및 과열과외 해소방안’ 발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는 1980년 7월 30일 과외금지를 주안점으로 한 ‘교육정상화 및 과열과외 해소방안’을 확정발표했다. 이른바 7·30조치로 불리는 이 방안의 주요내용은 81학년부터 대학본고사를 폐지하고 예비고사 성적 및 고교내신 성적만으로 신입생을 선발하며, 대학정원 10만명 증원, 졸업정원제 실시, 중고교 교육과정 축소, 방송통신대학 확충, 교육방송 실시 등이었다.
과외금지방안은 처음에는 규제대상을 모든 공직자를 포함한 사회지도층 인사의 자녀로 한정하고, 학원수강 금지대상도 중고교생으로 규정했으나 세부시행과정상에서 모든 과외의 금지 및 입시목적의 재학생 학원수강금지로 확대됐다.국보위가 이날 발표한 방안은 국가적 차원의 과제로 등장한 지 오래된 과외수업의 과열현상을 이번 기회에 뿌리뽑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바탕으로 했다.
1978년 황룡사 사리장치 조사 청동 거울 등 국보급 유물 250여 점 발굴
1978년 알바니아 단원(斷援)에 반발 중국 비난
1978년 비동맹회의, 베오그라드선언 채택
1977년 백건우ㆍ윤정희 부부 피랍 중 탈출
1977년 7월초, 재불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박인경을 통해 스위스 취리히의 한 부호가 그의 연주를 듣고 싶어한다는 제의를 받는다. 박인경은 고 이응로 화백의 두번째 아내로, 이응로와 함께 프랑스에서 생활하다가 1967년 동백림 사건으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던 인물이다. 백건우는 한 해 전, 이응로의 주례로 영화배우 윤정희와 결혼식을 올린 바 있어 평소 이ㆍ박 부부와 가깝게 지내던 사이였다.
백건우는 윤정희와 5개월된 딸, 그리고 박씨와 함께 1977년 7월29일 취리히행 비행기에 올랐다. 공항에는 부호의 여비서라는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고, 그 여자는 부호의 양친이 유고 자그레브에 있다며 연주지 변경을 요청했다. 공산국가라 내심 찜찜했으나 자그레브행 비행기를 탔다. 백건우 가족과 박씨가 찾아간 곳은 한적한 시골에 있는 3층 집. 있어야 할 부호는 없고 동양인 남자 만이 보이자 백건우는 신변에 위협을 느꼈다. “웨이트, 웨이트” 소리를 뒤로한 채 타고온 택시를 타고 유고 주재 미국 영사관으로 달렸다. 직원의 안내로 호텔에 투숙했으나 이튿날 아침 객실 문앞에는 북한사람으로 보이는 3명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영사관 직원의 도움으로 자그레브 공항을 벗어나 파리 오를리 공항에 내린 것은 30일 정오쯤. 그제서야 긴장이 풀렸다. 이 사건은 박씨가 3차례에 걸친 파리 주재 한국 대사관의 조사요구에 응하지 않아 아직도 미완이다.
1975년 유럽안전보장협력회의 헬싱키서 개막
1971년 전일본항공 보잉727기와 일본 공군 F-86기 모리오카 상공서 충돌 사망 162명
1971년 서울외곽에 그린벨트 첫 지정
1971년 7월 30일, 건설부 고시로 서울 외곽지역에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가 처음 지정됐다. 서울 중심부에서 반경 15km를 따라 폭 2∼10km 지역의 서울·경기 땅 454.2㎢(첫 발표 때는 467㎢)의 개발을 묶는다는 내용이었다. 도시의 무분별한 확산과 토지 투기 억제가 목적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공식 발표하지 않고 슬그머니 관보에만 실어 밀실행정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 사실이 슬금슬금 알려져 해당 지역의 땅값이 폭락하기 시작하자 토지 소유자들이 사유재산권 침해라며 반발하고 나섰으나 서슬이 퍼렇던 시절이었다.
