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무임승차 하지 말자
차덕화 생가터 (서울시 종로구 북촌로8길 1, 가회동 177-10)
이곳은 1934년과 1935년 전 조선, 전 만주, 전 일본 탁구 챔피언 차덕화의 생가터이다
차덕화는 우리나라 최초의 잡지인 '개벽'의 발행인겸 편집자인 청오 차상찬의 차녀로 1918년 태어났다
차상찬은 일제의 혹독한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한글로 글을 쓰다 병사하였으며, 2010년 11월 1일 ‘제45회 잡지의 날 기념식’에서 대한민국 정부에서 은관문화훈장을 추서(追敍) 받았다
♤ 1926년 8월, 일본인 형사들이 개벽사(開闢社)로 들이닥쳐 인쇄된 잡지를 모두 수거해 수레에 싣고 종로경찰서 뒷마당으로 가 그곳에서 작두로 잡지를 썰어서 폐지로 내다버렸다
이게 '개벽'지의 슬픈 종말이었다
우종관 주택 (서울시 종로구 북촌로8길 11, 가회동 177-1)
북촌에 본격적인 건축 붐이 일기 전인 1928년에 우종관이라는 지방 대지주의 아들이 지은 주택으로,
일본 유학을 다녀와 서양주택을 동경했다고 한다
조선총독부에 근무하는 일본인에게 의뢰하여 가회동에 한+일+서양 절충식 주택을 지었고 도머창, 출입하는 사람에 따라 다른 3개의 현관, 일본식 붙박이형 장식공간, 8개의 온돌방을 두었다고 하니 당시로서는 규모가 어마어마 하였다
현재 주택의 외형은 거의 사라졌지만 그 이후 이 집은 쟁쟁한 사람들이 거주했다
♤ 우종관 이후
일제시대 종로 화신 백화점을 소유했던 박흥식이라 는 사람이 두 번째 주인이였다
(그는 해방후 친일 반민족 행위자 1호에 지정되었 다)
그가 사업으로 실패하여 이 집을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에게 매각하였고 정주영 회장 이후에는 이 집의 좋은 기운을 물려받으려고 사업의 재기를 노리던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이 살았다
♤ 고 정주영 청운동 자택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 33길 68-4, 청운동 55-15)
1962년 7월에 지어진 청운동 자택의
건물 면적은 지상 1층이 약 51평(169.95m²), 2층이 약 45평(147.54m²)이다
노틀담 수녀회 교육관 (서울시 종로구 북촌로 54, 가회동 27-2)
로마에 총본부를 둔 노틀담 수녀회는 6대륙 19개국 에 회원들을 파견해서 교육과 의료사도직, 선교활동 등을 펼치고 있다
1850년 6월 3일 아메스포르트 수도자들을 맞아 힐리곤데 볼브링과 엘리사벳 쿨링은 청원기를 시작했다
같은 해 10월 1일에 두 사람은 마리아 알로이시아 수녀, 마리아 익나시아 수녀로 각각 수도명을 받고 수련기에 발을 디뎠다
이로써 코스펠드 노틀담 수녀회의 창립이 이뤄졌다
두 수도자가 뿌린 씨앗은 점차 번성하여 확산됐고 1855년에는 아메스포르트 노틀담 수녀회로부터 독립하게 된다
1967년 7월 7일 세명의 독일인 선교사의 입국으로 시작된 한국 노틀담 수녀회는 서울시 종로구 계동에 자리하여 버스 안내양들을 위한 교육을 실시하는 것으로 첫 사도직을 펼치기 시작했으며, 1984년 인천광역시 계양구 계산2동에 본원을 건축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1992년 '평화의 모후'관구로 승격되었고, 2003년 7월 현재 178명 회원과 16명 수련자, 9명의 지.청 원자가 있다
이곳은 일제 강점기 때 천도교 제4세 대도주였던 춘암 박인호가 살던 곳이다
♤ 박인호(朴寅浩)
충청남도 덕산 출신(1854년 생)으로 1883년 동학 에 입도하였다
1884년에 손병희와 함께 공주 가섭사에 들어가 최시형에게 종교적 수행을 지도받은 뒤 예산지방 에서 포교활동을 벌였다
1892년 삼례집회, 1893년 광화문복합상소와 보은집회로 이어지는 교조신원운동 때 지도부의 일원으로 활약하였고, 동학농민전쟁 재기포에 첨가 하여 홍주성을 점령하는 전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1900년 경도주가 되어 손병희를 도와 동학을 재건 하는데 힘썼고, 1904년 갑진개화운동의 일선에서 활약하였다
1908년 1월 손병희의 뒤를 이어 천도교 제4세 대도주가 되었다
1919년 3·1운동 당시 천도교 자금을 거사 경비로 지원해 민족대표 48인의 한 사람으로 1년 9개월여 의 옥고를 치렀다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 박인호는 1909년 동덕여학교, 1910년 보성중 학교와 보성전문학교·보성소학교, 용산 문창학교, 마포 보창학교, 대구 교남학교, 일신여학교 등을 설립하거나 인수하여 운영함으로써, 고등인재 양성 에 힘쓰기도 했다
♤ 잠시 쉬어가기 ③
전통공예체험관 (서울시 종로구 북촌로12길 24-5, 가회동 11-91)
북촌을 방문하는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한국 전통공예의 우수성을 알리고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마련한 공간이다
전통공예의 재현과 계승, 나아가 현대적 해석을 통한 예술 창작활동과 더불어 방문객들을 위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 운영으로 전통공예의 댜중화 에도 기여하고 있다
체험장, 교육장, 전시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요일별로 마련된 프로그램을 선택하여 체험할 수 있고 전시장에서는 전통공예 작품들을 관람할 수 있다
북촌한옥청 (서울시 종로구 북촌로12길 29-1, 가회동 11-32)
2000년대 초반부터 진행된 ‘북촌가꾸기사업’의 일환으로 한옥 및 한옥지역 경관 보전을 위해
2003년 서울시가 매입해 시민 개방한옥으로 활용 하고있는 공공한옥 중 한 채로,
서울시민이면 누구나 대관이 가능한 시민 모두의 공유 한옥으로 운영 중이다
전시와 더불어 북촌 한옥청에서 바라보는 가회동 전경은 또 하나의 감상 포인트로, 북촌 한옥청 방문 시 놓치지 말아야 할 풍경이다
첫댓글 북촌에 다녀온지 한참 되었지만, 북촌에 반나절 다녀오던 발걸음이 반성이 됩니다. 선생님의 발걸음을 따라가려면 한 집을 제대로 구경하는데 발 나절이 걸릴 것 같습니다.
그 옛날, 드라마에 가회동 이야기가 참 많이 나왔었는데 그만큼 재력가가 세도가가 북촌에 많이 살았다는 뜻이어서 도대체 가회동이 어디야? 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가회동 후에는 삼청동 성북동이 등장했었구요. 가회동은 많이 접할 기회가 없었지만 성북동 삼청동은 참으로 많이 다닐 수 밖에 없었던 길입니다. 물론 선생님 수준으로는 날림이고 주마간산이지만요.
올리시는 글 침 흘리면서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과찬이십니다 ^ㅁ^