정부는 부산·대구·광주 등을 시작으로 1977년 전남 여천 일대에 마지막 그린벨트를 지정할 때까지 총 8차례에 걸쳐 그린벨트를 확대해 갔다. 그 결과 전 국토의 5.4%(16억평)가 그린벨트로 편입됐다.
불만이 많았던 만큼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챙겼다. 관리근거가 도시계획법 시행규칙에 불과한데도 이를 개정할 때는 반드시 사전 재가를 받도록 해 결과적으로 군사정권 정책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성공사례’로 남았다.
1969년 중부 지방 큰 비 사망 실종 59명 이재민 12,000여명 피해 5억 9,500만원
1968년 대법원 동베를린사건과 민비연사건 언도
동베를린사건=중형 12명에 원심파기환송. 민비연사건=황성모 등 4명 원심파기환송/3명 무죄확정
1965년 일본 소설가 다니자키 준이치로 사망
1965년 7월30일 일본 소설가 다니자키 준이치로(谷崎潤一郞)가 79세로 사망했다. 도쿄대 국문학과에 입학했으나 학비 부족으로 중퇴하고 24세 때인 1910년에 와쓰지 데쓰로 등과 함께 제2차 `신사조`를 창간한 후 단편 `문신(文身)`과 `기린`을 발표해 문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듬해에는 `스바루`에 희곡 `신서(信西)`, 단편 `소년`을 발표해 문단의 격찬을 받았다.
문신을 한 뒤 갑자기 몸이 변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문신`은 다니자키 문학을 특징짓는 탐미주의의 신호탄이었다. 그의 작품은 당시 일본에 유행하던 자연주의 테두리를 벗어나 여체를 찬미하고 성의 신비를 응시하여 변태성욕의 세계까지를 파헤쳐 탐미주의·예술지상주의·악마주의의 천재적 신인으로까지 지목됐다. 장편소설 `치인(痴人)의 사랑`에서는 `인습적 정조 관념이 없는 여성의 변태성욕적 연애`를 뜻하는 `나오미즘`이라는 말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후반기에는 고전적인 경향이 강해져서 `장님 이야기` `춘금초(春琴抄)` 등의 원숙한 작품을 발표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일본의 11세기 소설인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를 현대어로 번역했다, 전쟁 후에는 `세설(細雪)`로 아사히문화상을 수상했다.
1963년 파주무장공비사건
1963년 서울 FM방송주식회사 창립
1963년 필리핀-말레이지아-인도네시아 3개국 수뇌회담
1961년 신문윤리 실천요강 채택
1959년 대법원, 조봉암 재심청구 기각 결정
1958년 아이슬란드 영해 12마일 확대 선언
1953년 역도산, 일본프로레슬링협회 결성
1953년 미국 상원, 한국부흥비 2억불 사용 승인
1952년 국제적십자총회 세균전 금지협약 가결
1950년 유엔 안보리 한국구호결의안 채택
1946년 전국학생연맹 결성. 위원장 이철승
1940년 범미상회담, 공동방위결의를 채택(아바나선언)
1938년 랑군서 불교도와 회교도 충돌. 사상 3000여명
1935년 문고본 대명사 ‘펭귄북스’ 출간
1935년 7월30일, 문고본의 대명사 `펭귄북스(Penguin Books)`가 세상에 모습을 처음 드러냈다.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있거라`를 포함한 10권이 이날 발간된 첫 시리즈였다.
당시 영국 노동자 하루 임금의 20분의 1에 불과한 권당 6펜스라는 저렴한 가격에 품위까지 갖춘 펭귄북스의 등장은 초판 2만부를 순식간에 동 낼 정도로 대중의 독서열을 자극했다. 읽을 만한 책은 으레 고급 양장본인데다 가격도 부담스러웠고, 값싼 문고본은 주로 모험소설이나 싸구려 대중소설 만을 취급해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펭귄북스는 이듬해 말까지 70여권에 300만부 이상이나 팔려나가 구텐베르크 활자 이래 전례가 없는 독서의 대중화를 촉진시켰고, 문턱이 높은 서점을 피해 주로 가게 등에서 판매하는 새로운 마케팅 기법도 선보였다. `종이표지의 보급판 책`이라는 뜻을 가진 `페이퍼백(Paper Back)`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진 것도 이때였다. 펭귄북스의 성공은 미국의 포켓북(1937년)ㆍ프랑스 쿠세즈(1941년)ㆍ독일의 로로로(1950년)로 발전돼 세계는 바야흐로 문고본 시대를 맞았다.
1934년 부민관 기공
1932년 제10회 로스엔젤레스 올림픽 개막
1932년 조만식 등 평양에서 건중회 설립
1930년 제1회 월드컵 결승전, 오른팔 없이 태어난 카스트로 선수 역전결승골 개최국 우루과이 우승
1928년 미국 조지 이스트먼 최초의 칼라영화 공개
1921년 소련-터어키 평화조약 성립
1920년 조선물산장려회(평양) 발기대회
1913년 독일, 대군비(大軍備) 확장안 제정
1912년 메이지(明治) 일왕 사망
일본의 제122대 왕인 메이지(明治) 일왕이 1912년 7월 30일 사망했다. 향년 60세였다. 본명이 무스히토인 메이지 일왕은 1867년 16살에 즉위해 왕정복고를 이룩하고 메이지 신정부를 수립하는 이른바 `메이지 유신`에 성공했다.
메이지 왕은 학제개혁을 비롯, 징병제 실시, 지조 개조, 국회 개설, 헌법 반포 등 일련의 개혁을 통해 일왕을 정점으로 하는 절대주의적 천황제 국가의 기틀을 닦았다.
특히 제국헌법(1889년)에도 일왕의 국가통치 대권, 육해공 통수권을 명기했고 교육칙어에서는 일왕이 국민 도덕의 중심임을 밝힘으로써 천황제 국가를 유지하는 2대 이념으로 삼았다. 재위 45년간 청일전쟁, 러일전쟁에서 승리하고 한국을 합병해 일본국민의 절대적인 존경을 받았다.
1909년 한국 최초의 한자전(漢字典) 발간
1909년 `파킨슨 법칙` 만들어 낸 영국의 역사가 파킨슨 출생
1907년 제1차 러일협약 조인
1903년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제2회 대회서 맨셰비키와 볼셰비키로 분열
1900년 영국, 광산법 제정 소년의 지하노동 금지
1900년 이탈리아 왕 움베르토 1세 무정부주의자 안젤로 브레시에게 암살당함
1898년 독일 정치가 오토 폰 비스마르크 사망
근대 독일의 초석을 다진 철혈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1898년 7월30일 향년 83세로 사망했다. 그는 1860년대 중엽까지 약 40여개의크고 작은 국가들로 나눠져 있던 독일을 통일하고 1871년 독일 역사상 최초의 민족국가인 독일제국 (1871∼1914)을 창건한 정치가로 평가받는다.
47살 때 프로이센의 총리가 되었다
1815년 프로이센의 귀족 가문에서 출생한 그는 프로이센의 관리가 된 20대 이후 늘 프로이센의 통일에만 관심을 쏟았다. 러시아 대사, 프랑스 대사 등을 거치며 국제정치의 안목을 넓힌 그는 1862년 프로이센의 수상을 거쳐 1871년부터 1890년까지 약 20여년간 독일제국의 재상자리를 지켰다. 재임기간동안 총리로서 군비확장을 주도하며 이웃 열강과 수차례의 전쟁을 치르기도 한 그에게는 언제나 정치적으로 적과 동지가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1894(조선 고종 31) 군국기무처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양반제 폐지
1893년 프랑스 샴조약 체결(프랑스 메콩강 동안 획득)
1863년 미국 자동차왕 헨리 포드 출생
1818년 영국 소설가 에밀리 브론테 출생
1771년 영국 시인 그레이 사망
1718년 식민지 개척자이자 종교운동가, 윌리엄 펜 사망
1419년 보헤미아의 개혁자 후스의 혁명 일어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